〈 65화 〉39-2화. 대련
대련을 시작하라는 알렌의 구호에 두 사람은 서로를 탐색... 아니, 크리스틴은 그저 검은 든 채로.
여유롭게 검을 흔들며 비비안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비비안은 차분히 거리를 좁히며 그녀의 움직임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며 검을 가볍게 쥐었다.
대련이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그녀들의 분위기는 결투에 가깝지 않았을까.
학원생들도 등이 서늘하며 가슴 깊이 피어오르는 뜨거운 열기를 표출하고는 싶었으나 다들 가만히 대련하는 둘을 지켜보았다.
왜냐하면 대련의 분위기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아니 통제라고 할 정도로 학원생들의 사소한 숨소리조차 억제하는 잔잔한 분위기.
"시간이 지났는데 나만 안 움직이는 건 치사한가?"
대련장 끝에서 서 있던 크리스틴이 검을 들며 당당히 앞으로 걸어간다.
위풍당당한 걸음에 비비안은 살짝 당황하지만, 금세 평정심을 되찾았다.
'봐도 뭔지 모르겠네.'
한편 모두가 숨을 죽이며 그녀들의 대련을 집중해서 보고는 있지만, 정작 알렌은 지금의 분위기를 전혀 몰라 그냥 지루한 하품을 내쉬며 눈가를 비빈다.
알렌의 지루한 하품이 새로운 신호가 된 것일까.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검을 들다가 하품하는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크리스틴.
비비안은 3, 40초가 지난 지금. 처음으로 생긴 기회를 놓치지 않는 그 모습은 흡사 먹잇감을 낚아채는 매와 같이.
쏜살같은 발놀림으로 달려들어 크리스틴의 팔을 가격하려는 찰나였다.
"요즘 애들은 금방 성장하네?"
공기를 매섭게 가르는 비비안의 목검이 대련장 위에 떨어지며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는 항복의사를 표한다.
"어라? 벌써 끝내게? 아직 시간도 남았는데?"
"아뇨. 혼신을 다 했는데도 맞질 않았으니 제 패배에요."
고요하게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단숨에 사그라들며 비비안에 스스로 패배를 선언하기에 많은 학원생은 탄식이 섞인 한숨을 내쉬며 너무 싱겁게 끝났다며 아쉬워한다.
크리스틴도 학원생처럼 노골적인 표정을 드러내며 마치 더 놀고 싶어하는 아이처럼 아쉬움이 묻어나는 악수를 나눈다.
"자, 여기."
악수를 나눈 비비안은 대련장에 떨군 목검을 들고 알렌에게 건네준다.
"어, 고맙다."
"...."
비비안은 아무 말 없이 자리로 돌아갔고, 알렌은 소녀의 온기가 남아있는 목검을 든 채로 대련장으로 올라간다.
"후..."
가벼운 심호흡.
대련장에 올라온 알렌은 간질거리는 떨림을 진정시키며 크리스틴의 눈을 보았다.
조금 전만 해도 실망에 물들인 눈동자는 어느덧 기대를 품은 채로 나를 훑어보고 있었다.
다시금 찾아온 폭풍 직전의 고요함이 대련장을 중심으로 퍼지며 두 사람은 제자리에서 신호가 떨어지길 기다렸다.
시작 신호가 떨어지기 전. 알렌은 자신의 검술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냥 돌진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
여태껏 검술을 배워오긴 했지만, 수박 겉핥기로 배운 자신이 크리스틴을 이길리는 만무했다.
그러니 내가 가진 것을 끌어내야 얼추 비빌만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대련 직전에 들었다.
'미리 강화나 해둘까.'
아직 신호가 개시되지 않은 틈을 타, 알렌은 가볍게 마나를 운용하며 신체 곳곳을 강화한다.
"그럼 카운트하겠습니다! 10..."
이름 모를 급식이 카운트를 시작하니 왠지 초조해졌다.
평소와는 다르게 손에는 땀이 나고 등줄기는 오싹 거리는 것이 조금은 이상하게도 흥분됐다.
남자든 여자든 성별을 떠나 자신의 강함의 척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싶었다.
"시작!"
시작이라는 신호와 함께 팔과 다리에 흘려보낸 마나가 요동치며 폭발적인 도약력을 선보이는 알렌.
대뜸 날아오는 나를 보며 여유로운 웃음을 보이던 크리스틴은 가벼운 발놀림과 함께 매섭게 달려드는 알렌을 피하며 반격을 가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대로 대책 없이, 미련하게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는 알렌은 다리가 대련장에 닿는 순간 억지로 발목을 틀고 그에 뒤따라 허리를 절로 따라오며 목검이라고 하기에 무색할 만큼.
목검을 몽둥이처럼 쥔 채로 반격을 가하려는 크리스틴의 목검을 막는 것과 동시에 목검에 마나를 강화시켜 그대로 밀어붙이지만.
사실 알렌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지금 알렌의 몸에 흐르는 불꽃이, 레드 드래곤 클로 세로의 마나가 완전히 둥지를 틀고 자리를 잡은 불꽃은 여타 불꽃과는 차원이 달랐다.
모든 것을 불살라버리는, 클로 세로의 성격을 닮은 듯한 불꽃은 견딜만한 무구는 세상에 몇 없었다.
하물며 아카데미에서 연습용으로 쓰이는 목검이 알렌의 마나를 버틸 수 있을까?
알렌은 이 사실도 모른 채 목검에 마나를 잔뜩 부여했지만, 아쉽게도 연습용 목검은 전설적인 무구는 아니었다.
우지직...!
불길한 소리.
불꽃의 마나가 너무 많이 들어간 것인지 적갈색의 목검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순식간에 검게 변하더니 이내 붉은 혈관이 뒤엉킨 것처럼 검게 탄 목검 사이에는 붉은 마그마가 불안정하게 피어올랐다.
"어머?"
알렌이 쥔 목검에 이상을 눈치챈 크리스틴은 소녀 같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밀어붙이는 알렌의 검격을 바닥을 향하게, 계곡 물이 흐르듯 검의 궤도를 변화시켜 목검을 쥔 알렌의 손을 가볍게 발로 차더니 예상치 못한 고통에 목검을 놓친 알렌의 목검을 빼앗아 들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목검은 던진다면 파편이 흩어져 학원생을 다치게 할 수도 있었기에 크리스틴은 서둘러 손에 쥔 자신의 목검을 버린다.
목재가 타는 냄새
알렌의 목검의 폼멜부터 포인트까지 손바닥으로 지탱하며 그대로 힘을 주기 시작하더니 쩌적이는 갈라지는 목검은 순식간에 제 형태를 잃어가며. 이내 1m에 달하는 목검이 크리스틴의 겹친 손안에 억지로 압축되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의 압축.
또한 마나의 한계를 넘은 목검은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제 형태를 바꾸어 갑작스러운 변화에 폭주하기 시작한 것인지 알렌의 손을 떠난 붉은 마나는 순간 커다란 폭발을 일으킨다.
약간 폭죽과 비슷한 소리가 다연발 적으로 들려오더니 어느덧 크리스틴의 겹친 손에는 검붉은 연기가 손가락 사이로 피어오른다.
"아뜨뜨뜨...!"
크리스틴은 손바닥을 펼쳐 뜨거움을 호소하더니 한 때는 알렌의 목검이었던 것이 터진 구의 형태로 떨어져 마지막 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알렌은 말을 더듬으며 크리스틴에게 죄송하다며 식은땀을 흘린다.
무엇보다 갑작스러운 폭발 때문인지 학원생은 멍하니 입을 벌리며 크리스틴의 손바닥에서 떨어진 목검이었던 것을 보며 벌린 입이 쉽게 다물어지지 않았다.
"괜찮아, 괜찮아. 어디까지나 대련이니까."
괜찮다고 하며 알렌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크리스틴은 자신의 손바닥이 더러운 것을 깨닫고는 알렌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며 멀쩡하다며 손바닥을 펼쳐 보인다.
"꽤 유명한 대장장이가 만든 연습용 목검인데 순수 마나로 터트린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풀이 죽은 알렌을 위해 크리스틴은 순수 마나로 검을 터트린 것에 놀라며 평상시와 다름없게 행동하지만...
"괜찮다니까? 자, 그러면 다음 학원생은 누ㄱ... 어머?"
"일단 보건실로 가죠."
손목을 살며시 잡은 알렌은 보건실로 가자며 크리스틴을 이끈다.
"저, 정말 괜찮은데? 이, 이것 보렴?"
다시금 손바닥을 펼쳐 알렌에게 보라고는 하지만, 알렌은 자신 때문에 다친 크리스틴을 이대로 놔둘 수는 없었다.
"자, 잠깐만 알렌? 서, 선생님 화낸다? 정말 멀쩡하다니깐?"
알렌에게 억지로 이끌리는 크리스틴은 연신 괜찮다며 제자를 진정시키지만...
이미 굳게 마음을 먹은 알렌은 계속해서 괜찮다면 보건실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크리스틴의 만류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둘러 보건실로 무작정 끌고 간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처음인, 비록 제자이기는 하나 남자가 자신의 손을 잡은 것이 처음인지라 크리스틴은 약간 부끄러워하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알렌의 뒤를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