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39-1화. 대련
한적한 분위기가 맴도는 교실.
오늘따라 조용한 교실의 분위기 덕분인지 매번 잠을 자던 알렌은 약간 노곤한 표정을 지으며 교실을 살펴보았다.
"좋은 아침이다."
"어, 왔냐."
어느덧 알렌에게 다가와 짤막한 아침 인사를 건네는 웰턴과 짤막한 인사로 답하는 알렌.
"어제. 별일은 없었나?"
"미라이 말하는 거냐?"
"그래."
"그, 웬만하면 마주치지 마라."
"알겠다."
또 다시 짤막한 대화가 오가더니 웰턴이 웬 종이 한 장을 알렌에게 건넨다.
"뭐냐?"
"저번에. 가문의 이름으로 약을 유통할 수는 없다. 그래도 약에 관심이 있어 하는 귀족들을 추려왔다."
"그래? 마로스 녀석이 좋아하겠구만."
건네받은 종이를 노트 사이에 끼워 넣으며 알렌은 웰턴가 사소한 대화를 주고받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요염한 붉은 여인이 교탁에 올라 조용하던 교실의 분위기가 안 그래도 더욱 고요해졌다.
"오늘은 멍청이처럼 구는 학원생이 없어서 다행이군. 자, 그러면 몇 가지 전달사항이 있다."
전달사항이 있다는 말에 학원생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코델리아가 전달사항이 있다고 하면 대부분 쪽지 시험을 보기 때문에 학원생은 그녀의 입에 일동 집중한다.
"미라이 미레이는 몸이 안 좋은 모양이라 요 며칠은 쉰다고 한다. 그리고..."
간결하게 말하는 코델리아의 말. 학원생이 듣기에는 그 말이 냉정하다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교실에 들어오기 전에 미라이의 기숙사에 방문하며 미라이를 걱정하며 편히 쉬라며 따스한 말을 하며 마음이 아픈 소녀를 위로했다.
"한 달 후에 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코델리아에게 집중하며 식은땀을 흘리던 급식들이 한 달 후에 열리는 축제라는 말에 화색이 돌았다.
"조용하도록."
그러나 찬물을 끼얹듯 코델리아의 조용히 하라는 말에 다시금 급식들이 침묵을 일삼으며 집중하지만, 축제라는 설렘에 급식들은 작게나마 옆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축제라는 설렘에 들뜬 기분은 알고 있는 코델리아는 일단 소란스러운 소리를 암묵적으로 허락하며 말을 이어갔다.
차가운 얼음이 금이 가며 조금은 따스한 분위기 속에서 코델리아는 유유히 자기 할 말을 하며 축제의 진행은 이러했다.
앞으로 약 한 달 후. 아카데미에서 열리는 학원 축제는 다른 나라 사람이 올 정도로 꽤 유서 깊은 전통인 듯하다.
그 밖에도 다양한 축제의 규칙과 설명이 끝나며 코델리아는 급식들을 향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말한다.
'축제라.'
알렌은 한 달 후에 있을 축제를 생각하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알렌 메스티아.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가."
쌀쌀한 말투에 등골이 서늘했다.
아직도 화가 난 코델리아는 팔짱을 낀 채로 나를 보며 묻는다.
"혹시 다른 반과 합동할 수 있습니까?"
"가능은 하지. 그러나 내가 담임인 이상 다른 반과의 합동을 허가할까?"
비웃음과 함께 허가하지 않는다면 코델리아의 말에 뭔가 기분이 묘했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그냥 명령했을 건데... 지금 모습을 보면 그냥 귀엽기 그지없다.
"허가해주신다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요?"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할 테니, 나머지는 한 달 후에 있을 축제의 반 테마를 정하고 방과 후에 보고할 수 있도록."
내 말을 압살시킨 코델리아는 도도한 자태로 교실을 나가자 급식들은 후에 있을 축제에 상당히 들뜬 나머지 교실이 순식간에 시장통을 연상할 정도로 시끄러웠다.
'물론 급식들의 기분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 나도 예전에... 응? 뭐야?'
엎드린 채로 기분 좋은, 어른의 웃음으로 학원생들의 즐거운 모습을 보던 알렌의 얼굴에 그늘이 진다.
"알렌 메스티아...!"
"좋은 아침이다, 클로에."
분개한 얼굴. 그러면서 앙증맞은 두 주먹을 쥔 채로 떨며 나를 내려다보는 클로에의 모습은... 이것 참. 나쁘지는 않았다.
"무슨 일인데 그래?"
"어제... 분명히 어제 방과 후에 기다렸는데...!"
"그랬지. 미안하다."
"뭐? 미안? 하!"
당황이 섞인 놀람. 헛웃음이 섞인 숨소리. 마지막으로 어이가 없다면 헛숨을 내쉬는 클로에의 3종 세트.
"대신에 오늘 알려줄게."
"약속도 못 지키는 녀석의 말을 다시 한 번 믿으라는 거야?"
"맛있는 거 사줄게."
"내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자신을 아이 취급하는 알렌에게 다시금 분개하는 모습을 보이는 클로에.
"그러면 뭘 해줘야 믿겠어?"
알렌은 귀찮다는 듯이 말한다.
악역영애 공략을 위해 필요한 존재이기는 하나. 딱히 클로에를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어차피 클로에는 악역영애 쉽게 공략하기 위한 필수적인 존재라 생각하면 어쩔 수가 없었다.
"네 옆자리에 앉아서 공부할래."
"그건 안돼."
"미라이라는 아이는 앞으로 안 나오잖아, 그게 왜 안 되는데...!"
"미라이 자리니까."
"그게 무슨 되도 안되는 이유야?"
"아무튼 안돼."
미라이의 자리에 앉지 못한다는 말에 클로에는 몸을 떨며 알렌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클로에. 그 대신에 틈틈이 쉬는 시간마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뭣하면 내가 애용하는 공부법을 알려주지. 그러니 미라이 자리에는 앉지 마."
안 된다는 알렌의 말에 클로에는 다시는 약속을 어기지 말라며 자리로 돌아간다.
****
"오늘은 한 사람씩 나랑 대련할 거야!"
운동장에 모인 학원생에게 자신과 대련한다는 말을 꺼내는 크리스틴.
경악하는 표정. 입에서는 여러 야유를 내지르는 학원생들은 크리스틴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그러면 누가 먼저 나설래?"
그러나 모든 야유를 무시하고는 누가 먼저 대련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자 일동 조용해지기 시작한다.
'급식 새끼들. 그냥 까라면 까는 거지. 무슨 잡소리가 이렇게 많아.'
물론 이러한 사태를 유도한 알렌은 제삼자인 것처럼 학원생을 보며 짜증이 난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손을 들고 먼저 대련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저부터 할게요."
"응? 비비안이 먼저 하려고?"
나와 크리스틴은 갑작스럽게 손을 들어 먼저 대련한다는 비비안을 보며 당황했다.
"이봐. 내가 먼저 손을 들..."
"시끄러."
비비안에게 항의하는 알렌은 자신이 먼저 손을 들었다고는 말하려 하지만, 이내 비비안의 차갑고도 냉정한. 그러면서도 열등한 것을 보는 눈빛과 말투에 입을 다물었다.
'후... 너는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공략한다. 시바...'
"어... 그, 그러면 비비안 먼저 선생님이랑 대련할까? 그다음은 알렌으로 괜찮지? 응?"
"네. 저는 상관 업..."
"빨리 시작하죠, 크리스틴 선생님."
또 한 번 알렌의 말을 끊는 비비안.
'아... 혈압 오르네... 후우.'
깊은 빡침의 한숨을 내쉬는 알렌은 일단 진정하기로 했다.
'그래...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자. 크리스틴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자, 가벼운 대련이니 목검으로 하자."
대련장에 올라온 두 사람은 각자 쥐는 스타일이 명백히 달랐다.
크리스틴은 목검을 어깨를 걸친 채로 툭툭 치는 모습은 검을 잡아본 적도 없는 문외한 양아치처럼 행동했으며, 이와 반대로 비비안은 두 손으로 검을 정확히 쥔 채로 자세를 한껏 낮추는 모습은 교과서적인 스타일이었다.
"가볍게 할 테니까, 비비안도 힘을 빼렴."
"대련인데 가볍게 할 수가 있을까요."
"어머나. 나는 내 학생이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은데."
검이 섞이기 전 두 사람은 가벼운 투로 대화하지만, 의미는 무거웠다.
"대련 시간은 1분 30초야. 알렌은 타이머를 정확히 설정해야 한다?"
대련장에 올라가기에 앞서. 크리스틴에게 미리 받았던 타이머를 보이며 알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10초 후에 시작하는 걸로 하고. 두 사람은 각자 위치에서 준비해주세요."
알렌의 지시에 크리스틴과 비비안은 대련장의 끝에 위치해 서로 마주보며, 대련장 주위에서 구경하는 학원생들의 침을 삼키는 소리가 파도치듯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