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36-2. 식사합시다
"자, 맛있게 먹으라고 다들."
"감사히 먹겠습니다, 알렌 형님."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 거듭 감사합니다, 알렌 형님."
저택의 주인도 아닌 알렌이 본 저택 식당 테이블 상석에 앉아 거만할 정도로 식사를 들라 하는 모습은... 흡사.
'저택 주인도 아닌데 이리 행동하니 망나니가 된 기분이네.'
그래도 녀석들은 군말 없이 앞에 놓인 요리를 먹고 있었다.
'나도 먹기나 해야지. 그나저나 요리 겁나 맛있어 보이는데...'
침을 흘리며 굶주린 배를 진정시키려는 그때였다.
"아, 그런데 알렌 형님."
"먹는데 왜 말 걸어, 새끼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혹시 파멜라 쉴버나스와 무슨 거래라도 하셨습니까?"
"엉. 그게 왜?"
"아뇨. 그년은 큰돈이 굴러간다거나. 아니면 원하는 것을 얻을 때만 사탕을 물고 카지노를 돌아다니거든요. 그리고 유독 승부하는 알렌 형님을 보며 웃던데요."
"그냥, 자금을 조달받았지."
"그 악명 높은 년에게 돈을 빌리셨다는 말입니까?"
마로스 녀석이 놀라며 포크를 떨어뜨린다.
"네가 걱정할 그 정도는 아니야. 그리고 어차피 계약은 좋게 끝나서 다시는 볼 일도 없어."
"그러시다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예전부터 가지고 싶은 건 뭐든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앞으로 만날 일은 없으니 너도 잔소리 말고 밥이나 먹어."
"잔소리가 아닌데..."
시무룩한 얼굴로 떨어진 포크를 냅킨으로 닦으며 힘없이 스테이크를 써는 마로스.
'걱정해줬는데 말이 너무 심했나?'
"짜식. 그래도 내 걱정은 너밖에 안해주네. 다음에 올 때는 약을 좋아하는 호구 리스트를 가지고 올 테니까, 기대해라."
"가, 감사합니다, 알렌 형님!"
"감사는 무슨. 감사는 웰턴에게 하라고. 그런데 우리 전직 딜러께서는 왜 아무 말이 없으실까? 분명히 너라면 파멜라 선배가 어디 있는지, 또 우리 도박을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응?"
"어, 저, 그게... 제가 감히 끼어드는 건 아닐까 싶어서..."
"쫄기는. 어서 먹자. 그리고 내가 다 먹을 때까지 아가리 여는 놈은 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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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니 어제 코델리아한테 수업을 듣는다고 말했는데... 안 들어가면 삐지겠지?'
이른 점심 식사를 마치고 배가 부른 알렌은 불현듯 코델리아와 어제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지금이면 3교시가 끝나고, 코델리아는 5교시 수업이니 점심이 끝날 때쯤에 돌아가면 되겠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괜찮다는 다짐과 함께 마로스가 가져온 차를 마시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아, 그런데 약 제조는 잘 돼 가고 있겠지? 유통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좇된다?"
"당연히 잘! 하고는 있지만, 아쉽게도 조금 힘이 듭니다. 저를 도와줄 똑똑한 놈도 없으니까요."
"다이스 녀석은? 두뇌만큼은 쓸만한 놈이니 조수로 써."
"알렌 형님의 말씀대로 쓰고는 있지만, 단기간에 교육을 받은 탓에 이 이상 다른 지식을, 연금술의 정수를 때려 박았다가는 정신이 이상해질까 걱정이 돼서."
'나름대로 고충이 있는 모양이네.'
"괜찮아. 사람은 말이야. 기껏 다른 지식을 억지로 쑤셔 박는다 해도 병신이 되진 않아. 다이스."
"넷, 알렌 님!"
"이틀이라는 긴 시간을 주마. 그때까지 마로스의 훌륭한 조수가 되라. 만약 하지 못한다면..."
"할 수 있습니다! 꼭 하고 싶습니다!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 그 정신 상태. 아주 칭찬하지. 그러면 빨리 가서 공부해라, 다이스."
"네, 넷! 빨리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빨리 공부하라고 하자 다이스는 재빠르게 나가기 전에 예의를 지키며 우리에게 인사하며 그대로 쏜살같이 문을 열고 나간다.
"교육은 잘해놨어."
"감사합니다, 알렌 형님."
"그리고 저 새끼. 채찍 말고 당근 좀 줘라. 쓸만한 녀석을 노예로 만들었는데 제 기분이 안 좋다고 실력 발휘를 못 하면 아깝잖아. 맛있는 것도 멕이고. 술로 목도 축여주고. 아니면 여자 한 명을 붙여주던가, 그렇게 해. 안 그러면 저 새끼 진짜 죽어."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난 간다."
고급 홍차를 테이블에 놔두며 자리에 일어서려는 알렌의 손을 잡는 마로스.
"뭐야? 난 남색 취향 없는데?"
"그게 아니라... 그, 간곡히 부탁드릴 것이 있는데."
"말해 봐."
부탁드릴 것이 있다는 마로스의 말에 알렌은 다시 자리에 앉아 식은 홍차를 들이킨다.
'마로스가 내게 부탁할 정도면 뭔가 있겠지.'
"실례가 안 된다면... 재료 하나만 구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무슨 재료?"
"엘프들의 군락지에서만 자란다는 월광초를 구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월광초? 그거 그냥 풀때기잖아?"
"네, 그냥 풀때기이기는 하죠. 그런데..."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아, 네네넷!! 말하겠습니다! 저, 정력에 엄청 좋습니다!!"
알렌이 손을 치켜들자 마로스는 머리를 보호하며 다급하게 정력에 좋다고 외친다.
"하아... 이 새끼가 진짜... 후... 내가 니 좇 키워주려고 이딴... 하아..."
"사, 사실은 요즘 안 섭니다..."
"뭐? 그게 갑자기 왜 안 서?"
"하도 약을 많이 만지다보니... 이제는 설 때 서지 않고, 안 설 때는 갑자기 지가 알아서 서버리고... 저 미치겠습니다, 알렌 형님..."
알렌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어떤 말로도 발기부전이라 고백한 마로스를 위로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형이 구해줄게. 나보다 한 살 어린놈이 벌써 그런 큰 병이 걸렸으면... 뭐, 구해줘야지..."
"정말... 감사합니다, 형님... 이 은혜는 제가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죽어서는 잊어도 돼. 살아있을 때 은혜나 갚아, 씹새야. 죽음으로 통수치지 말고."
"네, 알렌 형님..."
안타까웠다. 이제까지 마로스의 뒷골목 성공기를 보며 나름 자수성가한 녀석이라 생각했는데... 남자의 본능이자 욕망인 신체 부위에 크나큰 하자가 있는 걸 들었으니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었다.
"근데... 정력 강한 사람이 먹으면 더 좋아지냐?"
"그렇습니다. 제가 알아본 결과 월광초는 보름달이 뜬 밤에 캐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그러면 머리숱이 없는 자는 머리가 여자처럼 풍성해지며, 저처럼 쉽게 서지 않은 사람도 사춘기 소년처럼 야한 말만 들어도 벌떡벌떡 선답니다."
'너도 사춘기잖아, 마로스야...'
"일단 알았다... 알았으니 그만 울어 새끼야... 사내새끼가..."
"형님... 저 섹스가 미치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안 섭니다!! 아무리 입으로 빨고, 가슴으로 감싸도, 다리로 비벼도 반응 자체가 안 옵니다!!! 흐어어엉!!"
"울지 마... 형이 구해다 줄게... 그러니 조금만 참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