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36-1. 식사합시다
"어디 갔다 온 거야."
"네가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나?"
1교시가 끝나자 클로에가 기다렸다는 듯이 알렌에게 다가가 왜 늦게 온 것인지 묻지만, 딱히 말해줄 이유가 없었던 알렌은 엎드린 채로 심드렁하게 말한다.
알렌의 태도에 약간 상처를 입은 것인지 조금 얼굴을 붉히는 클로에. 소녀의 앙증맞은, 굳게 다문 입이 어렵사리 열리며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그, 그래서 언제야...!"
"뭐가? 뭘 언제야?"
"...됐어. 기대한 내가 바보 같네."
"장난이냐, 장난. 공부는 오늘부터 알려줄 거니까, 방과 후에 시간이나 비워둬."
방과 후 시간을 비워두라며 엎드린 책상을 뒤로하며 어디론가 향하는 알렌.
"다짜고짜 비워두라니, 무스... 야!!"
클로에는 서둘러 자기 말도 듣지 않고 교실을 나가는 알렌의 뒷모습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뒤돌아보지도 않고 그냥 나가버리는 알렌.
"내가... 내가 꼭 이길 거야...!"
주위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온 클로에는 다짐한다.
다음 시험에는 무조건 저 녀석을 제치고 1등을 한 것이라며 맹세한다.
****
"아네스... 선생님. 빵 맛있게 드시네요."
"아, 오, 아, 왔어요...?"
아네스는 느긋이 빵을 먹으며 일지 비스름한 것을 작성하다가 알렌이 갑작스럽게 말을 꺼내자 화들짝 놀라더니 먹던 빵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런데 저 침대에 누워있던 학원생은 어디 갔어요?"
"아, 그 학원생은 세수한다고 해서 잠시 화장실에 갔어요."
"그렇군요."
알렌은 자신이 빵이 쌓인, 자신이 사다 놓은 보건실 침대에 앉아 빵 포장지를 벗겨 먹는다.
"그 학원생이 누구길래 알렌 학생이 걱정해요?"
"그냥. 귀엽잖아."
"어... 취향이 혹시 조금... 그런 쪽이세요?"
아네스는 미라이의 체형을 생각하며 알렌을 향해 조금은 무례한 표정을 짓는다.
"좋아하면 안 되나? 어차피 나이도 같은데."
"진짜로 좋아하시는 거예요?"
"모르겠네. 사랑은 아니지만, 관심이 가는 아이야."
솔직히 말해 잘 모른다.
그저 아빠의 마음이랄까.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랑은 아니더라도 관심이 가는, 쉽게 내버려둘 수가 없는 아이 같았다.
"하여튼, 돌아오면 잘 보살펴 주라고.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게 하는 것도 금해야 한다."
"잘 보살펴주면 상을 주실 건가요?"
"아니, 보건 선생이라는 작자가 다친 학원생을 돌봐줄 생각을 해야지, 대가를 바라고 움직이며 되겠어?"
"그냥 물어본 거에요. 저도 알렌 학생이 말한 것처럼 잘 돌봐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빵을 먹으며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빵은 많이 사뒀으니 많이 먹어. 그리고 부드러운 빵이랑 달콤한 빵은 미라이 몫이니까 먹지는 마. 다른 사람도 주지 말고. 그럼 간다."
"아, 네. 들어가세요 알렌 학생."
미라이의 얼굴을 보고 교실로 돌아가려고 했건만, 없는 것이 좀 아쉬웠다.
그렇게 돌아가려고 보건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비켜."
"아, 그래. 비켜야지."
내 앞에 서 있는 청백색의 긴 머리카락은 마치 파도처럼 찰랑거리며 내게 비키라며 싸늘한 시선을 보낸다.
"그런데 보건실에는 어쩐... 아니지. 어디가 아프거나 그러니 온 거겠지."
다시금 변화하는 싸늘한 시선은 나는 금방 옆으로 비키며 비비안이 들어오는 것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볼일 다 봤으면 그만 나가지. 걸리적거려."
"아, 그래. 가야지. 그럼 다음에 보자고."
짤막한 인사와 함께 다시 보건실을 나섰다.
'초반부터 다가가서 미움을 샀나? 이러면 공략하기 힘든데.'
비비안의 싸늘한 시선에 살짝 소름이 돋았던 알렌은 지나간 일을 샅샅이 되뇌인다.
'딱히 미움받을 짓을 한 건 없는 것 같은데? 뭐, 악역영애랑 버금가는 난이도 헬의 여자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자. 정 안되면 아이템을 쓰면 되는 일이고.'
복도를 걸으며 잠시 비비안의 문제는 잠시 놔뒀다.
어차피 고민해봤자 잡다한 생각이 들어올 뿐이니까.
"출출하네."
보건실에서 빵을 먹어 치운 알렌은 굶주린 배를 문지르며 다시금 배고픔을 호소했다.
"다시 돌아가기도 뭐하고... 그냥 수업이나 쨀까?"
****
"마로스. 나 왔다."
소리가 울릴 정도로 넓은 저택의 안.
알렌의 목소리가 울리자 금세 저택의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계단을 내려오는 다급한 발걸음.
"오셨습니까, 알렌 형님."
"오냐. 그런데 조용하다 오늘은? 메이드는 어디 갔어?"
"아, 오늘은 휴가입니다. 딱히 일도 없고 해서."
"그래서 이렇게 한산한 건가. 큰일이구만."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오전부터 제 저택에 들르신 걸 보면?"
"아니. 그냥 배가 고파서 왔어."
배가 고파서 왔다는 말에 마로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표정 관리나 잘하자. 봐주는 건 오늘만이야? 그리고 요즘 들어 식욕이 왕성해서 그런지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가 않아서 말이야."
"아, 죄송합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만... 그러면 조금 이르지만, 점심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고. 근데, 다오스는 어디 갔냐?"
"안 그래도 말하려고 했는데, 교육은 다 끝났습니다."
다오스의 교육이 끝났다면 자랑스레 말하는 마로스의 말에 내심 기대됐다.
"호오. 어떻게 교육했는지 궁금하네. 그런데 마로스. 만약 딜러 녀석이 내게 일말의 적개심을 보인다면 너도 처음부터 교육 들어간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철저히! 뼈에 새길 정도로 상냥하게 길들... 아니, 교육했으니까요."
"약은 안 썼지?"
"안 썼습니다! 그럼 보여 드리도록 하죠. 어이!"
저택을 또다시 울리는 큰소리에 닫힌 문이 열리며 재빠른 발걸음의 주인공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부, 부르셨습니까!"
"그래. 진정한 주인께서 오셨는데 인사드려야지."
"다,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알렌 메스티아 님."
예법을 가르친 것인지, 본인 스스로 이렇게 나온 것인지는 몰라도 나쁘지는 않았다.
"교육은 잘된 모양이네."
"네. 일단 할 수 있는 건 모조리 다 때려 박았습니다. 아, 그리고 교육하는 김에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로 이름도 바꿨습니다."
"이름?"
"네. 다오스에서 다이스로 바꿨습니다."
"새끼. 존나 악취미적인 이름인데?"
"알렌 형님에게 졌으니까요. 주사위로 말이죠. 졌다는 사실을, 살려준 사실을 잊지 말라며 다이스로 지은 겁니다."
'은근 똑똑한 새끼네. 내게 마지막에 다이스 게임으로 패배했으니 녀석에겐 큰 트라우마가 됐겠지. 어차피 반항하면 술식으로 반만 죽이면 되니까.'
"좋아. 마음에 드는 교육이야. 어이, 다이스."
"네, 넷! 알렌 형님."
"오늘부터 넌 내 따까리니까, 앞으로 반항하면 알지?"
"며, 명심하겠습니다!!"
"뭐를 명심했어?"
"그, 대, 대들지 않는..."
"맞아. 내 명을 티 끝 하나라도 거절했다? 그러면... 음... 생긴 것도 나보다 한참 아래지만, 수요는 있겠어."
약간 헬쓱한 얼굴이었지만, 알렌은 나름 괜찮다며 다오스... 아니, 다이스의 얼굴을 품평하며 귓가에 다가간다.
"내 명령에 불복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네, 넷!! 명심하고 또 명심하겠습니다! 더는 반항, 아니, 차라리 알렌 형님의 개가 되어...!"
"아가리를 존나 잘 터네. 누가 전직 딜러 아니랄까 봐. 마로스, 식당이나 가자. 저 새끼도 따라오라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