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2화 〉33-1. 늦은 저녁. (52/116)



〈 52화 〉33-1. 늦은 저녁.

"너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거만한 자세로 고급 의자에 앉은 알렌의 발치에는 게임에서 패배한, 카지노에서 추방당한  딜러 다오스가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제껏 제가 한 무례한 행동을 용서해주신다면...!"
"그건 기본 옵션이고 새끼야. 것보다 왜 처음 만난 날에 나한테  깝쳤어?"
"..."
"마로스. 아무래도  친구가 또 맞아야 입을 여는 모양이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하는 다오스를 보며 열을 내는 알렌이 말하자 보좌관처럼 옆에 서 있는 마로스가 주먹 관절을 뚜둑인다.

"마, 말하겠습니다! 사, 사실은... 솔직히 배알이 꼴려서..."
"뭐? 이 새끼가 아직 덜 처맞았나 보네? 감히 어디 형님 앞에서 그딴 변명을...!"
"됐어. 말해 봐."
"제, 제가 귀족 사회는 잘 모르지만, 메스티아 후작 가문은 잘 알고 있습니다. 평소 고고하며 대륙의 지식이라 불리는 가문의 자제가... 로열 카지노에 왔다는 사실에 그만..."
"그래? 마로스 저 새끼 혀 잡아."

알렌이 명령하자 로봇처럼 수행하는 마로스.

"이야, 깨끗하네. 그럼 어디."

숨을 헐떡이며 혀를 잡히니 다오스의 입에서는 침이 절로 나와 고급 카펫을 더럽힌다.

그리고 알렌은 다시금 마로스와 웰턴에게 새긴 술식을 다오스의 혀에 억지로 새긴다.

"됐어. 이제 놔도 돼."
"켁! 콜록!! 콜록!! 무, 무슨!?"
"다시 물어볼게. 이번에 제대로 말 안 하면... 이렇게 된다? 평생을 병신으로 살고 싶진 않지?"

팟!!

알렌이 웬 나무 조각상을 하나 잡아 마법을 시전하더니 그의 손에서 들린 작은 목제 독수리는 검은 잿더미 되어 다오스의 혀를 괴롭혔다.

"구라치면 혓바닥 태운다?"
"저, 정말입니다! 지, 진짜로 저는 메스티아 후작님을 존경해서! 그분의 자제가 이런 비열한 카지노판에서 물들어 가는 것이 싫어서 그만...!"

혓바닥에 새긴 술식은 반응하지 않았다.

'이 새끼 뭐지? 진짜 존경해서 그러는 건가?'

구라는 아니지만... 의심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일단 곁에 두고 조질까... 아니면 이대로 그냥... 아니야. 그냥 내 곁에 두자. 대갈빡도 잘 돌아가고 마나를 들키지 않고 사용하니 여러모로 쓸 곳은 많겠지.'

"마로스."
"네, 알렌 형님."
"오늘은 웰턴이랑 돌아갈 테니까, 다음번에는 교육 좀 잘 시켜놔. 안 그러면 너도 맞는다?"
"아, 알겠습니다! 제가  교육하겠습니다! 살펴들 가십쇼!"

고급 의자에 일어난 알렌과 그 옆을 지키던 또 다른 남자 웰턴은  늦기 전에 자신들의 기숙사로 향했다.

딸칵.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리며 다급히 창문 너머로 돌아가는 알렌 일행을 보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마로스는 일어서려 하는 다오스를 보았다.

"오늘부터 교육 들어가니까, 잘 따라와라. 알겠냐?"
"네? 그, 그게 무슨 소리... 커억!"
"새끼가 군말이 많아! 나한테 뒈질래 아니면 알렌 형님한테 뒈질래?"
"아, 알겠습니다! 알겠으니 포, 폭력은 제발!!"

그날 저녁. 마로스의 저택에서는 한 남자의 살려달라는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

"그... 오늘은 고맙다..."
"뭐가?"
"마로스라는 사내에게 나를 너의 노예라고 하는 것을..."
"고맙다면 앞으로 그러지 마라. 가문의 위세든 힘을 과시하는 녀석은 내가 존나 싫거든. 그리고 내일은 미라이한테 사과해라."
"알았다. 그럼 먼저 들어가 보도록 하지."

그 말을 남기며 먼저 기숙사로 들어가는 웰턴 아르스나의 뒷모습을  알렌.

'새끼. 그래도 말을 고분고분하게 잘 알아들으니 나쁘지는 않네.'

오늘 알렌의 기분은 매우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에게 깝죽대던 딜러를 매장하고 정식 노예로 들였으며, 또 향후 미래를 위한, 이래저래 쓸모 있는 웰턴을 얻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전히 적응 안 되는 말투네... 나중에 교육할까? 것보다 지금 시간이면 주종 역전도 끝났겠지? 오늘 코델리아도 별말 없었으니까.'

그렇게 오늘은 일이  풀렸다며 몰래 기숙사로 들어가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어딜 쏘다닌 거지?"

앙칼진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어둡다고 느껴진 기숙사 방 안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코델리아 브리티아.

그녀가 안경을 고쳐쓰며 비밀 공간으로 들어온 알렌을 보며 냉정히 말한다.

"그냥... 뭐 여기저기 돌아다녔죠. 그런데 서프라이즈인가요? 어째서 비밀 공간이?"

기숙사라 생각했던 장소는 다름 아닌 비밀 공간. 알렌과 아네스, 코델리아만이 아는 그 공간이었다.

'대단하네...  기숙사랑 비밀 공간을 강제로 이은 건가? 아니지. 코델리아라면 분명 안전한 방법으로 공간을 이었겠지... 이게 재능인가?'

"학생의 본분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던가?"
"어... 그게."

주종 역전 관계는 이미 끝났다. 끝났지만... 괜히 꼬투리 잡히기 싫어 일단은 코델리아의 말에 어울리기로 했다.

"후... 됐어. 아무튼, 무사히 돌아온  알았으니 이만 돌아가 보마."

걱정이 섞인 한숨을 내쉬며 코델리아는 자신의 서류를 아공간으로 이동하며 돌아가려고 했다.

"걱정한 거예요?"

걱정했다는 말을 하는 알렌의 말에 또각이는 하이힐 소리가 멈춘다.

"...누가 걱정했다고."
"에이~ 걱정한 거 맞잖아요? 오늘은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잠시 나갔다 온 거예요. 그러니  풀어요, 코델리아. 응?'

멈춰 선 코델리아에게 다가간 알렌은 그녀의 손을 부드러이 잡으며 손등을 위로 향한 채 가벼운 키스를 남긴다.

"바보 같으니라고... 누가 화를 낸다고...!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손등의 키스에 정신을 빼앗긴 코델리아가 이내 정신을 다잡으며 황급히 몸을 돌리며 다시금 하이힐 소리가 길게 방 안을 울린다.

"아, 배고프네! 예쁜 붉은 머리 누나가 만들어주신 스파게티가 먹고 싶네~! 정말 맛있었는데~!"

비밀 공간을 나가려는 코델리아의 발걸음을 멈추는 알렌의 목소리.

"그때 진짜 맛있었는데~! 또 먹고 싶네~ 아, 배고프다~"

누구를 콕 찝어서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정도만 해도 알아듣겠지?

'흐... 흠...! 도대체 밖에서 뭐하고 다니길래... 그러고 보니 나도 서류를 정리하느라 끼니를 걸렀으니.... 그, 같이 먹을... 까?"

사실은 이제껏 아카데미에 없는 알렌을 기다렸던 코델리아는 배고프다는 소년의 말을 듣고는 궁색한 변명과 늘어놓으며 주방으로 향한다.

주방에 선 코델리아는 맨 처음 앞치마를 매며 기다란 머리카락을 뒤로 모아 머리끈을 무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무, 뭘 그리 보는 거지...!"
"그냥... 보게 되네요."

열렬한 시선을 느낀 코델리아는 당황하며 뭐라 말하자 알렌은 배고픔도 잊은 채 넋을 놓으며 그녀를 보았다.

"아, 제가 도와드릴까요?"
"괜찮다. 거기 앉아있도록."
"이래 보여도 저택에 있을 때는 요리  했어요. 같이 해요, 코델리아."

코델리아의 만류에도 알렌은 주방으로 가서는 코델리아와 마찬가지로 앞치마를 두르며 손을 씻는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일을, 코델리아는 요리를. 알렌은 식기를 세팅한다.

써억 써억 써억 써억!

재료를 손질하며 칼과 도마가 부딪히는 소리가 묘하게 안정된다.

불과  시간 전만 해도 살이 저절로 베이는, 방심한다면 금세 나락을 떨어지는 로열 카지노에서 패배했다면 주방의 따스함을 느낄 수는 없었겠지.

이윽고 모든 요리가 완성되자 코델리아와 나는 함께 테이블에 앉아 만든 요리를 음미한다.

"맛있네요. 역시."
"누가 만들었는데 당연한 거 아닌가."

코델리아도 변명이 아닌 정말로 배가 고팠던 것인지 평소 조신하게, 귀족의 자태를 뽐내며 먹던 그녀의 입가는 붉은 토마토소스가 묻어 있었다.

"잠깐만요. 여기, 묻었네요."

냅킨으로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내자 이상하게도 새하얀 코델리아의 얼굴은 소스 범벅이 된 것처럼 빨개졌다.

"고, 고마워..."

사뭇 소녀와 같은 반응에 알렌도 내심 부끄러워졌다.

"어...  먹었습니다."
"그, 그래!"

소스가 묻은 새하얀 접시를 포개어 주방으로 도망치는 코델리아.

주방에서 조금 전의 일을 정리하는 동안 떨쳐낸 것인지 어느새 테이블로 돌아와 그윽한 향과 함께 내게 홍차를 권한다.

"잘 마실게요."
"그래."

말도 없이 그저 홍차를 마시는 두 사람.

알렌은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찻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배도 부르고. 슬슬 졸리니. 시간도 이렇게 됐으니 이제 돌아갈까요?"
"어? 아, 도, 돌아가야... 지."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에 코델리아는 말을 더듬고 붉어진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황급히 고개를 숙인다.

"그, 그러면 저 먼저 갈게..."

이대로 헤어진다면 분명 어느 정도 피로를 씻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야 하는데...

"안 가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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