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32-4. 로열 카지노.
"그럼 뽑겠습니다."
"마음대로 해."
달콤한 제안을 거절당한 다오스를 알렌의 손에 들린 카드를 뽑는다.
"안타깝군요. 제안을 수락하셨다면 분명 이길 확률이 조금이라도..."
"아까부터 입으로 치나, 새끼가. 적당히 지껄여."
"욕을 하시다니. 기회를 놓쳐서 후회하시는 모양이군요?"
'놔두자. 어차피 내가 말해봤자 딜러는 계속 지껄이겠지.'
하트, 다이아, 스페이드, 클로버, 조커.
총 다섯 장의 카드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현 카드의 상황은 이러했다.
알렌의 카드를 뽑은 다오스의 현 카드. 조커, 하트 2, 스페이드 2로 총 세 장의 카드를 의미도 없는 셔플이었지만, 묘기에 가까운 탓인지 군중은 어느새 다오스에게 욕을 했던 것도 잊은 채로 그의 현란한 기술에 눈을 빼앗기고 만 것.
'사람 심리가 참 애새끼 같구만.'
물론 중요한 승부를 앞둔, 이번이 마지막 기로인 알렌은 현란하고 화려한 다오스의 셔플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오로지 이 승부가 끝나기 전에 희미한 마나가 사라지지 않길 기도하고 있었다.
"너도 쇼맨쉽을 좋아하네."
"화려한 불꽃보다는 아니죠."
의미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두 남자. 그리고는 딜러 다오스는 셔플을 그만두고 세 장의 카드가 보이지 않도록 테이블 위에 세팅하고는 뽑으라며 손바닥으로 나를 가리켰다.
"뽑으세요."
여전히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말투까지. 이래서야 기를 쓰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고 싶지 않은가?
알렌은 테이블에 엎은 세 장의 카드 사이에 손을 느릿하게 움직이며 다오스의 안색을 살폈다.
"제 얼굴을 보시면 어떡해요. 카드에 집중하셔야죠, 도련님."
녀석의 말을 무시하고 카드를 만지며, 또 다른 카드를 만져도 다오스의 얼굴 표정은 변함없이 실실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걸로 동요할 새끼는 아니겠지.'
예상이 된 알렌은 세 장의 카드 중, 마나가 새긴 조커를 제외한 두 장의 카드 중 하나를 아무렇지 않게 뽑았다.
"나머지 하나는 뭘까요?"
"뭐?"
카드를 집어가는 순간.
딜러 다오스는 가식적인 웃음이 아닌 기쁘다는 미소와 함께 테이블 위에 남은 카드 두 장을 보았다.
"남은 두 카드 중에 조커는 과연 무엇일까요, 도련님?"
식은땀이 흐르며 몸이 싸늘해지는 것과 동시에 심장이 철렁였다.
"왜 그러세요? 멍청한 강아지가 자기 꼬리를 쫓는 듯한 표정을 짓고 계시네요."
실수.
만약에 말이다. 지금 같은 아주 중요한 승부를, 인생의 기로가 걸린 도박에서 여유롭게 남은 카드를 뽑는 것이 당연한 걸까?
불굴의 상황에 처한 백전노장처럼 노련한 모습을 보일 수가 있을까?
앞서 말한 카드 몇 장으로 인생이 달라지는데 알렌처럼 태연하게 카드를 뽑을 수가 있을까?
딜러 다오스.
로열 카지노에 속하며 여러 인간들의 반응을 봐왔던 그는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행동을 캐치하는, 말하자면 상대를 관찰하는 프로였다.
사람은 긴박한 상황이라면 몸에는 당연 반응이 온다.
호흡, 땀, 심장, 눈, 입, 손, 발까지. 사람들은 자기 몸을 움직이며 제어한다고 알고 있지만, 전혀 아니다.
무언가 열중하면, 특히 인생이 걸린 승부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반응은 매우 중요했다.
사소한 버릇까지도. 눈동자의 움직임도, 미세한 얼굴 근육도. 속이려는 동작도. 모두가 승리로 이어나가는 열쇠였다.
헌데 이 소년은 다르다.
겉으로는 세상 물정도 모르는 망나니 도련님처럼 행동하고는 있지만, 달랐다.
아직 미숙하다고는 해도 짧으면 1년, 길면 3년.
도박광 파멜라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면 로열 카지노 딜러들을 모조리 가지고 놀수 있을 정도의 재능을 가졌다.
'그래도 아직은 어린애지.'
알렌 도련의 치명적인 실수.
도둑잡기. 카드 하나하나가 목숨이나 다름이 없는데 그걸 주저하지 않고, 떨지도 않고 그대로 카드를 가져온다는 것에 나는 확신했다.
무언가 수작을 부렸고. 그러니 카드를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가져갈 수 있다는 것.
물론 흑백 조커 카드에 무슨 짓을 한 것을 알았으니 이제는 슬슬 끝낼 때가 된 것 같다.
****
"하... 지는 줄 알았네."
도둑잡기 게임이 끝난 지금.
물을 허겁지겁 마셨던 알렌은 입가를 닦으며 거친 숨을 토하며 입가를 닦는다.
"불리한 상황이셨는데도 대역전이라니. 대단하십니다, 형님!"
"대단하더군. 이번에도 지는 줄 알았다만."
마로스와 웰턴의 칭찬 섞인 말을 들은 알렌의 두 손은 샌드위치를 잔뜩 든 채로 먹고 있었으며 부하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기 위해 커피를 마시며 억지로 삼킨다.
"푸핫...! 어차피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거잖아."
"네? 속임수...?"
"그래. 내가 아무리 배웠다고 한들 겨우 일주일 만으로 딜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불가능하죠."
"어차피 녀석도 첫 게임에서 속임수를 쓴 걸 보면 나도 쓸 수 있는 거잖아?"
"아, 네... 그런데 어떤 속임수를?"
"마나를 카드 뒷면에 새롭게 새겼지."
금태양과 떡대가 이해 못한다는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기 시작한다.
"...에휴. 한 새끼는 근육이고, 한 새끼는 다른 분야니 뭔 말이 통하나..."
사람 꼴받게 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으며 답도 없다는 손짓을 하는 알렌.
"아, 아니! 저는 연금술이 전문이시고, 웰턴 형님은 딱 보아도 무투파 같으시던데 마법을 어찌 압니까?"
"이봐, 마로스. 나는 이래 뵈도 마법을 쓸 수는 있다. 같은 선상에 취급하지 말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럴 시간이 있었나?"
'이 새끼. 아는 척 하나 싶어서 꽤 똑똑한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네.'
"잘 들어. 마나를 새기는 건. 남을 속이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야. 예를 들자면 보여준 마법이 타오르는 불꽃이라면 너는 순전히 불꽃을 쓰는 마법사구나, 라고 생각하겠지?"
"그렇겠지."
"거기에다가 화려한 불꽃의 피어오르며 뜨거운 불꽃을 능숙히 다루는 대단한 마법사라고 생각하겠지?"
"그리 생각하겠지."
"내가 보여준 것도 그거야. 카드를 태울 때, 보였던 마법이 뭐야?"
"화염 마법이죠!"
"맞아. 화염 마법이지. 보통 사람은 한 가지의 마나 밖에 없지만, 나는 뭐... 대단하신 몸이니 마나를 사용해서 녀석을 조금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지."
맨 처음. 그러니까 내기 제안을 한 다오스가 거절 당하고 내가 뽑는 차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카드 뒷면을 만지며 딜러의 얼굴을 살펴보고 있다는 뉘앙스와 제스쳐를 취했지만, 사실을 달랐다.
그저 아주 극소량의 문양을.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원래 마나의 잔향이 묻은 흑백 조커를 제외한 카드 뒷면에는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스페이드의 문양을 아주 조그맣게 새겨 놓은 것.
녀석의 안색을 살피며 뚫어지게 쳐다본 이유도 카드에 시선이 가지 않도록 일부로 그런 것이었다.
끈덕지게 나를 쳐다보는 여유로운 표정 속에서도 녀석은 눈은 날카로웠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1패 당하고 초조함에 몸부림치는 멍청한 귀족 도련님을 흉내를 내 본 것인데...
'꽤 잘 통했네.... 그래도 다음 게임이 정해질 때까지는 웬만하면 쓰면 안 되겠어.'
다오스의 속임수는 내가 새긴 마나를 통해 은근히 쉽게 알아챘다.
체인지.
루아네스 판타지아에서는 다양한 마나의 성질이 존재한다.
작품 내 설정에서는 모든 인간이 마나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아직 깨우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아, 일단 그딴 건 됐고. 아무튼 간에 다오스의 마나의 성질은 체인지.
즉, 마나가 여유롭다면 무엇이든 체인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레드 드래곤 클로 세로의 마나량을 가졌다면 산 사람의 팔과 다른 사람의 팔을 억지로 체인지 시킬 수 있으며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 있다면 모든 신경을 억지로 바꾸어 평생을 병신, 폐인으로 만들 수 있는, 꽤 특이한 성질의 마나.
'이 새끼는 마나량이 낮아서 카드에 새겨진 그림과 그림을 옮길 수 밖에 없는 모양이네. 체인지의 트리거도 손을 두드리는 것 말고는 딱히 느낄 수도 없고. 그래도 조심해야지. 내가 역으로 병신 취급하며 속였는데, 저 녀석이라고 못할 것은 없으니.'
남은 커피를 마시는 알렌의 두 눈은 여전히 실실 웃고 있는, 군중이 폭도로 변하는 순간에도 다오스는 싱긋 웃으며 내 쪽을 보며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