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7화 〉32-3. 로열 카지노. (47/116)



〈 47화 〉32-3. 로열 카지노.

첫 번째 게임이 끝나고 잠깐의 휴식.

알렌은 지친  의자에 앉으며 마로스가 준비한 글라스에 담긴 고급 워터를 낚아채며 목을 축인다.

"알렌 형님. 괜찮으십니까?"
"어, 괜찮아. 것보다 너희, 뭔가 이상한  못 느꼈냐?"

고개를 뒤로 젖히는 알렌은 힘없이 말하며 마로스와 웰턴에게 묻는다.

"이상함이라니. 무엇을 뜻하는 거지?"
"딜러 새끼. 뭔가 이상하단 말이야. 분명히 첫 판, 두 번째 판은 내가 이겼는데, 승기를 잡았는데도 역전을 당했다. 뭔가 수상하지 않나?
"그냥,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 아닌가?"

웰턴의 빠꾸없는 말에 나는 뭐라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실력 부족인 건 맞긴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블랙잭에서. 그것도 세 번째 판을 시작으로 스플릿과 동시에 더블 블랙잭이라니. 거의 로또 확률이랑 똑같지 않나?

그 뒤로도 묘하게  끗, 두  차이로 진다는  말이나 되나?

"뭐, 솔직히 신기하긴 했습니다. 고작 두 개의 칩이 남은 상태에서 스플릿 더블 블랙잭이라니. 가당키나 하는 겁니까? 또..."

마로스 녀석은 그나마 눈치라도 있는 것인지 열렬히 내 심정을 대변해주지만, 딱히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왜? 뭔가 알아냈어?"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웰턴이 설마... 하는 뉘앙스를 풍기며 말을 꺼냈다.

"확실한  아니야."
"뭐든 말해 보라고. 잘하면... 나중에 포상이라도 챙겨줄 테니."
"저기 앉아 있는 딜러. 묘하게 테이블을 두들기더군.
"두들긴다고?"

'뭔 개소리야, 갑자기?'

"유심히 살펴봤는데, 딜러의 손동작. 지고 있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이기고 있을 때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살짝 두드리고 있더군."
"테이블을 두드려?"
"엥? 그랬나요? 저는 알렌 형님이 지는 거... 아닙니다."

따가운 눈총을 받은 마로스는 말끝을 흐린다.

'테이블을 두드린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나? 뭔가 있는 건가?'

마나로 잠깐 흩뿌려 살펴보았는데 마법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지는 거라고는 오히려 없었는데. 일단 해볼까. 가만히 대가리만 굴려도 답은 나올  같지 않은데.

"빨리 두 번째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죠."
"오냐.  그래도 시작할 셈이었다."

두 번째 게임은 바로 파멜라가 내게  가지만 파고들라며 맹훈련을 시킨 도둑잡기 차례였다.

"흐음. 전 게임에 비해 긴장감이 덜하군요."
"아가리는... 이번 게임은 단판이다."
"단판이라. 자신 있으신 모양인가요?"
"...."
"허무하게 게임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쉽네요."

'미치겠군. 아직 알아낸 것도 없고, 무엇보다 지고 있는 상태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또 지겠지.'

하는 수 없었다. 알렌은 속임수를 쓰기로 결정했다.

'들키지만 않으면 되니까.'

수상함을 느꼈지만, 이렇다 할 확신은 없던 알렌은 새로운 트럼프 카드를 개봉하고는 조커 두 장을 꺼내 과시라도 하듯, 모두의 눈에 각인한다.

"저는 컬러를 빼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패자에게 절망적인 얼굴에 아주  어울리거든요, 흑백 조커는."

'씹새끼가...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새롭게 개봉한 트럼프 카드의 수는 54장. 다오스의 말처럼 알렌은 손에 들고 있던 컬러 조커와 블랙잭에 썼던 312장의 카드를 모으더니 그대로 모조리 태워버렸다.

화려한 불꽃과 매캐한 연기에 시선이 뺏긴 틈을 이용해 흑백 조커에 희미한 마나를 새겨놓았다.

"쇼맨십을 좋아하시는 도련님이시네요. 그럼 룰을 설명해주세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한 다오스를 게임의 룰을 설명해달라고 했다.

"룰은 기존 도둑잡기와 똑같지만, 다르게. 같은 숫자, J,K,Q,A 카드가 4장 이상이어야만 낼  있다."
"그게 끝인가요?"
"그래. 끝이다."
"간단하네요. 그럼 빨리 시작하죠."

흑백 조커  장이 포함된 53장의 카드를 나눠주며 나는 27장의 카드를, 다오스는 26장의 카드를 건네받으며 게임이 진행됐다.

****

테이블 위에 놓인 수많은 카드 패와 함께 다오스의 손에는 총 여섯 장의 카드가, 알렌의 손에는 일곱 장의 카드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은근 재미있는 방식의 도둑잡기군요. 아, 이제야 나왔네요."

알렌의 패에서  장을 뽑아든 다오스는 동일 된 8숫자의 카드 네 개를 내놓으며 이제 남은 카드는 고작 A 카드와 숫자 2 카드밖에 남지 않았다.

"자, 도련님 차례입니다."

'손가락을 두드리지 않는군. 뭣보다 마나를 새긴 흑백 조커는 딜러 새끼 패에 있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있나.'

알렌의 네 장의 카드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역시나 희미한 마나를 새긴 덕분에 알렌은 흑백 조커가 아닌 하트 A를 뽑아들며 수중에 지닌 세 장의 카드와 함께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나도 끝이군."
"운이 좋으시네요. 이거 제가 지는 게 아닐까 모르겠네요."

이제 총 다섯 장의 카드만이 남았다.

자신의 손에 있는 카드는 세 장, 딜러 새끼의 손에 들린 카드는 두 장.

정확히 말하자면 알렌의 손에 들린 카드는 숫자 2 카드. 클로버, 스페이드, 다이아였다. 그렇다면 딜러 다오스의 손에 들린 카드는 하트 2와 조커라는  어린애도 아는 사실이었다.

'쉬운 상황임에도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

문득 드는 생각. 흐름은 분명 내 쪽이다. 내가 주도하고 있는데도 뭔가 불안했다.

"뽑으실래요?"
"뭐?"
"도련님도 빈약한 머리도 알다시피 저는 지금 하트 2, 그리고 조커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뜸 테이블 위에 카드 그림이 보이게 올리는 다오스의 돌발 행동에 알렌은 적잖게 당황했고, 구경하던 사람들도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고 수군거리며 몇몇은 다오스에게 항의한다.

"구경꾼의 잔소리는 무시하시고, 게임의 룰을 하나 추가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추가라. 갑자기 그러는 이유가 뭐지?"
"겨우 다섯 장의 카드인데 시간 낭비하기는 싫잖아요?"
"호... 새끼. 깡 하나는 인정하니 나도 카드를 공개하지."

분위기에 취한 것인지 아니면 계산된 것인지 돌발 행동에 적잖게 당황했던 알렌은 이내 다오스와 마찬가지로 카드를 공개했다.

딜러 다오스가 앉아있는 테이블에는 하트 2와 흑백 조커. 알렌의 테이블에는 클로버, 스페이드, 다이아 2 카드를 보이며, 그들이 손에 쥔 트럼프 카드를 모두 공개하니 사람들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며 트집을 잡기 시작한다.

"이런 씨발! 이게  개 짓거리야!!!"
"다오스! 너한테   골드를 걸었는데!!!"
"오늘 지면 너도 뒈진다, 다오스!!!"

'왜 지랄 하나 했더니만, 전부 다오스한테 걸어서 화가 난 모양이구만.'

그러나 계속되는 살해 협박에도 다오스는 자신에게 베팅한 손님들을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평온한 얼굴을 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제안 하나 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제안?"
"지금은 제가 뽑을 차례지만, 반대일 경우에는 도련님의 승리가 되겠죠? 50% 확률이겠지만."
"그래서?"
"아,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간단합니다. 제안을 수락하신다면야  턴을 넘겨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려 세 번이나 뽑을 수 있도록 해드리지요."
"자신 있나 보네?"
"네. 자신 있습니다. 그 대신에  번 안에 하트 2 카드를 못 뽑으신다면 제 승리, 라는 건 어떻겠습니까?"

나쁘지 않은 거래... 아니, 오히려 이런 거래를 제안한 다오스의 머리 상태가 문득 궁금해졌다.

 번의 기회. 50% 확률. 누가 봐도  제안을 수락하지 않으면 머저리 병신새끼다.

그런데... 아까부터 심장이 답답하다. 누군가 내 심장을 죄여오는 것처럼 불편했다.

"어째, 수락하시겠습니까?"

쫓기는 자의 웃음이 아니다. 쫓기는 자의 절박함이 아니다. 그저, 녀석은 유인하고 있는 것이다.

눈앞에 맛좋고 큼지막한 고깃덩어리로 나를 어르고 달래며 우리 안으로 초대할 뿐이었다.

'승기를 잡고 있다고 해서 섣불리 승부를 걸지 마~ 아무리 배가 고프고 판단이  된다고는 해도 신중해야 한다? 맹수가 자기 먹이를 쉽게 내주지는 않잖아~?'

'파멜라 센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이제야 알겠네...'

분명 유리했다. 그리고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아니, 행운이 저절로 아가리 속까지 친히 들어왔지만... 알렌의 결정은 이러했다.

"됐어. 제안은 거절하지."
"네? 아니, 앞으로든. 솔직히 이만한 기회가 절대 쉽사리 오지도 않고 노력한다고 한들 얻을 수도 없는 행운의 기회를, 그것도 세 번을 그냥 내다 버리시는 겁니까? 만에 하나 이 게임에서 진다면, 반드시 도련님은 후회하실 겁니다."

후회하지 말라는 웃음을 띠는 다오스는 다시금 알렌에게 제안한다. 그러나 알렌의 답은 이미 나왔다.

'털려고 왔는데 오히려 호구 잡혔네... 지금이라도 알아채서 다행인 건가.'

낡은 원형 테이블에 오픈한 세 장의 카드를 집어드는 알렌. 그리고는...

"혓바닥 존나게 기네 씹새끼가. 빨리 뽑기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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