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3화 〉31-3. 암묵적 서열이 아닌 본보기로 보여드림. (43/116)



〈 43화 〉31-3. 암묵적 서열이 아닌 본보기로 보여드림.

"자, 그러면. 대련하기 전에 일러둘 것이 있어. 첫 번째로는..."

크리스틴은 약간 흥분, 아니 기대했다.

학자 가문의 차남이지만, 매번 수업을 열심히  따라오며 끝내 자신과 함께 모든 훈련을 이겨낸 알렌과 모든 무가를 통틀어 왕의 신임과 적들에게 있어 괴물이라 불리는 아르스나 가문이자 역대 가장 완벽한 재능이라 일컫는 웰턴까지.

두 소년의 대련에 크리스틴은 과연 누가 이길지 기대되기는 했으나...

'그래도 알렌이 이기기는 힘들겠지. 아르스나 가문의 삼남은 모든 재능을 물려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웰턴 아르스나는 강하면서도 영리했다.

아직 아카데미에 다니는 나이라고는 하지만, 나이만 아니었다면 왕국 군에 들어가 백인장의 지위를 맡을 정도로 독보적인 소년이었다.

물론 아르스나 가문의 후광이 있다고는 하나. 현 아르스나의 가주는 배경, 돈, 권력을 증오하는 사내이기에 자신의 핏줄이 실력도 없이 가문의 후광을 업어 자리를 꿰찮다면  죽여서라도 자리에서 끌어낸다.

이러한 거친 환경에서 자란 웰턴은 자신의 아버지와 윗 형들의 행동을 봐왔기에 어린 웰턴의 사고는 아주 단순해졌다.

'실력이 없다면 조용히 하며, 실력이 있다면 남을 조용히 시킬  있다'  사고 방식.

솔직히 덩치도 산만하고 다리도 빠르고, 대부분 학원생도 아르스나 가문을 적대는커녕 오히려 연을 쌓고 싶어서 둘러붙는 녀석들의  발린 칭찬이 나쁘지 않았던 웰턴.

매번 사용인들이 말하는 입 발린 칭찬을 쉽게 구분할 줄 알았으나... 그러나 동급생의 칭찬을 들으며 처음 느끼는 감정이 든 웰턴은 뭔가 새로웠다.

분명히 거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니, 아르스나 가문에 줄을 만들어 보려고 어떻게든 발악하는 행동과 쉴 새 없이 나불대는 입.

나쁘지는 않았다. 입에 발린 소리도, 나를 위해 움직이는 행동도 나쁘다기 보다는 오히려 편했다.

녀석들이 내게 원하는 게 있다면 나도 녀석들에게 원하는 것이 많았기에 친구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지는 명목적인 비지니스 관계.

이것이 귀족 사회였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욕을 하며 거역하는 반란 분자는 손수 없애야 한다. 그래야 기강이 잡히고 녀석들이 더욱 나를 두려워 할테니.

"다시금 말하지만, 무기 사용 금지. 급소를 때리는 것도 금지, 무엇보다 대련을 끝나고 난 후 서로 감정이 남으면  된다.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빨리 시작하죠."
"호전적인 아이구나. 그러면 시작하자."

대련장을 내려온 크리스틴은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카운트가 끝나자 웰턴이 손을 내밀며 내게 악수를 권한다.

하지만...

탁!

"새끼가. 표정 관리나 하고 악수를 권해라. 누가 그 개 같은 속을 모를 줄 알아?"
"의심이 많군. 아니 겁이 많은 건가?"
"겁은 네가 더 많은  아니냐?"

알렌의 말에 발끈한 웰턴이 몸집과 맞지 않게 매섭게 다가갔다.

커다란 손. 만약. 아니, 필시 잡힌다면 100% 질 것이다.

그러나 알렌은 여유롭게 피했다. 제 아무리 빠르다고 한들 알렌에게 있어 웰턴의 커다란 몸집과 손은 아무런 관여조차 할  없었으니까.

"어우. 존나 느리네. 아르스나 가문에서는 웬 허우적거리는 춤을 가르치는 모양이다?"

가문을 들먹이며 웰턴을 욕보이는 도발. 그러나 쉽게 넘어오지는 않았다.

웰턴은 도발에도 넘어오지 않고 계속해서 손을 휘두르며 마치 하나 얻어 걸려라,  식으로 알렌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냉정하네. 아니, 침착한 건가?'

날쎈 움직임으로 웰턴의 손아귀에 닿을  하면서도 닿지 않게. 사람을 약 올리게 피하는 알렌.

'열에 열. 이런 녀석들 특징이 단순하고 무식한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네.'

게임에서의 웰턴 아르스나는 쓰기 좋은 장기말. 파티의 구성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유닛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듬직한 탱커 따까리가 있으면 좋겠는데... 이 녀석은 무리겠구만.'

무식하게 돌진하는 것 같지만, 상당히 절도있는 돌진이었다. 다른 사람 눈에는 그저 이리저리 손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내게서 잘도 도망치는군. 칭찬하마."

그렇게 저돌적이었는데도 녀석은 숨소리 하나 흐트려지지 않았다.

'것보다 고명한 후작 가문인 나를 잡지 못한 무가 녀석이 무슨 칭찬질이야? 오히려 쪽팔려야 하지 않나?'

"이제부터 속도를 올리도록 하지."
"뭐?  새끼가 중2병 말기이ㄴ...!?"

순간 방심하고 있던 나는 어느새 웰턴에게 멱살을 잡혔다.

"오, 놀래라..."
"여유로운 태도도 거기까지다."
"하... 진짜. 아르스나 가문은 다들 너처럼 말하는 거냐? 대련하는데 왜 말투가 바뀌냐? 존나 쿨한 중2병 악당을 보는 것 같은데."
"도대체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군."

웰턴은 멱살을 잡은 채로 알렌을 그대로 땅바닥에 내리꽂으려고 했다. 그러려고 했다...

"왜? 힘 좀 줘 봐."
"무슨 술수를 부린 거지?"
"술수는 개뿔. 그냥 네가 나보다 약해서 그래."
"으그으윽!?"

멱살을 잡은 웰턴의 손을 붙잡으니 절로 고통을 호소했다.

분명 집어 던질 셈이었는데... 꿈쩍도 하지 않아 당황했지만, 그 당황을 밀어내는 고통에 다른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고통이 몸을 지배하자 웰턴은 초인적인 힘으로 발악하며 벗어나려고 하지만... 알렌에게 잡힌 이상 벗어날  없었다.

제 아무리 웰턴이 신체 능력과 체내 마나량이 높다고는 해도 알렌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불타오르는 마나로 신체를 강화시킨 알렌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는 종족은 아마 극히 드물 것이다.

하물며 인간인 웰텐 아르스나가 벗어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알렌의 체내 마나량은 더 없이 높으며 클로 세로와 함께 매일 밤마다 명상과 더불어 지식을 쑤셔박히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알렌은 1학년을 통틀어 무력을 따지자면 자신이 최고가 아닐까 싶었다. 아, 물론 공부도 말이다.

"무슨 존나게 처맞고 각성하는 주인공도 아니면서 힘을 숨기기는 왜 숨기냐? 이렇게 해야지."

불길한 소리. 살덩이가 짓물리며 단단한 뼈가 서서히 금이 가는 소리.

구경하던 학원생도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이... 손! 놔라...!"
"너 같으면 놓겠냐? 그래도 새끼가 근성은 있네. 손목을 잡혀도 끝까지 멱살을 안 놓는 걸 보면 대견하네."
"너 같은 새끼한테... 크으으윽...!"

붙잡힌 손목을 풀기 위해 웰턴은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알렌은 그마저도 잡으며 이번에는 손가락 관절이 비정삭적으로 뚜둑거리자 웰턴의 입에서는 참는 듯한 신음이 아닌 고통에 찬 비명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이래도 포기 안 하냐?  그러면 손목이랑 주먹. 부순다?"
"그, 그딴 크으윽!! 혀, 협박에 굴할 것이...!

'진짜 못 부술 줄 아는 모양이네? 그러면...'

"자, 자! 그만! 대련 끝!"

어느새 대련장 올라온 크리스틴이 두 소년을 중재하며 팔로 멀리 떨어트린다.

"이 이상의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단다. 자, 다들 두 사람에게 박수! 박수 박수!"

대련을 억지로 끝내며 박수를 유도하는 크리스틴. 학원생도 어리둥절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박수를 친다.

"크으윽... 내 팔...! 젠장...!"
"이야.  좋다, 너? 크리스틴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병신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이런 개자식이...! 어디 뚫린 입이라고!! 크으...!
"자, 그만하라고 했잖니? 알렌도 그만.  이상 했다가는 선생님 화낸다?"
"죄송합니다."
"그래. 웰턴도 알렌에게 사과하렴. 자, 두 사람 악... 수는 무리고. 가볍게 목례라도 하자!"

크리스틴의 말한 대로 우리는, 아니... 나는 싱글벙글 웃으면 목례했고. 웰턴 녀석도 분한 얼굴을 띠며 내게 목례했다.

"두 사람 수고했고. 알렌은 수업이 끝나면 내게 오렴."
"네? 아, 아니 오늘은 수업이..."
"다음 과목 선생님한테는 미리 말해둘 테니까, 걱정하지 마렴."
"아, 네..."

'심하게 대응해서 설교라도  셈인가?'

"다음 대련자. 준비하도록 하렴!"

크리스틴은 서둘러 다음 대련하는 학원생을 부르자 고고한 발걸음과 함께 긴 생머리를 흩날리는 소녀가 부름에 응답하며 대련장 위로 올라갔다.

'비비안 아락시스... 역시 예쁘구만.'

청백색의 머리카락이 흩날리니 마치 푸른 꽃잎이 연상됐다.

올라가자마자 대련을 시작하니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대련은 너무 싱거울 정도로, 진짜 눈 깜빡할 사이, 비비안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자, 가볍게 악수하고 다음 대련자 준비하렴."

대련장을 내려오며 마치 세계의 보정이라도 받는 것인지 또 다시 바람이 불어온다.

'좋네. 이런게 눈요기...'

비비안의 아리따운 모습을 보며 속으로 감상과 함께 호강하던 알렌의 시선이 비비안과 맞물리며 두 사람을 짧게나마 시선을 공유했다.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비비안은 자리로 돌아갔으며 나도 그냥 잠깐 마주쳤구나, 하고 대련하는 급식들을 구경했다.

'알렌 메스티아...'

그러나 착각은 아니었다. 분명 비비안 아락시스는 알렌 메스티아를 보았다.

평소에는 말을 걸어도 응답하지 않고 무시했었으나.

오늘의 대련을 보고는 경망스럽게 떠들던 모습과 대련을 하는 지금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라보였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말이다.

비비안은 아주 작게.

금세 달라진 모습을 보인 알렌을 보며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여태까지 그 일이 있는 후로 자신 밖에 모르며 나머지는 타인이라며 억지로 세워둔 벽.

높게 세운 마음의 벽 위에서는 아주 작은 돌부스러기가 떨어졌으며 소녀는 그 사실도 모른 채 알렌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