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26. 예비 노예 겟.
지금 중앙 복도에는 대다수의 1학년이 모여 게시판에 걸린 자신의 성적 순위를 확인하고 있었다.
여기 저기서 성적이 올랐다, 내렸다, 망했다 등의 말들이 오고가는 급식들의 표정을 보니 웃길 노릇이었다.
그중에서도...
"말도 안돼..."
"말이 안 되기는 뭐가 안 되냐? 응?"
"어, 어째서..."
"승부에 굴복해야지. 안 그래, 클로에?"
이 상황을 부정하며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클로에는 이를 악다물며 치켜뜬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정 원한다면 내 공부법을 쉽게 알려줄 수 있지."
"비겁해...! 소, 속임수를 쓴 건 아니겠지?"
"되도 안 되는 소리 하네. 애초에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면 1위 자리에 내 이름은 없겠죠? 그리고 우리 클로에 양은 고작 5등이면서 말이 많네요?"
"우리 클로에 양이라고 하지 마!! 그리고 그 말투! 진짜 짜증나!"
"예예~ 잘 알았으니 이제 누가 위인지 알겠지? 내가 특별히 공부...!"
무심코 머리에 손을 얹으려는 알렌의 손을 쳐내는 클로에는 앙칼진 눈매와 함께 낮은 분노의 소리가 입에서 들려왔다.
'새끼 고양이 같네... 쉽게 길들이기는 어렵겠어.'
거부당한 손을 매만지는 알렌.
그러나 수는 있었다.
이제까지 게임이란 게임. 떡타지란 떡타지 미디어는 웬만큼 경험하고, 플레이하고, 읽고, 봤다.
솔직히 클로에라는 캐릭터는 잘 모른다. 그저 악역영애의 따까리 원투 중에 한 명으로 알고 있을 뿐.
하지만 클로에의 성격을 요 며칠 동안 대충 살펴본 결과. 이런 성격을 지닌 사람일수록 자존심은 존나게 강하다.
자신이 속으로 졌다는 걸, 패배한 것을 인정해도 겉으로는 쉽사리 인정하기는 싫은, 그런 모순적인 갈등 속에서 결국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킨다.
그러니 나는 굳이 도발하지 않았다.
어차피 알아서 올 테니까.
"그래. 내가 진 건 인정할게... 그래도! 다음 시험에서 내가 이긴다면!"
"이기고 나서 말해. 그런 말을 하고 다음 시험에서 진다면 자존심이 상하잖아?"
"으으으으으!!!"
"다음 주 부터 공부 가르쳐 줄 테니까, 취약한 과목이 있으면 그때 말해줘."
알렌은 그 말을 끝으로 웃음을 지으며 교실로 걸어갔다.
그리고 남은 클로에는 한동안 두 주먹을 쥔 채로 그저 분노에 몸을 떨며 알렌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금 다짐했다.
"다음 시험에서는 무조건 저 녀석의 코를 납작할 정도로...! 내 눈에 보이지 않게 짓밟아주겠어!"
****
"알렌 메스티아. 일어나도록."
"네."
"축하한다. 이번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1위를 차지했군. 입학 시험에서는 보결로 들어오더니 이제야 정신을 차린 모양이군."
우리 코델리아가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평상시 잘하지도 않는 칭찬과 함께 잘했다는 찬사를 건넨다.
'약간 자랑스러워 하는 표정인데? 아닌가?'
"감사합니다, 코델리아 선생님."
가벼운 감사와 함께 자리에 앉자 내게 꽂히는, 교실에 앉아있는 급식들이 나를 대단하다는 시선으로 쳐다보는데... 이거 꽤 기분 좋네.
'이래서 시발 뭐든 잘하고 봐야 해.'
곧이어 클로에도 높은 순위를 칭찬하며 감사하다고 자리에 앉았지만, 어째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존나게 좋다.
'아무리 지랄발광해도 너는 내 손바닥 안이다 클로에야.'
"그리고 미라이 미레이."
"네, 넷...!"
옆에서 나를 존경의 눈빛으로 보며 소박하게 박수치던 미라이 미레이가 깜짝 놀란 채로 대답하며 일어난다.
"편입생 치고는 꽤 분발했구나. 다음 시험에서는 10등 안으로 들도록."
"네, 에엣...!"
'의외네. 빡대가리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 공부 좀 하는 모양이네?'
알렌의 실례되는 생각과 미라이를 다시 보게 되는 듯 했지만, 사실은 미라이 미레이를 공부를 못한다.
사실 편입 시험도 르카네의 지식으로 해결했으며, 이번 시험도 르카네가 아는 범위 내에 문제, 그리고 알렌의 시험지를 몰래 컨닝을 했기에 나온 결과는 11위.
미라이가 자리에 앉자 알렌을 쳐다보는 것처럼 여러 시선이 미라이를 향했지만, 정작 본인은 알렌과 다르게 과한 시선이 무서웠는지 고개를 숙이며 두 손을 맞잡고는 벌벌 떨고 있었다.
"쫄지 마."
"네, 네에?"
잘못한 것도 없는데 겁을 먹은 채로 벌벌 떠는 미라이를 본 알렌은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안심시키며 말을 건넨다.
"당당하게 있어. 허리 펴고, 나는 이런 사람이다, 할 정도로 너는 대단해. 그러니 겁먹지 마."
알렌 본인이 생각해도 쓸데 없는 오지랖이다.
그러나 잘했는데 겁을 먹고 떠는 모습은 꽤 싫어... 아니 존나 싫었다.
성격의 차이인지는 모른다. 그래도 잘한 건 잘한 것인 만큼 이때 만큼은 허세를 부려 당당하게 칭찬을 받아 들이는 게 좋다.
"네에...!"
조금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지만, 방금처럼 겁을 먹은 목소리는 아니다. 오히려 힘을 내려는 듯한 목소리.
"그래. 그렇게 있어. 누가 뭐라 해도 너는 잘한 거야. 그러니 떨지 마."
"가, 감사합니다, 알렌 님..."
"그냥 알렌이라고 부르라니까... 그런데 공부 잘 하는 모양이다? 딱히 가르쳐주지 않아도 되겠어."
"아...! 그, 그건... 운이 좋아서...요."
사실 르카네는 컨닝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파트너이자 소중한 친구인 미라이가 식당에서 알렌과 같이 요리를 나눠먹으며 나눈 얘기를 들은 르카네.
발정이 난 개처럼 절조도 없이 허리를 앞뒤로 흔드는 저 음란한 마수로부터 미라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높은 점수를 받아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알렌이 공부를 가르쳐 준다는 발언에 르카네는 심히 걱정이 되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남자와 미라이 둘이 한 공간에 있는 사태는 막아야 했었다.
"운이 좋기는 무슨. 시험에 무슨 운이 필요하냐."
이번 계기로 미라이를 높게 평가하는 알렌.
그러나 미라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에게 칭찬의 말을 들을 때마다 양심에 찔려 고개를 머뭇거리며 쉽사리 들지 못했다.
'우으으... 다음부터는 르카네가 도와줄 필요는 없어...'
'아, 안돼! 미라이. 시험 점수도 좋았잖아? 그런데 왜...?'
'스스로 공부해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
마나를 통해 르카네와 대화하는 미라이는 자신이 행한 부정에 르카네가 듣지 못하도록 굳은 결심을 다잡았다.
'다음에는... 내가, 내가 잘했다고 칭찬받고 싶어...'
****
모든 수업이 끝나고 알렌은 파멜라와 만나 간단히 도박 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우리 후배 대단하네? 첫 시험부터 학년 1위야?"
"그러니 더욱 칭찬해주세요."
"너무 기고만장하는 거 아니야? 그러다가 다친다~?"
파멜라와 나는 카드를 든 채로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도둑잡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저는 포커가 별로 안 어울리는 사람인가요?"
"초짜가 일주일 만에 로열 카지노에서 일하는 유능한 딜러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맞는 말이긴 하죠. 파멜라 선배."
"응, 왜 그래~?"
"그... 다... 뭐시기는 무슨 게임을 잘해요?"
"글쎄에에~? 나도 다오스가 잘하는 게임이 뭔지는 잘 모르는데~?"
파멜라의 느긋한 말투는 왠지 사람을 약 올리는 것 같았다.
"굳이 잘하는 게임은 모르겠고. 카지노에서 행하는 게임은 뭐든 잘해. 각각 딜러들도 특기 분야가 있는데. 다오스는 묘하게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특출나게 못하는 것도 없어~"
그 씹팔 다오스 새끼를 처참하게 짓밟아주려면 특기 분야로 상대해주고 싶었지만... 딱히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없는 상대라...
"방금 말한 것처럼 초짜는 딜러를 이긴다는 생각으로 하면 진다~?"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해박한 지식을 지닌 파멜라 선배에게 배웠는데 제가 질까요?"
"아첨 떨기는~ 그래도 귀여운 후배가 말해주니 기분은 좋네."
"끝났네~"
쌓인 카드 위에 짝이 맞는 카드를 던지며 끝났다고 하는 파멜라.
"전적을 따지자면 123전 100승 23패인가?"
"그렇죠."
"잘하고 있네~ 나를 상대로 10승 이상을 챙기다니. 다른 지역의 도박장에 가서도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녀도 돼~"
손에 들린 카드를 카드 더미에 내려 놓는 알렌은 다시 카드를 섞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셔플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틀 만에 삼류 딜러의 기술 정도는 돼서 다행이다~ 그것도 못하면 져야 하니까~"
"칭찬인 거죠?"
"물론 칭찬이지~ 게임은 질릴 정도로 놀았으니 오늘부터 모레까지. 기술은 연마하도록 하자~"
"네. 알겠어요."
생각보다 도박의 기술은 오묘했다. 아니, 단순하다고 해야 할까.
분명 밑장 빼기이니 뭐니, 동작 그만! 이런 기술인 줄 알았는데...
"다시. 이번에도 틀리면 패널티가 있어~"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했다.
모든 카드를 기억하며 어디에 있는지를. 상대방에게 안 좋은 패와 건네고 내게는 좋은 패를 주는...
셔플을 할 때도 자연스러우면서도 섞이는 카드의 위치를 모두 알고 있어야 했다.
한 4시간 정도 연습하니까 손이 얼얼하며 피부가 얇게 베어 살짝 피가 묻어 나왔다.
그래도 이제는 감을 익히고, 요령을 알았으니 그나마 다행인가.
진짜로 손이 경련이라도 왔는지 손가락 하나하나가 떨리며 카드를 쥐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 꽤 빨리 했네? 이틀은 걸릴 줄 알았는데?"
"다, 당연하죠...! 손 아파 죽겠는데..."
"우리 귀여운 후배는 손기술을 빨리도 익히네~? 그렇다면 이번에는 52장의 카드가 아닌 조커가 포함된 53장의 카드로 해볼까~?"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