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화 〉22-1. 이번에는 메이드임. (25/116)



〈 25화 〉22-1. 이번에는 메이드임.

미라이와 점심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온 알렌은 자신의 침대 위에 올려진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누가 보낸 편지야?"

침대에 누워 편지 봉투를 찢어 내용을 읽었다.

"글씨체 예쁘네. 그런데 뭘 준비했길래 이렇게 정성스럽게 손 편지를 써서 보내셨을까."

딱 봐도 코델리아. 누가 뭐라 해도 코델리아의 글씨체와 비밀 공간을 아는 사람은  명 밖에 되질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학생 방에 멋대로 침입한 건 조금 그렇구... 아니, 나도 남 말할 처지가 아니지. 저녁 여덞시라...'

편지에 적힌 내용은 지극히 간단했다.

'저녁 여덞시 까지 비밀 공간으로 혼자 오도록. 만약 어길 시에는 알고 있겠지?'

"귀여우시네, 우리 코델리아 누나. 암 그래야지. 내가 어울려 드려야지."

알렌은 편지를 접어 침대 밑 매트리스에 넣고는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미소를 지었다.

"으그그그극...!!"

침대에 누운 알렌은 몸을 길게 뻗으며 앓는 소리와 함께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아오... 갑자기 존나게 졸리네... 시...ㅍ...."

****

"여긴 또 어디야?"

눈을 떠보니 사방이 온통 검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앞이 안 보이는  아니었다. 마치 괴리감이 느껴지는 공간.

그러나 검은 공간도 잠시. 뜨거운 아지랑이처럼 전체적으로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뭐지. 분명 자고 있었는데... 아, 꿈인가? 이게 그 자각몽이라는 건가?'


알렌은 처음으로 꿈이라는 것을 자각하고는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생각하며 실현이 되나 싶었는데...

"시발. 안 되네. 자각몽이면 뭐든 된다고 했던 거 같았는데..."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는 알렌. 순간 영문도 모른 채로 공간이 진동하며 마치 깨진 빛을 잃은 거울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어둠이 물러나자 보기만 해도 땀이 절로 나는 커다란 화산 지대.

아직 활동하는 화산인지 곳곳에는 뜨겁다 못해 닿기만 해도 화상을 입은 걸 같았고, 무엇보다 저 높이 솟아오른.

구름을 뚫으며 하늘의 끝에 닿는 회색의 산은 보기만 해도 거리감을 상실할 정도로 매우 높았다.

"와... 존나게 높네..."

고개를 들어 한참을 커다란 회색 산을 보다가 갑자기 몸이 떠오르기 의지와 상관없이 떠오르더니 이내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어? 뭐, 무양아아앙아!?"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엄청난 속도로 중력을 거슬러, 마치 누군가가 끌어당기는 것처럼 알렌은 회색 산의 정상을.

커다란 분화구에 도달하자 몸이 자유를 찾았다. 그러나 다행은 아니었다.

생명이 살아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분화구의 안에서 알렌을 내려 보고 있는 커다란 드래곤.

피보다 붉고 용암보다 뜨거운 비늘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무기로도 뚫을 수 없으며.

작은 숨결은 도시 하나를 불지옥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지옥의 업화와 같은 맹렬함을 지닌 불꽃의 숨에 맞은 것들은 잿더미조차 남지 않았다.

[너로구나. 반지를 지닌 인간이]

순간 고막이 터져나갈 것만 같은 무거울 정도로 낮은, 마나가 대량을 담긴 용언이 내 귀를 강타한다.

"씨발...!!!"
[생각보다 강한 인간이구나. 다른 인간이라면 그 자리에서 피를 흘려 죽었을 터]

용언을 듣자마자 마나로 몸을 강화시켜서 다행이었지 만약 마나를 두르지 않았다면 도마뱀 새끼의 말처럼 피를 흘려 죽었겠지.

무엇보다 거대한 존재 앞에 가까스로 서 있는 것도 버겁다...!

그 끝을  수 없는 중압감.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내 몸을 누른다.

[용케 버티는구나. 내가 만든 반지를 사용하려면 그 정도는 되야지]

이세계로 빙의 돼서 처음으로 맛보는 굴욕과 패배.

알렌은 어차피 여러 번이나 깬 게임이니 자신의 죽음을 피할 수 있으리라 자만했다.

[나를 앞에 두고 잡념을 펼치다니. 배짱이 두둑한 인간 사내로구나. 오늘은 이만하지, 그럼 잘 가게나]

마나를 두르고 겨우 서 있는 알렌을 가리는 크나큰 그림자.

그리고 맹렬한 속도로 낙하하며 알렌은 그대로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씨, 씨발!!?"

기숙사 침대에 누워있던 알렌이 욕을 하며 벌떡 일어난다.

"뭐, 뭐였지? 존나 무서운 꿈을 꾼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

무의식 상태에서 자각을 깨우친 알렌이었으나 아직 완벽하게 깨우치지는 못한 모양이다.

"지금이... 아. 존나 늦었네..."

****
"늦어."

지금 시간은 저녁 여덟 시.

코델리아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교차한 채로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보며 아직도 오지 않는 알렌에게 짜증과 동시에 무슨 일이 있는  아니냐는 걱정이 들었다.

초조하다면 초조하다. 화가 났다고 하면 화가 난 모습이 이리저리 바뀌니 다른 사람이 본다면 조울증이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을 것이다.

벌컥!

"느,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때 알렌이 문을 다급하게 열어젖히며 코델리아를 향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헐레벌떡 뛰어갔다.

"뭐하느라 약속시간도 못 지켰지? 타당한 이유라면 내가 선처해주지."
"밤새워 공부하느라 피곤해서 잤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기특하겠지. 하지만 거짓말이라면 어쩔 셈이지?"
"결과가 증명하겠죠. 그리고 꽤 열심히 공부해서 학년 1위를 노리고 있거든요."
"너라면 분명 1위는 가능하겠지. 그래서 그게 다인가?"
"네?"

알렌이 침대에서 일어난 시간은 저녁 7시 58분.

처음에는 드래곤과 만난 꿈을 기억하지 못하고 일어났다가 시계를 보자마자 약속했던 시간은 이미 물 건너갔고... 혹시나 통할지도 몰라 온갖 변명거리를 빠르게 생각하며 도달한 답은 밤늦게까지 시험공부를 하느라 피로가 쌓여 그만 늦고 말았다! 라는 변명... 인데.

'안 먹히네... 2주는 에반데...'

"좋아. 계약한 대로 일주일을 늘리려고 했으나. 오늘만은 봐주도록 하지. 학년 1위라."
"아, 가, 감사합니다? 아니, 고마워 코델리아 누나."
"그래도 기간을 늘리는 대신에 다른 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어?"

쉽게 넘어갈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

"어, 어떤 벌을...?"
"옷장을 열면 옷이 두  들어 있으니 마음에 드는 걸로 갈아입도록 해."
"아, 알겠습니다."

옷장을 가리키는 코델리아. 나는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저번에 여장한 내 모습을 뚫어지게 보던데... 시발... 설마 아니겠지?'

나도 모르게 옷장 앞에서 무슨 옷이 들어있을까 내심 긴장되기 시작했다.

'물이라도 한잔하면 좋겠네...'

"꾸물대지 말고 빨리!"
"아, 알았어요!"

코델리아의 등살에 못 이겨 옷장을 열었다.

"집사복... 인가? 그리고 이건...."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절망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여장에 거부감이 드는  아니지만, 왠지 마음이 석연치 않았다.

"얼른 갈아입고  앞으로 쏜살같이 튀어오도록. 5분 주도록 하지."

옷장을 열고 옷걸이에 걸린 두 벌 중에 나는 집사복을 꺼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코델리아 누나."

아무렇게나 교복을 벗어 던지자 코델리아의 헛기침이 들려왔다.

그것은 부끄러움이 아닌 멀쩡한 곳에서 갈아입으라는 신호인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벗어 던진 교복 상의는 그대로 놔두고 탈의실로 들어가 재빠르게 교복 바지를 벗으며 걸려있는 집사복을 입었다.

"오, 시발... 나 존나 멋지군. 이러면 뻑이 가겠어 뻑이!"

알렌의 경박한 말처럼. 다른 누군가가 집사복을 입은 알렌을 본다면 한눈에 반할지도 모른다.

탄탄한 몸과 넓은 어깨. 그리고 샤프한 외모와 우월한 키까지.

근육, 외모, 키. 그야말로 삼위일체 저리가라다.

"아, 늦으면 안 되지."

자아도취도 잠시. 알렌은 서둘러 탈의실을 나와 코델리아의 앞에 서며 그녀가 입이 열릴 때까지 그냥 대기하고 있었다.

"홍차."
"네!"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목이  말랐는지 무심히 던지는 말투로 홍차만을 말하자 알렌은 주방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분명히 이 배합이 가장 좋았었지."

코델리아의 취향으로 브랜딩 한 잎을 골라 빨리 홍차를 내리고 싶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괜한 트집 때문에 다시 끓이기는 싫어...'

준비를 끝내 알렌은 새하얀 테이블보가 깔린 카트에 식기와 홍차를 놓고는 코델리아에게로 간다.

코델리아의 찻잔에 브랜딩한 홍차를 따르자 그윽한 향기가 절로 기분을 좋게 하는지 코델리아의 약간 굳은 얼굴도 살짝 풀린  같았다.

"알렌."
"네."
"집사복을 입을 때는 아가씨라고 불러."
"네, 코델리아 아가씨."
"그리고  집사복을 고른 거지."
"네?"

홍차의 향과 맛을 음미하며 말하는 코델리아의 말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무슨 표정이 저리 당당하냐? 나 참... 얼탱이가 없어서 욕도 안 나오네...'

"지금 즉시 집사복이 아닌 시녀복으로 갈아입도록 해."

찻잔을 내려놓는 코델리아는 무표정으로 내게... 시녀... 하... 시발.

'취향이 어째 메이저 하시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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