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화 〉20. 주종관계가 바뀌는 걸 일주일 동안 허용함. (23/116)



〈 23화 〉20. 주종관계가 바뀌는 걸 일주일 동안 허용함.

"미안합니다, 코델리아 선생님."
"자기 잘못을  아는 모양이구나..."

나와 코델리아, 아네스만이 아는 비밀 공간.

그곳에서 나는 의자에 앉은 코델리아를 올려보며 무릎을 꿇고 사죄한다.

거만한 자세. 마치 코델리아의 모습은 흡사 직장의 여상사를 떠올리게 했다.

가슴을 더욱 강조하는 팔짱. 다리를 꼬며 나를 내려다보는 경멸의  시선.

'오늘은 검은색이네.'

"그래서."
"네? 그래서라니?"
"그것뿐이야? 사죄하려면 그에 합당한 대가가 필요하지 않겠어?"

코델리아는 낮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알렌에게 자신을 울린 대가를 요구했다.

"아니... 뭐... 해줄 수 있는 건 해드리죠. 어제는 제가 너무 심했으니까요."

알렌은 저린 무릎과 다리를 문지르며 난처한 웃음으로 말한다.

"네가  말. 책임질  있지?"
"네. 그리고 이전 있었던 내기는 파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알고 말씀하시는 거죠?"
"내가 그것도 모를 줄 알아. 좋아. 그러면 계약서를 작성하지."

코델리아는 공간을 왜곡시켜 익숙한 양피지와 펜을 꺼내 재빠르게 작성하기 시작한다.

마치 미리 생각해둔 것처럼 술술 써내려가는 모습이 조금 두려웠다.

'시발... 도대체 뭘 하려고 하길래 저렇게 막힘없이 쓰냐...'

걱정이 앞서는 것도 잠시. 코델리아는 어느새 계약서 작성을 끝마쳤는지 무릎을 꿇은 알렌에게 계약서를 건네며 크게 낭독하라고 명령한다.

"하하... 좋습니다. 아주 크게! 낭독해 드리죠! 첫 번째!!"

1. 계약서에  사람의 피와 서명이 새겨진다면 계약은 이행된다.
2. 계약서에 서명된 동시에 일주일 동안 알렌은 코델리아의 종이 된다.
3. 기간 동안 명령을 어기거나 불복종할 시에는 기간을 일주일 더 늘린다.

"어...? 이건 예상치 못..."
"할 거야, 말 거야?"

낭독을 마친 알렌은 당황하지만, 강압적인 태도. 마치 첫대면을 했던 코델리아와 같은 모습이 솔직히 무섭지는 않고 쪼는 척만 했다.

애초에 희미하게 다리도 떨리고. 시선 처리도 영 불안한 것이 어째... 쫄고 싶다는 연기보다 그냥 강한 척하는 코델리아가 귀여웠다.

"좋습니다. 계약하죠."

펜을 낚아채는 알렌은 서명을 하고는 이번에는 피가 아닌 코델리아에게 펜을 넘겨받아 서명한 후 계약서를 건넨다.

알렌 메스티아가 불합리한 계약서에 이렇게 쉽게 서명한 이유는 간단했었다.

바로 '양심'

어제 자신의 성욕을 풀기 위해. 혹시나 게임이나 떡인지에서도 이라마치오라는 걸 하면 여자들이 헤롱헤롱하길래 반쯤 호기심 삼아 해봤는데... 그만 실수로 울려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는 벌. 그와 동시에 코델리아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한 사죄의 의미로 이렇게 서명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 나 때문에 울었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그런데 현실이면 인생  될 뻔했구나... 다른 세계라 다행이네 시발...'

"피 흘리는 건 싫으니까 그냥 펜으로 했어요."
"이래놓고 홀라당 도망치는 건 아니겠지..?"

서명한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며 심지어는 마나로 이상은 없는지 탐지하는 코델리아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알렌을 보며 말한다.

"싫으시면 말고요."
"누, 누가 싫다고 했어?"

코델리아의 손에 들린 계약서를 가져가려는 알렌의 손길을 다급하게 피하며 말을 더듬기 시작하며 의자에서 일어난다.

그러더니 알렌의 손에 들린 펜을 가져오며 계약서에 서명을 그대로 보여주는 코델리아.

'뭐, 이런 플레이도 괜찮겠지.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하니.'

알렌은 어차피 일주일 동안 주종역전의 상황극도 뭐 나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 너는 이 시간부로  종이야! 알았어!?"
"알겠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부를까요? 코델리아 선생님? 코델리아 님? 코델리아 주인님? 코델리아 아가씨? 마음에 드시는 게 있다면 말해주세요."

이곳 아카데미에 부임한 지 7년이 흘렀지만, 자신을 아가씨이니 주인님이니 하는 그런 호칭은 저택에서 말고는 들어본 적이 없어 약간 흥분한 모양이다.

원래 차갑고 날카로운 성격이었기에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동등했던 알렌 메스티아의 형, 브렌드 메스티아 밖에 없었고. 아카데미 동료도 딱히 그녀의 차가움에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알렌이 다양한 호칭을 말하며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정하라는 알렌의 나긋한 말투에 코델리아는 살짝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으며 짧은 고민 끝에 코델리아를 부르고 듣고 싶은 호칭을 정했지만, 선뜻 대답하지는 못한다.

"어떤 호칭으로 하실지 정하셨어요? 이제 슬슬 가봐야 하는데?"
"계약서처럼 일주일 동안은...  종이니까 마음대로 해도 되지...?"
"네. 뭐든 말하세요."
"그, 그러면... 남자로 있을 때는 코델리아 누나라고 불러..."
"네? 아, 네... 간단..."

코델리아의 말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쑥쓰러워져 머리가 뜨거워졌다.

'아... 갑자기 저런 자세로 저렇게 말하는 건 치트급 아니냐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니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며 둘은 자신의 빨개진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 한다.

'좋긴 좋네... 이게 연... 아니, 잠깐만. 남자로 있을 때는?'

"자, 잠시만요? 코델리아 서, 아, 아니... 코델리아 누나! 남자로 있을 때라니, 그게 무슨?"
"어흠!! 시, 시끄럽고 나중에 알려줄 테니까.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록 해! 어길 시에는 일주일 연장이다!"
"알겠어요. 그러면 먼저 가보도록 할게요."

찝찝함을 지우지 못하는 알렌은 서둘러 비밀 공간을 나간다. 그리고 홀로 비밀 공간에 남아있던 코델리아가 긴장이 풀렸는지 고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다행이네... 안 되나 싶었는데. 그래도 최소한 양심은 남아있는 모양이야..."

애써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며 우위를 점하려는 잔뜩 힘을 주었던 코델리아의 힘이 빠진 모습을 알렌이 본다면 분명히 참지 못하고 계약을 어겨 일주일 연장이 됐을 것이다.

"앞으로 뭘 해야 하지? 아, 그러면 되겠다."

깨끗한 순백의 침대에 누우며 일주일 동안 알렌에게 무슨 일을 시킬까 고민하며 공간을 다시 왜곡시켜 노트를 꺼내 알렌을 데리고 하고 싶은 일을 생각나는 대로 쓰면서 펜이 멈추지 않았다.

****

'이제부터는 뭘 해야 하지...'

침대에 엎드려 누운 알렌은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이불을 덮어 노트에 적힌 스토리 일부분을 펜으로 그으며 고민했다.

우선적으로 이상한 것은 바로 아케데미 원생의 히로인들.

'한 달이 지났고 이제는 일주일이 됐는데도 파멜라 말고는 마주친 년이 없군... 아니면 히로인이 좋아하는 장소에 있어야 만날  있나?'

루센과 적당히 친해져서 히로인을 강탈할 생각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주인공인 루센의 곁에는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대는 별로 없었다.

성격은 좋아서 남자 급식이랑 여자 급식 대부분이 어울리는 거 같기는 하다만... 이상하게도 히로인이 꼬이지는 않았다.

'히로인이 꼬이지 않는다면 구태여 친해질 필요는 없지. 그나저나 문제는 두 명인가... 아니, 세 명이구나.'

비비안 아락시스, 파멜라 쉴버나스, 미라이 미레이.

하나같이 겹치지 않고 자기만의 개성을 지닌 히로인  명과 암상인 한 명.

비비안의 경우 악역 영애와 버금이  정도로 공략이 힘들기도 하고. 웬만하면 천천히 공략하고는 싶은데 나중에 가면 공략이 더 어려워질  같았다.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스토리가 뭔가 다르게 흘러가는 느낌.

파멜라 쉴버나스.

어둠과 빛의 마나를 지녔으며 자신의 마법도 도박이다. 한마디로 도박에 미친년.

'내 얼굴을 인식하고 요란하게 도박하는 모습까지 보여줬으니  찾아오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아... 이건 뭐... 어쩌라는 거냐...?"

나지막한 한숨과 혼잣말을 하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는 알렌.

'미라이 미레이.'

공략 히로인도 아닐뿐더러 애초에 성격도 우울하고 그 여파 때문에 본인의 마나가 자기도 모르게 폭주하며 근처 사람에게 멋대로 불행을 선사하는 함정 암상인.

'하필이면 옆자리라 내가 어느 정도 케어를 해야 나도 피해가 없을 것... 아니지. 차라리 방치하면 위험인물로 분류돼서 특별 지도반에 가는  아닐까? 또 심하면 퇴학도...'

지금 생각하니 차라리 미라이를 방치하며 사고가 터진다면?

나쁘지는 않네. 일단 대충 정리하자면 미라이는 방치하고, 미친년은 알아서 찾아오도록 하고, 비비안은 뭐... 조급하지 않게 빠르게 공략해야겠어. 언제 또 이상하게 흘러갈지도 모르니까.'

노트를 덮으며 마법 램프를  알렌이 하품한다.

"흐아아암... 쩝... 아, 깜빡할 뻔했네."

덮었던 노트를 펼치며 무언가를 적는 알렌.

'시발놈... 군자의 복수는 어쩌구저쩌구 하는데. 일주일 후에 보자, 딜러 씹새끼야...! 네 새끼가 자신 있는 도박으로 지는 모습을  보고 만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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