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화 〉17. 여장은 처음이다. (19/116)



〈 19화 〉17. 여장은 처음이다.

오늘 아네스가 쓴 소원. 그러니까 동생이 되어 아네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흔히 거리에 나가서 알콩달콩하게 놀아주는 역할이라 생각했던 아주 간단한 소원인  알았는데...

"이, 이렇게 입는  맞냐?"
"어머머...! 너무  어울려요!"

옷을 가져다준 점원이 나를 보며  어울린다고 말하는데... 애초에 시발... 내가.. 아니 남자인 내가 여장을 하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잘 어울리네요~!"
"아네스. 내 말뜻이 뭔가 다르게 전해진 것 같은데. 애초에 나는..."
"지금은 언니라고 해야죠."

시발. 애초에 여장은 처음인데... 분명히 좇 같음이 차올라야 할 텐데...

"잘... 어울리네."

옆에 있던 코델리아가 넋을 놓든 내가 여장한 모습을 감상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그 말로 인해 솔직히 나는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 알렌 메스티아는 의외로 여장이 어울리는... 그것도 존나게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는 것을.

확실히 처음 입는 옷이라 고생 좀 꽤 했는데... 탈의실 거울을 보니 진짜로 어울리기는 존나게 잘 어울렸다.

분명히 단련이랑 수업을 열심히 받았는데도 오버핏으로 여자 옷을 입고  가발을 쓰니... 은근 내 취향이기도... 아니지 시발.

'정신 차리자, 시발.'

"이봐, 코델리아. 나는 말이지..."
"소원 하나 들어주신다고 했으니까 들어주셔야죠? 그리고 동생이라고 했으니 여동생도 될  있는 거잖아요?"
"아니... 여장은 그래도... 아니다. 들어줄게... 다음은 또 뭐냐?"
"근처에 좋은 카페가 있거든요. 우선 거기로 가죠."

어차피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미 자신의 개인적인 일을 거부하고 다른 소원마저 거부한다면 그녀들은 내게 반항적인 태도... 는 개뿔이고.

'솔직히 약속은 지켜야지.'

이런 개차반 같은 나라도 약속은 무조건 지킨다.

내가 약속을 어기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있고, 알렌 메스티아라는 녀석 자체가 약속을 잘 들어주는 호구 같은 면이 한몫하는 것도 있으니 말이다.

어차피 채찍이 있다면 당근도 필요한 법이니까.

계속해서 내 마음대로 한다면 그건 주인 실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의류 가게를 나오고 우리 세 명은 거리에 유명한 카페로 가서는 달콤한 디저트와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네스는 남동생을 좋아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물론 남동생도 좋아해요. 그래도 오늘은 허심탄회하게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요. 그렇죠, 아르렌?"
"하. 이제는 이름까지 지어주셨나?"
"오늘은 제 여동생인 만큼 존대를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아르렌."
"네, 네. 물론 그렇게 해야죠, 아네스 언니."

언니라는 호칭을 들은 아네스가 매우 기분 좋음을 뿜어낸다.

"코델리아 선생님도 이런 취향의 소녀를 좋아하시나 봐요? 아주 눈에 박힐 정도로 쳐다보시는데."
"응... 상당히 어울려서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는구나."

코델리아도 내 여장 모습에 감탄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코델리아 선생님이라는 호칭 말고 코델리아 언니라고 불러 드릴까?"
"응. 그게 좋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너는 아르렌이야."

이거 꽤 중증이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반응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알렌, 아니, 아르렌은 비아냥거리는 말투를 한 귀로 흘려보내며 홀린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이 어째 놀릴 맛이 안 난다.

'예상하는 것처럼 되질 않는구나. 후... 오늘 하루는 어울려준다고 했으니.'

곧이어 실속없이 마냥 내가 귀엽다는 아네스와 멍한 얼굴과 함께 작게나마 미소를 짓는 코델리아의 여유가 은근히 짜증이 나면서도 아름다웠다.

"주문하신 케이크와 차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문한 디저트가 나오자 아네스는 기뻐하며 케이크를 음미했고. 코델리아도 홍차에 관해서는 까다로운 취향을 지녔지만, 카페의 홍차가 마음에 든 것인지 향을 느끼고 있었다.

'맛있네.'

나도 테이블 위에 놓인 케이크를 먹으니 마음이 조금이나마 진정이 되며 이 분위기에 취하듯이 녹아들었다.

여유가 넘치는 일상으로 돌아오는 듯한 평온한 휴식을 즐기니 마음이 늘어지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알레... 아니, 아르렌."
"왜 그러세요, 코델리아 언니."
"앞으로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내 귀여움에 취했던 코델리아가 어느새 정신을 차리며 미래에 대해 묻는다.

"구체적으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뭔가 목적이 있어 우리를... 그... 한 것이 아닌가."
"네. 저는 아주 거창한 목적을 품었죠. 그렇지만 여기서 굳이 이 주제를 꺼내고 싶지는 않네요.

코델리아는 장난스러움이 가득한 알렌의 말에 더는 캐묻고 싶지 않았다. 아니, 말을  수가 없었다.

말투는 여전했으나 눈과 입은 무표정이었으니 말이다.

"아, 그리고 여기 케이크 맛있네요. 자,  해보세요."
"무슨...!"
"오늘만큼은  노예가 아닌 언니로 대할 터이니 조금 어울려달라고요, 코델리아 언니."

무표정하던 알렌의 얼굴이 금세 장난스럽게 변하며 요망한 소악마의 웃음으로 코델리아에게 케이크를 먹이며 포크를 핥는다.

소악마스러운 웃음과 자신의 입에 닿았던 포크를 핥는 알렌의 여장 모습을  코델리아를 자신도 모르는 어떤 감정에 그만 얼굴을 붉히고 만다.

"저, 저도 해주셔야죠, 아르렌!"
"네에, 네에~ 우리 아네스 언니한테도 먹여 드려야죠. 자, 아~ 해보세요."

****

"즐거웠어요!"
"아네스 언니가 즐겁다면 저도 즐겁네요."

황혼으로 물드는 하늘.

이제는 마지막 휴일의 끝을 알리며 우리는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즐겁게 놀다가 이내 아카데미에 도착하고는 비밀 공간으로 돌아왔다.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알렌 주인님!"
"이 정도로 무슨. 다음에도 말을  들으면 소원을 들어줄게. 그리고 코델리아 언니도 상당히 즐거웠던 모양인데."
"하, 하는 수 없이 어울려준 거다."
"그런 거라면 배우를 해도 되겠군요."

정곡을 찌른 것인지 코델리아는 고개를 돌리며 어린아이처럼 토라졌다.

"장난입니다. 그보다 다들 어디 가십니까?"
"네? 내일 출근하려면 씻고 자야죠?"
"알렌. 너도 있을 수업을 위해 빨리 자도록 해라."
"아네스. 자신이 말한 소원을 까먹은 거야?"
"네? 갑자기 무슨...?"

알렌은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손을 잡으며 말한다.

"자정이 될 때까지는 약속된 시간이니까 어울려 줘. 그리고 동생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것도 언니들이 할 일이잖아."

알렌... 아니, 아르렌은 그녀들의 도망가지 않도록 손을 놓고는 각 다른 엉덩이를 잡는다.

"밤은 이제 시작이야, 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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