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16. 생각은 나중에. 오늘은 눈나들과
"무슨 일이라도 있나?"
"아니."
마지막 주의 휴일.
알렌과 코델리아, 그리고 아네스.
비밀 공간에 들어온 세 명은 느긋하게 홍차를 마시고는 있었지만, 코델리아의 걱정에도 알렌은 그저 멍하니 홍차를 마시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투로 답한다.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군."
"말 못할 일이라도 생기셨나요, 주인님?"
"신경 안 써도 돼."
평소의 알렌이라면 분명 장난끼 가득한 웃음으로 두 사람에게 농담을 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지금의 알렌에게 있어 두 노예를 놀리며 웃는 것보다는 어제 있었던 그 남자를.
'그 씨발놈을 어떻게 조져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이구만.'
만약 여자였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지만, 남자는 달랐다.
나를 우롱하는 말투하며 가문을 걸고 넘어지려는 그 말투가 정말인지...
'존나게 패버리고 싶네... 씹새끼.'
"뭐야 갑자기?"
"진정하고 쿠기나 먹어."
내 모습이 조금 이상했던 것인지 아네스는 진정하라는 손짓과 코델리아는 쿠키를 내 뺨에 문대며 쿠키를 먹으라고 했다.
"그래. 아아아~"
"스스로 집어 먹어."
"이왕 걱정해주는 거면 끝까지 책임지라고. 아니면 내가 해줄까? 자, 아~ 해 봐."
"시, 시끄럽다."
코델리아와 정을 나눈 이후로 어쩐지 금방 얼굴이 붉어지며 당황하는 모습은 상당히 귀여웠다.
"저, 저기. 곤란한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말씀해 주세요. 저는 주인님의 첫 번째 노예니까요!"
물론 나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아네스도 귀여울 따름이었다.
"그래. 누가 뭐라 해도 너는 나의 첫 번째니까. 아주 좋은 답이다, 아네스. 내 마음을 울렸으니 상으로 무엇을 원하지?"
아네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알렌.
그리고 조금은. 아니, 사실은 벼룩만큼의 관심도 없지만, 어째서인지 코델리아는 심장이 조여오는 듯한 압박감이 들면서도 동시에 부럽다는 자신의 생각을 애써 부정하며 고개를 돌린다.
아네스가 알렌의 첫 번째.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 소년의 손길을 부럽다고 생각하다니.
요즘 들어 마음이 이상하다. 알렌 메스티아를 만나고 나서는 모든 게 이상해졌다.
마치... 자신이...
"뭐야...?"
"내 옆으로 와, 코델리아. 편애는 좋지 않으니까."
"누가 질투한다고 그러지? 웃기는군."
"그래? 알았어. 그보다 아네스. 소원이 뭐지?"
알렌의 감촉을 느끼며 헤벌쭉한 미소를 짓는 아네스는 원래의 얼굴로 돌아오며 알렌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한다.
"방금 전에 주인님이 멍하니 생각하셨던 일을 세세하게 우리에게 말해주세요."
"흐음... 좋아. 하지만 말해줄 수는 없어. 개인적인 문제이니까."
딱히 그녀들에게 이 일을 알려주고 싶지는 않다.
정말로 개인적인 문제이니까.
알려준다고는 해도 개인적인 나의 복수의 타인을 끌어들이고 싶지는... 아니, 그냥 나 혼자만으로 힘으로 이루고 끝내고 싶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들을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표정 짓지 마. 내 개인적인 문제니까. 그리고 오늘은 특별하게 아네스의 유일한 동생이 되어주지. 어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네스도 좋다면서 아쉽다는 표정이 금새 바뀌며 눈은 번쩍인다.
"도, 동생? 그게 무슨 소리지?"
"코델리아는 모르는 건가? 내..."
"안돼요. 오늘 하루는 제 동생이니까 다른 여자에게 말을 걸면 안 된답니다!"
아네스가 이번에는 역으로 내 머리를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벌써 시작인가?'
"오늘은 저랑 같이 아주 즐겁게 놀아요, 알렌."
"그... 아니, 네. 아네스 누나."
"딱딱하게 말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그러면 오늘 하루를 알차게 보내려면 거리로 나가요."
"금방 준비할게요, 아네스 누나."
알렌은 비밀 공간을 나오며 기숙사로 향했고.
즐거워하는 아네스의 곁에 코델리아가 지금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지금... 이게 무슨?"
"예전에 주인님께서 제가 기특하다면서 소원을 하나 들어주신다고 하셨거든요, 후훗!"
"그, 그래서 지금... 학생을 아네스 선생의 동생으로? 아니, 알렌이 아네스 선생님의 남동생이 됐다는... 그런 설정입니까?"
"네, 맞아요. 그런데 코델리아 선생님은 의외로 관심이 많아지셨네요? 예전에는 매사에 불만을 품으며 행동하셨는데... 어쩐지 부드러워지셨네요. 주인님 덕분일지도 모르겠네요!"
손뼉을 치며 잘됐다는 식의 미소를 짓는 아네스. 그러나 이 사실을 부정하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코델리아는 목소리가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딱히 마땅히 반론하지 않았다.
사실은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변화는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법.
알렌 메스티아와 만난 이후로 나는 어딘가 달라졌다.
"아! 코델리아 선생님도 저랑 같이 나가지 않으실래요?"
"제가 무슨..."
"재미있을 거예요! 여태까지 주인님에게 휘둘러진 만큼! 오늘만은 우리가 주인님을 휘둘러보죠!"
예전의 코델리아라면 분명 아네스의 의미 없는, 효율조차 없는 말을 무시했을 것. 애초에 말을 걸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코델리아는 달라졌으며 아네스 또한 달라졌다.
물론 좋은 방향으로 좋아진 것.
무엇보다 자신을 어린아이... 장난감처럼 다루던 알렌에게 자신이 받은 치욕을 어느 정도는 갚아주고 싶다는 마음의 물결이 파도쳤다.
"조, 좋습니다. 허으으음...! 바람을 쐬는 건 나쁘지는 않겠네요...!"
"그러면 우리도 얼른 갈아입고 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