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9. 운동 눈나 퍄퍄~
'시팔. 존나게 힘드네, 진짜...!'
체력이 극한에 다다를 때 나오는 숨. 아니, 숨을 쉬는 게 이렇게 고마운 일인 줄 꿈에도 몰랐다.
"뭘 누워있나? 얼른 일어나도록!"
"조, 조금만...! 쉬면...! 안 됩... 니까아아...!?"
나는 진로를 결정하는 과목을 검술로 지원하며 계속 필기 수업을 듣다가 어느 정도 체력을 단련하고 처음으로 실기 수업을 하는데... 미칠 노릇이었다.
"남자가 한심한 소리내지 마~ 어서 일어나자~"
탈진한 나를 억지로 일으키며 어린아이마냥 해맑은 미소를 짓는 검술 선생 크리스핀 네드니.
평소 멀쩡한 상태였다면 그녀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입맛을 다시며 가볍게 일어났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깨까지 내려오는 곱슬끼가 섞인 검정 머리카락하며 구릿빛 피부와 옷 틈 사이로 얼핏 보이는 눈꽃 같은 속살.
거기다가 눈물점이 찍혀 야릇한 외모였으면 무엇보다 황금으로 빛나며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눈동자.
전체적으로 보아 암표범을 연상시키는 자태다.
그런데...
'아무리 체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시작부터 연병장을 무슨 서른 바퀴나 야발련아아아아!!'
게임에서는 그냥 체력이 줄어드는 걸 보고 있었을 뿐이지만, 실제로 해보니 진짜로 죽을 노릇이다...
'시발... 시발...! 군대에서도 이 지랄까진 아니었는데...!'
"하아...! 하아...! 이, 일어났습니다...!"
체력이 줄어 숨을 쉬기도 힘들었던 알렌은 자신을 일으키던 크리스핀의 손을 뿌리치며 스스로 일어서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알렌은 뛰는 것만도 못한 걸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허우적거리는 웃기는 사람으로 보일 지는 몰라도 내 딴에서는 존나게 열심히 뛰고 있는 거다.
또 내가 체력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크리스틴의 호감도는 아이템으로 올릴 수는 없다.
무조건 근성. 매일 검술 수업에 출석하는 성실함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중요시하는 여자다.
물론 클릭만 했던 게임에서는 존나게 쉬운 년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
클릭만하면 움직이는 캐릭터가 아닌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하는 몸이었기에 아무튼간에 존나게 힘들었다.
"호오? 꽤 근성이 넘치잖아! 자, 앞으로 두 바퀴 남았다, 알렌!"
크리스틴의 훈련 강도는 상당히, 아니 그냥 높다.
웬만한 기사들도 짐을 꾸린 채로 연병장을 서른 바퀴를 뛰라고 한다면 며칠은 녹초가 되버리고 말 것.
물론 학생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짐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뛰라고는 했지만, 엄연히 강도가 높은 훈련이다.
지금도 알렌을 제외한 원래 검술 수업을 받는 학생들은 벤치에 앉아 자기네끼리 모여 시시한 잡담을 하거나 앓는 소리를 내거나 물을 마시고 있었다.
보통과에서 검술로 넘어와 외톨이 뉴비인 나를 성심성의껏 알려주고 챙겨주는 건 고맙지만, 부담스러웠다.
'시팔, 시팔! 욕 밖에 안 나오네! 하필이면 여름 날에!'
"자, 자! 파이팅, 알렌!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옆에서는 파이팅 지랄이고, 날씨는 존나게 덥고, 씨발. 씨발씨발!'
그렇게 크리스틴의 필요없는 응원을 애써 무시하고 참으며 겨우 서른 바퀴의 연병장을 다 돈 나는 그대로 연병장에 총에 맞은 사람처럼 쓰러져 쇳소리를 내며 숨셨다.
"헤엑! 헤엑!"
"처음치고는 근성있는 학생이네. 자, 여기 물 좀 마셔."
크리스틴의 손에 들린 물을 채가는 알렌은 말라 비틀어진 목구멍에다 물을 쳐 넣는다.
"켈륵! 케케, 케 크아아악!"
"운동해서 지쳤을 때에는 이렇게! 물은 입안에 머금고 천천히 마시는 거야."
뙤약볕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에서 물을 마시는 크리스틴의 건강미 넘치는 육체를 보니 정말인지 최고면서도 동시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다들 첫 수업인데도 너무 못 따라오네... 조금 난이도를 낮게 할까?"
"그걸... 왜 저한테 묻습니까아... 후우..."
"내 수업을 열심히 따라왔잖아, 포기하지 않고! 그리고 조금 페이스에 맞춰서 훈련 계획을 짜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노는 애들이 태반이라, 하하."
쾌활하게 웃고 있는 크리스틴은 쉬고 있는 나머지 대다수의 학생을 보며 혼잣말을 하면서 내게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냥 놔두세요. 알아서 하겠죠."
"응? 그냥 놔두라니?"
"어차피 우리 나이대는 괴로운 훈련이나 공부보다 차라리 친구들이랑 웃고 떠드는 걸 더 좋아하니까요. 간혹 예외도 있지만."
크리스틴에게 솔직한 조언을 하는 알렌은 저도 모르게 다른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는 여학생을 보았다.
'비비안 아락시스'
여름에 대항하듯 차가운 순백의 긴 머리카락과 얼음과도 같은 차가운 눈동자.
그리고 슬랜더한 몸매가 그녀의 스타일을 더욱 차갑게 부각시키며 다른 사람조차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아우라를 뿜어낸다.
"비비안은 대단한 아이야."
내 시선이 비비안을 향했던 것을 알아챈 크리스틴이 갑자기 설명충 모드가 되버렸다.
"검을 잡은 지 고작해야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엄청난 성장 속도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야. 아마 나보다 강할지도?"
"아무리 그래도 크리스틴 선생님은 열다섯에 적군 대장의 목을 베어 나중에는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단장까지 이임하셨잖아요."
"어머? 나를 잘 아는 모양인가 보네? 귀여워라~"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귀엽다고 하는 크리스틴의 손길이 딱히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존나 좋아. 지금까지 조교만 시켜서 그런지 이런 상냥함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뭔가 존나 좋다! 이게 연상이지! 이게 눈나 나 죽어지!!'
"그래도 매번 혼자 있는 건 마음에 걸려. 아직 1학년이면 다른 애들과 친하게 지내도 될 텐데... 흐으응~"
"...알았어요. 딱히 기대는 하지 마세요."
"정말 착한 아이네~ 귀여워라 귀여워~!"
크리스틴에게 부탁받은 알렌은 알겠다고 말한다.
알렌의 대답에 기뻐하는 크리스틴은 매우 감격적이었던 것인지 알렌의 머리를 두 팔로 끌어안으며 그대로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으며 귀엽다는 칭찬을 연신 한다.
'좋긴 좋은데... 의외로 단단하네. 크리스틴 선생은 천천히 끈기있게 공략해야지...!'
크리스틴 눈나의 애정표현이 끝나자 나는 지친 몸을 일으켜 홀로 앉아있는 비비안 아락시스에게 다가갔다.
"내게 볼 일이라도 있어?"
"그건 아니고. 잠시 얘..."
"이상한 놈."
나무 그늘에서 쉬고있던 비비안이 내 말을 끊고 일어나 무심하게 쳐다보고서는 그대로 자리를 피한다.
'비비안은 공략하기 솔직히 존나 어려운데... 거의 악역영애 급인데.'
비비안 아락시스는 꽤... 복잡한 스토리를 가진 히로인이라 공략하기가 악역영애와 동급이라 할 수 있다.
차가운 외모하며 가녀린 몸. 그리고 타인을 거부하고 과거의 일 때문에 남자에게 트라우마가 있는 비비안을 과연 공략할 수는 있을까.
'일단 노력이나 해야지. 비비안의 호감도가 어느 정도 올라가야 호감도 아이템을 선물할 수 있으니까.'
"하아... 시팔. 괜히 검술 배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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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지친다 지쳐... 내일 일어나면 백빵 근육통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암시장으로 나온 알렌 메스티아는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며 상인들이 파는 아이템을 둘러보고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평소 암시장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뭔가 한층 낮아졌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간에 아이템을 둘러보며 걸어가던 중. 유독 암상인들이 벌벌 떨며 누군가를 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시발... 설마 아니겠지?'
"왜... 아무도 미라이 곁에 오지 않는 거야... 미라이는 너무 슬퍼..."
'좇 됐다. 아무리 봐도... 그냥 좇 된 거 같다.
"어? 소, 손님이야? 미라이 처음으로 손님...!"
"아, 아니 그게."
예전에 암시장에서 색욕의 마녀 켈시처럼 떡치기 좋은 아이템을 파는 암상인이 있다고 하면 그 반대도 당연히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고 수상쩍은 저주 아이템을 파는 저주받은 암상인이 바로 그녀,
'미라이 미레이' 였다.
미라이의 눈과 잠깐이라도 마주친다면 손님으로 인식해서 물건을 팔려고 노력하는데.
간혹 좋은 아이템이 있기는 하나 내가 게임을 하면서 미라이에게 효과 좋은 아이템을 산 적은 단 한 번도! 정말로 단 한 번도 없었다.
또 손님 입장에서는 아이템을 안 사도 그만이지만, 미라이의 아이템을 구경만 하고 사지 않는다면 슬픔에 빠진 미라이의 부정적인 마나가 손님을 달라붙어 저주를 받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저주를 파는 암상인이라는 이명까지 있을 정도였고.
무엇보다 미라이 미레이 본인은 저주를 걸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와 별개의 의지를 가진 마나가 손님에게 저주를 거는 것.
그냥 쉽게 설명하자면 존나 귀찮다.
"어, 어떠세요... 이번에는 미라이의 자신작... 이에요...!"
'시발. 얼핏 봐도 다 개 좇 같은 것 밖에 없네... 그래도 공략중인 지금 방해를 받는 것도 싫으니까...'
"오? 재미있어 보이는 도구네요. 전부 다 주시겠어요."
"감사합... 네? 저, 정말이욧? 미, 미라이의 자신작을 다 사주신다... 는 거... 사실... 이죠?"
나는 서둘러 미라이의 아이템들을 수납 마법이 걸려있는 가방에 넣고서는 아이템의 금액을 치뤘다.
"고, 고, 고맙습니다...!"
미라이는 작은 주먹을 불끈 쥐며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이러면 저주는 안 받겠지?'
물론 나야 저주를 받기 싫어 이렇게 행동한 거지만.
"그럼 나중에 봐요."
나는 한시라도 빨리. 별다른 수확도 없이 서둘러 암시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이템을 다 팔렸음에도 계속해서 자리에 앉으며 알렌을 멍하니 생각하는 미라이 미레이.
"머, 멋지신 분이다...! 미라이... 심장이 두근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