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이벤트 외전. 남겨진 사람들.
* * *
남편은 곧바로 나한테 겉옷을 입혀주고는 빠른 걸음으로 내 손을 잡아 끌어서 차를 몰았다.
운전하기 전, 담담히 변호사 사무실의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찍고 있는 남편의 모습에, 목 밑까지 차올랐던 까만 물이 그래도 숨은 쉴 수 있을 정도로 내려가 있었다.
움직이는 차 안은, 어딘지 모르고 좁고 갑갑했고, 우리는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하지만 우리는 믿었다.
우리 딸은 멀쩡할거라고.
우리 딸은 괜찮을거라고.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평소 그이가 알고 지내던 변호사님에게 상담을 받았다.
사무실은 무척이나 큰 빌딩의 최상층에 위치해 있었고, 벽에 줄줄이 걸려있는 상패에, 바쁘게 오가는 직원들과, 예쁜 아가씨가 차를 내어주는 모습에 어딘가 안심이 갔다.
그만큼 실력이 좋다는 말이니까.
비용은 제법 들 것 같지만, 그이도 나도 각오는 되어 있었다.
변호사님은 그이가 일하다가 만난 분이시라고 한다, 이쪽으로는 실력이 매우 좋다고.
호리호리한 몸에 안경을 쓰고 양복을 차려 입은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깐깐할 것 같은 사람.
그는 우리를 자리에 앉히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알게되는 암담한 사실들 속에, 나는 머그잔에 한껏 담겨있는 녹차는 입에도 대지 못한 채, 그저 손을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님은 비서로 보이는 분에게서 자료를 한 뭉치 받아서 쓱 훑어보며 상담료조차 비싼 값을 한다는 걸 보여주듯, 서론 없이 바로 상담을 시작했다.
“음… 김미희씨는 일단 XX동 연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 되셨어요, 사건 번호는 007고 XXXXXX번 사건이고, 전과로는 9건. 살인 7건에 특수 상해 2건으로 기소가 된 상태이고, 현재는 경찰 조사 중에 있네요.”
“지금 언론이나 검찰이나, 경찰 하는 것들이, 완벽하게 미희양이 범인이라고 하는 걸로 봐서는, 증거가 완전 명확한 거 같은데, 일단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자료를 스르륵 넘기며 말하는 변호사.
그이는 내 손을 꼭 잡아 주면서 물었다.
“아직 재판이 끝난 것도 아니고, 우리 애가 범인이라고 결론 난 것도 아닌데, 저희 딸 얼굴이… 살인 사건 용의자라고, 티비에도 나오고, 인터넷에서도 나오던데… 그건 어떻게 안되나요?”
그이는 못 봤을 줄 알았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내가 봤던 것을 보았던 모양이었다.
우리 딸이 짐승처럼 수갑에 묶여서 경찰서에 끌려가는 모습을.
그리고 그게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모습을.
언제 그게 티비에서 흘러 나올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딸은 앞으로…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여기 변호사분은… 무척이나 능력이 좋으시니까… 어떻게든 해주시지 않으실까? 인권이든 뭐든 걸고 넘어지면 어떻게든…
“이미 언론에서도 따님분을 범인으로 확정지은 모양입니다. 이렇게나 대놓고 나오고, 또 확산 속도가 빠른 걸로 봐서는, 관계자가 일부로 언론에 뿌리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변호사의 냉정한 말에 손이 벌벌 떨리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네?... 그렇다면…?”
당황한 그이가 이렇게 말해도 돌아오는 건.
“죄송하지만 지금 올라가있는 것들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일단 연줄을 써서 힘을 써보긴 할건데… 어쩌면 내일 부터는 부모님들 얼굴도 같이 나오게 될지도 모르죠… 그건 어떻게든 막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더더욱 암담한 현실 뿐.
변호사는 분위기를 환기 시키기 위해서 인지, 앞으로 진행될 절차들과,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설명했다.
“우선 지금 미희양은 경찰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구속영장은 이미 나와있으니까, 아마 계속 조사가 이어지겠죠, 보통은 조사가 끝나면 구치소로 가지만, 상황이 상황이니까, 재판 전까지 계속 경찰 조사가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일단 조사가 끝나면 곧바로 재판을 받고, 형이 결정 되겠죠, 일단 예상 하기로는 검사 측에서는 법정 최고형인 해암 교도소 무기징역형을 구형할겁니다.”
“여기서부터 하는 말인데… 일단 저쪽 분위기가 보통이 아니에요, 경찰도, 검찰도, 심지어 법원에, 언론 까지도, 완전히 증거를 꽉 잡고 있는 느낌입니다. 일단은 판사한테 바짝 엎드려서 최대한 선처를 구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어떻게든 해암 교도소 무기징역 만큼은 피하는겁니다.”
난 계속 이어지는 변호사의 말에 화들짝 놀라 소파에서 튀어 오르며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딸이 사람을 죽였다는 걸… 인정하라는… 그런 말인가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일단 그렇게 하자는 거죠… 아니면 어떻게 방법이 없습니다 어머님.”
하지만 변호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히 말할 뿐.
어째서인지 이야기를 듣다가 떠올랐다.
딸이 아주 어렸을 때, 내 지갑에서 돈을 훔쳐갔었던 일을, 그때가 중학생 때 였었나? 초등학생 때 였었나? 친구랑 놀이공원 같은 곳에 놀러가는데, 용돈을 다 써버려서 몰래 내 지갑에서 돈을 가져갔다지, 나는 사실 지갑에서 돈이 사라졌는지도 몰랐다, 그래놓고서는 놀러 갔다 와서 내 눈치를 자꾸 살피며 불안한 눈치길래 왜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찔렸는지 곧바로 나한테 이실직고 하던 그때 그 모습이.
거실을 총총총 걸어 다니며, 하루 종일 내 눈치를 살피던 그 눈빛을.
잘못했다고 엉엉 울면서 말하던 그 목소리가.
그런 아이가.
“혹시 따님이 평소에 정신 질환이나, 혹시 약물이나 음주를 하지는 않으셨나요?”
그 뒤에 이어지는 변호사의 질문은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에요!!! 우리 딸은!! 그럴 애가 아니라고요!! 무죄에요 무죄!! 네? 지금 엄한 사람 괴롭히고 있는거라고요 변호사님!”
그만 악을 써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남편도 곧장 일어나 나를 말렸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똑똑히 말했다.
“저도… 우리 딸이… 사람을 죽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라고 짧게…
난 그이의 눈이 그렇게나 열에 받친 모습인 건 처음 보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변호사를 때릴 것만 같은 무서운 눈이었다.
하지만 변호사도, 이런 의뢰인을 한두번 본 것은 아니었는지, 우리 둘의 눈을 똑똑히 바라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그만큼 상황이 나쁘다는 겁니다. 지금 두분 마음은 알겠는데, 까딱 잘못하면, 앞으로 영영 미희양을 못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따님이 한 게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습니까? 저쪽이 저렇게 나오는 건 무언가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거에요. 정말로 따님이 한 게 아닌건가요?”
오직 사무적인 목소리.
아무런 감정도 없이 물어 오는 변호사.
그리고 난 그 질문을 듣고서 간신히 알 수 있었다.
처음부터 이 사람은, 우리 딸이 범인이 아닐거라고는 한치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 사람은 틀림없이 우리 딸이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전재로 해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 싸움은 결국엔, 우리 딸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라고 믿는 사람과, 우리 딸이 사람을 죽였다고, 믿는 사람들의 싸움이라는 것을.
나는 현기증이 느껴져서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았고.
우리 그이는 나 대신에 목소리를 높여 주고 있었다.
세상이 어지럽게만 느껴졌다.
숨이 막히고, 온 몸이 차가워지고, 벌벌 떨리는 감각.
이 사무실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떨쳐낸 줄 알았는데.
어느덧 속을 알 수 없는 새까만 색깔의 불안은 이 사무실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변호사에게 무죄를 주장하는 우리 그이의 귀와 코 안에도 잔뜩 들어가서, 그를 좀먹고 있었다.
앞에 앉아있는 변호사도, 보이지 않는 책상 밑에서 다리를 뚝뚝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어느새 손틀 틈도 없이 새까만 불안에 속까지 먹혀 있었다.
첫날은 이렇게 끝이 났다.
시간이 늦었기도 하고, 변호사도 내일 증거가 제출되면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을 거라고도 했고, 더 이상 남의 사무실에서 울고 있을 수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둘째날 아침.
피곤해서 쓰러져버릴 것만 같았는데, 막상 침대에 누우니까 잠이 오지 않아서, 밤을 꼬박 지세워 버렸다.
아침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이럴 때라도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고, 그이가 좋아하는 달래 넣은 된장 찌개를 만들어서 먹이고, 그이는 씻으러 들어갔을 때.
티비는 더 이상 켜지 않았다.
불쑥 미희의 얼굴이나, 이름이 튀어 나올까봐 무서워서 도저히 볼 수 없었다.
멍 하니 벽에 걸린 가족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아침 8시 30분.
갑자기 그이의 휴대폰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슬쩍 들어서 보니까 변호사 사무소 라고 되어 있길래, 후다닥 받았는데.
“저희 사무소에서는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만, 상담료랑 수임료는 모두 돌려 드릴테니, 다른 사무소를 알아봐 주십시오.”
어제 하루 종일 얼굴을 부대꼈던 변호사의 목소리.
황당한 기분이었다.
어제 까지만 해도, 이런 저런 방법을 말하면서, 어쩌면 딸을 정신병자로까지 만들어서 최대한 형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이 오늘 갑자기 왜?
아직도 잠이 덜깬걸까?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왜 그러시는데요?”
따져 물으니까, 변호사는 여전히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검찰측에서 증거들이 제출 되었어요, 미리 준비라도 되있었던 마냥, 이렇게까지 확실하게 증거를 모으기도 힘들었을 건데,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네요.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하면서 뭐라고 더 말할 새 없이 전화가 뚝 하고 끊겨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남편 계좌에 돈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억에 가까운 돈이었다. 이것도 선수금 이었는데.
그런데 이 돈을 받고도 못 맡겠다고 하면은 대체 무슨…
소파에 털썩 주저 않았다.
아무 것도 없는 조용한 거실.
저 멀리서 그이가 틀어 놓은 물 소리가 들려왔다.
저 물이 마치 내 입 속에 들어오는 것 같은 숨막히는 답답함.
아무 생각 없이 리모컨을 들어서 티비를 틀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었겠지.
항상 아침에 일어나서 멍하니 커피를 마시면서 뉴스를 봤으니까.
그런데 뉴스에서는.
“어제 오후 5시 20분 경 xx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xx동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체포 되었습니다. xx동 살인 사건 용의자는 xx대학교 1학년 김미희씨이며. 현재 경찰 조사중에 있습니다. 지금 이나영 기자가 김미희씨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xx경찰서 앞에 나와있습니다.
아침부터 경찰서 앞에 몰려 있는 기자들과 사람들이 보였다.
한 쪽에는 미희의 얼굴 사진이 띄워져 있었고, 또 미희가 수갑에 묶인 채, 형사들한테 억지로 들려서 경찰서 안에 끌려가는 모습도 나왔다.
기자는 그 영상을 보면서, 폭력적이다, 반성하지 못한다, 라는 말들을 했다.
오늘 검찰측에서 법원에 제출 된 증거가 너무 확실해서, 법정 최고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말과 함께 기자는 취재를 마무리 지었고, 뉴스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나는 아주 잠깐 나왔던, 딸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었다. 수갑이 채워진 채, 경찰에 끌려가던 미희가 울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아침부터 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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