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화 속 이야기들은 모두 죽었습니다-60화 (60/62)

〈 60화 〉 이벤트 외전. 남겨진 사람들.

* * *

이제는 인정해야 될 때가 온 것 같다.

더 이상 그이가 하루하루 말라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괴롭고, 나도 이제 한계에 다달았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날 딸을 잃어버린 것이다.

맞아. 이제는 인정해야지.

내 딸은 죽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살아는 있지만, 살아있지 않으니, 죽은 것이다.

여태껏 내 딸이라고 생각했던 저건 이제는 그저 살덩어리의 인간 흉내를 내는 불쾌한 무언가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 딸은 죽었다.

우리 가족의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건, 한통의 전화에서 부터였다.

그 날은 아무것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수요일이었고,

남편은 언제나와 똑같이 아침 일찍 회사를 나갔고, 딸은 느즈막히 일어나 점심을 먹고 지각이라며 호들갑을 떨면서 학교에 갔다.

처녀 때는 재택근무로 돈을 벌던 나는, 딸을 낳고 나서부터 한동안 일을 쉬었지만, 딸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기에, 대게는 집에 혼자 남아 있었다.

오늘도 언제나와 같은 나날 중에 하나였다.

어차피 딸은 논다고 늦게 들어올거고, 남편도 회사 일이 바쁘니까, 나는 빨래를 널고, 혼자서 밥을 먹고, 화분에 물을 주고, 일도 적당히 다 끝나서, 소파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지.

시계는 7시 반 정도 였을까?

슬슬 그이의 퇴근 시간인지라, 오늘은 차를 끌고 데리러 갈까? 생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최근 딸이 내 생일을 맞아서, 그이와 같이 돈을 모아서 사준 최신 휴대폰.

보니까, 평소에 잘 연락이 없던 여동생이었다.

항상 자기 살기도 바빠서, 일이 없으면 전화도 잘 하지 않는 동생이었는데, 오늘은 왠일일까?

“어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야?”

“언니 괜찮아? 미희 어떻게해?”

스마트폰 너머로, 전혀 예상도 못했던 이름에, 다급함 섞인 목소리.

평소의 동생이 아니었다.

게다가 미희가 왜? 갑자기 어째서?

“응 무슨 일이야? 미희가 왜?”

“뭐야… 언니 아직 몰라? 어머어머… 어떻게 세상에 언니…”

어릴 적 자전거를 타다가 머리부터 넘어져서 피가 나도 멀쩡했던 애가 답지 않게 호들갑을 떠는 목소리.

심상치 않은 이름.

불안 이란 이름의 새까맣고 끈적한 물이 발목 높이 까지 차 올라서 찰박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 뭔데… 무슨 일이야? 미희한테 무슨 일 생겼어?”

“언니… 진정하고… 지금 집이지? 일단 티비 틀어서 지금 당장 뉴스 봐봐….”

스멀스멀 종아리까지 차올라서 첨벙 거리는 새까만 물.

“애는… 무슨 일 이길래…”

애써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티비를 틀자마자 곧바로 나오는 뉴스.

원래 드라마만 하는 채널인데, 긴급 속보라면서 방영해주고 있었다.

다른 채널도.

“xx동 살인 사건 용의자 체포”

또 다른 채널도.

“xx동 부녀자 강간 살해사건 용의자 검거”

“전과 9범 흉악범 체포. 현재 조사 중에 있어”

“xx동 연쇄 살인 사건”

요즘 한참 화제가 되고 있는 손속이 잔인하기로 유명한 살인 사건의 범인이 잡혔다는 뉴스들.

그런데 이게 왜 미희랑?...

“범인 잡혔나보네? 그래서?... 뭔데?... 왜 그래?”

“…..”

아무 말도 없이 조용한 동생은 마치 나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마냥 느껴져서…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설마… 우리 미희… 우리 미희가?... 설마?....”

설마…

설마 아니겠지…

우리 미희가…

애초에 xx동이면 집이나 대학에서도 조금 떨어진 동네에다가, 그렇게 위험한 곳을 함부로 돌아다닐 아이도 아닌데…

설마…

티비는 답답해…

어딜 봐도 범인이 잡혔다는 이야기만 나오고, 피해자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서

당장 눈 앞에 노트북을 켜서 인터넷에 들어갔다.

인터넷 사이트 메인도 죄다 그 기사로 도배가 되어 있어서, 검색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아무거나 눈에 들어오는 기사를 클릭해서 빠른 속도로 주르륵 읽어 보았는데.

피해자.

피해자.

피해자.

용의자는 재학 중이던 학교 앞에서 체포되었다는 말만 있을 뿐, 다행이도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는 않았다고 나오는데…

혹시나 싶어서 다른 기사를 들어가 보아도 똑같은 기사에.

“뭔데… 무슨 일인데… 후우… 난 또 미희한테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잖아… 그래서 무슨 일인데?...”

안심하며 가슴을 쓸었다.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 좀 더 자세히 봐봐….”

그런데도 동생은 목소리를 벌벌 떨면서, 아직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다는 듯이…

스쳐지나가는 글자들 속에 익숙한 무언가가 눈에 닿았다.

“어… 여기 대학교… 미희가 다니는 곳인데…”

범인의 연령도 20살 여자 대학생에 김모양.

그럼 혹시 미희네 친구인가?

그런데 동생은 왜 그렇게나…?

조금 둘러보니까 또 다른 곳에서는 범인이 체포될 때 당시의 영상도 돌아다니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사형제도가 폐지되고 난 이후로 인권이다 어쩌다 하면서 말들이 많았는데, 저렇게 영상까지 찍혀버렸으니… 조금은 꼬시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디 한번 벌 좀 받아보라지… 하고.

그래서 그렇게까지 관심이 가는 건 아니었지만, 영상을 재생 시켜 봤는데…

맨 처음엔 미희네 대학의 정문이 나왔다.

고등학교 성적으로만 봤을 땐 좀 빠듯했었는데, 그래도 마지막 1년, 선생님들을 들들 볶아서 열심히 입시를 준비한 끝에, 턱걸이로 합격해버린 국내에서 5손가락안에 꼽히는 명문 xx대학교의 정문.

미희의 입학식날 한번 본적 있었다.

미희는 부끄럽다고 안와도 된다며, 한사코 거절했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부모가 딸이 그렇게 열심히 해서 대학에 들어갔는데 안가볼 수가 있겠어.

그이는 회사에 연차까지 써서 입학식에 참석 했었지.

마침 등하교 시간이었는지 정문 앞은 젊은 아이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리고 정문 한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그 부분이 확대되더니.

핑크색 블라우스에, 하얀색 미니스커트의 사랑스러운 여자애가 우락부락한 남자들한테 덮쳐져서 그대로 땅에 깔려서는 악을 쓰는 모습.

“저 아니라고요! 이거 놓으세요! 사람 살려!”

“꺄아아악 왜그러세요!! 이거 놓으세요! 네? 어딜 만져요!”

“놓으라고! 나 아니라고! 꺄아아아…”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 화질이 이렇게나 좋았던가?

억지로 바닥에 눕혀져서는, 뒤로 수갑이 채워지고, 바둥거리는 작은 몸을 꽉 부여잡아서 일으켜 세워서는, 남자들 몇 명이 어깨랑 발을 제각각 잡고는 반항도 못하게 마치 짐승 다루듯이 그대로 들어 올리는 모습이 나왔다.

겁에 질려서 울고 있는 여자애의 얼굴도.

그리고 그러더니, 그대로 사람들 무리를 헤치며, 저 밑에 세워져 있던 경찰 벤에다가 여자애를 그대로 집어 던져서는 출발하는 모습.

주변 사람들은 신기한 눈으로 그걸 바라보면서, 또 누구는 폰을 들이밀고 촬영하고, 누구는 속닥거리다가 놀란 표정을 짓고, 또 누구는 멍한 얼굴을 했지만.

모두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끝나는 영상.

영상 제목은.

Xx동 살인사건 범인 xx대학교 21학번 신입생 김미희

그 영상에 나온 여자애는.

내 딸이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대체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내 딸이?

내 딸이… 살인자라고?

눈 앞이 어질어질해서

손발이 덜덜 떨려오는 게 느껴졌다.

말도 안돼..

말도 안돼…

“말도 안돼… 우리 미희… 미희가?...”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불안 이라는 이름의 까맣고 진득한 물이 목 바로 밑에까지 차 있었다는 사실을.

온 몸이 무겁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우리 딸…

우리 딸이…

“언니…. 봤구나?... 정신 똑바로 차려… 미희가… 그럴 애는 아니잖아… 정신 똑바로 차려… 틀림없이 무언가가 있는거야…. 응?”

동생은. 벌벌 떨면서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면서도, 확신을 가진 분명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그 단호한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맞아… 그럴리가 없어… 분명…. 뭐가… 잘못된거야…”

맞아.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 해야하지?...

우선은 변호사를?....

미희를 보러 갈 수 없나?...

경찰은 왜 나한테 연락이 없지?...

미희는 괜찮으려나?...

“언니…. 이럴 때 일수록 정신 똑바로 차려… 미희는 그럴 애 아니잖아…. 그러니까 괜찮을거야… 아마 잘못된거일거야…”

그 뒤로도 동생은 몇번이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단 변호사를 선임해서 미희를 보러 가자는 말을 했고, 나는 멍하니 벽 한켠에 걸린 가족 사진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눈물이 나왔다.

도어락 소리가 나더니 현관 문이 벌컥하고 열렸다.

바라보니 그이가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꺅…”

“여보 나야… 괜찮아?”

남편이었다.

스스로도 얼마나 정신을 놓고 있었는지, 남편이 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형부 왔나보네, 그럼 난 끊을게… 경찰 쪽 전화 오면 잘 받고, 나도 곧 갈게…”

그러고 뚝 하고 끊기는 전화.

항상 무던하던 남편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시뻘개져서는, 단정하던 머리도 헝크러져있고…

어딘가 짜증나는듯한, 화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도… 뉴스 봤어… 회사에서 보여주더라… 일단 아는 변호사 있으니까…. 일단 그쪽으로 가자…”

하지만 나보다는 아직 멀쩡하게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지, 담담히 말하는 그이.

맞아. 이 사람은 항상 이랬다.

무슨 일이 터지면, 당황하는 건 항상 나였고, 해결하는 건 이 사람 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괜찮을거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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