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화 속 이야기들은 모두 죽었습니다-59화 (59/62)

〈 59화 〉 이벤트 외전. 송미림

* * *

나는 재작년에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새로 사업을 시작했다.

예전부터 하고 싶기도 했고, 우연히 기회도 맞아서, 정신없이 눈 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다 보니 어느덧 2년차가 되어, 지금 이렇게 세무사 사무실에서 사람이 나와 연말 정산을 도와주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에는 엄청나게 고생했지.

연말이라 정신없이 바쁜데, 직원들 월급 주기도 빠듯해서 알바도 다녔으니까.

“사장님 올해 연말 정산은 이렇게 될거같네요. 음 여기 이 부분은 국세청에 신고를 하셔서 따로 공제를 받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올해는 이렇게 사무실에 앉아서 직원에게 보고를 받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올해는 많이 뗴이네요?... 어휴, 건강보험이 대체 얼마야…”

솔직히 사업을 하는 입장에선, 한푼한푼 돈이 아깝고, 나라에서는 해주는 것도 없는데, 돈을 벌어오면 세금만 왕창 떼가는 것 같아서 억울해지지만, 그래도 어쩔 수 있나.

“사장님 올해는 잘 버셨으니까요. 그래도 나라에서 세금 잘 냈다고 올해는 이것저것 보내줬네요.”

씁쓸한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는 나를 보면서 세무사 직원이 봉투에서 상품권이나, 어디 입장권 같은 걸 보여주면서 나를 달래 주었다.

“이런 거 말고, 돈으로 줬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가져가는 세금이 얼만데… 돌아오는 건 기껏해야 어디 시청 전망대 할인권이나, 농수산물 상품권 같은 것만 주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다들 그렇게 말하죠 아하하....”

물론 직원분도 이런 말을 수십번은 들었는지 웃으면서 슬쩍 다른 티켓들도 보여주며 말했다.

“그래도, 여기 소방 직업 체험 같은 건 한번 가보시는 게 어떠세요? 사장님 자녀분이랑 같이 가면 좋아하실 거에요.”

“작년에 애랑 애기 엄마랑 둘이서 같이 갔다 왔는데, 나름 재밌었다고 하더라고요, 전 일 때문에 못갔는데, 다음에는 같이 가봐야 겠네요. 근데 그건 또 뭐에요?”

“아… 이건 올해부터 주는 건데… 한번 직접 보세요.”

다른 티켓들 사이로, 조금 눈에 띄는 회색 티켓이 보여서 물어보니까, 세무사분이 살짝 망설이면서 티켓을 나한테 줘서 보니까.

해암 교도소 관람 1년 회원권

이라고 쓰여진 티켓.

Xx시 xx시 xx시 정부 부처 xx부 협찬.

겉보기에는 평범하게 소방 직업 체험 티켓이랑 별반 다를바가 없어 보이는데, 뒷면을 보니까, 사용 방법과, 시리얼 넘버가 적혀져 있었다.

“원래 나라에서 주는건데…. 음… 꽤 인기가 좋다고 하더라고요….”

세무사분은 말 끝을 흐리면서 얼버무리면서 말했고.

“그래요? 무슨 티켓인데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한눈에 봐도 대답을 피하려고 하는 기색이 보여서, 굳이 더 묻지 않았다.

그 뒤로도 일일 경찰관 체험이 아이들한테 인기가 좋다면서, 그 티켓은 못 받아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커피를 다 마시고 세무사분을 배웅하니까, 어느덧 퇴근 시간이 다 되서, 책상 위 모범 납세자님을 위한 선물. 이라고 적힌 하얀 봉투를 챙겨서 집에 가기로 했다.

“네 서부장님. 우리 국책 사업 이번에 확실한거에요? 그래? 나 서부장만 믿겠어요. 네 그럼 다음에 술 한잔 합시다.”

오늘은 집까지 운전하면서, 면식이 있는 공무원이랑 다음에 만나서 술 한잔 마시자는 약속을 잡았다. 누가 한번 이렇게 해라고 해서, 퇴근하는 길에 종종 사업차 아는 사람들한테 연락을 돌리는데, 처음에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사업을 하다보니, 이런 저런 인맥들이 필요하게 되어서, 이것도 다 비즈니스다 생각하고 하게 되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현관의 아파트 경비한테 인사를 하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다. 처음에는 id를 찍고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이 어색하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적응해 버렸다. 살면서 경비가 딸린 집에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도 참 출세했지.

무엇보다.

현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자기 왔어?”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나를 반겨주는 우리 아내가, 젊었을 때부터 내 뒷바라지해준다고 고생하던 사람이, 이제는 모임도 나가고, 애기랑 놀러도 다니는 게 너무 좋다.

“응. 별일 없었어?”

결국엔 이런 소소한 시간들이 가장 행복한 시간인 것이다.

아이를 키우며 보내는 시간은 눈 깜짝할 새 흘러간다.

아이가 하루하루 쑥쑥 크는 것도 있고.

또 잠깐 눈을 돌리면 사고를 치는 것도 있고.

누구를 닮았는지 몰라도, 우리 딸은 정말로…

이 날도 여느 날과 같은 하루였다.

반차를 내고, 아내랑 딸이랑 같이 전에 받은 소방 직업 체험을 하고 온 날이었다.

딸은 아침부터 신나서 뻘뻘뻘 돌아다녔고, 아내도 딸에 맞춰서 돌아다니느라 지쳐서는, 집에 도착하고 보니까, 딸이랑 아내는 차 안에서 쿨쿨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까, 아내가 자기는 찍지 말라고 툴툴거려서 더 찍어버렸다.

아내와 아들은 집에 오자 마자 씻지도 않고 잠들어 버렸고, 나는 자기 전, 오늘 밀린 업무를 보기 위해 잠깐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가 켜지는 동안에 저번에 받은 티켓들을 확인하기 위해 봉투를 열었는데, 쓰윽 하고 떨어지는 회색 티켓.

그러고보니 저건 어디다가 어떻게 쓰는 건지 아직 알아본 적이 없었지. 비싼 세금 내고 받은 거니까, 그래도 뭐든 써보면 좋지 않겠나 싶은 생각에, 싶어서 밀린 일들을 정리하고 한번 티켓 뒷면에 쓰여져 있는 대로 해보기로 했다.

우선은 그러니까, 여기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사이트는 딱 틀에 박힌 정부부처의 웹사이트 디자인으로 만들어 져 있었다.

오히려 시청 홈페이지나, 구청 홈페이지보다, 내용이 너무 간략해서, 어디 초등학교 홈페이지도 이거보다 잘 만들어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관람권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회원가입을 해 달라는 설명에, 굳이 이렇게까지 귀찮게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그래도 당장에 할 것도 없었고, 또 궁금하기도 해서, 고분고분 따르기로 했다.

나는 기껏해야 여태동안 받았던 거랑 비슷하게, 교도소 체험 이라던가, 시설 소개, 같은 건 줄 알았는데.

회원 가입이 끝나고, 이런 저런 주의사항들을 으레 그러듯 빠른 눈으로 넘겨버리고, 시리얼 번호를 치고 나니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까만 배경에 숫자들 뿐 이었다.

대충 100 몇번부터 시작해서, 259번까지.

그래서 이게 뭔가 하고 제일 앞에 있는 112번을 클릭해 보니까.

까만 배경 속 비춰 보이는 여자의 모습.

그 밑에 112번이라고 쓰여진 글자 아래에 빽빽히 새겨져 있는 각종 데이터들.

알몸의 여자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그저 가만히 무릎을 꿇고, 손을 머리 위에 올린 채 있을 뿐.

눈을 깜빡이고, 숨을 쉬는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하지 않았다면, 사진으로 착각할만큼 몸을 딱딱히 굳힌 채 움직이지 않는 여자.

그 광경을 보고는, 무언가 사이트를 잘못 들어온건가? 싶어서 사이트를 닫았다가 다시 들어와도 똑 같은 화면인 것을 보고는, 뒤늦게서야 사이트 구석에 적혀져 있는 설명을 읽었다.

국민 여러분들의 방범 의식 향상과 정신 위생 향상을 위하여, 해암 교도소 수감자의 모습을 24시간 실시간으로 보여드리는 서비스입니다.

해암 교도소… 그러고보니, 뉴스에서 얼핏 봤던 기억이 있었다.

법원이 선고할 수 있는 법정 최고형.

사형제도가 폐지되고 난 이후, 급증하는 흉악 범죄자들 때문에 민심이 시끄러울 때, 가석방 없는 무기 징역. 그 이상의 형벌이 필요하다고 해서 생긴 형벌.

해암 교도소의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형을 선고받는 사람은, 즉시 사회에서 사망처리가 이루어지고. 모든 인권이 말소된 채, 죽을 때까지 그 교도소 안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그…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이번에는 숫자를 바꿔서 113번에 들어가 보니까.

또 이번에는 다른 여자가 아까와 똑같은 모습으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 다른 곳에는 또 다른 여자가.

또 다른 여자가.

이번에는 조금 다르지만, 똑같이 외설스러운 자세로 또 다른 여자가.

숫자마다, 각기 다른 여자가, 또 각기 다르지만, 비슷하게 외설스러운 자세로 대기하고 있는 화면들.

그리고 이번에는 156번을 클릭해 보니까.

136번.

다른 여자들이랑 달리 어떤 수조 속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나왔다.

아까 봤던 모습들과 설핏 다른 모습에 눈길이 가서 살펴보았다.

우선 여자는 살집이 조금 있는 편에,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로, 나름 젊어 보였다. 가슴은 조금 큰 편이었고, 키도 조금 있는, 살짝 사나워 보이는 여자였는데, 수조 안에서 죽은 듯이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수조 안의 모습은 그녀와 달리 절대 평온해 보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우선 그녀는 철장 같은 곳 안에 갇혀 있었고, 그 안에서 꼿꼿히 서있는 자세로 손과 다리나 허리나, 온 몸 곳곳이 갑갑하게 고정 되어 있었고, 입에는 산소를 위한 것인지 튜브가 달려 있었고, 밑에 부분에도 똑같이 튜브가 달려 있어서, 그것이 배설을 위함임을 알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유두와 클리토리스에 피어싱이 있어서 그 피어싱에 연결된 줄이 철장과 연결되어 있는 것도 보였다.

한 눈에 봐도 갑갑한 자세.

물 속에서 머리카락이 흔들거리거나, 맨 살이 물의 움직임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수조 속에서도 무언가 흐름이 있는 것 같았다.

화면 밑 쪽에 수감자 정보란이 있길래 들어가 봤는데.

글자가 주르르륵 뜨더니.

수감자의 상세 정보를 볼 수 있었다.

이름은 없고 그저 136번으로 호칭된 수감자.

20xx년 유아 살해 밑 시체 유기 죄로 해암 교도소에서의 무기 징역 선고.

현재 징벌 중.

징벌 사유 : 교도관의 허락 없는 절정.

현재 징벌 : 126시간 31분 22초 진행 중.

남은 시간 : 874시간 29분 38초.

그러니까 지금 저 여자는 126시간… 그러니까 한 4일인가 5일 정도를 저 상태로 저 안에서 있었다는 애기인가?

도무지 믿기지는 않았지만.

남아 있는 시간도 아득했다.

874시간…

얼핏 계산해 봐도 한 한달 정도인가?

심지어 저 수조 안에 담긴 물도 그냥 물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게…

수감자 상세 정보란은 생각보다 훨씬 더 방대한 데이터가 나와 있었다.

이 수감자가 얼마 동안 수감되어 있었는지 수감 기간이 초 단위로 나와 있었고.

절정한 횟수나.

밥을 먹은 양.

배설을 한 양 까지.

마치, 수감자 그러니까 이름도 모르는 저 136번 이라는 사람의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는 것 마냥, 알고싶지도 않은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 까지도 모두 다 집요하게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심지어

심지어 교도소에 들어와서부터, 지금까지 어떤 말을 했는지 조차도 일일이 기록되어 있어서, 그것을 들을수도 있었고, 첫번째로 절정하던 순간 또한 볼 수 있었다.

너무도 방대한 데이터량에 소름이 돋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인생을 훔쳐보는 듯한 기분.

나는 지금 내 집에서 양주에 얼음을 올린 채 마시며 이 화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지금 저 사람은 내가 자신의 모든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묘한 우월감이 들었다.

그 뒤부터 나는 중독에 빠져버린 것 같았다.

해암 교도소 관람권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잘되어 있어서. 어플을 통해 티비나 스마트폰으로도 볼 수 있었다.

나는 틈이 나는 대로 가만히 그런 화면들을 보거나, 책을 읽는 대신에 다른 수감자들의 신상 정보를 천천히 보는 것을 취미로 삼게 되었다.

아내는 달라진 내 모습에 조금 걱정했지만 일도 열심히 하고, 아이도 잘 봐주니까 별로 말은 못했고, 종종 사업 차 만나는 서부장이 가끔가다

“자네 요즘 해암 교도소 관람. 푹 빠져있다며? 너무 오래 보지 않는 게 좋을걸세.”

하면서 한마디 했었다.

생각해보니, 서부장은 20년 경력의 공무원이라 내가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알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크게 게의치 않았다.

한 인간의 생명을 모두 볼 수 있는 권능감이 나를 집어 삼키고 있었으니까.

하루는 쉬는 날을 잡아서.

일어나서, 아침 점호를 받고, 가만히 교도관이 명령하는 자세로 대기하다가, 배식을 받고, 배설 허가를 받고, 또 이번에는 다른 자세로 계속 대기하다가, 그대로 취침 점호를 받고 잠드는

하루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 본 적도 있었다.

그렇게 지내던 나날들 이었다.

시간은 지루하지만, 또 빠르게, 확실하게 흘러갔고.

어느덧 11월달이 되어서, 으레 하는 동창회에 나가게 되었다.

간만에 본 고등학교 동창 녀석들은, 몇몇은 머리가 좀 더 심하게 빠져 있기도 했고, 몇몇은 이혼했고, 또 재혼하거나, 아니면 소식을 아예 들을 수도 없는 녀석도 있었다.

그리고 송미림은 소식을 들을 수 없는 녀석들 부류에 속했다.

종종 생각나는 반에서 가장 이쁘던 여자애 였다.

들리던 이야기로는 결혼해서 애를 낳았다고 하는데,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이 뚝 끊겨서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비오는 날 항상 교실 창가에 자기 양말을 걸어 두고는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는 했는데,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한 1년에 하루 정도는 그녀가 생각나고는 했었다.

그만큼 이쁘장한 여자였으니까.

그런데 오늘 동창회에서 우리 중에 제일로 출세한 변호사 녀석이 송미림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정말로 별거 아닌 이야기로, 그녀의 아이들이 이제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나를 포함한 다른 녀석들도 간만에 들어본 그녀의 이야기에 그 변호사 친구 녀석에게 그녀에 대해서 물어봤으나, 왠일인지 녀석은 입을 꾸욱 다물고, 자기가 실수했다는 듯이, 단 한마디도 더 말하지 않으려 했다.

그때는 한참 술에 취해 있었고, 다들 반가운 분위기에 그냥 술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넘어가 버렸는데, 그 다음날 나는 무언가 싸 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동창 녀석은, 강력 범죄 전문 변호사였어서, 큰 돈을 만지는 녀석이었다.

죄질이 아주아주 나쁜 사람을 일부로 변호해서, 그 사람의 형량을 최대한 깎아주는 것을 생업으로 삼던 녀석이었고.

또 그때 녀석이 송미림의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다는 말을 무언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었으니까…

무언가 톱니 바퀴가 맞물리는 듯한 느낌에 급하게 냉수를 들이켜 마시고 컴퓨터를 켜서 검색해 보았다.

여태동안 생각만 했지, 이름을 찾아볼 시도는 한번도 안해봤으니까, 혹시나 싶어서 말이다.

송미림.

하고.

하지만 나오는 것은 역시 아무것도 없이, 동명이인의 연예인이나, 또 국회의원이나 잔뜩 나오고, 딱히 내가 아는 그 얼굴은 어디를 찾아봐도 볼 수 없었다.

그 뒤로 내 안에서 송미림의 이름은 그렇게 잊혀졌다.

다음 번 동창회 때까지.

원래 우리 고등학교 동창회는 1년에 한번을 주기로 열렸지만, 이번에는 원래 했던 동창회장이 이제는 은퇴한다고 해서, 새로운 동창회장을 뽑기 위해 기존 보다 3달 일찍 열렸다.

몇몇 골치 아픈 일에 끼기 싫어하는 친구들은 그 자리에서 피해 다른 가게에 새로 자리를 잡았고, 그 자리에는 나랑, 작년에 왔던 그 변호사 친구도 있었으며, 그 녀석은 마침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이런 저런 애기를 나누면서 한참 술을 마시던 와중에, 문득 생각이 나서,

“야 여기… 이거 들고가서, 미림이네 애들 용돈 줘라”

라고 지갑에 있는 몇 안되는 지폐를 꺼내서 그녀석한테 건네 주니까.

“그래… 고맙다 야… 개네도 고생이야… 엄마가 그렇게 됐으니까…”

라는 그 한마디에 나는 머리 속에서 전에 한번 째깍째깍 돌다가 멈춰버린 톱니바퀴가, 다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야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일 있었어?”

처음에는 입을 꾸욱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녀석이었지만.

지갑을 조금 더 열어서 개네 아들 용돈하라고 조금 더 쥐어주니까 녀석은 주변을 조금 둘러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송미림이, 사실 시가랑 갈등이 아주 심했었다고.

시댁에서 집도 가까워서 맨날 시어머니가 집에 찾아오고, 이리저리 간섭을 하는데, 자기 남편은 항상 모르는 척하고. 결정적으로 막내 아들이 태어나고 나서, 그쪽 시할머니가 어디 점집 같은데서 받아온 이름을 억지로 구청에 등록을 했다는 것이다, 미림이는 그걸 아주 질색했고.

그리고 갈등은 쌓이고 쌓여서 결국엔.

송미림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한다.

시댁 식구들을 전부다 죽이기로.

무엇 하나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시어머니.

그리고 그 옆에서 한 소리 더 거들던 시아버지.

얄밉게 눈치주던 시누이에.

심지어 남편까지.

아들 두명을 빼고는 전부 다.

그 뒤로 송미림은 체포가 되어서, 그녀가 알고 있던 가장 최고의 변호사였던 녀석에게 변호를 부탁했지만, 죄질이 너무 커서 판사 앞에서 싹싹 빌어도 하나도 들어주지 않아서 너무 잔인한 범죄라 언론에 발표조차 되지도 못한 채 결국엔…

해암 교도소에 수감되어 버렸다고.

녀석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술을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자기가 아는 사람 이었는데도, 결국엔 법정 최고형을 받게 된 변호인은 그녀가 처음이었다면서, 조금만 더 참지 하며 끝내 눈물을 보이는 녀석을 위로하면서도 나는.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다.

술을 잔뜩 마시고 있는 녀석을 적당히 위로하고는 지갑을 꺼내들고, 대리를 불러서 집에 들어왔다.

집에 들어오니까 아내는 늦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냐고 의아하게 생각해서, 일 때문에 급하게 왔다고 변명하니까, 제정신을 차리기 위해 샤워를 하고 나오니 나한테 꿀물을 타다 주고는, 자기는 이제 잘거니까 일 적당히 하라면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실 요즘은 그 취미도 제법 뜸해지고 있었다.

원래 비 일상은, 조금만 지나면 결국 일상이 되어버리는 법이라.

사람은 항상 더 큰 자극을 원하고, 자극은 결국엔 익숙해 져 버려서 특별은 보통이 되어버리는 법이었다.

더 이상 처음 느꼈던 그 우월감을 점차점차 느끼지 못하게 되자, 나는 한동안 어플을 켜지도 않고 있었는데…

제일 낮은 번호부터, 제일 높은 259번까지.

얼굴을 확인하고 특이 사항을 확인하고.

이 취미를 위해서 특별히 VR장비도 사둬서 피로감이 더 했지만, 눈을 깜빡이면서 일일이 확인해갔다.

반드시 있을거라고.

반드시 있을거라고.

틀림없이…

그리고 번호가 200번대로 올라가서.

201번이 되었을 때.

겉으로 보기엔 30대 초반 정도로 되어보이는 여자.

긴 머리에, 뽀얀 피부, 순해보이는 인상.

그리고 상세 기록에.

출산 기록 2회.

존속 살인에.

무엇보다 나이가 나랑 동갑인게.

처음에는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왜냐하면 너무 젊어 보였거든.

내 또래의 여자들보다 한 10년 20년은 젊어 보이는 얼굴에, 젊어보이는 몸이었다.

201번은 막

양 다리를 벌린 채 무릎을 세워서, 손을 등 뒤에 겹치고, 튜브를 뒤에다가 꽂은 채, 투명한 관이 연결된 책을 입에 물고는 교도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번 보았던 배설 대기 시간.

그리고 그때 난 보았다.

201번의 허벅지에 나 있는 조그마한 반점을.

예전에 딱 한번 본적 있었다.

어떤 거 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물건을 바닥에 떨어뜨려서 주우려고 했을 때, 무심코 고개를 들어서 송미림의 치마 속을 본 적이 있었는데, 물론 안에 반바지를 입고 있어서, 딱히 속옷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허벅지에 점이 나 있는 것을 봤었다.

그리고 지금 201번의 허벅지에도 똑같이.

송미림 이었다.

송미림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지금 내 앞에서 똥을 싸지르고 있었다.

반에서 저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가 몇 명이나 됬었는지 과연 그녀는 알까?

그런데 지금은 저런 것 하나조차 스스로 하지 못하고 괴상한 자세를 취한채로…

201번. 송미림의 상세 정보를 살펴 보았다.

벌써 감옥에 수감된지는 3년.

징벌만 50번 넘게 받은 기록.

절정 횟수. 11521회.

전기 충격을 받은 횟수. 3512417회.

심장이 멈춘 횟수. 23회.

나는 자료를 쭈욱 넘겨서 첫날 기록을 찾았다.

제법 오래간만에 들어오는 거라,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틀림없이, 첫날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영상과 기록들을 다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살짝 헤맨 끝에, 송미림의 첫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언가 덜컹 거리는 차 안에서, 온 몸이 꽁꽁 묶인 채로 실려가고 있는 모습.

해암 교도소의 이송 장면.

VR기구가 있다면, 365도, 어떠한 위치에서도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3D영상으로 수감자를 볼 수 있었다.

그 두근 거리는 심장 소리나.

흐느끼는 소리.

두려움에 격해지는 숨소리나.

오줌이 줄줄 흐르는 소리도.

나는 그것을 보면서, 우습게도, 세금은 착실하게 꼬박꼬박 내자고 다짐해 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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