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외전. 박아름
* * *
그래도 정유미는 정말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아주 잠깐 머뭇거리다가, 종이컵에 담긴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서혜진은 있잖아요... 사람을 죽였어요…..”
살인….
어느정도 예상은 했었는데….
그래도 아주 잠깐, 무언가 사정이 있어서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던가, 자기 방어를 위해서 그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그런 게 중요한게 아니지. 맞아. 중요한 건.
“그래요?... 그러니까 살인범이니까, 사람을 죽였으니까… 사람을 그렇게 때리고, 성폭행해도 된다는 거에요?”
어떻게 같은 사람을 그렇게 끔찍하게 다루냐는 거지.
그런데 정유미는 따지듯이 묻는 내 말에 쓰게 웃으면서 계속 말을 이었어.
“물론 그러면 안되죠”
솔직히 나는 정유미가 그만한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렇게 취급 되는게 정말 당연하다 라는 이야기를 할 줄 알았어. 왜냐하면 행동이 너무 익숙해 보였거든, 그래서 사실 살짝 놀랐어. 티는 안냈지만.
그 뒤로 정유미의 이야기는 이어졌어.
“그런데 여기는 사람 한두명 죽였다고 해서 오는 곳이 아니거든요… 서혜진은 있잖아요… 그.. 뭐라고 해야 할까… 어릴 때부터 범죄가 일상화된 사람이었나봐요. 절도에, 강도에, 폭행에, 사기에, 성매매 알선에… 어릴 때 학교에 다니던 시간 보다, 소년원에 있는 시간이 더 길었던 사람이에요. 사회에 적응을 잘 못 했었나보죠… 뭐 가정에 문제도 있었고…”
그렇게 담담히 말하는 정유미는 어딘 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마치 푸념을 늘어 놓듯이 말하다가, 이내 조금은 안타깝다는 듯한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어.
나는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아 이 사람은 생각하는 게 얼굴에 다 드러나서 거짓말은 못하겠네, 같은 태평한 생각을 하면서 잠자코 계속 듣고 있었지.
“서혜진은 말이에요… 사실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아버지랑 단 둘이 살았는데, 아버지가 꽤나 엄한 사람이었데요, 어느 날 아버지랑 말다툼을 하던 도중에, 아버지를 부엌 칼로 찔러 버렸어요, 홧김에, 우발적인 사고였죠. 그 때 서혜진은 18살이었데요. 찌른 본인도 엄청 당황해서, 119에 신고도 본인이 했고, 아버지가 병원에 실려갈 때에 곁에 꼭 붙어서 계속 울면서 미안하다고 하고 있었다고 해요.”
“서혜진네 아버지는 크게 다치긴 했지만, 그래도 운 좋게 살아 남았고, 또 딸이 감옥에 가는 걸 원치는 않으셨겠죠, 당시에 아슬아슬하게 미성년자 이기도 했고, 그리고 본인도 잘못했다고 하니까… 원래라면 교도소에 갈 수도 있었겠지만 소년원에 들어가는 걸로 마무리 되었더라고요, 물론 사람을 찔렀으니까, 소년원 안에서는 제일 높은 형량을 선고 받긴 했지만요…”
여기까지 말한 정유미는 잔에 담긴 술을 쭈욱 들이키고는, 다시 잔에 술을 따르고는, 아무 말 없이 멍하니 듣고 있던 나한테도 컵에 술을 따라주면서, 가볍게 물었어.
“아! 혹시 소년원 가봤어요?”
도저히 저의를 알 수 없는 싱글생글한 웃는 얼굴로.
“네?.. 그럴리가 없잖아요! 주변에 그런 애들도 없었고, 전 학교 다닐 때도 공부가 전부였어요.”
나는 그 어이없는 질문에 깜짝 놀라 후다다닥 말을 빨리 해버렸지.
“아 혹시 그럼 유미씨?”
왜 그런 걸 나한테 물어보는거지?... 잠깐 생각해 보다가, 무심코 입밖으로 이런 말이 나와버렸는데, 아차 실수 했나? 하고 정유미의 얼굴을 보니까.
“아하하하 그런데 다녀왔으면 공무원 못해요! 그래도 가봤어요! 학교에서 견학으로! 보통 한번쯤은 가 보지 않나요? 그래서 물어봤던 건데”
정유미는 정말로 재밌다는 듯, 꺄르륵 웃고는, 또 말을 이어나갔어.
“어린 애들은 소년원을 꽤 무서워하는데, 사실은 창살 좀 쳐져있는 살벌한 기숙학교 정도밖에 안돼요.”
“그런데… 서혜진은 그때 소년원 생활은 제법 힘들었었나 봐요. 여태까지 기껏해야 절도나, 폭행 정도로 들어갔던 소년원 이었는데, 이번에는 특수 폭행으로 들어갔으니까 말이죠. 기록을 보니까, 소년원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시간도 무척 길었고, 그 와중에 친구도 제대로 못 만들어서, 적응에 힘들어한다는 말이 많이 보였거든요, 그런데 거기는 특이하게도 수업을 남녀 합반으로 하는 곳이었단 말이에요? 서혜진은 소년원 생활이 힘드니까 의지할만한 사람을 찾게 되었고, 또 마침 처지가 비슷한 애도 있었나봐요, 그래서 두 사람은 어느새 사귀는 사이까지 되어버린 거였죠.”
그렇게 조곤조곤 설명하는 것처럼 말 하고는, 목이 탓는지, 독한 술을 한모금 마시고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누구는 일 시작하고 연애 못 한지 한참 됬는데….”
이렇게 말 하길래, 분위기에 안어울리게 살짝 피식 웃어버릴 뻔 했는데, 정유미는 그런 내 얼굴을 슬쩍 쳐다보고는, 조금 쑥쓰러웠는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어.
“둘은 사귀기 시작하고 난 뒤부터 어느정도 생활에 적응하는 모습들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정말 다행이었죠? 그런데 문제는 말이에요 남자애는 소년원에 이미 오래 있었어서, 서혜진 보다 먼저 밖으로 나가버렸었단 거에요.”
“기록을 보니까, 그 뒤에 남자 쪽은 면회도 안 오고, 전화도 안하고, 아예 서혜진한테 연락 자체를 안 했던 모양이에요. 서혜진이 연락해도 항상 수신 거부에, 보냈던 편지는 다시 되돌아오고, 그때부터 서혜진의 상태는… 통제가 아주 힘들었다고 나오더라고요…”
“한동안은 계속 그 상태였다가, 그래도 나갈 때쯤 되니까, 서혜진도 얌전해서, 다들 안심했었데요, 남자가 출소한 이후로는 한번도 웃지 않았는데, 그래도 출소하는 날에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고, 그래서 정말 다행이라는 글도 쓰여져 있었어요, 아마… 서혜진네 담당 선생님이 썼던 거 같은데…”
“음… 아무튼… 문제는 여기서부터 였어요. 서혜진은 소년원에서 나오자 마자 바로 택시를 타고 그 남자애네 집으로 갔어요, 마침 집에 남자애는 없었지만, 집에 있던 그 남자애네 어머니가 문을 열어 주었죠, 자기는 사실 그 남자애의 여자 친구인데, 오늘 집에서 만나기로 했었다고 말이죠, 어머니는 그런 서혜진을 보고 아주 좋아했다고 해요, 아들이 소년원에 들락거리고, 나쁜 친구들도 사귀는데, 그래도 이렇게 제대로 된 여자 친구도 사귀고 있구나, 하면서 말이죠, 집에는 남자애네 10살짜리 남동생도 있었어요, 아버지랑은 옛날에 이혼해서, 남자애네 집도 편부모가정 이었데요, 서혜진이랑 똑같은…”
거기까지 말한 정유미는 한동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어.
아까 전까지 조곤조곤 이 말 저 말 늘어놓던 사람은 어디 갔는지, 갑자기 입을 꾸욱 닫고는 종이컵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나는 솔직히 이 다음에 어떤 말이 나올지 알고 있었다?
보나마나 서혜진이 엄청나게 나쁜 일을 저질러서 이곳에 온 거다 라는 말을 하려고 하겠지.
조금이라도 나를 설득하기 위해서.
그런데 정유미는 딱 거기까지만 말하고, 아무 말도 없이 술만 홀짝였어,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조금 슬퍼 보이더라.
엄연히 남의 일인데도 말이야.
그래서.
나는 정유미의 속셈을 다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한번은 속아 넘어가 주려고 했지.
“그래서요?”
“음…. 으으으음…..”
그러니까 더더욱 당황해서는, 우물쭈물 불안한 눈으로 나를 보면서 머뭇거리는게, 마음에 안들었어.
“그래서…. 뭔데요, 말 해봐요”
그렇게 두번이나 치근거리니까 그제서야 한숨을 한번 푹 쉬고는,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 나갔어.
화가 났다던가, 무서움을 느낀다던가, 하는 감정 하나 없이, 철저하게 제 3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듯, 아무런 감정도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그저 담담히, 있는 사실 그대로를 애기 해줬어.
“집에 들어간 서혜진은, 우선 어머니를 찔렀어요, 다리 부분을 집요하게 몇번씩이나, 어머니도 나름의 저항은 했던 모양이지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났던 일이라서, 쇄골 부분을 손톱으로 긁은 것 빼고는 아무런 상처도 남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죠, 그뒤로 서혜진은 소리를 듣고 달려온 동생을 인질로 삼았어요, 지금 당장 닥치지 않으면, 이녀석을 죽여버리겠다고, 그리고 동생한테도 똑같이 어머니를 인질로 삼았죠, 조용히 하지 않으면, 엄마를 죽여버릴거라고… 어머니는… 통증이 아주 심했을 거래요, 그때 바로 치료를 받았으면, 그래도 살 수 있었을 건데… 어린 아들을 살리겠다고, 아들한테는 괜찮다고 말하면서, 이를 꽉 깨물었데요. 그리고 서혜진은…”
이야기를 듣다가 기억났어. 쇄골에 가로로 쭉 그어져 있던 그 상처, 이제 막 딱지가 붙어서, 다친지 얼마 안됬겠다 싶었는데, 이때…
갑자기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온 몸에 소름이 돋았어.
그렇니까… 나는 그렇게 사람을 죽인 사람이랑 단 둘이 있었던 거구나… 하고 뒤늦게 무서워졌던거지.
정유미는 이야기 하는 줄곧 내 안색을 살피고 있었는지, 내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니까, 은근 슬쩍 내 옆으로 다가와서, 조심스럽게 등을 쓰다듬어주면서, 걱정스럽게 물었어.
“괜찮아요?”
사실은 괜찮은 것 같지 않았는데, 또 괜찮은 것 같기도 하더라, 등을 쓸어주는 손이 따뜻했고, 괜찮냐고 물어보는 목소리가 상냥하게 들렸거든, 그래서.
“네… 괜찮아요… 계속 해요.”
“서혜진은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아들을 강간했데요, 10살짜리 남자 아이를 말이죠, 어머니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혹여 아들을 죽일까봐, 끔찍한 고통속에서 비명 하나 안지르고, 그 모습을 숨죽여서 지켜봤죠. 그런데 피를 너무 흘리셨어요, 찔린 부위가 안좋았거든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아무런 소리도 없이 사망하셨죠, 그리고 아들도 어머니를 아무리 불러도 움직이지 않으니까, 울기 시작해서는, 서혜진은 집 욕조에다가 가둬놓고 물을 틀고 물고문을 했어요, 10살짜리 아들도 그렇게 사망하고… 서혜진은 그 피범벅에 난장판이 된 집에서 혼자 남자애를 기다렸다고 해요, 한 밤 12시가 넘어서야 남자애는 집에 왔고, 거실 소파에서 티비를 보고 있던 서혜진을 보게 되었죠, 서혜진이 그 남자애를 보고 맨 처음 했던 말이…”
“우읍…. 읍…. 읍…”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구역질을 하고 있었지 뭐야.
그냥 이야기일 뿐이었는데.
정말로 별거 아닌 남의 이야기 였는데.
나도 내 몸이 왜 그러는지 몰랐어.
그냥. 멀리서 희미하게 피냄새랑 수돗물 냄새가 나는 것 같더라.
그런데 그러니까, 정유미가 엄청 당황하면서.
“어? 아아… 미안해요… 세상에… 물… 물마셔요”
엄청 미안한 표정으로, 허둥지둥 주머니에서 다른 컵을 꺼내, 우다다다 부엌에서 물을 받아서 나한테 조심조심 먹여주고는 나를 침대에 옆으로 눕히고 자기도 같이 누워서 내 손을 잡아줬어. 손이 차다고 하면서.
방은 깜깜했고, 화장실인지 부엌인지 모를 가젠 제품에서 나오는 불빛이 조용히 깜빡거리는 걸 보고 있었어.
그러고 있으니까, 대체 아까 전엔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진정이 되더라고.
가볍게 맞잡은 손에서 배려가 느껴졌기 때문일까?
정유미는 똑바로 누워서 한동안 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 말도 없이 멍하니 천장을 보면서 누워있다가
“아무튼 서혜진은 사실 보통 사람들이랑은 조금 다른 사람이었어요, 사회에 대한 적응 이전에, 근본적인 부분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사실은 무서워 하는 거일지도 모르겠어요. 남들과 자신은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다르니까, 아예 다른 사람이다 보니까. 그러니까 어쩌면, 이해 받지 못하는 바깥보다는 차라리 어떤 식 으로든 필요로 해 지는…”
정유미는 잠긴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는데, 맨 마지막에는 목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굳이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겠더라.
정유미는 잠깐 동안 침대 위에서 꼬물거리다가,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워서 뜬금없이.
“음… 맞아. 박선생님한테 보여줄 게 있어요. 한번 보세요.”
자기 디바이스를 내 손에 쥐어줬어.
그걸 받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아마도… 이게 본론이 아니었을까? 싶더라. 그래서 보니까.
성적 쾌감을 이용한 교화 이론.
이란 제목의 긴 글이 있었어.
“박하나 박사가 쓴거에요, 지금은 실종 됬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여기 연구소에서 일했기도 하고, 그 사람의 이론이 여기 교도소에 크게 영향을 줬다고 하거든요. 전 공부는 잘 못해서 영 이해가 안되던데, 박선생님은 공부 잘했죠?”
“그 박하나가 여기서 일했어요?... 뭐 못하진 않았죠?”
티비에서 종종 나오던 그 박하나가 이곳에서 일했다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은근슬쩍 나보고 공부 잘했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또 살짝 장난치듯이 자랑을 해보기도 했어.
실제로 의대는 내신으로 들어갔고, 의대 성적은 처참했지만. 그래도 의사 면허 있잖아! 응!
다시 또 술을 마시면서 이번에는 이 주변은 노래방도 있고 도서관도 있는데 왜 술 마실 곳이 없는지 투덜거리는 정유미를 한 켠으로 나는 누워서 정유미가 들려준 글을 읽기 시작했어.
글은 조금 딱딱했지만, 읽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었고, 내용들도 설명이 잘 되어있고, 정리도 잘 되어있어서, 조금 길었지만, 쉽게 핵심만 찾아서 읽을 수 있었어.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역시 박하나는 글을 정리해서 알아보기 쉽게 쓰는 것 하나는 잘 하는구나 싶었지. 군데군데 예시가 구체적이여서 살짝 무서웠지만. 무시하기로 했지.
사람은 극도로 통제된 환경에 놓이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심지어 몇 십년을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눈꺼풀 하나도 못 움직이게 꽁꽁 묶어 두고 방치한다면, 당연히 정신에 이상이 생길거고, 그걸 관리하는 교도관들 또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만약에, 사람을 관리하는데,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듯이, 똑같은 수준의 관리, 통제를 실시하면서, 성적인 쾌감을 당근 주듯이 이용한다면, 수감자의 스트레스를 극도로 줄이고, 더 적극적으로 교화 시킬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이론.
실제로 어떤 영장류는,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과, 스트레스 해소의 목적으로 교미를 하기도 하고, 일반인들과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진 흉악 범죄자들을 관리하기엔 원초적인 자극이 유효할 것이며, 또한 성적 쾌감은 잘만 사용하면 스트레스 해소뿐만 아니라, 수감자의 교화, 개인의 통제와 관리, 또한 그 관리 리스크와, 교도관들의 스트레스 해소에까지. 크게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
라는 논조로, 다양한 이론들과,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 기술들이 쓰여져 있는 글이었어.
이글을 읽고 나서야 나는 왜 서혜진의 몸이 그랬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 어디까지나 이해를 했을 뿐이지, 그렇다고 해서 이게 맞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이래서 그런 식으로 사람을 다루는 게 다 이 사람들을 위한 거다 라는거네요?”
“박선생님… 다시 말하지만 여기 오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우리랑 달라요… 게다가…”
정유미는 조금은 누그러진 내 태도에 나른한 목소리로 눈가를 쓸면서 말했어.
“원래는 말이에요… 박하나 박사의 그 이론이 도입되기 전에, 이곳에 오는 죄수들은 하루 24시간 내내 구속구에 묶여서, 손가락 발가락 하나 못 직이고, 눈꺼풀도 못 들어 올리고, 배설물이랑 식사도 기계로 처리했었어요. 죽기 직전까지. 그러니까 오히려… 이게 더 나은 게 아닐까요? 게다가… 그 사람들… 이런 걸… 좋아하는 거 같기도 하단 말이에요…”
차라리 이게 더 나은 방법이라고, 사실은 죄수들도 좋아하는 거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괘변에 불가한데, 그런데 말하는 사람이 정유미라서, 내 손이 차갑다고 해서 자기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라서, 혼란스러웠어.
“저도 사실 싫어요… 다른 여자 똥오줌이나 맨날 치워주고,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발정 나서 물이나 질질 흘려대는 녀석들은 대체가 사람말을 알아듣기는 하는 건지…. 하아…”
자기도 사실은 이러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말하는 표정이, 오히려 나보다 더 힘들어 보여서, 게다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나랑은 달리 이게 맞는 길이라는 확신에 차 있는 말투라서, 삐쭉 가시 돋힌 말이 튀어나왔지, 애초에 중요한 건 원래.
“그래도 같은 사람 이잖아요. 만약 유미씨가 그런 짓을 당한다고 생각 해 봐요…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맞아 결국 중요한 건,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아무리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아무리 이게 낫다고 해도, 결국 사람을 이렇게 대하는 게 맞냐는 거지.
그래도, 아까 전 같이. 말이 강하게 나오지는 않았어.
이제 왜 그렇게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니까.
그래도, 너무 아파 보였잖아.
난 살면서 그렇게나 성기가 망가져있는 모습은 처음 봤다고.
그걸 내 옆에 있는 이 정유미가 그랬다는 게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말한 나한테 정유미는 한숨을 한번 쉬더니.
자기 디바이스를 들고 가서, 또 뭔가를 나한테 보여줬어.
“이건… 박선생이니까 특별히 보여드리는 거에요… 한번 보세요. 216번이 입소하고, 이틀째 되던 모습이에요.”
아까 전 까지만 해도 같이 서혜진이라고 말했으면서, 이번에는 굳이 216번이라고 하는 정유미.
의문을 표하기 전에 먼저 정유미가 보여준 영상을 봤는데.
오전에, 휠체어에 꽁꽁 묶여서, 커다란 재갈을 물고, 침을 질질 흘리며, 보여지는 맨살, 눈에 닿는 모든 부분에 상처나 멍자국이 베여 있던 서혜진을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너무 놀라서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어.
얼마나 화질이 좋은지, 몸에서 땀방울이 흐르는 모습이나, 머리 카락이 흔들리거나, 눈이 깜빡이거나,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게 다 보일 정도였어.
쇄골까지 오는 갈색 섞인 스트레이트 헤어.
볼륨감 있는 가슴에, 건강해 보이는 몸.
살짝 멍해보이는 인상.
그리고 쇄골에 가로로 길게 나있는 긁힌 상처 자국.
서혜진.
알몸의 서혜진이 영상 속의 주인공 이었어.
게다가… 말이야.
그 서혜진이…
그 서혜진이…
어디 이상한 일본 야동에서나 나올 법한, 천박한 자세를 취한 채, 온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어.
저렇게나 몸이 이쁜 여자가, 알몸으로 있는데, 야하다거나 같은 생각이 하나도 안드는, 그냥, 천박한 자세로.
얼굴은 새빨갛게 되서, 침에, 콧물에, 눈물에, 엉망이 되어 있었어. 게다가 서혜진은 그 상태로, 흥분해 있었어.
벌려진 다리 사이로, 털 하나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곳에서, 옅은 복숭아색 구멍이 벌렁거리면서 물이 뚝뚝 흐르는 원초적인 모습.
마치, 이성이나, 지성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그런... 같은 사람인데도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모습.
쇄골의 상처나, 몸의 모양이나, 아무리 봐도, 오늘 오전에 겁에 질려서, 울며, 나한테 도움을 요청했던 그 사람인데.
그런데 저 모습은…. 그냥 마치… 한 마리의 발정난 동물 같잖아.
도저히 같은 사람으로 안보여.
오히려 사람 흉내를 내는 기분 나쁜 무언가 같았어.
“여기 스트레스 수치, 낮아지는 거 보이시죠? 216번은… 어쩔 수없이 이런 사람 이에요.”
거기에 쇄기를 박듯이 명확한 수치까지 옆에 보이니까.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인간의 모든 데이터들 속에서.
저러고 있는 동안. 성적 쾌감이 점점 높아지고.
받는 스트레스가 낮아지는 게 눈으로 보이니까.
“…..”
살색 화면에 눈이 고정되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어.
한참동안 멍하니 눈을 깜빡이면서, 축축하게 젖어서 꿈틀거리는 살덩이를 바라보았어.
침이 질질 흐르는 입가에서 새어 나오는 열기 띤 숨소리가 방 안을 조용히 채우는 것도 모르고.
너무 충격적이었어.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움직일 수 있지? 어떻게 저런 몸으로 저렇게? 저러면서도 느낄 수 있는거야? 저걸 왜 좋아하는거지?
머리 속을 휘감는 온갖 의문들.
그리고, 한동안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정유미는, 에잇! 그러면서. 나한테서 게임기를 뻇어가는 듯한 손길로 다시 디바이스를 가져갔어.
“자… 이건 비밀이에요 알았죠?... 박선생님도 이제 괜찮아 보이네요. 전 내일도 근무라서 먼저 갈게요. 그러니까 내일 꼭 출근해요.”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붙이며 쉿! 하는 정유미
침대에서 일어나 자기가 들고 온 술병이나 종이컵을 치우려고 해서, 내가 한다고 말렸어. 아까 전부터, 말하는 거나, 움직이는 게 완전히 취한 사람 같았거든.
그러면서 몇번이나 내가 정말로 괜찮은지 물어보더라고.
심지어는
“오늘 혼자서 잘 수 있겠어요?”
애도 아니고 그렇게 물어봤어. 진짜 진지한 얼굴로.
자기도 완전 취해서 휘청휘청 거리는데 말이야.
그래서 내가 바래다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긴 했는데 말이야.
물어보니까 자기도 바로 옆이라고. 괜찮다고 하더라고.
정유미는 현관 앞에서 서서, 내 얼굴을 찔끔 쳐다보고는 말했어.
“그래도… 다행이네요… 별 일 없어서… 사실은 걱정했어요….”
정유미는 완전히 취했는지 살짝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어.
“한선생님이 왜 그렇게 마르셨는지 들었어요? 사실 면담하다가, 수감자한테 찔렸거든요… 여기가 워낙 섬이다 보니까, 마땅한 병원이 없어서, 헬기를 타고 병원에 갔는데… 좀 늦어서, 그래서 그래서 다행이에요… 박선생님… 다행이야 안다쳐서…”
얼마나 마셔댔던건지 취했는지, 슬리퍼도 하나 제대로 못신으면서도, 말도 똑바로 못하면서도, 다행이라고 몇번을 되내이며, 정유미는 나를 살펴봤어.
그래서 아까 전부터 계속 궁금했던 걸 물어봤어.
사실 나도 알고 있었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 이렇게 헤어질 때 까지도.
정유미는 무언가 사람을 간질간질 하게 만들었어.
누구랑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이렇게 물었어.
“저한테 이렇게 잘 해주는 이유가 뭐에요?”
그러니까. 정유미는 그냥.
“음… 글쎄요…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가버리더라.
가는 끝까지, 내 걱정을 하면서 말이야.
한숨이 다 나오더라고.
정유미가 가고 나서야, 왜 나랑 이야기를 하러 왔는지 알 것 같았어.
정유미는 딱히 나한테 나쁜 짓을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나한테 자기가 왜 그랬는지 설명을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어.
그냥… 내가 걱정 되서 온 거였어.
내가 무서워할까 봐, 잠도 못잘까봐, 어쩌면 잘못됐을까봐… 그래서 왔던 거였어.
생각해보면 맨 처음부터.
내가 길을 잃었다고 해서, 자기는 딱 봐도 이쪽 방향도 아닌데도, 마침 가는 길이었다고 뻔한 거짓말까지 쳐가면서, 나를 보건실에다가 데려다 줬던 거라던가.
뜬금없이 내가 노트북 없이 일을 못한다고 하니까, 자기가 들고 올 테니까, 언니라고 한번 해보라는 둥, 그러면서도 단 둘이 두는 건 걱정된다고, 몇번이고 경고했던 거라던가.
이렇게 찾아와서는, 내가 무섭지 않게끔, 손을 잡아주고, 등을 쓸어주고, 같이 술을 마셔주고…
정말, 손해보는 성격이야. 쓸데없이 사람 신경쓰이게.
저런 사람은 항상 손해를 봐.
자기는 괜찮다고 해도, 주변 사람이 보기가 안쓰럽다고.
왜 쓸모 없는 것에 자기를 소비하는 걸까.
맞아. 사실은… 나랑 조금 닮은 것 같았어.
문득 생각났어.
s병원에서 일 할 때 박간호사님을 말이야.
사람이 찔렸는데도, 자주 있는 일이라면서, 다들 그렇게 넘기던 모습이랑.
나한테 무슨 일이 있을까봐 전전 긍긍 하면서, 끝까지 나를 걱정하던 정유미의 모습이 겹쳐져서.
이젠 뭐가 뭔지 잘 모르겠더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