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외전. 박아름
* * *
하고 문이 열리면서 정유미 교도관이 들어오고.
그대로 눈이 마주쳐 버렸어.
“나 왔어! 박선생…..”
그 천진무구한 목소리에.
심장이 멈춰버리는 것 같았어.
어떤 말을 해야 하지?
어떻게 말 해야 하지?
뭐라고 설명하지?
난 이제 어떻게 되는거지?
머리 속을 멤도는 수많은 생각들.
하.. 난 좃됐구나.
하는 생각으로 빠르게 모든 것들이 정리되면서.
디바이스가 손에서 스르르륵 빠져나와서, 바닥에 떨어지는거랑 동시에 정유미 교도관이 문을 닫아 잠구고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날 보며 물었어.
“지금 뭐하는거에요?...”
그렇게 화사했던 얼굴이 순식간에 그렇게 차가워지는 걸 눈 앞에서 보니까 내 심장도 꽁꽁 어는 것 같더라.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입만 벙긋 거리고 있는 사이, 정유미 교도관은 성큼성큼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땅에 떨어진 내 디바이스를 주워서 마치 티비 리모컨을 눌러서 채널을 바꾸듯이 어떤 버튼을 꾸욱 눌렀어.
그러니까.
아까 전 까지만 해도 아프고 무서운 감정이 한껏 담긴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던 사람이.
“으으읍… 끄으으으으으으읍…”
갑자기 한순간에, 엄청 괴로워하는 신음소리를 흘렸어, 얼마나 아파하는지 입이 꽉꽉 막혀 있는데도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말이야. 온 몸을 경련하듯 부들부들 떨더니, 눈이 위로 돌아가면서 흰자위를 보이더니 이내 퓨즈가 뚝 하고 끊긴 것처럼 기절해 버렸어.
정유미 교도관은 듯, 딱딱하게 굳은 눈으로 나를… 나만을 바라보면서 물었어.
“위험하잖아요, 대체 뭐하고 있었어요?”
내 손에 다시 디바이스를 쥐어 주면서 말이야.
자기 바로 앞에 단지 손가락을 한번 움직인 것 만으로 사람이 저렇게나 아파했는데, 지금은 눈을 까 뒤집어서 경련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발 밑이 어지럽게 흔들흔들 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정유미 교도관의 저 따가운 시선에 나는 이제 정말로 망했구나 하는 생각도 같이.
그런데 말이야.
그래도.
말은 해봐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나라도
응?
너무 너무 잔인하잖아 저런건….
그러니까.
딱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금방이라도 나를 억누를 것만 같은 느낌의 정유미 교도관을 보면서 호소했어.
“왜 그러는거에요? 이거… 뭐에요?.... 왜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요?... 너무 하잖아요? 네?...”
주르륵.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나왔어.
그 뒤로는 아무 생각도 안나더라.
그냥 감정이 격해져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지.
“하… 박선생님 정신 차려요. 여긴 교도소고, 216번은 죄수에요 범죄자라고요. 이건 다 안전을 위한 조치에요.”
정유미 교도관은 복잡한 얼굴로 나한테 타이르듯이 말했어.
“아무리 죄수라도! 인권이 있잖아요? 이 사람 성폭행 당했어요, 무슨 유리 조각을 보지 속에 넣고 깨뜨렸는지 상태가 보통이 아니라고요! 이게 대체 뭐에요? 국제 인권 위원회에 신고해야 겠어요”
이상하게 느낌이었어.
목소리도 높이지 않고 서로 조곤조곤 말을 하는데
정유미 교도관은 엄청 피곤한 얼굴로 나를 보고있고.
또 한 사람은 이제 살았는지 죽었는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발을 딛고 있는 바닥이 사실은 딱딱한 땅이 아니라 물렁한 스펀지인게 아닐까 라고 생각이 들만큼, 비 현실적인 느낌
“박선생님, 여긴 해암 교도소에요, 여기에 오는 죄수들은 인권이 없어요. 그리고 이건 다 관리랑 통제를 위해서 라고요, 지금 우리가 이런 말 하고 있는 것도 규정 위반이에요 박선생님 네?”
그러면서도 정유미 교도관은 끝까지 나를 걱정한다는 투로.
나는 저게 더 무서웠어.
왜 눈 앞에 있는 저 사람은 걱정해주지 않는건데?
자기가 저렇게 만들어 놓고, 저렇게나 아파하는데, 왜 관심조차 없는거냐고.
“인권이 없어요? 하다못해 동물보호법도 있어요. 그리고 관리랑 통제요? 정유미씨 같은 사람들 편하라고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도 된다는 거에요? 그리고… 인권이 없는 게 어딨어요… 이 사람… 저희랑 똑같은 사람이고… 저희랑 똑같은 여자에요, 216번 216번 이 사람 이름이 뭔지는 알아요?”
사람이 지나치게 흥분해버리면, 오히려 냉정해 진다는 게, 바로 내 애기더라고, 살면서 이렇게나 흥분했던 적이 있었나 싶은데, 이 와중에 정유미 교도관이 얼굴을 찌푸리는 모습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왔어,
“박선생님…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건 저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216번을 위해서기도 해요. 정말로 216번이 저희랑 똑같은 사람으로 보이시는 거에요? 216번은 사람이 아니에요. 사람 모습을 하고 있는 다른 무언가지, 그래도 이게 다 저를 위한 게 아니라, 수감자들을 위해서에요.”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야?
우리랑 똑같이 아파하고, 똑같이 무서워하잖아, 그런데 사람이 아니라니. 이러는 게 다 수감자들을 위해서라니.
정유미와 나는 근본적으로 무언가가 달랐어.
마치 서로 알고 있는 상식이 다른 것처럼.
“그게 대체 무슨!”
정유미 교도관이 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의사 면담은 다음에 해요 일단… 머리부터 좀 식혀요.”
휠체어를 잡고 고정되어 있는 바퀴를 한발로 스르륵 풀고는 서둘러서 방을 나가려고 하는 걸
“저기요 정유미 교도관님 지금 제 이야기…”
내가 팔을 잡고 말리는데.
“다음에 애기해요, 박선생님 지금 이러고 있으면 안돼요 제발…”
그렇게 말하는 그 얼굴이.
정말로 내가 걱정된다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여서.
마치 어린 아이에게 쓴 약을 먹이는 것 같은 표정이라서.
그만 손을 놓고 보내 버렸어.
정유미가 방을 빠져나가고 약 7분 동안, 나는 멍하니 가만히 서 있었어.
머리 속을 빠져나가지가 않더라고.
정유미가 나를 바라보던 걱정 섞인 얼굴이나, 싱글싱글 웃던 표정이나, 장난스럽게 굴던 모습이나, 나한테 길을 가르쳐 주느라 앞장서서 걷던 모습들이.
또.
벌거벗겨진 맨몸으로, 휠체어에 손가락 하나 못 움직이도록 꽁꽁 묶여서는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던 눈동자 나, 울음소리 하나도 제대로 못 내고 눈물을 뚝뚝 흘리던 모습이나, 손가락이 닿기만 해도 온 몸을 부르르 떨던 그 상처가 나서 오돌토돌한 살결들.
나는 그대로 의사 가운을 벗고, 빠른 걸음으로 방 밖으로 나가서는
“저 몸이 안좋아서 오늘 쉴게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말만 남기고.
내 방으로 돌아갔어
그때 나는 아직 울고 있었어.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풀어 놨던 짐들을 다시 정리 했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준비는 해놓자고.
그런데 짐을 거의 다 정리했을 때쯤, 어차피 id카드가 없으면 여기서 나가지도 못하는데, 만약 정유미가 다른 사람한테, 그러니까 윗사람 이라던가. 그래서 나를 어떻게 하려고 하면 나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겠더라.
국제 인권 위원회나, 그런 곳에 연락을 취해야 하나 싶은데, 그런데 당장에 증거가 내 증언 하나 뿐이고, 그 사람들이 이 허무맹랑한 말을 믿을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그냥.
그냥.
베개에 얼굴을 묻고, 침대에 누웠어.
그러고 나니까 울음은 그치더라.
띵동. 띵동. 띵동.
갑작스러운 초인종 소리.
깜짝 놀라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어.
아무래도 조금 졸았나봐.
얼마나 잔거지? 누가 온거지?
갑자기 끝없이 불안해져서 손톱을 물어 뜯었어.
하긴 도망갈 곳도 없는데 말이야.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면서 살금살금 다가가서 현관 옆에 인터폰을 봤는데.
정유미 교도관이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서 있더라. 신발도 슬리퍼에, 또 손에 뭔가 들고 있었어.
그거 보니까, 내가 지금 당장에 좃된건 아니다 싶더라고. 그러면서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문을 열었어.
솔직히 어떻게 해야 겠다던지, 어떻게 해야 한다던지, 사실 아무 생각도 안 들었고, 게다가 정유미 교도관이 날 어떻게 할 것 같은 느낌도 안들었거든.
저 사람은 그냥… 그냥… 날 보러 온거구나… 싶었어.
그래서 그냥 열어줬지.
“뭐에요?”
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미니까, 정유미가 살짝 피곤한 얼굴로 말하더라고.
“우리 애기 좀 하죠?”
그래서.
“…. 들어와요”
그랬지.
신고 온 슬리퍼를 현관 앞에다가 탁탁 벗으면서, 주변을 살짝 기웃거리는 정유미는, 술을 마신 것 같았어. 희미하게 몸에서 술냄새가 났거든.
정유미는 방 안에 맨발로 들어와서는, 침대에 턱턱턱 가서 앉더라. 짐도 다 정리해뒀고, 아직 가구도 주문 안했어서, 방에 아무것도 없다보니까, 딱 봐도 서로 앉아서 이야기 할 만한 곳은 거기 밖에 없더라고.
그래서 나도 그냥… 눈치 껏 그 옆에 앉았지.
…
….
…..
…..
…..
……
……
…….
우리는 서로 침대에 가만히 앉아있었어.
정유미의 몸에서 나는 술냄새랑, 장미향 바디 워시 냄새가 맡아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지.
“아… 정간호사님 한테는 제가 잘 말해뒀으니까 뭐… 걱정 안해도 될 거에요. 그래도 그쪽 덕택에 나 오늘 힘들었어요…. 오늘 일주일 때 풀근이야.”
정유미는 갑자기 말이야, 무슨 침대가 자기 것 마냥 털썩 하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리면서 나한테 투덜거렸어. 근데 아무리 봐도 진심은 아닌 것 같은 게, 전혀 나를 원망하는 얼굴은 아니었거든.
“…”
“내가 관리하는 수감자만 4명인데, 잠도 못 자고 진짜 뭐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러더니만 또 침대에서 상반신만 벌떡 일으키더니, 한 손에 들고 온 작은 술병을 흔들면서 말하더라.
“술 좋아해요? 같이 마실래요?”
라고.
자기는 벌써 마시고 왔으면서 말이야.
게다가 내가 거절 할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않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근데 나도 있잖아.
“마실래요”
도저히 안마시고는 못배기겠더라.
웃기지도 않게 정유미는 자기 주머니에서 종이컵을 두개 꺼내더니, 마술이라도 부린 것 마냥.
“짜잔!”
하고는 나한테 종이컵 하나를 주고는, 거기다가 술을 따라줬어.
뚜껑을 따자 마자 방 안이 알코올냄새로 가득차는 거 보면, 되게 독한 술 같더라.
그렇게 벌컥벌컥 술을 다 따르고 나서, 술병을 바닥에다가 두고, 정유미는 또 아무 나른한 얼굴로.
“쨘”
종이 컵을 가볍게 부딪히고는 술을 마셨어.
나도 뭐. 같이 마셨지.
한 모금 마시니까 목구멍이 타는 것 같더라.
그렇게 우리는 또 침대에 앉아 있었어.
정유미는 종이 컵에 따라진 술을 홀짝였고. 나는 가만히 종이 컵안에 찰랑거리는 갈색 액체를 바라보고 있었지.
“그 사람…. 216번… 있잖아요… 원래 이름… 서혜진 이라고 한데요…”
아무래도 정유미는 내가 저 사람 이름이 뭔지는 아냐고 했던 걸 계속 신경 쓰고 있었나봐, 나도 사실 조금 놀랬어, 계속 216번 216번 그러길래 아예 모를 줄 알았는데 알고는 있었네…
그러니까 더더욱 원망스러워져서.
“이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왜 자꾸만 번호로 부르는 거에요?”
말이 날카롭게 나가더라.
“적응을 위해서?... 괜히 이름으로 불러주면 자기만 더 괴로워질 뿐이에요. 원래 이런 거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되는건데…”
그래도 정유미는 정말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아주 잠깐 머뭇거리다가, 종이컵에 담긴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서혜진은 있잖아요... 사람을 죽였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