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화 속 이야기들은 모두 죽었습니다-53화 (53/62)

〈 53화 〉 외전. 박아름

* * *

침대는 푹신했어, 애써 집에서 가져온 침대 시트랑, 이불도 좋았고,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정말 오래간만에 욕조에 몸을 담궜어. 다음에 나갈 일 있으면 입욕제를 사와야겠더라고.

밥도 적당히 챙겨 먹고, 출근 시간에 맞춰서 개인 실을 빠져나왔는데

있잖아.

근데…

여기가 대체 어디일까?...

처음 길 안내해줬던 사람은, 시설에 들어와서, 내 방까지 가는 길은 안내해 줬어도, 의무실까지 가는 길은 안가르쳐 줬었단 말이야.

게다가 어제는 별로 신경 안 썼는데… 여기 길 다 거기서 거기 처럼 보여서, 어디가 어디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어디를 가도 하얀색 복도에, 하얀색 백열 전등에, 뭐하는데 쓰이는지 모를 방들에 문이 닫혀져 있는 모습들 뿐이야.

아주 조금 직진했을 뿐인데, 벌써 방에 돌아가는 길을 모르겠어…

게다가 복도를 통과할 때 ID카드를 일일이 찍는데, 막 이곳은 내 권한으로는 갈 수 없는 곳이라고 하고, 막 어디는 출입 금지 구역이라고 되어있고. 대체 어디가 어디인지.

전임자한테 전화를 걸어보려고 폰을 들었는데, 생각해보니 번호도 없어서 한참 막막한 기분으로 ID카드를 손에 꽉 쥐고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있었어!

대충 차려 입은 것 같은 제복에, 회색 스니커즈 신발, 뒤로 묶은 머리의 멍 해보이는 표정의 여자 교도관.

여태동안 지나가던 사람 한명도 못 봤으니까, 저 사람 놓치면 다음엔 언제 사람을 볼 수 있을지 몰라 재빨리 말을 걸었어

“아! 저기! 저기요!”

“네?”

말을 걸어 올줄은 전혀 몰랐다는 듯 깜짝 놀라서 이쪽을 바라보는 여자에게 재빨리 상황을 설명했어.

“제가 처음 와서 그런데 길을 잃어서요 혹시 의무실이 어딘지 알아요?”

그러니까 여자는 내 말을 듣더니 표정을 조금 찡그리면서 말을 흐리다가

“아… 그래요? 의무실은… 음…”

“혼자서 찾아 가기엔 조금 먼데…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

옅은 한숨을 쉬고는 표정을 바꿔서 말했어.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나는 좋다고 따라갔지. 조금 미안하긴 했어도, 달리 방도가 없었거든.

우리는 걸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어.

“저도 여기 온지 얼마 안됐을 때는 길 많이 헤맸어요. 여기 진짜 길 이상하게 만들었죠?”

“그러게요 진짜 다 똑같아 보여서 방에서 조금 나왔는데도 못찾겠더라고요, 여기서 일하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저는 이제 1년 됐네요, 근데 의무실은 왜 가시는 거에요? 어디 아파요?”

“아뇨 저 거기서 일하게 됐거든요 이번에 보건직으로 들어왔어요”

“아… 그러니까 한 선생님 후임이시구나? 그분 슬슬 퇴직하실 때가 다 되셨죠… 어쩐지, 요즘 기분 좋으시더라.”

앞에서 성큼성큼 걸으면서 자신의 ID카드를 찍으며 나아가는 정유미와, 그 뒤를 따라가는 나.

유미씨는 엄청 좋은 사람 이었어! 자기는 근처에 일 있어서 간다고 했는데, 딱 봐도 그냥 나 도와준다고 데려다 주는 거 다 티났었거든, 나보다 나이는 한 살 언니에, 스타일도 엄청 좋고, 묘한 분위기가 있달까? 둘이서 막 이런 저런 애기 하다가, 한 선생님 성격은 어떤지 물어보려는 타이밍에 딱 의무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아 다 왔네요. 일 열심히 하세요 종종 보면 인사해요!”

유미씨는 일 다봤다는 듯이 가버렸어

그래도 아까 전 까지만 해도 같이 잘 애기 했었는데 조금 섭섭하더라고.

“네! 감사합니다!”

그래도 내가 인사를 하니까 막 손을 흔들어 주는데, 엄청 귀여웠어.

교정직 공무원. 그러니까 교도관 이라길래, 엄청 무섭고 딱딱한 사람들만 있는건가 싶었는데, 저런 사람도 있어서 기분이 좀 좋아지는 거 있지?

자 그래도 이제 진짜로 일 해야 될 시간이지.

무슨 ID카드는 의무실 갈 때도 찍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덕택에 잘 된 거 같아. 첫날부터 지각해버려서 어쩌나 싶었는데, 그래도 마음에 준비는 하고 들어갈 수 있잖아?

어쩔 수 없는 걸. 길이 너무 복잡했으니까. 누가 그러니까 안내도 안해주고 그렇게 혼자서 가라고 하래? 난 잘못한 거 없어! 맞아! 이게 다 처음 안내해 준 사람이 잘못한거야! 의무실 까지 길도 제대로 가르쳐 줬어야지!

난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해 놓고, 그러면서도 혼나겠지? 첫날부터 지각했다고 혼날거야… 같은 생각을 하며 ID카드를 꾹 찍고 의무실에 들어갔어.

의무실은 생각했던 거랑 다르게 엄청 평범했어. 꼭 동네 내과 의원 같은 분위기에, 막 한번쯤은 와 봤던 거 같은 포근한 느낌이랄까?

교도소 안에 있는 곳이고, 또 죄수들도 진료 받으러 오는 곳이라서, 엄청 살벌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티비에, 잡지에, 화분도 곳곳에 놓여져 있고, 하얀색 벽에는 예방 접종 포스터 까지 붙어 있었어.

한가한 시간인건지, 안 그러면 원래 그런건지, 의자나 소파에는 아무도 없었고, 중년의 여성 간호사 한 분이 데스크에 앉아서 이쪽을 멀뚱멀뚱 쳐다보길래 바로 인사를 했지.

“안녕하세요 저 이번에 새로 여기 보건직으로 들어온 박아름 입니다.”

“오셨구나! 어서 와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바로 들어가시면 돼요”

간호사 선생님은 인자하게 웃으면서 나를 곧바로 안으로 안내해 주셨고, 드디어 나는 그 한 선생님을 볼 수 있었지.

한선생님은 엄청 마르다 못해, 어딘가 아프신가? 싶을 정도로 빼빼마른 체형의 중년 여성 분 이셨어, 피부도 하얗고, 여리여리 하고, 머리는 짧은 꽁지 머리, 청바지에 하얀 브라우스가 나이대에 맞지 않게 굉장히 젊어 보였지만, 어딘가 분위기가 굉장히… 음.. 뭐라고 해야 하지? 아 어른이다! 싶으신 분이셨어.

진료실 안도 정말 아무 것도 없이 평범했어.

청진기에, 키 재는 기계에, 대부분 다 내과에서 쓸 법한 것들?

안에는 간이 침대도 하나 있고, 검사실 안쪽으로 또 방들이 있어서, 대충 주사실이나, 검사실 같은 것도 있구나… 싶었어. X RAY정도는 있었던 거 같은데… 그러니까 저기 저 방 일려나?

주변을 기웃기웃 거리는 나를 보더니 한선생님은 웃으며 인사해 주셨어.

“이제 오셨네요 반가워요 박아름씨.”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어차피 또 길 헤맸죠? 처음에는 다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 정간 이랑은 인사하셨어요? 오셨으니까 우리 다 같이 차 한잔 해요. 들어와요 정간”

밖에 있던 정간호사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어와서는 익숙한 손길로 의자를 가져와서 내 옆에 앉은 뒤에 머그컵을 찬장에서 탁탁탁 꺼내더니, 그에 맞춰서 한선생님이 직접 뜨거운 물을 붓고, 커피믹스를 탈탈 털어서 커피를 타 주셨어. 우리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지.

이야기하면 서 알게 된 건…

우선 한성아 선생님은 이제 곧 정년 퇴임하신 하신 다는 거? 그래서 내가 온 거고. 그리고 정혜영 간호사님은 한성아 선생님과 사적으로도 굉장히 친한 사이라고 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보였어. 친해지는 건, 하루 종일 같이 지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원수, 아니면 절친이 된다고 하더라고. 둘은 일한지 오래 됐다고 해, 10년은 넘었다나? 일은 전체적으로 바쁠 때 바쁘고 한가하다는 모양이야, 편하게 학교 의무실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던데? 한선생님은 굉장히 조곤조곤 하신 분이시고, 정간호사님은 말도 재밌게 하시고, 재밌는 분이셨어.

그 뒤로 시간은 천천히 흘렀어.

첫날은 그냥 한 선생님 옆에 앉아서 빈둥빈둥거리면서 보냈지.

원래 바쁠 때 아니면, 하루에 한명? 아니면 아무도 안온다던데, 그날은 정말 아무도 안 오더라고.

뭐 그 뒤부터 천천히 인수 인계도 시작해서.

서류 쓰는 법 이라던가, 비품 정리나, 재고 확인 하는 방법이나, 신청 하는 법이나. 한 선생님은 매뉴얼을 보면서 하나하나 가르쳐 줬어. 자기도 이렇게 배웠다면서.

우리 병원 교수님들도 이렇게 가르쳐 줬으면 좋았겠다. 싶을 정도로 엄청 친절하셨어. 내가 실수해도 다 이해해 주면서 말이야. 음… 숙련자의 품격 그런 게 막 느껴졌다니까?

일은 어려울 것도 없어서, 정말 아무런 사건 사고도 없이 금새 일주일이 지나고, 의무실에서 한 선생님의 퇴임식이 조촐하게 열렸어, 말만 조촐하게지, 사람은 적었지만, 교도소장님도 오고 다른 곳 높으신 공무원분도 오고 그래서, 생각보다 한 선생님은 대단하신 분이셨구나 싶었어.

한선생님은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만 남기고 홀가분하게 가셨고, 반 간호사님은 조금 울었어. 한선생님은 그거 보고는 어차피 다음 주에도 보기로 했으면서 왜 우냐고 타박했었지.

그렇게 한 선생님이 가시고.

이제 본격적으로 업무가 시작됐어.

그리고 첫날부터 말이야…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말이지 바로 그날이었어.

지금은 너무 늦은 게 아니었을까 싶지만…

한 선생님 없이 맡은 첫 업무는 그거였어.

수감자 면담.

한 일년에 한번씩 하는 거라나?

한 선생님도 크게 별 말씀 없으셨고, 그냥 건강 상태 체크만 하면 되는 거라고 하셨단 말이야?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면담자 프로필을 봤는데.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게 아무리 찾아봐도 이름이 없었어.

여기도, 저기도, 어디에도 없더라고?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심지어 이전의 의료기록도 하나도 없더라고, 심지어 치과 기록도 없었어! 정간호사님 한테도 물어봤는데 원래 그런거라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아 뭐… 교도소니까 그럴 수 있겠지… 하고 넘어갔단 말이야? 기록이 깨끗한게 뭐지? 싶었는데, 그냥 입소 날짜가 이틀 전 이더라고. 의사 면담도 이번이 처음이네, 그러니까 일단 매뉴얼부터 찾아볼까? 아무래도 공무원이 좋은 게 매뉴얼이 잘 만들어져 있어서, 그거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라는 것이 내가 한 선생님한테 받은 가장 큰 가르침이였어. 실제로 한 선생님도 그렇게 근무하셨다니까! 자… 보자… 컴퓨터 폴더에 우다다다 쌓여 있는 공문서들의 산을 조금 헤매다가 금방 찾을 수 있었어.

첫 수감자 면담을 위한 매뉴얼.

제일 위에 가장 크고 딱딱한 글씨로 쓰여져 있던 것은.

주의 : 수감자와의 의사소통은 안전 밑 보안상 금지되어 있습니다. 특이 사항이 있다면 담당 교도관과 상의 해 주세요.

라고 쓰여진 한 문장.

아니… 면담을 하는데, 면담하는 사람이랑 말도 하지 말라고? 뭐지? 뭔가 이상한데? 싶기도 하면서, 그래도 교도소니까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반반. 그러면서 그 밑에 첫번째로 쓰여진 문장을 천천히 읽어 봤어. 그런데.

문장을 읽으면 읽을수록.

한페이지가 채 될까 말까 한 매뉴얼인데.

그런데, 글은 쓰여져 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거야.

음.. 근데 그러니까… 이게 맞는건가?... 정말로?...

다시 한번 문서의 이름을 확인해 봐도, 아무래도 이게 맞는 것 같은데…

띄엄띄엄 읽어보면

수감자의 목줄과 연동된 담당 교도관의 관리 디바이스를 사용하여, 수감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리 디바이스 라는 건, 아마도 여기와서 받은 이 스마트폰을 말하는 거겠지? 처음 받았을 때도 그런 명칭 이었고.

그런데 목줄은?

강아지한테 채우는 그런 목줄?

살짝 찾아보니까 맨 밑 쪽에.

수감자를 관리, 통제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실시간으로 수감자의, 맥박, 혈압, 뇌파, 체온, 전기 신호, 생체 소리, 등등의 데이터를 수집하며, 수감자를 통제할 수 있게 해줍니다.

실시간으로 사람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도구…

과학적으로 가능하긴 한건가?

아니 인권이나 그런 건?

명칭도 목줄이라고 되어 있는 게 엄청 뒤숭숭한데?

의료 담당자는 관리 디바이스를 통해, 수감자의 상태를 확인, 디바이스에 표시되어 있는 상태가 맞는지 확인하고, 기록해 주세요.

굳이 내가 다시 확인을 해야한다는 건… 그 “목줄”이란 것도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다는 건가?

그리고 제일로 마음에 걸리는 문장은 바로 다음.

첫 면담자일 경우, 목줄의 기능과 연동하기 위한 보조제를, 경동맥에 주사합니다.

목줄의 기능?

보조제?

보조제가 뭔데?

문서를 아무리 뒤져 봐도 보조제가 무엇인지 나와있지를 않다니까? 목줄의 기능은 또 뭐고, 아니 뭔지 알아야지 주사를 하지 무슨 성분인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무작정 주사 하라고 해도 되는거야?

그 뒤부터는 짤막하게,

디바이스의 목줄 기능을 체크 합니다.

라던가.

담당 교도관에게 수감자의 상태를 보고 합니다.

같은 글들이 적혀져 있는데.

곳곳에, 담당 교도관의 엄중한 관리 하에 면담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거나, 또 몇번씩 수감자와 대화하지 말라는 주의가 계속해서 쓰여져 있는게…

맞아. 딱 맹수를 다루는 수의사를 위한 매뉴얼! 딱 그 느낌이네!

하긴… 사실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르지.

새삼스럽게 위험한 곳에 와버렸다는 느낌이 드는데…

막 수감자랑 대화하지 말라는 문구만 6번이나 들어가 있고, 모든 것이 안전하다 라는 말만 3번씩 들어가 있잖아. 보통 저렇게 강조하면 안 좋은 건데, 게다가 목줄 기능을 체크해 보라는 건 대체 뭔데?

한 선생님은 이런 말없었는데… 그냥 매뉴얼 보고 하면 된다는데, 매뉴얼을 도무지 이해 못하겠는데… 혹시 누군가한테 물어봐야 하려나?

나무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탁탁탁 치면서, 이리 저리 매뉴얼들을 살펴보고 있을 때.

띵동

호출음이 들렸다.

누군가가 들어온다는 신호.

“선생님, 216번 면담입니다.”

뭐야 벌써?

라고 하기엔 언제 이렇게 시간이 좀 지나 있었네

숨을 한번 크게 내 쉬면서 저번에 봤던 드라마를 생각했어. 맞아.얕보이면 안되지만, 친절하게. 응.

“들어오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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