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외전. 박아름
* * *
누구 박아름? 아… 개?....
개 어떠냐고?...
음… 일단 착하지?...
나름 예쁘장하고?...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했고…
아 그렇다고 해서 막 만만하거나, 그런 애는 아니다?
한번은 생판 모르는 애가 길가다가 붙잡고는, 무슨 일 있어서 도와달라고 했을 때 도와줬던 적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도와주는 건 또 아니고, 그래도 눈치는 좋아서 자기 물먹이려고 하는 건 귀신같이 잘 알고 딱 잘라서 거절하더라고.
초등학교때는 학교 가는 길에 폐지 줍는 할머니 리어카를 뒤에서 밀어줬다고 표창도 받고, 6년 내내 반장에, 공부도 꽤 했고, 성격도 괜찮고, 전교 회장에, 봉사활동부 부장에.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다 비슷비슷 하게.
적당히 인싸라서 인기도 있었어.
맞아 한번은 중학교 때 따돌림 당하는 남자애를 도와주다가 개가 아름이한테 반해버려서 고백할 때도,
“에휴… 너도 그래도… 학교 다닐 때 연애 정도는 해봐야겠지?...”
하면서 아무 마음도 없이 봉사활동 하는 마음으로 사귀고는
“으… 역시 안되겠어… 미안… 우리 헤어지자.”
일주일만에 헤어져버렸다나?...
애가 조금 별나긴 헸지.
그렇네… 그래서 의사는 어떻게 된거냐고?
그거야 뻔한 거 아냐?...
성적 맞춰서 의대 간거지.
뭐 처음에는, 변호사니, 수의사니, ngo운동가니, 선생님이니 뭐니 한다고 했었는데.
애가 초 증 고등학교 12년간 반장에, 학생 회장에, 성적도 전교 상위권 이었잖아? 수시로 국내 대학은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보니까, 선생님이랑 부모님이 합심해서 의대를 보냈더라고.
처음에는 박아름도 좋아했었는데 말이야.
그래도 하루에 4시간씩 자면서, 일주일에 시험만 2개에, 선배들은 진상부리고, 교수님들은 과제에 시험에, 결국 대학 다닐 때, 축제도 한번 못가보고, 소개팅도 한번 못해봤다는거야…
남자랑 연애도 못했데.
불쌍하지 않아?
수면 부족으로 인한 피부 트러블, 장시간 의자에 앉아 있어서 생기는 요통, 스트레스로 인한 편두통에, 제일 심각한 건 생리 불순 까지…
언제 한번은 같이 술마시는데, 환자 살리기 전에 자기가 먼저 죽겠다더라고.
진짜 웃긴 건 말이야.
병원 가서 의사 선생님한테 상담 받으니까.
“아… 그건 아무래도 너무 피곤해서 그러시는 것 같은데… 하시는 일을 좀 줄이시고 잠을 푹 자세요.”
라고 했다는데.
박아름도 그 말 들을 거 알고 갔지만, 그래도 짜증이 나서
“제가 의대생이라서요 교수님들이 과제랑 시험을 너무너무 많이 내주시다 보니 잠을 잘 시간이 없는데 어떻하죠?...”
우다다다 쏘아 내고 보니.
“아…. 후배였어?”
의사 선생님이 멈칫. 박아름 얼굴을 뻔히 쳐다 보시더만.
“음… 여기 약 처방해 줄 테니까 이거 먹어. 그럼 좀 버틸만 할거야”
몸을 억지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약들을 처방해 주시더니. 마지막엔 짠한 얼굴로.
“힘내….”
라고 했다는 거야.
진짜 웃기지 않아?
어찌됐든 그래도 어떻게든 시간이 흘러서.
의예과 2년에, 얼굴 보기도 힘들었던 본과 4년에다가, 의사 국시는 어지간하면 다 붙는다고 하던데… 한아름은 국시 시험장 가는 데 손을 벌벌 떨더라고, 그래도 뭐 붙었지.
졸업식날 히포그라테스 선서할 때는 애도 좀 찡했는지 울더라고.
아무튼 그렇게 박아름은 의사가 되었고.
그 뒤로, 무슨 대형 병원에 들어가서 인턴 좀 하다가…
그 뒤로 왠일인지 연락이 잘 안된단 말이야?...
동창회?
얼굴 못 본지 좀 됐지?...
그래도 간간히 연락이 닿으면, 어디 섬 같은 곳에 취업했다는데… 글쎄 모르지?...
그런데 왜 물어봐? 소개팅이라도 잡혔어?
너도 참 별나네… 갑자기 와서 하는 애기가 그거야?
공무원 일 힘든가보네?
자 한잔해!
s병원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병원인거 알지?
교수님 추천장으로 간신히 들어갔었는데, 병원 진짜 크더라고…
처음 입사하고 얼마 안됬었을 때는 병원 안에서 길까지 잃었었어.
일은 되게 되게 힘들었지만 뭐.
통장에 쌓이는 월급들에, 심심하면 찾아오는 연차에, 유급 휴가에, 무료 가족 건강 검진, 게다가 휴양지 한복판에 위치한 콘도 회원권까지 냉큼 받아버려서, 노예처럼 일하기로 했지.
게다가. 병원 로비에서 꾸벅꾸벅 조는 대머리 흰색 가운 입은 아저씨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암 전문의에, 직원식당에서 항상 돈까스만 먹는 젊은 의사 선생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흉부외과의사 라고 하네.
둘다 학회에서 보이는 모습이랑 병원안에서 보이는 모습이 너무 다른 거 아니야?...
아무튼 선배들도 전부다 어디 하나 모난 데 없는 사람들이고, 일이 너무 많지만… 일이 너무 많은 만큼 그래도 후배를 괴롭히거나 하는 건 없어서 다들 괜찮은 사람들이었지.
그런데 있잖아…
응급실 당직을 서던 날이었어.
그때가 야간 당직하던 주였는데 있잖아, 근데 집에 못돌아간지가 거진 일주일이 다되가던 날이었어.
라운딩에, 당직에, 공부에. 선배들은 어떻게 다들 연애를 하고 사는지…
난 같은 브라를 몇일동안 입고 있는 건지 기억도 나지 않았는데…
그날은 그렇게까지 바쁘지는 않았어.
그냥 밤에 복통 때문에 실려오신 중년 남성분이 한 분 계셨지?
되게 조용했었단 말야?
한 새벽 4시쯤 됐을까?
응급실 정문으로 왠 아줌마가 들어 왔어.
아줌마였나? 언니였나?
머리도 엄청 길고, 피부는 하앴는데, 빨간색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어, 몸에 딱 달라 붙는 엄청 이쁜 거.
그 사람이 조용조용 데스크로 걸어오는데, 잘 보니까 밖은 비도 안왔는데, 온 몸이 흠뻑 젖어있는거야.
그때 나랑, 박간이 당직이었어서, 둘이서 같이 귤 까먹고 있었단 말이야?
그래서 박 간호사님이 먼저 그 사람한테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는데…
물었는데…
그 사람이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백을 뒤져가지고, 아 뭐 꺼낼 게 있으신가보네? 싶었는데.
칼을 꺼내들고.
곧바로 맞은 편에.
내 바로 옆이 있던 박 간호사님 가슴을 찔렀어.
그 사람은, 가방을 뒤져서, 칼을 꺼내서, 내 옆에 박 간호사님을 찌를 때까지, 아무런 말도 없었어. 난 옆에서 칼을 꺼낼 때도, 아 뭐지? 칼이네? 싶었는데…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단 말이야.
박 간호사님은 칼에 찔려서 곧장 쓰러지고, 주위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어.
그 사람은 그 뒤로 곧바로 병원 경비원들한테 잡혀서 체포 되었고, 박 간호사님도 옅게 찔려서 별 일 없었는데.
나중에 인수인계 할 때 선배들한테 말했는데.
그게 병원이 도심 한복판에 있다 보니까 종종 있는 일이란거야.
아무래도 재래 시장도 근처에 있어서 종종 술 취한 사람들이 밤 늦게도 열려있는 응급실로 들어와서 난동을 피운다는 거지.
박간호사님도 응급실에서 적당히 꼬메고 드레싱 하고, 그렇게 퇴근 했었지.
그 다음 날이었어.
출근을 하는데, 아무래도 병원이 딱 사람 많은 동네의 한 가운데에 있단 말이야?
집이 가까워서 걸어서 출근하는데, 여기도 사람 저기도 사람 인거야.
병원 안에도, 사람들로 바글바글 하고.
뭔가 느낌이 매스꺼웠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그날 그냥 저냥 일 했는데, 어쩌다가 복도에서 박간호사님을 봤어.
너무 멀쩡하게 일하고 있더라고?
어제 칼에 찔렸는데…
생각해 보니까 박간호사님 올해로 7년차시란 말이야?.
그래서… 그래서 무서워졌어.
그래서 퇴사했어.
나도 여기 오래 다니면 저렇게 되어버리는 걸까? 싶어서
사람이 갑자기 무섭더라고.
여기도 사람, 저기도 사람, 널린 게 사람인데.
너무 무서웠어.
그래서 한동안 집에 박혀서 살았지.
술이나 좀 마시면서, 하루 종일 자고, 드라마 보고, 그때 막 티비에서 다큐를 봤는데, 시골의 산 이라던가, 섬이라건가, 그런데는 사람이 없잖아? 그래서 너무 좋아 보이더라고.
근데 어쩌다가 정부 부처 사이트를 보게 됐는데, 시골 섬에 있는 교정 시설에서 의사를 구한다는 거야.
무슨 이름도 못 들어 본 곳 이더라고.
심지어 관사도 나오고, 월급도 그렇게 까지 짜지도 않고, 경력도 인정해 준다고 해서, 요즘 인력난이 심하구나 하면서, 꾸욱 지원 했다?
무슨 시골 교정 시설 의사 자리가.
면접에, 면접에, 시험에, 인적성검사에.
얼레벌레 다 하고 나니까, 최종 합격 됬더라고.
아무래도 다른 지원자들 보다 학교가 좋았나?
물론 하는 일이 교정 시설에서 근무하는 거라서, 조금 무섭긴 했는데…
근데 예전에 되게 안좋은 학생들만 모여있는 학교에 부임한 선생님이 아이들을 갱생시킨다는 내용의 드라마를 되게 재밌게 봤단 말이야?.
그러니까… 나쁜 사람들을 갱생 시키는 의사 선생님도… 하나쯤 있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
정말 어쩌면, 박간호사님을 찌른 사람이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면서 말이야.
이때 진짜로 드라마 좀 그만 보고, 교도소 이름이라도 검색해 봤었어야 하는데…
말해준 시간까지, 어디 마을 선착장으로 오라고 해서, 케리어에, 가방에, 차 트렁크까지, 짐을 꾸역꾸역 실어서, 한참 동안 네비 찍고 갔는데.
엄청 나게 작은 마을의 선착장 이더라고.
드라마에서나 봤던 시골의 버스 터미널 의 바다 버전?
막 앞에 조그마한 어선들 떠다니고, 작은 구멍가게 하나 있고, 딱 그런 분위기였어.
짐들 다 내리고, 조금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양복 입은 남자들 몇 명이 다가오더라고?
그때부터 였지?... 뭔가 쌔 한 느낌이 들었던 건.
아무래도 눈에 띄어서 한참을 보고 있었는데, 바로 이쪽으로 와서 물어보더라고.
“박아름씨 맞나요?”
“네. 뭔가요?”
“해암 교도소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모시러 왔습니다.”
들어보니까, 섬의 위치도 기밀이라서, 자기들이 배를 태워줘야지만 들어갈 수 있다는 거야.
얼마나 시골인가 싶었지…
그렇게 짐을 맡기고, 살짝 큰 배를 타고, 한참동안 이동했어.
다행이도 뱃멀미는 안하더라.
섬도 막 완전히 작지는 않고, 마을에다가, 학교까지 보이더라고, 그냥 시골 섬마을? 거기서 차를 타고 쭈욱 섬 반대편 산 쪽으로 가니까, 뭔가 군부대 같은 느낌의 입구에서 내려서 사무실로 이동했어.
무슨 안내 직원 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정말 한참동안 수십장에 달하는 보안 유지 기밀 서약서에 사인을 시키더라고, 막 허가 받지 않은 장소에 ID카드 없이 들어가면 안된다느니, 시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가 극비 사항 이라느니, 진짜 철저하다 못해 편집증적이더라고. 게다가 그걸로 끝이 아니라, 전문 강사분이 오셔서 보안 교육까지 하더라고…
그런데 강사 분이 ID카드는 절대 절대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되고, 혹시나 잃어버리게 되면 곧바로 신고 하라고 수십번을 넘게 말하는데…. 정말 좀 그렇더라… 뭐가 살짝 이상하다고 해야 하나?... 마치 정말로 ID카드가 없어지면 엄청나게 큰일 나는 것처럼…
하여간에 질렸어 진짜…
이무튼 그렇게 하루 종일 보안 교육 받고, ID카드를 받고 나서야, 시설로 들어갈 수 있었어.
아까 처음 나왔던 사람이 안내해 줬었는데.
시설로 들어가는 엘리베이터가 하나밖에 없다고 하더라?
여기 불 나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니까 그럴 일 없으니 안심하라고 하던데… 아 생각보다 경비 직원이 되게 젊었어! 꽤 잘생겼던데?
그런데 시설 안은 도저히 교도소처럼 안보였어, 쇠창살 같은 건 하나도 없고, 문이 조금 두꺼운 게 유일하게 교도소 같은 느낌이었고, 어디 갈 때나 항상 ID카드를 찍어야 하는게 뭔가, 회사 같은 느낌이었지.
그대로 개인실로 안내 받았는데.
투룸에, 침대에, 가스레인지에, 전자레인지에, 냉장고에, 옷장에, 화장실에, 심지어 욕조에 노트북에 테블릿도 있더라?.
이만하면 조금 과한 거 아닌가? 싶었는데…
지하라서 내부 인터넷망 쓰는 거라, 어차피 여기서 일 할거면 다 주는 거라고 하더라고.
솔직히 크게 기대 안했는데, 이만하면 됐다 싶었어.
짐도 미리 와 있어서, 정리했어.
절대 하루 만에는 안 끝날 거 같아서 적당히만…
인수 인계할 업무 서류도 미리 받았는데.
그냥 작은 동네 내과 같은 느낌이더라고?
직원들 건강 업무나.
수감자들 건강 검진이나 관리정도?.
중간중간 좀 이해 안되는 것들도 있긴 했는데. 크게 특별한 건 없어 보여서 어지간한 건 내일 물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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