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일주일. 징벌방
* * *
성욕은…
성욕은… 마치 여름이나 겨울 같았습니다.
적당한 선 없이.
사람이 견디지 못할 만큼. 그저 그저 극단적일 뿐.
이미 너무 많이 가버렸는데…
가고 있는 와중에도 또 가버려서…
도저히 가버리는 게 멈추지 않아서…
이미 아픈데도 또 가버려서…
정말로 가고 싶지 않은데도 계속 가버려서…
이대로 가면 미쳐버릴 것 같은데…
정말로 죽어버릴 것 같은데…
제발 그만 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도… 그런데도…
아무리 추하게 무너지며 부탁해도…
모든 것은 교도관님의 마음대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딱 1초, 딱 한번의 자극 만으로도 가버릴 수 있는데…
정말로 가기 직전에 딱 멈춰버려서…
눈만 깜빡이면, 숨만 한번 들이 쉬면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그저… 그저… 허벅지를 조금 오므리는 것 만으로도…
지금 가버리면 정말 좋을건데…
정말 정말로 좋을건데…
하지만 교도관님이…. 교도관님이…
아 정말 딱 한번만 갈 수 있으면….
점점 머리 속에 있던 다른 생각들이 하나 둘 지워지고.
인간의 권리 라던가.
자존심 이라던가.
여자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 이라던가.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난 뒤에
그 뒤에 남는 것은.
오직.
가고싶다.
라는 생각 뿐.
하지만…. 교도관님이…
교도관님의 명령이 없으면….
정말 한번이라도 갈 수 있으면…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결국 모든 것은 교도관님의 마음대로.
저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숨을 헐떡이는 것 뿐.
화상이 아니라, 살이 녹아버리고, 그 안에 뼈까지 녹여버릴 것만 같이 뜨거운 온탕.
온 몸을 발 끝에서, 머리 끝까지 얼려버리고, 그것을 산산조각 부숴버릴 것만 같이 차가운 냉탕.
아스팔트가 녹아버리고, 전봇대가 휘어버리는 여름.
눈이 허리까지 쌓이고, 깊은 강이 꽁꽁 얼어버리는 겨울.
도저히 인간이 버틸 수 없는 자극의 반복.
1시간 전에는 제발 가게 해달라고 빌다가.
그 한시간 후에는 제발 그만 가게 해 달라고 애원하는 일상.
여자로서,
아니 그 전에 인간으로서,
바닥까지 비참해지는 느낌.
그저… 그저 저를 통제하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는 것들이.
마치 아이가 연못에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듯이.
저를 미칠듯이 괴롭히는 족쇄가 되어서…
차라리… 차라리… 제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느끼는 것도…
가버리는 것도…
멈추는 것도…
그렇다고 아무 자극이 없는 것도…
모든 것이 실증 났습니다.
눈에 닿는 모든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한줌 빛조차 없는 어둠 속.
들리는 것은 오직 자신의 숨소리와, 심장이 뛰는 소리 뿐.
하루 중 유일하게 눈을 감을 수 있는 시간.
저는 잠에 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밤 따라 묶여있는 팔다리가 유난히 갑갑해서.
너무 서럽고 힘들어서.
몸이 너무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잠도 쉽게 잘 수 없어서…
그래서… 그래서인게 틀림없습니다.
아니 그래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쿵쾅쿵쾅 뛰는 이 심장도.
숨을 들이 뱉을 때 마다 섞여 나오는 한숨 섞인 열기도.
몸에서 조금 열이 나는 것 같은 뜨거움도.
아무 생각 없이 멍한 머리 속도.
그리고… 그리고…
몸을 조금 뒤척일 때 마다 피부에 닿는 공기가 이렇게나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가슴 돌기가 바짝 서서 도저히 가라앉지 않는 것도…
그리고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축축하고 끈적한 물기도…
떠올려 보면, 오늘 하루종일 교도관님은 저의 몸을 애태우시기만 하셨지, 저에게 단 한번도 절정을 허락하지 않으셨었습니다.
어제도…
그제도…
이제 몇일째 인걸까요?
물론 그 절정은 절대 한번으론 끝나지 않지만.
그래도 계속 이렇게 애태워지는 것도…
슬슬 한계가 아닐까요?
아무리 생각을 다른 쪽으로 돌려 보아도…
지금 이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다 보고 있다는 걸 알아도…
심지어 교도관님 또한 보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몸이…
몸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아주 조금 뒤척이는 것 만으로도…
공기에 맨 살이 닿는 것 만으로도…
엉덩이골로 끈적한 액체가 흐르는 것이 느껴지는 데...
정신이 아득해 졌습니다.
그리고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어느새 저는…
결국… 결국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손발이 묶여 있으면서도…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생각 하면서도…
그러면서도…
이것 말고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아서…
다리를…
그러니까 발목이 묶여서 억지로 팽팽하게 벌려져 있는 다리를 있는 힘껏 오므려서…
정말 있는 힘껏 허벅지를 붙여야 느껴지는 그 아주 조그마한 압박감에 숨을 헐떡이면서…
저도 이러면 안되는데… 라고 생각은 했지만…
평소에 막 자주 하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잖아…
라고 자기 스스로를 어떻게든 변명하면서…
안간 힘을 써서야 간신히 느낄 수 있는, 아주 잠깐의, 아주 약한, 자극.
하지만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태껏… 애태워진 만큼… 너무도 달콤해서…
어느새
심장이 빨리 뛰고…
허리가 들썩이고…
숨이 가빠져 왔습니다.
조금 힘들긴 하지만, 자기 스스로 몸을 움직여서, 적당히 기분 좋게 하는 것이, 정말 얼마나 좋은 것인지, 왜 이걸 잊고 있었는지 하는 생각까지…
그리고 이제 정말…
정말 앞으로 딱 몇 초면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그 순간.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이, 소스러치게 공포스러운 목소리가.
“쯧… 256번…. 진짜… 누가 발정나서 뇌 속에 보지 비비는 거 밖에 생각 안하는 변태년 아니랄까봐…”
“하아… 씨발… 이시간에 뭐하는건지….”
단단히 화가 난 차가운 목소리.
아까 까지…
불과 1초 전까지만 해도 뜨거웠던 몸이 순식간에 팍 식어버리다 못해 꽁꽁 얼어버리는 감각.
그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온 몸이 마비된 것 마냥 손가락 하나도…
“256번. 본 교도관의 허락 없는 자위 행위는 규칙 위반 입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사안이 심각하니, 징벌방에 가야 될 것 같군요….”
그리고 들려오는 “징벌” 이라는 단어…
이번에는… 징벌방…
딱 한번 밖에 당하진 않았지만 징벌은…. 징벌은… 정말 꿈에 나올 만큼 끔찍했습니다.
그리고 징벌방은…
극도의 공포감 때문인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혀…
지금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교도관님께 용서를 빌어 보지만…
“아… 아.. 겨 겨도가안니임… 쟐모해쎠!”
말조차 다 끝마치지 못하고
“윽… 으…”
따끔 하고, 정전기가 튀는 소리와 함께.
의식이 뚝 하고 끊겨져 버렸습니다.
징벌…
징벌은 싫어…
제발… 그것만큼은…
떠오르는 기억.
“그 전에… 256번은 어제 중대한 규칙을 위반하였습니다. 입감 첫날에는 규정상 징벌을 줄 수 없지만, 두번째 날부터는 징벌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규칙 위반은 반드시 징벌을 받아야 힙니다.”
“잘했습니다. 256번 지금부터 징벌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징벌을 통해 다시는 규칙을 위반하지 않도록 반성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 어떠한 경우라도 수감자는 담당 교도관의 허가 없는 배설이 금지되어 있으며, 이를 어긴다면 징벌대상입니다.”
안돼….
싫어….
잘못했어요… 제발…
제발… 말 잘 들을게요…
제발…
벌리라고 하면 벌리고…
싸라고 하면 쌀게요…
그러니까 제발 징벌은…
“256번. 본 교도관의 허락 없는 자위 행위는 규칙 위반 입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사안이 심각하니, 징벌방에 가야 될 것 같군요….”
아….
아아아아…..
왜… 대체…. 나는… 무엇을…
시…
싫어…
여기서 내보내줘…
아픈 거 싫어!!!
싫다고오오!!
엄마! 아빠!!
제발! 아무나 도와주세요…
징벌은…. 징벌은 안돼…
싫어어어어어!
“으으윽… 흐으으으으… 하아… 하아… 지 징벌은… 시러어… 아아아…”
“256번 정신 똑바로 차리십시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 올려서, 눈을 깜빡이며 초점을 맞추는 저.
손으로 눈을 비비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길들여져버린 저.
보나마나 묶여 있을 테니까요…
애초에 교도관님 허락 없이 움직이면 징벌이….
징벌?!
그 소름끼치는 단어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으아아… 아아아?...”
어두침침한 밝기.
조금이라도 앞으로 몸을 기울이면, 바로 코가 닿을만큼 저를 압박하고 있는 거울 벽.
그리고 역시나 묶여 있는 몸.
온 몸에 서늘한 금속의 감촉이 맴돌았습니다.
어둠이 가득한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빛은.
바로 자신이 처해져 있는 상황 이었습니다.
한 눈에 보아도,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벗어날 수 없을 만큼, 굵고, 튼튼해 보이는 쇠창살이.
바닥에도, 천장에도,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앞에도, 뒤에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촘촘하게 박혀 있고.
그 안에 갇혀 있는 저.
마치 맹수의 우리 같은 생김새.
하지만 이 우리는 대형견이나, 호랑이를 가둬놓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딱 사람. 남자는 도저히 안되고, 여자만.
그러니까 제가 간신히 몸을 한껏 움츠려서 욱여 들어갈 만한 크기 였기에.
이것이 저를 위해 만들어 진 것임을 실감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모서리 마다 커다란 배에서 쓸법한 굵고 단단해 보이는 쇠사슬이 어딘가로 연결된 채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어서, 이 철장 자체가 절대로 움직일 수 없게끔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허벅지. 종아리. 등. 허리. 가슴. 어깨. 팔. 목 사이사이에서 저의 몸을 해부용 개구리처럼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있는, 쇠창살 사이 사이의 흠에 딱 맞게 집어 넣어진 굵은 금속 봉.
발이 철창의 양 벽면에 닿을 만큼 활짝 벌려지고, 골반은 또 억지로 천장에 닿을 만큼 들어 올려져서, 허리는 단단히 고정 된 채. 목과 얼굴이 정면을 바라보게끔 만들어진 자세.
마치 개 같은…
일단 온 몸에 휘감기는 서늘한 금속의 감각이 매우 불쾌했고.
허리나, 가슴 부분의 봉에서 체중이 실리는 만큼 아팠습니다.
그나마…. 정말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평소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결박과는 달리, 지금 저의 몸을 고정하고 있는 철봉은 아주아주 조금씩은 틈이 있어서. 그만큼 몸을 움직일 수가 있었고.
불과 1센치도 안되는 자유지만…
그정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아무런 저항도… 반항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래도…
아주 조금 위안이 되었습니다.
“일어났으니까 바로 진행하도록 하죠. 256번.”
움직이지 않는 목을 대신해 바쁘게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살펴보는 저의 몸을 울리는 듯한 커다랗게 메아리 치는 교도관님의 목소리.
등줄기를 타고 돋아나는 소름.
빌고…
애원하고…
울고…
소리치고…
절망하고…
아파하고…
그럼에도 끝나지 않고…
포기하고…
괴롭고…
되살아나는 악몽 같은 시간과, 감정들.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사과의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다고…
뭐가 그렇게 나쁘다고…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그저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겨.. 겨더콴니임… 자 잘모해쎠여… 댜… 댜시는… 댜시는 얀그렇케여… 졔… 제바아알… 제성해여….”
입 안에 물려진 작고 말랑한 말재갈 때문에 바보처럼 질질 새는 발음.
두려움에 벌벌 떠는 울음 섞인 약한 목소리.
주륵주륵 새어나오는 눈물.
뚝뚝 떨어지는 침.
눈앞이 깜깜해 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햔번마안…. 햐 햔번만 용셔혀쥬세여…. 마… 말 쟐들으꼐여…. 겨됴관님… 제발…”
자신이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싶은 비참함도.
내가 무엇을 했다고 이래야 하나 싶은 부조리함도.
저는 정말로 아무런 죄도 없는데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나 싶은 억울함도.
정말… 정말… 자신이 풀려나고 난 뒤에 어떻게 할건가… 싶은 조그마한 분노도.
그리고 아주아주 옅은 체념도.
모두 벗어 던지고 남은 것은.
오직 용서를 비는 말들 뿐.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징벌 이란 단어에 벌벌 떨면서.
생에 이렇게 바라본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정말로 간절히 애원했지만.
저를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아니.
저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정말로 말 그대로 신 그 자체로 느껴지는.
교도관님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어떤 명령을 할지도 모르는데
하는 말 다 잘 듣겠다고.
제발 한번만 봐 달라고.
빌고, 애원하고, 뗴를 쓰고, 기도하고, 부탁하고, 매달리고, 투정하고, 사정하고, 애걸하고, 조르고, 바라고, 간청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보아도.
돌아온 것은.
돌아온 말은.
“256번은 본 교도관의 허락 없이 자위를 하는, 중대한 수감자 규칙 위반을 저질렀습니다. 맞습니까?”
햇볕이 없는 차가운 밤. 깜깜한 어둠 속에 홀로 갇혀버린 듯한 새까만 절망.
“아…. 으으……”
“대답을 하지 않으면 징벌이 더 늘어날 뿐입니다 256번. 대답하십시오. 256번은 본 교도관의 허락 없이 자위를 하는, 중대한 수감자 규칙 위반을 저질렀습니다. 맞습니까?”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 속에 빠진 듯한 새파란 차가움.
“네에… 마자여…”
“256번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입 밖으로 내뱉어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가 있는 듯. 목에 걸려서 도무지 튀어나오지 않는 것을… 억지로 억지로…
“……. 겨도관님…. 허략… 엄시…. 자위하며언… 안돼는데에… 자위… 햐뱌려써여…”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불안과 공포에 젖은 눈.
눈물을 펑펑 쏟아도 바뀌지 않는 현실.
사정없이 떨리는 몸.
“……… 시러어… 시러여…. 으으으으으…. 시러어….”
애써 부정해 봐도.
돌아오는 따가운 침목이 저를 재촉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결국…
결국…… 저는 교도관님이 원하는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너무 싫은 걸…
정말… 정말로 그것 만큼은 진짜 싫은 걸…
하지만 제가 대답을 피할수록.
교도관님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을수록…
제가 더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눈을 꾸욱 감고, 입 밖으로 내뱉어진 말은.
“………….. 벌…. 받아야 해여어…”
마치 제가 저 스스로에게 내리는 엄중한 사형선고 같이 느껴졌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