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일주일. 변화
* * *
아래쪽 털이 거의 다 뽑혀 나가면서, 둔덕의 살이 퉁퉁 부어 올라서, 날카로운 바늘로 쿡쿡 쑤시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지는 와중에.
그 아픔 보다 더더욱 아팠던 건.
저를 마치, 척수 반사로만 살아가는 짐승 정도로만 대하는 태도들.
당연한 것을 바라보는 무감정한 시선들.
아예 말조차 걸어주지 않는.
눈조차 마주쳐 주지 않는.
그 상식에서 벗어난 비인간적인 모든 것들이 저를 바닥으로 넘어뜨렸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의 생활을 3가지 말로 나타내자면.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의 억울함과,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섞여 나가는 체념.
그리고, 아프거나, 괴롭거나, 힘들거나, 그것도 아니면 수치스럽거나.
또 마지막으로…
제발 그만 느끼고 싶다거나…
지금도 보세요.
"지금부터 256번의 아침 검사를 시행하겠습니다."
저를 집어삼킬 거대한 악의가.
저에게 성큼 다가오는 발소리가.
움찔 떨리면서..
심장이 쿵쾅쿵쾅 펌프질을 하면서
어느새 공기의 흐름 조차 느껴질 정도로 민감하게 변해버린 보지가.
이렇게…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비록 인간의 삶은 아니지만.
삶은 계속해서 이어져 나가는 것이겠죠.
괴롭고 힘들고, 아프고 비참한 삶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흔히 인간의 3대 욕구를 꼽자면 식욕, 수면욕, 그리고 성욕을 말하곤 합니다.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큰 욕구를 느끼는 부분 이라고들 말하는데...
하지만 숨을 쉬고,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교도관님의 허락이 필요한 해암 교도소의 수감자 에게는 인간이 느끼는 욕구란 것은, 그저 교도관님의 필요성에 의하여 수감자를 통제, 관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먹는 것조차.
역류를 방지한다는 이유로 코를 막은 채, 강제로 입속에 위장 까지 닿는 커다랗고 길죽한 배식 튜브를 쑤셔넣고, 마치 먹이를 거부하는 동물원의 길들여지지 않은 짐승을 조련하는 마냥, 저항하지 못하게끔 온 몸이 꽁꽁 묶여서, 튜브를 통해 뱃속에 강제로 밀려 들어오는 쓴맛의 허옇고 끈적한 내용물도 알 수 없는 죽같은 무언가와, 끔찍한 질식의 공포와, 아무것도 씹거나 삼킨 것이 없는데도 배가 불러오는 불쾌한 감각, 그리고 온 몸을 꽉 조이는 갑갑한 결박의 미칠 것 같은 답답함.
언제나 질식으로 눈이 돌아갈 때까지, 억지로 억지로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스러운 식사를.
매일매일...
하루에 3끼가 아닌 것이 차라리 다행인걸까요?
하지만 그 배식 조차도 영양학적으로는 완벽할지 몰라도, 사실은 배를 채우기에는 부족해서, 금방 허기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일부로 배고픔을 느끼게끔 만들었다고...
저에게 배부르다 라는 느낌은 사치라고...
제가 죽인 피해자 분들은 모두 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었는데, 저도 똑같은 고통을 느껴야지 맞는 거 아니냐면서...
저는 하지도 않았는데...
제가 한게 아닌데...
이제는... 이제는... 억울하다는 생각조차 끔찍한 고통과, 세뇌에 가까운 매도에 희석되기 시작해서...
디저트로 달달한 카페 모카는 커녕,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당분은 냄새 조차 맡지 못한 채, 하루 종일 굶주림에 허덕이면서, 바닥에 흘린 자신의 토사물을 핥아 먹어야만 하는 믿기지 않는 현실.
먹는 것조차.
그런 가장 기본적인 것 하나 조차도…
심지어 수면에 관한 것은 더더욱 저를 괴롭혔습니다.
모든 시간들 중 가장 편안해야 할 취침 시간조차, 벽으로 사방이 막힌 좁은 방안에 사지가 꽁꽁 묶인 채 자신이 하루종일 흘린 땀과 침 눈물 콧물 애액 등의 분비물과 살을 맞대고 잠을 자야 했습니다.
몸과 정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교육 이란 이름을 빙자한 고문이나, 학대로, 항상 몸은 부숴질 것만 같이 아픈데, 그런 피로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11시에서 5시 까지의 짧은 시간 뿐.
그 조차, 사지가 꽁꽁 묶여 있는 불편함과, 등 뒤의 맨살에서 느껴지는 기분 나쁜 축축함, 그리고 오늘 일어났던 끔찍한 일들이 꿈에 나올 것만 같은 두려움과, 내일은 또 어떤 끔찍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잠이 달아나는 기분에…
그리고... 그리고..
아무도
어디도 만지고 있지 않은데…
그저…
그저 공기에 닿는 것 만으로도…
단지 그것 만으로도…
달아오르는 몸이...
정신과 몸이 아무리 죽을 것 같이 피곤해도
머리 속을 가득 채우는 달콤한 열감이…
어둠 속에 혼자 갇힌 저를 잠못들게, 그리고 애닳게 괴롭혔습니다.
그렇게 가뜩이나 짧고, 또 불편한 취침시간의 반동은, 곧장 낮에 찾아왔습니다.
세뇌에 가까운 정체모를 교육들.
사람의 인권을 짓밟는 악의 넘치는 훈련들.
가만히 있어도 숨쉬듯 날아오는 매도와,
현실에서 조금만 눈을 돌려도 약속처럼 찾아오는 고통스러운 징벌.
그냥 깨어 있는 것 자체 만으로도 피로를 느끼는 나날.
한 숨 한 숨이 괴롭고, 원망스러운 시간들.
교육 하나가 끝나고 다음 교육이 시작되기 전의 대기 시간.
물론 이 시간에조차 저에게 자유란 존재하지 않았고, 몸의 어디 한군데도 가리지 못하는 선정적이면서도 또 유지하기 힘든 자세로 교도관님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미 한계를 넘어까지 혹사된 몸.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신분.
눈을 어디로 돌려도 보이는 꼴사나운 자신의 모습.
얼마나 지났는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조차 모른 채.
그저 하염없이 교도관님의 목소리만을…
벌벌 떨리는 몸.
욱신거리는 아랫배.
바싹 마른 입술.
온 몸에서 삐질삐질 흘러 나오는 땀.
피로는 절정에 달해 있었고, 눈을 깜빡이는 것 조차 힘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눈을 감았다 떠 보니까.
자신의 몸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자신이 기절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찾아온 것은 온 몸을 범하는 강렬한 전기 충격 이었습니다.
"끄으으으으아아아아아... 버텨... 버텻는데에...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아무리 당해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뇌를 직접 불로 지지는 듯한 이 전기 충격.
저는 본능 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 고통은, 아까 전과 같은 자세를 취할 때 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짐승이 낼법한 신음소리를 입 밖으로 흘리면서,
벌레처럼 몸을 꼼지락 꼼지락.
한번은 일어나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바닥에 철퍼덕 엎어졌다가,
결국 간신히 자세를 다시 취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눈을 잠깐 깜빡였다 싶으면.
어느새 몸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약속과 같이 전기 충격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무리 정신을 다 잡아도.
아무리 눈에 힘을 줘봐도.
아무리 이를 꽉 물어 보아도.
이미 한계까지 몰린 몸과, 정신이.
쌓아 올려진 피로가.
마치 인형의 실이 한가닥 두가닥 툭툭 끊어지는 것 처럼.
저는 도저히 저의 몸을 가만히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끝도 없이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다가 체력이 다한 탓에, 기절조차 하지 못하고 뱃속에 장기를 모조리 다 태워버리는 듯한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며, 어느새 손가락과 발가락만 움찔움찔 거리고 있는 저의 머리를 짓밟고 계시는 교도관님.
"256번 취침 시간에 뭘 했길래 이렇게 꾸벅꾸벅 조는 것이죠?"
"으으으으... 끄으으으으으으..."
그렇게나 울어놓고서는 아직도 몸 속의 수분이 남아 있었는지, 끔찍한 고통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저의 눈을 친히 맞대주던 교도관님은 제가 다시 자세를 취할 수 있게끔 도와주셨습니다.
한 손으로 머리채를 잡아 저를 일으켜 세워주시는 걸로 말이죠.
"사실은 말입니다. 목줄의 기능을 이용해서 수감자가 피로를 느끼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말이죠”
얄미운 표정의 교도관님께서 단지 터치 스크린을 한번 꾸욱 누르는 것 만으로.
단지 그 작은 손가락질 단 한번만으로.
"으으으으……."
온 몸의 감각이 둔해진 것이 느껴졌습니다.
잔떨림이 진정되는 팔다리.
가빠진 숨이 다시 멀쩡해지는 느낌.
그러면서 정신은 더욱 맑아지고.
머리 속을 태우는 듯한 전기 충격의 공포도 아주 조금 둔해지면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기존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몸이 이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편하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자.. 어떠신가요 256번. 물론 이런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지, 256번 같이 사회와 영원히 격리되어야 할 범죄를 범한 흉악범에게는 당연히 쓸모가 없겠죠?”
그리고 불과 3초의 달콤한 시간 이후 찾아온 추락.
아까 전 까지만 해도 가볍게만 느껴지던 몸이,
마치 달에 있다가 지구에 착륙한 것처럼.
너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현실을 일깨우는 전기충격의 고통과.
눈을 깜빡 하고 떠 보니까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지면에 곤두박질 쳐 있는 몸.
“물론 말을 잘 들으면 한번쯤은 생각해 보겠지만… 자 256번, 대기 자세를 취하십시오”
너무나 짧아서, 마치 꿈만 같이 몽롱하게만 느껴졌던 세상 모든 것에서 해방된듯한 감각.
말을 잘 들으면….
말을 잘 들으면…
교도관님의 말을 잘 듣는 건 너무 당연한 거니까…
그러니까…
바닥에 축 늘어진 몸에 어떻게든 힘을 불어넣으면서 다시 자세를 취하는 저.
하지만 그 이후에.
그 다음 날도.
그 다다음날에도.
그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시간 따윈 저에게 주어주지 않았고.
있는 것은…
그저 눈을 잠깐 깜빡이면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쳐 박혀 있는 몸과.
그리고 약속처럼 찾아오는
뇌가 익어버리는 것만 같은 전기충격.
퓨즈가 나가버린 전구 마냥.
깜빡 깜빡.
그리고 수동으로 전기가 온 몸을 헤집고 들어와서야 억지로 기능하는 몸.
실에 연결된 연극용 인형처럼.
저의 몸인데도 불구하고 교도관님의 손 끝에서 가지고 놀아지는 듯한 감각.
몸과 정신이 너무너무 힘드니까, 조금씩 조금씩 생각이 줄어들고, 이성이 멀어져 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머리 속에 남는 것은 그저 두가지 선택지.
복종을 하거나.
아니면
아파하거나.
성욕은…
성욕은… 마치 여름이나 겨울 같았습니다.
적당한 선 없이.
사람이 견디지 못할 만큼. 그저 그저 극단적일 뿐.
이미 너무 많이 가버렸는데…
가고 있는 와중에도 또 가버려서…
도저히 가버리는 게 멈추지 않아서…
이미 아픈데도 또 가버려서…
정말로 가고 싶지 않은데도 계속 가버려서…
이대로 가면 미쳐버릴 것 같은데…
정말로 죽어버릴 것 같은데…
제발 그만 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도… 그런데도…
아무리 추하게 무너지며 부탁해도…
모든 것은 교도관님의 마음대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딱 1초, 딱 한번의 자극 만으로도 가버릴 수 있는데…
정말로 가기 직전에 딱 멈춰버려서…
눈만 깜빡이면, 숨만 한번 들이 쉬면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그저… 그저… 허벅지를 조금 오므리는 것 만으로도…
지금 가버리면 정말 좋을건데…
정말 정말로 좋을건데…
하지만 교도관님이…. 교도관님이…
아 정말 딱 한번만 갈 수 있으면….
점점 머리 속에 있던 다른 생각들이 하나 둘 지워지고.
인간의 권리 라던가.
자존심 이라던가.
여자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 이라던가.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난 뒤에
그 뒤에 남는 것은.
오직.
가고싶다.
라는 생각 뿐.
하지만…. 교도관님이…
교도관님의 명령이 없으면….
정말 한번이라도 갈 수 있으면…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결국 모든 것은 교도관님의 마음대로.
저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숨을 헐떡이는 것 뿐.
화상이 아니라, 살이 녹아버리고, 그 안에 뼈까지 녹여버릴 것만 같이 뜨거운 온탕.
온 몸을 발 끝에서, 머리 끝까지 얼려버리고, 그것을 산산조각 부숴버릴 것만 같이 차가운 냉탕.
아스팔트가 녹아버리고, 전봇대가 휘어버리는 여름.
눈이 허리까지 쌓이고, 깊은 강이 꽁꽁 얼어버리는 겨울.
도저히 인간이 버틸 수 없는 자극의 반복.
1시간 전에는 제발 가게 해달라고 빌다가.
그 한시간 후에는 제발 그만 가게 해 달라고 애원하는 일상.
여자로서,
아니 그 전에 인간으로서,
바닥까지 비참해지는 느낌.
그저… 그저 저를 통제하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는 것들이.
마치 아이가 연못에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듯이.
저를 미칠듯이 괴롭히는 족쇄가 되어서…
차라리… 차라리… 제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느끼는 것도…
가버리는 것도…
멈추는 것도…
그렇다고 아무 자극이 없는 것도…
모든 것이 실증 났습니다.
눈에 닿는 모든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