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일주일. 변화
* * *
눈이 아플 정도의 환한 빛이 잠깐.
그리고 그 뒤에 보인 것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병원의 풍경이었습니다.
보건실에서 흔히 보는 키와 몸무게를 재는 장치.
벽 곳곳에 붙어있는 예방 접종 포스터들.
사람들이 앉아서 대기할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잡지들.
구석에는 작게 커피와 차도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러한 의무실의 한 가운데에서 말도 안될만큼 부끄러운 자세를 취한 채, 볼일을….
게다가
의자에는 교도관님과 같은 정복을 차려 입은 여자가 앉아있어서,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하고 있어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진 않지만…
아니 오히려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같은 여자면서 제가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데도 저렇게 무관심하게…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그리고 바로 앞에는 평범한 간호사복을 차려 입은 중년의 여성이, 접수대 너머로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정말 무표정한 표정으로 말이죠.
그리고 타일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투명한 배변 백에… 연결되어 있는 관이 저의 엉덩이에…
새삼스럽게 올라오는 수치심에 가뜩이나 새빨간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그러한 저의 동요를 귀신 같이 알아차렸는지 교도관님은
“뭐하고 있습니까 256번, 지금 아니면, 다음 배변 허가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리고…
눈 앞이 깜깜해질 정도의 배변욕구…
애초에 더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있건 말건…
사람이 저를 보고 있건 말건…
더는… 더는…
단순히 힘을 빼는 것 만으로는 호스 밖으로 관장액은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치 심한 변비에 걸린 것처럼, 반드시 있는 힘껏, 아랫배에 힘을 꾹꾹 주어서 내보내야만, 아주 조금 빠져나올 뿐.
저는 사람들 앞에서 알몸으로… 게다가 이런 자세로 방 한가운데에 놓여서 배설을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수치심과, 서러움에 복받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저 저항할 의사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다른 자세들도 많은데, 굳이 몸의 모든 부끄러운 부분들을 드러내 보여야 하는 힘든 자세를 유지하면서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이대로 가면은 아무리 지나도 지금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이 괴로운 뱃속은 편해지지 않기에,
아랫배에 힘을 꾹꾹 주어서, 뱃속의 내용물을 밀어내야만 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온 힘을 다해서 끙끙 거림에도 불구하고 밀려 나오는 관장액은 정말 몇방울 정도뿐인게 눈에 보였을 때는 정말로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렇게 한참동안 그 자세 그대로 거기서…
배변이 늦다는 비인간적인 이유로…
가슴이나 배에 채찍질을 당하거나…
배를 발로 차이면서…
그리고 더 서러웠던 건…
실오라기 하나 없는 알몸으로… 게다가 이런 변태적인 자세를 억지로 취해져서, 이런 비 인간적인 행위들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에 휘감기는 채찍 소리나, 훤히 드러난 무방비한 배를 구둣발로 걷어차여서 바닥에 철퍼덕 쓰러지는 소리가 나서야지, 의자에 앉아서 하염없이 스마트폰을 하고 있던 여자가 이쪽을 몇초동안 바라보다가,
아무 표정 없이 다시 눈을 돌렸고,
접수대의 간호사분도 아예 다른 용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제가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것이, 정말로 당연한 것처럼.
저는 정말로 이런 취급을 당하기 위해 태어난 것 마냥.
그 차갑게 소름 끼치는 무관심 속에서, 저는 서럽게 엉엉 울면서,
간신히, 정말 간신히 배변 백을 모두 채웠습니다.
그렇게 끔찍하게 힘들었던 배변이 다 끝난 후, 구멍 깊숙한 곳 안까지 들어가 있던 호스가 쑥 하고 빠져나올 때, 내장이 같이 딸려나오는 불쾌한 감각과 함께, 속 안에 남아있었던 관장액 한두방울이 뚝뚝 떨어졌는데, 그것을 본 교도관님은
“256번은 정말로 칠칠못하군요, 어떻게 볼일보고 나서 뒷정리도 제대로 못하는거죠?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256번?”
라고 저를 매도하면서, 저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며, 대기자세 5번을 명령하셨고, 저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소리 없이 오열하는 가운데에, 순순히 명령에 따라야 했습니다. 이 와중에, 교육받은 대로 교도관님이 제 엉덩이를 더욱 때리기 좋으시게 허리를 살짝 드는 것도 잊지 않았죠.
그러던 사이에 어느새 접수대에서 나왔는지, 이쪽으로 다가온 간호사님이
“다 끝나셨죠? 그럼 면담 준비를 해야하니까, 부탁드려요 교도관님”
“네 알겠습니다. 256번, 지금부터 면담 준비를 할 겁니다, 별거 아니니까, 몸에서 힘 빼고, 얌전히 있으십시오”
라고 말한 교도관님은, 저의 몸 위에 올라타서, 무릎으로 제 등을 누르면서, 포개진 저의 팔을 아플만큼 꼬옥 붙잡아 저를 고정시키셨습니다.
별거 아니라고 했으면서…
이렇게까지 안해도, 어차피 저에게 저항할 생각 따윈 조금도 남아있지도 않았는데…
마치 억지로 동물 병원에 데려온 맹수를 다루는 것 마냥…
조금의 자유도 허락할 수 없다는 듯이, 저의 몸을 단단하게 붙잡는 교도관님의 손길이 두려워져서, 불안함에 눈을 꾸욱 감았습니다.
벌벌 떨고 있으면서, 저항할 수단도 없는 알몸에 한없이 무방비한 복종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모자라 교도관님의 저의 몸을 붙잡고 있는 것도 모자라서, 아예 저의 의지로는 고개를 움직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머리를 꾸욱 힘을 줘서 짓밟는 실내화의 감촉.
간호사님 이었습니다.
“자 얌전히 있으세요”
마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듯한 목소리로.
저의 머리를 꾹꾹 짓밟고 있는 발에 더더욱 힘을 주면서
무겁고 서늘한 목줄이 채워져 있는, 목덜미에 느껴지는 주사 바늘의 따끔한 아픔.
“읍… 으으으읍…. 끄으으읍…”
왜 이렇게 단단하게 붙잡나 싶었는데…
제 몸에 약을 놓기 위함 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권조차 없는 비인간적인 감옥.
그 안에서 죄수에게 투여되는 약물.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약은 아니겠죠…
주사바늘을 통해 목덜미로 느껴지는 서늘한 약물의 온도.
저는 정체모를 약물이 제 몸 속으로 들어온다는 공포감에, 발작하듯 몸을 떨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교도관님과 간호사님은 더더욱 힘을 주어서 저를 제압했습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그저 진정제일 뿐입니다 256번, 몸에 힘 빼세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저를 진정시키는 교도관님의 목소리.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줄기를 통해서 서서히 밀려 들어오는 약물의 생소한 감각에 몸에 멋대로 힘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고, 아무리 몸에서 힘을 빼려고 해도, 밀려오는 공포와 긴장감 때문에 마치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 마냥 파닥파닥 거리는 사이, 어느새 주사는 다 끝났는지, 저의 머리를 바닥에 짓누르던 간호사님의 실내화는 사라져 있었습니다.
“아직 교육이 많이 부족하군요 256번…”
그리고 한숨을 쉬면서, 저를 풀어주시는 교도관님의 목소리.
추하게 엎어져 있는 제 엉덩이를 향한 발길질은 덤이었습니다.
교도관님의 발길질로 인해 옆으로 쓰러진 몸을.
교도관님의 허락 없이 자세를 바꾸면 징벌.
이라는 생각 하나에, 무의식 적으로, 언제나 그래왔듯,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워서 자세를 취하려 했는데,
몸이 바닥에 착 달라붙어서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마치 몸이 액체로 변한 것 마냥, 팔다리를 움직이려고 아무리 낑낑거려도,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진정제의 효과인걸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교도관님의 발길질은 멈추지 않아서, 저는 숨을 헉헉 거리면서, 재갈 사이로 침을 질질 흘리며,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짐승 같은 신음소리를 흘리며, 어떻게든 꿈틀꿈틀 벌레처럼 간신히 끙끙 거리면서, 마치 근육이 녹아 내려버린 것 같이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어떻게든 이를 꽉 깨물고 움직여서, 간신히 간신히 쓰러졌던 몸을 일으켜 세우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부들부들 거리는 손을 뒤로 교차시켜 등 위에 올리는 데에 성공했고, 그게 정답이었는지, 그제서야 교도관님의 발길질은 멈췄습니다.
그리고 그 때를 딱 맞춰서 휠체어 같은 무언가를 끌고 나타난 간호사님.
“면담용 의자 가져왔어요 교도관님.”
간호사님이 손잡이를 잡고 끌고 온 그것은 딱 봐도 의자에 바퀴가 달린 휠체어와 똑 같은 구조로 되어 있었지만,
우선 말랑한 가죽 부분 하나 없이, 모든 부분이 단단해 보이는 철로 만들어져 있는 만큼 전혀 휠체어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휠체어 보다는 조금 더 큰 크기, 게다가 일반 휠체어에는 없는 목받침까지 달려 있었습니다.
거기에 목 받침대 부분에는 두터운 가죽 벨트 구속구 3개가 달려있는 것을 시작으로, 철제 휠체어의 여기 저기에 딱 봐도 절대 힘으로는 풀 수 없을 법한 구속구들이, 팔과 다리 부분은 물론이고, 심지어 편집증이 느껴질만큼 촘촘하게, 손가락과 발가락을 구속하기 위한 조그마한 벨트 구속구들 까지…
결코, 그 어떠한 맹수 조차도, 위험하다는 것을 이유로 저만큼 벨트를 온 몸에 칭칭 감고서 의사를 보러 가진 않을 것입니다.
제 머리채를 잡고 저를 천천히 일으켜 세우는 교도관님의 손에 저는 후들후들 거리는 다리에 간신히 힘을 주었지만, 교도관님의 손길을 다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엔 똑바로 서지 못한 채, 온 몸의 체중이 머리카락에 실리는 끔찍한 아픔에 비명을 질렀지만.
“끄으….. 끼잉…. 아….. 으으….”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은 낑낑 거리는 작은 신음 소리 뿐.
팔이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 근육이 흐믈흐믈하게 녹아버린 것 같은 무서운 감각 속, 유일하게 선명한 아프다. 라는 감각.
저는 그 상태로 휠체어에 앉혀졌습니다.
맨살에 오싹하게 감겨오는, 서늘한 철의 감촉.
“그럼 결박 부탁드립니다.”
라고 교도관님이 말하자, 서둘러서 휠체어의 벨트를 몸에 감고 하나하나 꽉 조여대기 시작하는 간호사님.
금방이라도 마취가 깨어날 것 같은 맹수를 묶는 것 마냥 빠른 손길로,
제 얼굴은 쳐다도 보지 않으면서,
묶인게 아프지 않냐거나, 벨트가 갑갑하지 않냐는 질문 따위는 하나 없이.
그저그저 빠른 손길로, 있는 힘껏 꽈악 휠체어에 저의 몸을 고정시키는 간호사님.
어느덧, 이마부터, 재갈로 막혀있는 얼굴에, 목줄이 채워져 있는 목 아랫부분, 가슴에, 배에, 허벅지에, 정강이에, 발목에, 팔에, 손목에, 그리고 손가락과 발가락을 하나하나 벌려 가면서, 조그마한 벨트 들까지 꾸욱 꾸욱.
애초에 이렇게까지 안해도 아까 맞은 약 때문에,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데…
그리고 굳이 약 같은 거 안 놓아도, 이젠 더 이상 저항할 의지조차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저 같은 사람은 맹수보다 더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렇게 다뤄져야 한다는 흔들림 없는 손길로 저의 모든 결박을 완료한 간호사님은, 마지막으로 한번씩들 벨트를 체크하시고는, 그대로 제 휠체어를 끌고
“그럼 가시죠”
교도관님에게 말하고는
진료실이라고 쓰여져 있는 문을 뚝뚝 두드렸습니다.
“선생님 256번 면담입니다.”
“네~ 들어오세요~”
안쪽에서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에 앞에서 문을 열어주는 교도관님.
진료실 또한 흔한 동네의 작은 병원 같은 분위기로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평범했습니다.
그저 몇가지의 간단한 검사 도구들과, 구석의 간이 침대, 화분의 식물, 각종 의료 관련 포스터들, 그리고 조금 큰 책상과 그곳에 앉아 있는 젊은 여자 의사, 그리고 그 앞에 등받이 없는 환자 의자 까지.
조금 특이한 점이라고는, 책상 앞 바닥에 휠체어 바퀴에 딱 맞게 흠이 조금 파여 있어서 있어서, 간호사님은 그곳에 바퀴를 맞춰서 넣은 뒤, 무언가로 휠체어 바퀴를 흠에 단단히 고정시킨 후 방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제 앞 환자용 의자에 앉으면서 인사하는 교도관님.
“오~ 박선생님~ 저번엔 잘 들어갔어요?”
“네! 저야 저번에 유미 언니가 바래다줘서 잘 갔죠, 근데 진우 오빠 승진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정말이었네요? 일은 할 만해요?”
“뭐 그저 그렇죠”
“요즘 허리는 좀 어때요? 신혼이 그렇게 허리가 안좋으면 어디다가 써요, 갈 때 약 좀 타가세요”
“네 고마워요”
면담 대상은 저인데…
저는 손가락 발가락까지 꽁꽁 묶인 상태로, 고개조차 움직이지 못한 채, 더럽게 침만 질질 흘리면서,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는데…
둘은 원래부터 친한 사이였는지, 저만 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의사 면담… 이라면서…
면담 받는 사람은 틀림없이 저 일텐데…
의사 선생님한테 어디가 아프다고 말을 섞어보긴 커녕,
입에 물린 재갈조차 벗겨주지 않고 말이죠…
“아! 근데 잠시만요… 냄새가… 으… 좀 너무 심해서…”
하면서 책상에 놓인 방향제를 주변에 뿌려 대는 의사 선생님.
“아… 저도 이 냄새는 익숙해지지가 않네요”
“그런가요? 유미 언니는 괜찮다고 하던데…”
그렇게 말하는 의사 선생님은 저를 바라보면서, 아예 제 주변에만 집중적으로 분무기를 뿌렸고,
그제서야 저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냄새 라는 건…
제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땀 냄새랑…
그리고 지독한 여자 냄새…
의사 선생님은 언어 표현의 자유조차 없이 휠체어에 꽁꽁 묶여 있는 저를 아예 사람으로 봐주지 않는 것인지, 조금은 불쾌한 눈으로 제 주변에 방향제를 칙칙 뿌리고는, 또 저를 내버려두고 교도관님과 즐거운 듯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이 때 교도관님이 웃는 모습 또한 처음 보았습니다.
의사 선생님과 웃으면서 대화하는 교도관님.
저에게는 항상 무표정하거나 그도 아니면 화난 모습이 전부였는데…
어쩌면 그것이, “사람”을 대하는 것과, “사람이 아닌 것”을 대하는 차이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러운 마음이 들어서 눈물이 찔끔 나왔습니다.
둘은 한참동안 대화를 나누다가, 마지막에는 다 같이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는 말을 끝내고
“자… 그럼 슬슬 일을 시작해 볼까요?”
드디어 본격적인 의사 면담이 시작되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