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일주일. 변화
* * *
누구나 나태에 빠지는 게으른 마법의 시간 오후 3시.
거실 소파에 널부러져서, 통유리로 들어오는 사랑스러운 햇볕을 받으며, 저는 낮잠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야 ~~~ 너 오늘 수업 있다고 안했어?”
저 너머 부엌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
“으으응?... 수업?... 으으음… 오늘… 휴강이야…”
“진짜로?? ~~~ 밥 먹고 바로 자면 살찐다?”
아마도… 반신반의 하지만… 아마 오늘은 휴강이 맞을거에요…
설령 아니면 뭐 어때요…
교수님도 이런 날씨에 이렇게 노는 것 정도는 다 이해해 주실거에요.
그렇게 푹신한 소파와 한 몸이 되어서 얼마나 누워있었을까요?
소파 옆 탁자 위에 올려둔 스마트폰에서 카톡 알람이 들려왔습니다.
까톡, 까톡.
누굴까?...
정연이가 아닐까요?
그러고보니까 내일 같이 옷 사러 쇼핑 가기로 했는데, 어디로 모일지 아직 안 정했었네요.
덕택에 이번 달 지갑은 눈물나겠지만…
그래도 옷은 영원히 남으니까요.
음.. 적당히 대학 앞에서 보는 게 좋겠죠?
근처에 아울렛도 하나 생겼던데, 옷 좀 보고, 같이 떡볶이나 먹으러 가면 좋을 거 같네요.
그렇게 카톡 답장을 보내려고, 소파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 폰을 집으려고 하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돌이 되어서 굳어버린 것 마냥 딱딱하게 굳어서는…
팔이나 다리를 아무리 휘적휘적 움직여 보아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언가가 사지를 꽉 붙잡고 맨 살을 파고드는 듯한 불쾌한 감촉에 부엌에 있는 엄마를 부르려 목소리를 내어 보지만…
“으읍…. 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소리를 내려면 내려고 할수록, 턱이 얼얼하게 아파오는 것이.
마치 입 속이 무언가로 막힌 듯한…
등에서 식은 땀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변의 밝았던 햇빛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눈 앞에 남은 것은 깜깜한 어둠 뿐.
폭풍이 오는 날, 거대한 파도가 바닷가에 밀려오듯 넘실거리며 넘어오는 새까만 공포.
이번에는 온 힘을 다해서 몸을 움직여 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손과 발에 무언가가 걸려있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감각 뿐, 몸은 제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았고,
오후의 나른한 공기도.
사랑스러운 햇볕도.
자신을 깨워주던 엄마의 목소리도.
같이 놀러가기로 한 친구의 연락도.
모든 것이 새까만 어둠 속으로 잠겨 들어가서는
있는 것은 그저
까만색.
단지 새까만색 뿐.
마치… 제게 남은 앞날과도 같은 그런…
.
..
…
….
…..
“현재 시각 5시. 수감자 여러분들은 모두들 일어날 시간입니다. 수감자 여러분들은 점호를 위해 대기 자세로 담당 교도관이 오는 것을 기다려 주세요.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막연한 공포감에 몽롱하게 취해 있던 저를 현실로 끌어 내리는 소리.
언제나와 같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아무런 전조도, 예고도 없이, 울려 퍼지는 여자 아나운서의 기계 같은 목소리.
벌써 몇번이나 들어왔지만, 흠칫 하고 등이 바닥에서 붕 뜰 정도로 놀라서 정신이 확 들었습니다.
맞아요… 이게 현실 인거죠.
자기 전 항상 대자로 묶여 있던 손발에 아주 잠깐의 자유가 돌아오는 철컥 하는 소리.
저는 꼬물꼬물 아직 피로가 남아있는 몸을 움직여서, 교도관님이 오기 전에, 점호 대기 자세를 취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다리를 벌려서, 손을 꽉지 낀 뒤, 머리 뒤에.
그렇게 자세가 완성되자 마자, 귀신같이 교도관님의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려옵니다.
“256번, 편안한 밤 되셨습니까? 지금부터 안대랑 재갈을 풀어드릴테니까, 점호 대기자세 그대로 대기하십시오”
일주일 동안 단어 하나 변하지 않는 아침.
그렇습니다.
제가 이곳에 온지 벌써 일주일이나 되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기간 동안 제가 본 사람은
“자 안대랑 재갈을 풀어드렸습니다. 곧바로 아침 점호가 시작될테니까 그대로 대기하십시오”
여기 있는 교도관님과.
그리고
교도관님이 사라지자 마자, 곧바로 좁은 방의 모든 벽이 거울이 되어서 비춰보이는
저 뿐.
그러고보니까, 이곳에 온 일주일 동안.
부모님의 목소리는 커녕
햇볕을 보거나,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불리거나,
아니면, 옷을 몸에 걸쳐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네요…
심지어 꿈에서 조차도 이름 한번 불려지지 않다니…
저는 256번이 아닙니다.
저한테는 이름이 있다고요…
하지만….
아주 조금 자란 부스스한 머리.
허벅지나 팔에서 군살이 조금 빠진 모습.
가슴이나, 허벅지, 아랫배 등등 몸을 조금 살펴보면 금방 발견할 수 있는 멍자국들과 혹독한 채찍질의 흔적들.
피곤에 찌든 눈과, 무표정한 얼굴 표정.
그리고…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도저히 가라앉지 않는 젖꼭지와…
무엇을 기대하는지 아침부터 바짝 서 있는 클리토리스…
살면서 몇번이나 거울을 통해 저의 몸을 바라보았지만, 난생 처음 보는 모습들.
무엇보다, 아래 쪽 털이… 밀려나가서… 태어났던 때 어렸던 모습 그대로 적나라한 그곳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는 끈적한 물까지…
불과 일주일 사이에 저는… 아니 저의 몸은 변해 있었습니다.
아침 점호는 항상 모든 수감자들이 준비가 되어야지 시작됐기 때문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저는 어쩔 수 없이 저의 이런 모습들을 이런 자세로, 짧으면 몇분, 길게는 몇십분 동안 쳐다봐야만 했습니다. 눈을 조금이라도 돌리게 되면 귀신 같이 찾아오는 교도관님의 매도와, 전기충격과 함께 말이죠.
"하나. 저는 해암 교도소의 수감자로서 매일매일의 교화 활동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나. 저는 해암 교도소의 수감자로서 매일매일의 교화 활동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56번 목소리가 작습니다. 더 크게 하십시오”
이곳에서 불리는 저는, 그저 3자리의 숫자일 뿐.
그 이상 가치가 없는 그저 해암 교도소의 수감자 256번.
부모님한테 받은 소중한 김미희 라는 이름은 온데간데 없이.
그저 한명의 성노예로서 교도관님에게 복종하는
256번.
이곳에서 일주일 동안 보내면서 느낀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교도관님은 저에게 업무 이외의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
아 물론, 짜증난다 라던가, 역겹다, 라던가… 하찮다… 라던가… 정도의 감정은 있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저의 몸을 보고 욕구를 품기는 커녕…
저를 여성으로도, 아니 애초에 인간으로도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명령을 하면 복종하고
만지면 느끼고
때리면 아파하는
그런 인형과도 존재…
교육을 받기 시작한지 이틀차 되는 날이었습니다.
아침 점호가 끝나고,
어제와 똑같은 기초 교육.
그래요, 교육 까지는 참을 수 있었어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너무너무 힘들긴 했지만…
도중에 몇번이나 전기충격을 맞고 쓰러지기도 했지만.
적어도 생각을 비우고 열심히 하면 시간을 넘길 수는 있었죠.
하지만 정말 무서웠던 것은
하루에 한번.
안한다면 반드시 몸에 이상이 생길만큼 중요한 시간.
배식 시간이었습니다.
뭔지 모를 구속구들에 꽁꽁 묶여서, 아예 거부조차 하지 못하게 코를 집게로 막아버리고, 억지로 목구멍까지 배식 호스를 집어넣어진 뒤에, 목넘김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배가 차오르는 소름돕게 불쾌한 감각과,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무리 괴로워해도, 눈이 돌아가버려도, 설령 의식이 끊어져 버려도.
배식이 다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 질식의 공포.
해암 교도소에서의 하루하루는 일분 일초의 모든 순간들이 모두 다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끔찍한 시간들이었고.
불과 어제, 그리고 오늘 또 해야 찾아오는 배식 시간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교도관님이 저한테 “지금부터 배식 시간입니다.” 라는 말을 하셨을 때, 순간 머리가 새하애져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교도관님의 구둣발을 붙잡고 “말 잘 들을 테니까 제발 그것만큼은…” 하면서 빌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자신의 명령 없이 움직인 저를 향해 징벌이 날아올거라는 생각에 다급해져서…
저도 여자니까요…
그리고 너무너무 힘들고 아팠으니까요…
평소에 남자들이 여자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조금은 알고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살면서 그런 눈으로 바라봐 진 경험도 있었습니다. 네… 무척이나 불쾌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조차 절박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교도관님의 앞에서… 제 손으로… 엉덩이를 벌려서… 부탁했습니다…
제발… 저를 마음대로 다 하셔도 좋으니까…
그런 식으로 먹게 되는 것만큼은 싫다고…
하다못해 땅바닥에 뿌려주면 다 먹을 테니까 제발…
라고 말이죠…
실제로는…
교도관님의… 아니… 남자의 욕구를 자극할 수 있게 알고 있는 야한 말들을 다 써서 “제발 보지에 박아주세요” 하는 말들을 엉덩이를 천박하게 흔들면서…
하지만 돌아온 교도관님의 반응은… 우선 발길질부터 시작된 분노였습니다.
아랫배에서 올라오는 숨이 컥 하고 막혀버릴 정도의 격통.
침이 줄줄 새어나오고,
숨이 쉬어지지 않으며,
고통에 세상이 샛노랗게 변하는 끔찍한 감각.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오므리고, 손으로 그곳을 막았지만
교도관님은 너무나 능숙한 몸놀림으로 손과 발을 써서 저의 한쪽 다리를 막아버리고, 더더욱 집요하게 저의 급소를 노리면서 잔뜩 화를 내셨습니다.
“내가 그 따위 유혹에 넘어갈 줄 알았습니까 256번? 씨발 어이가 없어서, 256번 같이 더럽고 멍청한 년이랑 할바에야 창녀촌을 갈겁니다! 주제를 아십시오!”
저의 보지를 지근지근 구둣발로 밟으면서 말이죠…
저는 그때 교도관님의 눈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난 여자는 커녕… 같은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는구나… 하고 말이죠.
값진…
아주아주아주 비싼 교훈이었죠.
몇일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멍이 든 아랫배가 엄청 욱신거리거든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