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외전. 광애 (??)
* * *
사랑 이란 것은 틀림없는 중병이었다.
아주아주 커다란 화산이 폭발해 세상이 만들어졌다는 어느 먼 나라의 신화 속 이야기처럼.
좋아하는 마음이 꾹꾹 쌓이고 쌓여서, 스멀스멀 터져 나오며, 자신의 모든 것이 새로 만들어지는 여태껏 느껴본 적 없는 신기한 감각.
처음에는 이렇게나 빠져들 수 있는 것인가 두렵기까지 했지만, 이젠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걸.
마음이 자기 멋대로 넘어선 안될 강을 건너버린 것을, 눈이 마주치자 마자, 쿵쾅거리는 심장이, “너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어” 라는 걸 알려 준다.
혹시나 이 두근거림이 선배한테 들킨다면…
혹시나 이 마음이 들킨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부디 이 화산이 주변에 모든 것을 집어 삼키지 않기를.
부디 이 화산이, 내가 사랑하는 선배를 집어 삼키지 않기를.
시계 바늘은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여서,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프로젝트도 슬슬 끝이 보이고, 코 앞으로 다가온 마지막에 한동안 미친 듯이 몰아치는 일에 시달리다가, 정말 간만에 휴가를 얻어 집에 돌아온 날.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어머니가 차려주는 이른 저녁을 배 터지게 먹고, 소파에 누워 빈둥빈둥 티비를 보며, 문득 선배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던 시간.
오후 9시 21분.
현관문에서 도어락 비밀번호를 띡띡띡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서 들어온, 딱 봐도 피곤해 보이는 아버지.
“나 왔다. 오… 유라 너도 있었냐? 너네 엄마는?”
“들어가서 일찍 자고 있어요, 왠일로 오늘 늦었네요?”
주섬주섬 현관 앞에 나가서, 아버지가 벗어 넘기는 기다란 갈색 코트를 자연스럽게 받아 들었다.
언제나와 같은 풍경, 언제나와 같은 일상. 그리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 프로젝트… 아니 선배와 함께 하는 나날은…
정말 갑작스럽게…
“에후… 그래, 유라야 너 혹시 박하나인지 뭔지 하는 여자랑 잘 아냐?”
“어?... 어?... 갑자기 왜?”
“오늘 제법 시끄러웠거든, 위쪽에서 지우느니 마네 하면서, 그런데 그 아가씨 제법 유명하다면서?, 게다가 머리도 좋다던데, 위쪽에서 말들이 많더라고”
“음?... 그게 무슨 말이야?”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제일 먼저 소파에 퍼질러 앉아 티비를 키는 아버지의 한마디에
유리에 금이 가는 것 마냥, 와장창 하고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선배와 함께하는 나날들이 발 밑부터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예전에, 선배한테서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 시설의 설계부터 관여 해 있었다고 들은 적 있었다.
정부한테서 의뢰를 받아서 관리 시스템 이라던가, 시설 건축 이라던가, 보안 시스템 이라던가… 이것저것…
하지만 거기서 문제는 두가지.
첫째로 선배는 너무 유능했고,
둘째로 선배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같이 일할 때만 해도, 선배는 항상 이쪽 일을 하면서, 무언가 다른 일들을 같이 진행하고 있었지.
그러다 보니까 너무 깊이 들어와 버린 것이다.
마치 깊고 어두운 바닷 속에서, 먹잇감을 찾아 헤매던 배고픈 물고기가,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 부스러기 같이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뿌려 놓았던 먹이들을 먹어 치우며 점점 깊숙이 들어가 버렸다가, 결국 그물에 걸려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아버지의 말을 빌리자면,
국가의 높으신 분들도 일이 이렇게 까지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어느 순간, 눈치 채 보니까 이렇게 되어 있었다고…
국가 특급 기밀을 아는 것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조금 많이 아는 것 또한 그정도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짜로 문제가 되는 것은, 단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경우다.
본래 특급 기밀쯤 된다면, 결코 한 사람에게 모든 정보를 주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한 사람에게 10퍼센트, 또 한 사람에게 20퍼센트, 이런 식으로 정보를 나눠서 취급하게 하는 것이 보통.
하지만 선배는 너무 유능했고, 또 심각한 워커 홀릭이었다.
국가의 특급 기밀 시설의 대부분에 손을 댈 수 있을 만큼.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가 지금의 이 사태.
국가의 높으신 분들은,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린 선배를 제거하려고 했지만, 선배는 지나치게 유능했고, 또 그런 선배를 그대로 없애 버리기엔 아쉽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 한참 처치 곤란 이라고 한다.
처음에 느껴진 감정은 분노였다.
감히 누구를?... 그것도 그딴 이유로?...
자기들이 일을 맡겼으면서, 또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으니, 없애버린다니… 그럴 거면 아예 처음부터 시키질 말던가… 진짜 어이 없는 이유로…
그리고 다음에는…
한 순간 눈이 뒤집혀 버릴 것 같은, 끝을 모를 정도로 깊은…
새까만…
내가 아장아장 걸어다닐 때부터 아버지는 공무원 이었다.
내가 유치원을 다닐 때도 아버지는 공무원 이었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는 20년 넘게 공무원인 아버지를 두고 있기에, 위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보통 사람 하나를 지우는 데 있어서, 이 사람들은 회의 같은 걸 하지 않는다.
어지간한 사람이 아닌 이상은.
유럽의 xx대학교의 박사 과정을 24세에 수료한 후, 수많은 러브콜들을 제치고 국내 대학의 연구소에서 근무하며, 발표한 논문이 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천재 심리학자.
그때 간간히 방송 출연이나 신문 기사에도 나왔을 만큼 유명세를 탔었다.
외모도 이쁘겠다, 똑똑하겠다, 실제로 인터넷에 팬클럽도 있다, 본인은 그냥 귀찮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어찌됐든 이 박하나 라는 인물은 나라의 높~~~으신 분들도 아예 지워버리기엔 조금 껄끄로운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말이야…
그렇다면…
어쩌면 선배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인간들이 자신들의 연구를 위해서, 멍청하게 그물에 걸려 올려진 물고기를 박제하는 것처럼.
마음 속 깊은 곳에 박혀있는 뜨거운 화산 속에서 끝을 모를 정도로 솟아 나오는 새까만 집착의 덩어리들.
마치 화산의 마그마가 바다에 닿아서 땅이 만들어 지는 것처럼.
빨간색 마그마가 아니라, 새까만 집착들이.
주변에 있던 이성의 바다를 점차점차 집어 삼키면서, 끝내 세상을 모조리 다 덮어버릴 기세로.
마음 속이, 선배에 관한 집착으로 가득 차 버려서, 눈 앞에 선배가 아른 거리는 것 같았다.
뱀처럼 혀가 한번씩 기어갈 때 마다,
“아빠… 그러면….”
선배의 여린 손 발을 내 손으로 휘감아서 묶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빠… 그러면…. 요즘 연구소에서 구상중인 실험이 하나 있는데… 박하나를 거기다가 써 보는 게 어때? 마침 조금 까다로운 실험이었거든…”
내 손으로, 선배의 숨통을 조이는 느낌, 선배의 목숨이 내 손안에 있다는 그 느낌은.
이제 와서 생각해 보아도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실험 계획 000012566호.
극도로 폐쇄된 상태 안에서의 인간 관찰.
목차.
서론.
개요.
조건.
기대 반응.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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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엄청나게 어려운 이야기들이 잔뜩 쓰여져 있지만, 전부 다 제쳐두고 일단 짧게 본론만 이야기 하자면 이렇다.
하나. 인간의 오감을 모두 조정할 수 있는 극도로 폐쇄적인 환경을 구성한다.
둘. 그런 인간을 관찰할 수 있는 관측 기구들을 준비한다.
셋. 인간을 그 안에 집어넣고, 가능한 오랫동안, 아무런 자극도 없이 방치한다.
다섯. 관찰한다.
엄청나게 심플하지만, 사실 조건 하나 하나가 제법 까다로운 실험. 그게 아니어도, 사람을 통조림처럼 영구 보관 가능하게 만들어서 관찰한다니, 매드 사이언티스트나 생각해 볼 법한 실험이다.
선배가 전에 말 하기로는, 외부 요소를 전부다 컨트롤 하면서, 자극을 아예 없애는 게 중요하댔나?
실험체의 개체로는 지능이 높은 쪽이 좋다고 한다.
그럴수록 외부 자극에 민감하니까.
어느 정도로 높으면 좋냐고 하면…
그렇네…
유럽의 xx대학의 박사 과정을 24세에 수료하고, 학계의 주목을 받을 만한 논문을 써내는 천재 심리학자 만큼. 지능이 높아야 하지 않을까?
참고로, 이 실험은, 선배 계획안을 써낸 사람은 다름 아닌 선배다
여기 내 눈 앞에서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선배는 모르는 곳에서, 선배의 남은 모든 생을 손에 넣기 위한 아버지와의 거래는 상당한 출혈을 동반하며, 다행이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보고서 같은 건 내가 또 따로 올릴 테니까, 아빠는 그냥 이런데다가 써 보는 게 어떤가? 하고 말만 해보세요…”
“음… 그럼 그렇게 한번 해보마, 유라 너 주말에 아빠랑 같이 산 타기로 한 거 잊지 마라.”
“알겠어요 아빠~”
평소에 안부리던 애교까지 부렸으니까… 아마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버지가 원하는대로 흘러가겠지.
내가 아장아장 걸어다닐 때부터 아버지는 공무원 이었고, 내가 유치원을 다닐 때도 아버지는 공무원 이었고, 지금까지도 공무원인 아버지가 밀어 붙인 건들은 대부분 통과 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쉬는 날 마다, 아버지랑 같이 등산에 가야 한다던가, 같이 데이트를 가게 되었지만…
그 뒤로 너무 두근거리는 바람에 선배의 얼굴을 보면서 일을 하는 게 고역이긴 했지만.
모든 준비가 끝나고.
프로젝트의 계획대로 선배가 손에 들어왔다.
1분에 10번씩 시계를 쳐다보며 숨 죽이던 나날들이 끝난 것이다.
이제 선배는 영원히 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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