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화 속 이야기들은 모두 죽었습니다-28화 (28/62)

〈 28화 〉 외전. 광애 (??)

* * *

섬 주위로 굵직한 암초나, 암벽이 많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해암 섬에 위치한 국립 해암 교도소는 국가 최중요 교정 시설 중 하나로서, 먼 바다에 위치한 고립된 환경의 섬의 지하를 10층짜리 아파트 깊이로 파고 들어가서 만들어진 시설 이다.

무분별한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있는 국제 정서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흉악 범죄자들을 사회에 풀어놓아서는 안된다는 국민 정서를 수렴해서, 수감자들 전원이 가석방 없는 무기 징역수들로 이루어 져 있으며, 다시 말해, 죽을 때 까지 교도소 밖을 밟지 못하는, 영원히 사회와 격리 되어야만 하는 흉악 범죄자들만이 수용되는 시설이라 알려져 있다.

또한 극도로 통제된 환경과, 결코 바깥으로 입을 열지 못하는 매우 협조적인 피실험체들 덕택에, 범죄자 교화에 대한 최신 이론이나, 기술, 혹은 제압이나 결박 도구, 최신 교정 시설 설비, 등등이 이루어 지고 있다고 하지.

물론 그것들이 이 시설의 주요 목적인 건 분명한데…

이 시설은 사실 만들어질 때부터, 국가의 아~~주 높으신 분들 입김이 잔뜩 들어가 있어서…

사실 그것 만이 전부는 아니야.

그래…

예를 들어서….

이 시설을 건설하는데 들어갔던, 지나치게 막대한 자본들 이라던가?

아… 이거 다 세금이다?

그런데… 과연 누구 뒷주머니로 들어갔을까?...

매년 해암 교도소 소속의 연구소 연구진들이 비공개로 발표하는 최신 교화 이론에 관한 수많은 논문들…

그리고 각종 제약회사와 연계해서 진행되는, 항정신성 약품에 대한 임상 실험의 결과들, 세계 최고 수준인 노화 방지 연구, 외상과 내상 회복에 관한 연구들…

이 데이터들… 다 어디서 얻었겠니?...

어쩌면 당신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진통제나, 화장품, 잠 안올 때 가끔 먹는 수면제 같은 게 이러한 연구의 산물일지도 모르지.

누군가의 고통이나, 쾌락이나, 절망이나, 복종이, 고스란히 그 작은 것에 담겨있는 지도 모르고…

더 놀라운 사실은

설령 시설의 총 책임자인, 교도소장 이라고 해도, 이 시설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거야.

그 사실이 이 시설의 폐쇄성과, 보안성을 설명하지.

분야가 다른 부분들이 몇몇 있다나?

아… 그 반대로, 연구소장도 마찬가지고…

음… 어쩌면 보안 쪽 책임자는 다 알고있으려나?...

뭐 직접 물어볼 수도 없으니, 진실은 그 사람들만 알겠지?

아침 9시.

해암 교도소의 정문 엔트리는 항상 이 시간이 되면 출퇴근 하는 불쌍한 월급쟁이들로 붐빈다. 왜냐하면 교도소 안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엘리베이터가 바로 여기 있거든, 자재를 반입하는 화물 엘리베이터도 포함해서 말이야.

처음 발령 받았을 때는, 보안 직렬의 출세 코스라고 들어서 엄청 좋아했었는데.. 막.. 007 이라던가, 아니면 국정원 요원 같은 거 있잖아? 그런 일 하게 될 줄 알았거든?... 근데 막상 와보니까, 그냥 기록 체크만 하는 자잘한 일들이 다더라구…

그래도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지?

내가 이곳에 부임한지 얼마 안됐던 시절에,

띡. 띡. 띡. 띡. 띡.

“아…씨.. 왜 이래… 카드가 안찍히네…”

출입 게이트의 단말에 ID카드를 찍어 보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자 무척이나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보면서, 카드를 연신 찍어대고 있는 하얀 가운을 입은, 젊은 연구직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

“내가 나가볼 테니까 넌 여기 있어”

의자 두개를 써서 다리를 뻣고 대놓고 자고 있던, 선배가 카드가 찍히는 소리를 듣더니 벌떡 일어나, 관리소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 이시죠?”

“저기… 카드가 안먹는데…. 안되는 건… 아는데?... 한번만 열어주시면 안될까요?... 저 지각할 거 같은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무전기로 어딘가에 연락하는 선배.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까만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몇 명 몰려 오더니.

그대로 그 여성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얼굴에 까만색 두건을 씌운 뒤, 양 팔을 붙잡고 시설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잠깐만요! 저 진짜 여기 직원이에요! 네? 저 해암 연구소 교정 연구부 소속 연구원 정지원 입니다! 여기 ID카드 있잖아요? 제발! 제발.. 안돼…”

새하얗다 못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벌벌 끌려다면서, 필사적으로 자신의 신원을 밝히는 여성은, 순식간에 시설 밖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무표정하게 지켜보는 선배.

다시 관리소 안으로 들어온 선배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었지만.

“아.. 가끔 있지… 넌 신경 쓰지 말도록 해.”

하는 말만 돌아올 뿐.

그리고 그 뒤로 다시는 그 직원을 볼 수 없었다.

부임한지 얼마 안되고 일어난 일이라 그런지, 왜인지 모르지만 잔뜩 공포에 질린 그녀의 얼굴은 아직도 기억난다. 원한다면 그림도 그려줄 수 있어.

아무튼 특이했던 일이라면 그런 일도 있었고…

또 오늘은.

특급 국가 기밀 시설이라, 보안을 위해 그렇게 까지 많은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진 않아서, 항상 보던 낯익은 사람들이 게이트에 ID카드를 찍고, 띡띡 지나쳐 가는 모습을 졸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간만에 그녀가 나타났다.

기다란 하얀색 가운에, 청바지, 그리고 화사한 색깔의 티셔츠.

지금 당장에 출근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저런 차림의 직원이 하나, 둘, 세명은 더 있을 만큼 흔한 연구직 직원이지만, 어딘가 시선을 끄는 찰랑 거리는 웨이브 진 긴 머리카락에, 고양이상의 얼굴.

솔직히… 내 스타일 인데…

“안녕하세요”

간단한 인사와 함께 빠르게 게이트를 지나치는 그녀는, 거진 한달 주기마다 이곳을 통과한다.

그래… 정확하게 한달마다, 정확한 시간에…

그 때 이외에 출입 기록이 존재하지 않으니, 틀림없이 시설 안에 있어야 할 사람이지만, 종종 순환 근무로 시설 안에 들어가서, 보안 목적으로 기록들을 확인하지만, 그녀의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다.

화장실을 가기만 해도 ID카드를 찍어야 하기에, 전자 기록이 남는 이 시설 안에서 마치 유령처럼 새하얀 사람.

귀신이 아니라면 절대 불가능해.

그래서, 왜 인지 모르겠지만 문득 호기심이 들어, 친한 선배한테.

“저기 선배… 이 사람 대체 뭐하는 사람인데 기록이 없어요?”

라고 물어봤지만.

“아…. 그 사람?... 그거 알아 막내?... 저 사람 내가 처음 여기 발령났을 때부터 외모가 하나도 안변했다?... 그러니까 신경 끄고, 너 할 일이나 잘해 막내.”

라고 돌아오는 대답.

참고로 오늘 나랑 같이 근무를 서는 선배는, 근속 년수가 10년이 넘어간다… 그런데 외모가?...

대체 뭐하는 사람인거지?...

가뭄에 콩나듯 찔끔찔끔 허락되는 육지에서의 짧은 휴가가 끝난 후, 다시 돌아온 지긋지긋한 이 섬동네.

동네의 거의 유일한 카페에서 사온 커피를 테이크 아웃한 묵직한 텀블러를 한 손에 들고, 벌써 몇 년째, 지긋지긋하게 보아온 출입 게이트를 지나친 후

엘리베이터 단말 앞에서, id카드와 지문, 비밀번호 인식을 마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쭈욱 내려간다.

이 시설 안으로 연결되는 유일한 이동 수단이라서, 러시아 워 시간에는 가끔씩 줄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오늘은 운 좋게도 프리 패스!

참고로 이 엘리베이터는 무조건 1인승이 원칙이다.

한 명이 타고 나면, 자동으로 문이 닫히고, 따로 버튼을 누를 필요도 없이 목적지로 이동하는 보안 시스템.

겉보기에는 그냥 아파트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엘리베이터 같긴 한데, 누르는 버튼이 없다는 게 조금은 살풍경 하긴 하지?

그런데 변변찮은 비상 계단 하나 없는, 이 시설의 정말로 유일한 이동 수단이다 보니까, 항상 탈 때 마다 기분이 나쁘다니까…

불나거나 고장나면 대체 어쩌려고 건축법 무시하고 이렇게 지어 났는지…

하여간에… 마음에 안들어… 윗대가리들이란…

그렇게 밑으로 밑으로

한참을 쭈욱 내려가고 나서야 멈춘 엘리베이터.

눈 앞에 펼쳐진 어두컴컴한 복도와,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

아무리 봐도 교도소나 연구소 시설로는 보이지 않지?...

그 흔한 철창도 하나 없이, 있는 거라곤 그냥 정신 사나운 하얀색 벽에다가 달랑 문 하나.

음… 그러니까… 여기 정식 명칭이… 해암 연구소 특별동 이었나?

만약 어딘가에 기록이 되어있다면 말이지?

사실 교도소 구획은 여기보다 훨씬 위쪽이고, 연구소도 교도소랑 붙어있어서, 일반 직원은 바닥에 구멍을 뚫거나, 엘리베이터 통로를 타고 내려오지 않는 이상, 절대 이곳에 도착할 수 없다.

일단 수감자들은 애초에 자기네 방에서 탈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할거니까 논외.

만약… 혹시나 만약에 일반 직원이 이 구역을 어슬렁거린다는 게 발각이 된다면…

그 직원 아마 해고 당하는 건 둘째치고, 다시는 세상을 빛을 못보게 되지 않을까?

특급 국가 기밀 시설로 지정되어 엄격한 보안을 자랑하는 해암 교도소, 그 안에서도 존재 유무 조차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특 1급 중요 시설.

그것이 바로 해암 연구소 특별동.

이 시설의 존재 유무를 아는 사람만 해도, 전세계에서 아마 5명이 안되지 않을까?...

아…!

그래도 10명은 조금 넘을지도?...

덩그러니 놓여있는 문 앞에 서서 ID카드, 지문 인식, 홍채 인식, 비밀번호, 음성인식, 패턴 비밀번호에, 마지막으로 아날로그 열쇠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통한 담당 보안 직원의 화상 확인 까지.

만약 이 순서를 틀리거나, 혹은 제한 시간을 단 1초라도 넘겨 버리거나, 아니면 최악으로 비밀번호를 틀린다던가 하면, 곧바로 위로 연락이 가기 때문에, 이 복잡한 출입 과정을 진행할 때에는 항상 조금씩 긴장하게 되지.

띠딕.

모든 절차가 다 끝나고, 확인 되었다는 효과음과 함께 스르륵 소리도 없이 옆으로 열리는 문.

그 앞에 펼쳐진 살짝 아래로 경사진 외길 복도는, 한치 앞도 안보일 만큼 어두컴컴 했지만, 걸음에 맞춰서 LED 백열 조명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다.

그거 알아?

사실 처음으로 이곳에 부임했을 땐, 엄청 두근 거리면서 동시에, 이 길이 정말정말 무서웠는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 이라지?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

여기 복도 곳곳에는 말이야, 보이지 않는 레이저 센서가 있거든.

허가 받은 사람이 아니면, 곧바로 복도가 폐쇄되고, 수면가스가 나오는 구조로 되어 있어.

처음에 무서웠던 이유가, 바로 그거 때문이야.

센서의 정밀성이… 조금 의심이 되어서 말이야.

혹시나 잘못해서, 내가 지나가는데 수면 가스가 흘러나오면 어떻게 되겠어…

그런데 이제 20년도 넘게 여길 왔다갔다 했으니까, 이젠 안무서워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울리면서 도착한 복도 끝에 있는 하나의 문.

여기가 내 일터.

이번에는 별다른 절차 없이, ID카드를 갖다 대는 것 만으로도 열리지.

여기까지 왔으면 확실하게 본인인데, 더 이상의 보안 절차는 번거로울 뿐이니까.

그렇게 펼쳐진 어두컴컴한 방안.

우선 들어오자 마자 오른쪽에 있는 작은 공간은 탕비실 이다.

전자레인지나, 가스 레인지, 냉장고, 싱크대 같은 기본적인 가구들도 있지. 직접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게 조금 흠이지만…

저기 왼쪽 방은 화장실!

샤워도 할 수 있어!

그리고 짧은 복도를 지나 몇 걸음 걷자마자 눈 앞에 펼쳐진 방.

딱봐도 고급스러운 소파와, 그 앞에 자그마한 책상.

바닥에 깔린 푹신해 보이는 커다란 러그.

벽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책장과, 그곳에 끼워져 있는 수많은 파일들.

그리고 입구의 맞은편 벽 너머.

가장 안쪽.

그 곳엔 선배가 있다.

잠들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죽은 것인지.

손가락이 움찔거리는 모습도, 눈을 깜빡이는 모습도, 숨을 쉬며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모습도 없는.

그저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듯한, 나체의 여성.

여자 치고도 작은 신장.

갈비뼈가 드러나 보이는 마른 몸.

딱 보기 좋을 정도로 적당히 발달된 가슴.

쑥 들어간 허리와, 살짝 살집이 붙어있는 골반.

애기 같이 고운 손과 발.

말랑해 보이는 허벅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

목 덜미 쪽에 있는 작은 점 하나.

전체적으로 또렷한 이목구비에,

골든 리트리버 같은 강아지 같이 축 내려간 눈매의 귀여운 얼굴.

비록 조금은 아이 같은 어린 외모지만, 만약 평범한 남성을 이 안에 들여서, 선배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 사랑스러움에 침을 질질 흘릴거야…

절대로 안보여 줄테지만.

아…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정말로 사랑스러워… 이뻐…

역시 선배는, 얼마를 봐도 절대 질리지가 않는다니까…

항상 이 시설의 직원 안전을 위한 시스템을 볼 때 마다 윗대가리들 욕하기 바쁘지만…

역시 이 일은 내 천직이야.

아차차… 우선은 갔다 왔으니까 인사부터 해야지.

나는 뚜벅뚜벅 걸어가서, 투명한 벽에다가 손을 얹고 반가움과, 애정을 듬뿍듬뿍 담아 인사했다.

“안녕… 다녀왔어요, 선배”

선배한테는 절대 들리지 않겠지만…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