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첫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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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완전히 흐려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던 눈의 초점이 다시 돌아왔을 땐, 온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던 수많은 솔들은 전부 다 사라져 있었고, 저는 여전히 묶여서 사방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을 쐬이고 있었습니다.
엉덩이에서 허벅지로 끈적한 물이 줄줄 떨어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온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 고개를 밑으로 축 늘어뜨린채,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눈동자만 조금씩 조금씩.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온 몸을 짓누르던 갑갑함도 사라지고, 자신의 생명을 좀먹던 질식의 고통도, 또 몸이 망가질 것 같이 강력했던 쾌락의 공포도, 모든 것이 사라지고, 느껴지는 것은 극심한 탈력감과, 사방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자 이걸로 건조 과정도 모두 끝났군요, 세척이 모두 끝났습니다 256번.”
저를 이 지옥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의 목소리가 이 끔찍했던 “세척”의 끝을 알려 주었습니다.
지금이 과연 낯인지 밤인지, 잠을 자고 일어난 뒤 인지, 아니면 잠들기 전인지, 정확히 몇 시인지,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지금.
해암 교도소에서의 첫날.
숨을 쉬는 것, 눈을 깜빡이는 것 이외의 모든 것을 통제 당하는 신분.
어떠한 상황에서도 따라오는 감시와 통제, 그리고 속박.
끔찍하게 갑갑한 규칙들과,
사람을 성노예로 만든다는 비인간적인 교육.
말도 안돼는 누명을 쓰고, 차라리 사형을 당하는 것 보다 더 최악인 벌을 선고받은 후, 모든 인권이 박탈당하고, 강제로 발가 벗겨진 채, 1분 1초 숨쉬는 것조차 끔찍한 시간을 보냈고, 드디어 입감한 첫날의 취침시간이 되었습니다.
24시간 365일 내내, 세뇌와 같은 교육과, 고문 같은 교화 활동이 계속되는 해암 교도소 안에서, 허락 된 유일한 자유 시간.
하지만 자유 란 단어는 저한테 존재하지 않았고, 저는 좁은 저의 방 안에서도, 안대와, 재갈이 물려진 채, 사지가 구속되어 대자로 묶여 있었습니다.
맨 엉덩이와, 등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바닥의 감촉.
손목과 발목에 채워진 두터운 가죽 구속구의 갑갑함.
입 속에서 느껴지는 말랑한 둥근 모양의 재갈.
취침 시간이 되었다면서, 저의 몸을 구속하던 교도관의 설명은 정말이지 저의 처지를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제 취침 시간이 되었으니, 256번의 몸을 결박하겠습니다. 천천히 휴식 자세 2번을 취하십시오”
교도관은 고작 하루 지났을 뿐인데, 그 어떠한 명령을 들어도, 이젠 그 명령이 어떤 것이던지 간에 그저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몸 속 깊숙이 체득해버린 저에게 명령했고, 저는 아무 생각도 없이 명령에 따랐습니다.
철컥철컥 빠른 손길로 저의 몸을 묶어버리는 교도관.
그러면서 정말 섬뜩 하게도 아무 감정도 없이, 그냥 오늘의 메뉴를 가르쳐 주는 듯한 말투로
“앞으로 기초 교육이 끝날 때 까지는 불편하시겠지만 이렇게 취침해 주셔야 합니다. 아무래도 수감자들 대부분 기초 교육 기간 중에는 적응이 덜 되서, 자해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하하… 기억하십시오 256번은 국가와 국민들의 특별한 배려를 받아서,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살아 있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해를 한다던가, 명령 없이 죽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니, 명령 없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말을 들은 저는, 아직도 몸에 수분이 남아 있었는지 씌워진 안대 너머로 서러움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틀림없이 깨달았을 건데…
그렇게나 시달려 놓고서 그것 조차 깨닫지 못하면 완전 바보인 건데…
제 몸인데… 틀림없이 제 몸인데…
그런데도 제 몸이 제 소유가 아니라는 것.
다른 누군가가… 교도관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이…
교도관이 벌리라고 하면 아무런 이의 없이 벌려야만 하는 그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지옥같이 다가왔습니다.
그 다시는 기억하기도 싫은 좁고 갑갑한 어둠 속에서의 세척이 다 끝난고 난 뒤, 저는 왔던 때랑 똑 같은 방법으로 저의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뱃속 가득히 관장을 당하고, 두 구멍에 딜도를 쑤셔 넣어진 채, 볼개그, 안대에, 목줄까지.
역시 두발로 걷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죠.
사실 세척이 끝난 이후로 기억이 멍~ 했습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틀림없이 몸을 움직이고 있는 사람은 저인데 제가 아닌 것처럼.
돌아가는 길의 저는 거의 걷지 못했습니다.
온 몸의 근육에 쥐가나서…
몸이 부숴질듯이 아팠습니다.
그곳도… 한눈에 봐도 퉁퉁 부어 오를 만큼 끔찍하게 혹사당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의 자비 없는 자극이 계속…
세척실에서 나가자 마자 미친듯이 가버리기 시작해서, 또 가버리고… 또 가버리고… 또 가버리고…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에 채찍과 전기충격이 날아오고… 또 가버리고… 또 또 가버리고… 그럼에도 자극은 멈추지 않고…
사람이 미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사람이 망가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사람이 죽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진짜로 그때 배운 것 같았습니다.
몇번이나 가버렸는지…
몇대나 맞았는지…
얼마나 걸렸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멍~한 의식 속에서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눈이 뒤집어지는 가운데에 끔찍한 고통과, 이성이…, 아니 저라는 존재가 망가져 버리는 쾌락 속에 기어기어 간신히 왔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깐 동안의 대기 시간.
음란하고, 천박한 자세를 강제당한 채, 거울에 비친 저의 처참한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아침과 같이 취침 점호를 마치고…
그렇게 지금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시간.
아니, 눈이 가려져 있으니까 모를 뿐이지, 지금 당장 제 앞에 교도관님이 서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찌됐든 정말로,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혼자 만의 시간이 된 것입니다.
마치 아침부터 물 속에서 놀다가, 해가 지고 나서 처음으로 땅을 밟았을 때 같은 극심한 탈력감.
몸을 바닥으로 잡아 끄는 중력이 평소보다 몇십배는 더 강한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숨을 쉬고 내쉴 때 마다 욱신거리는 가슴.
금이 가버린 게 분명한 갈비뼈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욱신거리는 하반신.
아니 욱신거린다는 개념을 넘어서, 마치 심각한 생리통을 겪는 것 마냥 예민한 속살들이 무언가 날카로운 것으로 벅벅 긁힌듯한 끔찍한 고통이 심장이 쿵쾅거릴 때 마다 느껴졌습니다.
온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그 와중에 묶인 팔과 다리는 등이 살짝 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당겨져서, 조금이라도 힘을 준다면 관절이 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 무엇보다…
아까 전부터 혈관의 흐름을 타고 느껴지는 이 미묘한 감각.
거부하고 또 거부했었지만, 정말로 눈이 돌아갈 때까지 머리 속에 쑤셔 박혀졌던, 지긋지긋 하면서도, 또 꿀같이 달콤한 이 끔찍한 흥분감.
오늘 하루종일 혹사당했던 여자의 몸에서 가장 민감한 부위와, 여태동안 한번도 이런 쪽으로는 의식해 본 적 없었던 가슴의 돌기 부분이, 단지 공기에 닿는 것 만으로도 빳빳하게 고개를 들어 올려서…
오늘 하루종일 대체 몸의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물이 그렇게 나오는지… 아랫 부분이 조금씩 조금씩… 제 몸에서 나오는 액체로 젖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대체 왜… 오늘 그렇게나 시달려 놓고서…
그렇게나 혹사당하고, 고문을 당했는데도…
왜 제 몸은 이렇게 반응해 버리는 걸까요…
생전 처음 느껴보는 단단했던 이성의 철근이 삐뚤어져버린 것 같은 이 미쳐버린 몸의 감각이, 온 몸이 오들오들 떨릴 정도로 무섭게 다가왔습니다.
또 이제 와서 생각하기도 이미 늦었지만… 대체 어디에 카메라가 달려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에 오고 나서부터, 자신의 그 비참한 모습들이… 아니 지금 당장 이 순간 까지도 포함해서, 그러한 모든 것들이,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봐 버렸다는 그 사실이…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어떤 짓을 당하고 있는지 보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그 끔찍한 사실이… 그리고 다시는 햇빛 아래를 걸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확신에 가까운 불안감이…
끔찍한 정적.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그 안에 홀로 무방비하게 남겨진 저의 몸과 정신을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요…
대체 어쩌다가 제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걸까요…
조금 더 강하게 부정을 했어야…
아니 아무리 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았던…
대체 언제까지 이런 꼴을….
얼마나 더 아파야….
이곳에서 더 이상 “인권” 이라던가 “자유” 라던가 “존엄” 이라던가 같은 그런 인간적인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여태동안 살아오면서 쌓아왔던 가치관이 와장창 무너져 버리는 그 끔찍한 사실이,
지금 당장만 해도, 자신의 목숨조차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저의 처지가,
그리고 그 속에서, 1분, 1초가 흐를 때 마다, 점점 더 길들여지는 자신이… 그리고 점점 이상해지는 제 몸이…
지금 당장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습니다.
아니 저한테는 미쳐버릴 자유 조차 존재하지 않았던가요?
차라리 저한테 지은 죄라도 있었으면…
교도관이 말했던 그 용서받을 수 없는 끔찍한 범죄를 제 손으로 범했었다면…
저는 이런 벌을 받아도 마땅한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하지만….
이런 꼴을 당할바에야…
이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차라리…
제가 여태동안 힘들게 살아왔던 것들은 무엇이 되는 걸까요?...
저는 애초에 그… 성노예가 되기 위해 태어났던 걸까요?...
저희 부모님은….
마지막으로 저를 보면서 울고있던 부모님은…
제발… 더 이상 지금의 제 모습을 보고 있지 않기를…
제발…
눈 앞을 가리고 있는 이 어둠이 걷히고
미칠듯이 답답한 이 속박이 풀린 다음
눈을 뜨면 제발 모든 것이 꿈이길…
제발… 이 욱신거리는 고통도, 끔찍한 답답함도, 한치 앞도 예상이 가지 않는 공포도, 그리고 이 마약 같은 쾌감도.
모두… 모두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도 잔혹하게도…
저의 바람 따위는 무참하게도…
캄캄한 어둠 속,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흐리멍텅하게 잠긴 머리 속으로 직접 파고드는 것 같은 소음과 닮은 커다란 목소리.
“현재 시각 5시. 수감자 여러분들은 모두들 일어날 시간입니다. 수감자 여러분들은 점호를 위해 대기 자세로 담당 교도관이 오는 것을 기다려 주세요.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또 다른 아침의 시작 이었습니다.
세상은 제가 어떻게 되어도 돌아가는 법 이었고.
그리고 또다른 지옥의 시작 이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