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화 속 이야기들은 모두 죽었습니다-17화 (17/62)

〈 17화 〉 첫날 이동

* * *

“256번. 혹시 김제철씨랑 한순옥씨를 아시나요?”

어깨 끝으로 숨을 쉬고 있는 저에게 물어보는 교도관님.

김제철… 한순옥….

그 이름들이 귀에 들어오자마자 몸이 흠칫 떨리고 덜컥 숨이 멎었습니다.

제가… 제가 어떻게 그 이름들을 잊어버릴 수 있을까요…

저를 낳아주고… 키워주고… 사랑해준… 부모님의 이름…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법정에서 끌려가는 저를 보고 울고 있었지요…

갑자기 왜?.... 갑자기?....

교도관님은 아까랑 같은 장난스러운 손길로 저의 항문 마개를 살살 돌리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선심 쓰듯이 가르쳐준다는 마냥.

차라리… 아니 그냥… 몰랐으면 좋았을만한 내용을…

“아무래도 아는 모양이네요?... 하긴 256번이 아무리 싸이코패스 범죄자라도 부모님을 잊을 순 없겠죠?...”

아….

아아아….

아아아아아아…..

설마…

설마…..

안돼….

안돼……..

구멍을 틀어막고 있던 흉악한 마개가 조금씩 조금씩 비틀어 움직여질 때 마다, 그 사이를 파고들어 새어 나오는 물줄기.

푸슉.. 푸슈슉… 하는 소리와 함께 역한 냄새가 좁은 방을 채우고, 양둥이에 물줄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당신 부모님은 그래도 당신 같은 것도 딸이라고, 당신 모습을 보기 위해 열람 신청을 넣었던 모양이더군요”

“아… 아아아…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엄마… 아빠… 보지마…. 보지마….. 제발… 흐아아앗…. 제발….”

“아무래도 사정이 딱하잖아요? 그분들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래서 제가”

“아… 아아아…. 아… 안돼….”

“열람 신청을 허가했습니다. 아까 봤는데 지금도 256번의 모습을 보고 계실거에요”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쑥 뽑혀나가는 항문 마개.

속살이 뒤집어지고, 내장이 튀어나오는 쓰라린 느낌과 함께.

푸슈슈슉… 쏴아아아아….

좁은 방 안을 가득 울리는 거센 물소리와, 냄새.

“끄아아아아앗…. 흐아아앗.. 까아아아아아악….. 하아하아.. 으아아앗 아아아… 아아아.. 안돼… 안… 끄아아앗……”

도저히… 안간힘을 써서 참아 보려고 해도 멈출 수 없었습니다.

“흐아아악… 끄아아아앗… 흐아….. 아아아아아악…”

온 몸에서 힘이 풀리고 눈 앞이 아득하게 깜깜해져서…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뼈를 녹이는 듯한 전기충격과 함께 바닥을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한참동안 이성을 좀먹는 전기 충격에 널부러져 있는 저를 향해서

“256번은 정말이지 교육이 덜됐군요. 똥오줌도 제대로 못가립니까?”

라던가

“칠칠맞게 조준도 제대로 못하는데 화장실이 정말로 필요하긴 하나요? 네? 대답해 보세요 256번”

이라던가

“그런 짓을 저질러놓고 아직 인간으로서 수치심 이라는 게 남아 있습니까 256번?”

라는 말까지…

바닥에 널부러져서 신음소리를 흘리는 저에게 매도를 퍼부으며 저를 괴롭히는 교도관님.

“아… 아아아… 끄아아악… 흐으으윽… 흑…..”

오열이… 오열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까 전 까지만 해도 귀에 쏙쏙 들어오던 교도관님의 비꼬는 목소리도 더이상 귀 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저 머리가 새하애져서… 아무 생각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끄어어어… 으으으으… 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저는 잔뜩 쉬어버린 목으로, 마치 어미 잃은 강아지처럼 낑낑 거리면서 울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그저, 흉악한 범죄자, 인권이 없는 해암 교도소의 수감자 256번. 정도로 보고 있는 저 교도관님 앞에서 저의 그런 감정 따위는 아스팔트 바닥에 묻은 얼룩 같은 하찮은 것이었고 교도관님은 천천히 전기 충격의 강도를 올리면서, 저에게 다시 자세를 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럼 남은 교육 힘내서 받으십시오 256번”

이라는 말을 남기고, 양둥이를 들고 방 밖으로 나가버리는 교도관님.

그때 동안 저는 절차에 따라, 제 자신의 배설물로 쌓아 올린 웅덩이 위에 몸을 잔뜩 움츠려 바닥에 이마를 딱 붙이고 웅크려서 바들바들 떨어야 했습니다.

마치 벌레처럼…

이성을 좀먹던 지옥 같은 고통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비참함과, 수치심이었습니다. 제가 살면서 사회에서 교육받은 상식들이 바닥부터 와장창 무너지는 불안정한 감각.

교도관님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손가락 하나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

인권이 없는 성노예.

그제서야 이 말이 실감이 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끈적한 바닥을 타고 올라온 울음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면 이렇게 되기 전에 차라리…

그렇게 잠시간, 이성을 갉아먹던 고통이 사라진 그 잠깐의 틈 새를 비집고 돌아온 이성들이 저의 머리 속을 어지럽게 뒤흔들던 잠깐의 시간이 지나가고, 다시 교육은 재개되었습니다.

철저하게 인간을 죽이고, 사람을 성노예로 만들어버리는 교육.

하지만 저는 그것에 대한 거부권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머뭇거린다면, 전기 충격이 날아왔습니다.

마치 가축을 길들이는 것 마냥.

인간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 교육 방법.

지긋지긋한 영상 속 여자.

저의 몸에서 나온 분비물들과, 배설물로 만들어진 이로 묘사하기힘든 역한 냄새를 풍기는 연갈색 물 웅덩이 위에서 계속되는 수감자 자세 교육.

같은 자세를 또 하고, 또 또 하고.

도저히 혀로 발음하기에, 얼굴을 저절로 화끈거리게 만드는, 외설스러운 단어들을 억지로 외치게 만들면서

교도관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또 또 또 또

심장이 뛸 때 마다, 숨을 내쉴 때 마다 몸을 좀먹던 커다란 고통이 없어졌다고 해서, 이 교육은 결코 편해지지 않았습니다.

서서히 사람의 근간을 갉아먹는 느낌.

저의 소중한 무언가를 뚝뚝 끊어버리는 느낌.

끝에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시험까지…

자세 번호를 불러주고, 틀리면 짧고 강렬한 전기 충격.

힌트 하나 없이, 맞을 때까지.

심지어 맞는 자세를 취해도 자세가 교도관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답으로 처리되는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그렇게 대체 얼마나 지났을까요?

그로부터 1시간? 2시간? 3시간?

창문 하나, 지나가는 바람 한줄기 없는 좁고 퀘퀘한 방 안에서 시간의 경과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몸이 점점 부숴질 것 같이 아파오고, 온 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며, 목이 부어 올라서 피가 나올 것 같이 아파오는 걸 통해 시간의 경과를 짐작할 뿐.

“이것으로 수감자 기초 교육을 종료하겠습니다. 수감자분은 다음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 자세 1번으로 대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지긋지긋하게 길었던 기초 교육 이란 이름의 세뇌는 간신히 끝났습니다.

저는 후들거리는 몸을 움직여서 대기 자세 1번. 그러니까 마치 미국 경찰이 용의자를 체포할 때처럼, 바닥에 몸을 눕히고, 양 손을 꽉지 낀 채 머리 위에 올리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발가락과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는 것.

만약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게 된다면, 반항의 의사로 간주되어서 벌을 받게 됩니다.

어깨 끝까지 차오른 숨을 갈무리하고, 쥐가 난 근육들에게 산소를 운반해 주는 시간. 저는 새삼스럽게 뱃속이 비어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임을 깨달았고, 또한 저의 모든 자유가 저한테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한번 더 절망했습니다.

고작해야 오줌 한번…. 게다가 내가 원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아… 앞으로 정말 화장실… 가고 싶으면… 정말로…. 허락 받아야 하는거야?.... 정말?....

그리고 다시 혼자가 되니 떠오르는 많은 것들…

시간이 흐르는지 아닌지, 저에게는 알 수 없었지만, 이런 저런 생각들 속에 잠겨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또 언제나와 같이 아무런 전조도 예고도 없이 삑 하고 방을 가득 울리는 목소리에 저는 흠칫 몸을 떨었습니다.

“본 교도관은 지금부터 256호의 내실로 입실 하겠습니다. 256번은 대기 자세를 유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 지긋지긋 하게 들었던 그 냉정하고 사무적인 목소리에 몸이 덜컥 굳어버립니다.

몸이 덜덜 떨리고, 점점 차오르는 숨. 이마에 방울방울 맺히는 땀방울. 쿵쾅쿵쾅 뛰는 가슴.

교도관님의 손에 의해서 징벌을 받은 그 이후부터 저는 교도관님의 목소리만 귀에 닿아도 저절로 몸이 얼어붙게 되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마치 채찍을 든 서커스의 사육사를 눈 앞에 둔 사자처럼.

애초에 서커스의 사자 대우가 저보다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애초에 현실의 저는 사자 같은 훌륭하고 멋진 동물이 아니라, 그저 꿈틀거리는 벌레 한 마리 겠지요.

“교육은 잘 받았나요 256번?”

바닥을 스치는 두꺼운 구두 소리와 함께 저의 머리 위에서 들리는 교도관님의 가벼운 목소리.

“… 네… 교도관님”

“시험 성적이 형편없더군요 256번. 기초 교육은 일주일 동안 진행되니까 분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교도관…..님…..”

교도관님의 말에 기계처럼 대답하다가 무심코 “일주일” 이란 단어에 입술이 흠칫 멈춰 버렸습니다.

일주일…

그 끔찍한 교육을 일주일 동안이나…

사람을 성노예로 규정하고 온갖 음란하고 저속한 말로 자신을 비하하면서 진행하는 그 세뇌와 같은 교육을 일주일 동안이나…

일주일 후의 저는 과연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을 수 있을까요?....

아니 애초에 지금도 제정신이긴 한 걸까요?... 그런 일들을 겪어놓고…

“좋습니다 256번. 징벌도 받아서 조금 얌전해진 것 같네요, 다음부턴 규칙을 잘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규칙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지도 않았었으면서, 생리적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전기충격에 그만 실례를 해버리고 만 것뿐인데, 오늘 하루 종일 정신이 무너져버릴 것만 같은 벌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오늘에서야 알게된 규칙들은 차라리 모르면 좋았을 법한,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그런 규칙들만 잔뜩 있었습니다. 과연 이걸 지키라고 만들어 둔 건가 싶은 100개가 넘어가는 아주아주 빽빽한 규칙들 말이죠.

하지만 저의 생각과 다르게 기계적으로 움직여서 대답하는 메마른 입술. 대답하지 않으면 또 전기충격을 받을 테니까… 아니면 목이 조일지도 모르죠… 이런 게 교육의 성과 라는 걸까요?...

“네 교도관님”

공기가 목 밖으로 빠져나갈 때 마다, 잔뜩 쉬어서 부어 오른 목이 아팠습니다.

“자 이제 오늘치 교육도 다 끝났고, 남은 건 세척 시간 이네요, 바깥에서 왔으니까 일단 씻어야겠죠? 세척실로 이동할 겁니다. 대기 자세 11번, 어떤 자세 인지는 더 이상 설명 안 해도 되겠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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