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화 속 이야기들은 모두 죽었습니다-14화 (14/62)

〈 14화 〉 첫날 교육

* * *

정말로 힘든데 잘 견디고 있다는 칭찬이나, 더 잘 할 수 있다는 격려 대신에 들려온 냉담한 목소리.

“흐아아악… 끄으으… 네…. 교도관님…”

저는 잔뜩 쉰 목소리로, 가쁜 숨을 어깨로 들이마시며, 숨소리와섞여 나오는 쇳소리와 함께 대답했고, 그제서야 전기충격이 멈추고 다시 영상이 재생되었습니다.

“하나 저는 교도관님의 명령에 절대복종 합니다”

또박또박하고 정확한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뒤 따라서, 화면 구석에 보이는 여자가 큰 목소리로 따라 제창했고, 저도 그에 맞추어 똑같이 따라 했습니다.

“하나 저는 교도관님의 명령에 절대복종 합니다”

“하나아… 저는.. 흐으읍.. 교도관님의 명령에… 절대복종… 합니다.”

말을 하기 위해 숨을 들이 쉴 때마다 배가 아파왔습니다.

잔뜩 쉰 목소리와 함께 섞여 나오는 쇳소리.

목에서 피가 나오고 있는 게 아닐까요?

“다섯. 저는 수감자 규칙을 모두 숙지하며 철저하게 지킵니다.”

대체 얼마나 남은 걸까요,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걸까요?, 그리고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걸까요….

아까 얼핏 스쳐 지나가기로는 100개가 넘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제야 고작해야 다섯. 고작해야 다섯개의 규칙을 말할 동안, 제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달아서 부숴질듯이 온 몸의 근육들이 아팠습니다.

애초에 그렇게나 많은 규칙들을 정말로 하나도 어기지 않고 지킬 수 있는 것일까요?

“여섯. 저는 수감자 규칙을 어겼을 시 반드시 패널티를 받습니다.”

그리고 저의 목소리와 대비되는 영상 속 아나운서의 밝고 명쾌한 목소리와, 그에 뒤따르는 화면 속 여성의 묘하게 열기 띈 담담한 목소리. 그것에 겹쳐지는 저의 목소리.

“열 하나 저는 숨을 쉬고, 눈을 깜빡이는 것 이외의 모든 것을 교도관님의 명령에 따라 행동합니다.”

이 말도 안되는 규칙들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 같은 여자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여태껏 자라오며 알고 있던 상식들이 철저하게 부정되는 끔찍한 내용들이 담담히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스물 여덟 저는 교도관님의 명령 없이 배설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정말로 교도관의 명령 없이 배설을 하면 안된다는 그런 정신나간 규칙이 정말 실제로 있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곳에 갇혀버리게 된 저의 처지도…

“삼십 일 저는 관리용 목줄을 제외한 그 어떠한 의복도 입지 않습니다.”

실시간으로 몸을 파먹는 끔찍한 고통과, 이로 말 할 수 없이 비인간적인 저의 처우에 절망하던 와중에, 큼지막한 글자들이 아래로 쓱쓱 지나가는 영상 속 저랑 같은 처지의 여자의 엉덩이 밑에 어느새 작은 물 웅덩이가 고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랑 다르게 처음 그 자세 그대로 손가락 하나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담담히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이 끔찍한 수감자 규칙을 복창하고 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성기는 벌렁거리며, 왈칵왈칵 애액을 내뿜어진 애액이 허벅지를 타고 바닥을 적시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저의 고통과 절망감으로 가득 차 있던 머리 속, 아주 조금 남아있던 이성이, 그 여성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으련만 싶은 그 사실을…

아마 저도 이 곳에서 계속 생활한다면 바로 저렇게 되어버릴 것 이라는 절망적인 사실을…

그저 가만히 있어도 저렇게…

숨을 쉬는 것 만으로도 저렇게…

저는 몸서리가 쳐질 만큼 이곳이 더더욱 무서워졌습니다.

“사십 칠 저는 교도관님의 명령 없이 자위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허리를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니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너무도 힘이 들었습니다. 온 몸에서 땀이 흠뻑 배어 나오고, 눈물과 이마에서 흘러내려오는 땀 때문에 앞을 보기가 점점 더 힘들어 졌지만, 땀을 닦을 수는 없었습니다. 교도관님의 명령 없이 자세를 바꿀 수 없으니까요.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입술을 뻐끔거리면서, 쉰 소리로, 귀를 가까이 가져가야지만 들리는 소리가 입술 밖으로 새어나올 뿐.

“사십 아홉 저는 교도관님의 명령 없이 절정하지 않습니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숨을 들이 쉬는 과정에서 허리에 힘이 빠져 바닥에 다시 철퍼덕 쓰러져 버렸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정말로,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몸을 덮치는 전기 충격, 여지없이 시작된 10 이라는 카운트, 그리고 이번에는 이 지옥 같은 고통의 시간을 2배가 아닌 3배로 늘려버린다는 교도관님의 말에 저는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저의 후들거리는 몸을 어떻게든 일으켜 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규칙에 대해 배우고 있는 도중에 자세가 흐트러졌으니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256번.”

라는 목소리와 함께 다시 처음부터…

어깨를 짓누르는 절망감에 다시 허리에 힘이 풀려서 바닥에 쓰러져 버릴 뻔했습니다. 아니 차라리 그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나. 저는 교도관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합니다”

….

…..

“백오심칠. 저는 이 모든 규칙을 철저히 준수하며, 만일 하나라도 어길 시 징벌을 받습니다.”

드디어 끝.

처음부터 백오십칠.

1부터 157이란 숫자를 가만히 세는 것에도 2분이 넘는 시간이 걸리는데, 그것을 배 속이 곪아 들어가는 듯한 끔찍한 복통을 참으며, 잘 이해도 되지 않는, 애초에 저것들을 정말로 전부다 지킬 수 있는 것인지 의심이 되는, 그런 인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규칙들을 입에 담으며, 간신히 백오십칠까지.

도중에 몇번이나 허리나 팔에 힘이 풀려서 바닥에 철퍼덕 쓰러져 버릴 뻔했지만, 어떻게든 정말 어떻게든 꾹꾹 참아내서 끝까지 규칙을 복창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간신히 마지막까지 다 했는데…

이제는 피가 통하지 않아 아릿하게 저려오는 정강이에서 느껴지는 바닥이 땀으로 다 젖어 있을 만큼 열심히 했는데…

영상이 삑 하구 멈추더니 교도관님의 목소리가 좁은 방 안에 메아리 쳤습니다.

“256번 목소리랑 자세가 불량합니다. 바른 자세와 큰 목소리로 교육을 받으십시오. 처음부터 다시 합니다.”

바른 자세?...

바른 목소리?...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몽롱한 정신, 지금 당장이라도 바닥에 쓰러져 버릴 것만 같이 극도로 탈진한 몸, 서서히 몸을 죄여오는 탈수증세, 그리고 그리고, 1분, 1초, 심장이 두근거릴 때 마다 하복부에서 느껴지는 지옥같은 고통.

그 모든 것들이, 지금 제가 처해있는 이 상황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방금 들은 말도, 지금 눈 앞에서 처음부터 다시 작된 저 영상도…

꿈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이 끔찍한 현실이 꿈일 리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머리와는 별개로 입술이 저절로 움직였습니다.

“하나 저는 교도관님의 명령에 절대복종 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목소리를 쥐어 짜 냈습니다.

“둘 ……”

눈꺼풀을 내렸다 올려보니, 어느새 얼굴이 바닥에 착 달라붙어 있었고,

“256번 일어나십시오 10, 9, 8, 7, 6”

제가 쓰러지자 마자 귀신 같이 시작되는 카운트 다운과 전기충격.

이번에 3번째?

아니 4번째였던가요?

시간은 대체 얼마나 지난걸까요?

이걸 대체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걸까요?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던가, 손가락 끝이라도 움직이는 한, 저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세워야만 했습니다.

더는 한계인데… 더는 안되는데… 더는 못 움직이겠는데… 더는 못 참겠는데…

하지만 결국 10이라는 숫자에 맞춰서, 무릎을 꿇고 다리를 활짝 벌린 채, 허리를 세워 올리고, 손을 머리 위에 올려 꽉지를 끼우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온 몸이 미친듯이 떨리는게, 도무지 진정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계속해서 입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아 저는 흐아아.. 교도갼님을 명령…에 흐으읏… 절대복종 합니다아아”

그것이 교도관님의 명령이었고, 만약 명령을 어긴다면… 그 뒤는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아니 지금 이 순간 조차도…

결국 처음부터, 다시.

처음부터, 157번까지.

눈 앞이 깜깜해지는 고통과, 위기들을 넘기고 나서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혀와 목을 혹사시켜서 간신히, 정말 간신히 157번까지.

그리고 이번에는

“256번 목소리가 불명확 합니다, 또박또박 말하십시오, 또 자세가 좋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157번까지 다 끝나고 나서야… 차라리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차라리 그때그때 말을 해주지…. 왜 다 끝나고 나서…

눈 앞을 덮쳐오는 깊은 절망감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스물 여덟 저는 교도관님의 명령 없이 배설하지 않습니다.”

잔뜩 쉰 목소리가 쉭쉭거리면서 좁은 방안에 작게 메아리 쳤습니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또박또박, 그리고 큰 소리로…

이런 말도 안되는 비인간적인 규칙들이 뺵뺵히 157번까지나.

처음부터 끝까지.

목소리가 작아서 다시.

도중에 자세가 풀려서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발음이 안좋아서 다시.

쓰러질 때 마다 점점 더 강해지는 전기 충격.

제 몸이 이렇게까지 움직이는 것에 신기함을 느낄 정도로 저는 한계에 한계까지 저의 몸을 혹사 시켰습니다.

말을 듣지 않아 휘청휘청 거리는 몸을 어떻게든 유지시키며, 숨을 들이 마시는 것마저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목을 어떻게든 쥐어 짜 내서, 간신히 처음부터 157번째까지.

그렇게 몇번을, 몇번을 반복했을까요?

이번 마저도 안된다면, 꼼짝없이 이 지옥 같은 시간이 두배로 늘어나버릴 거다. 라는 생각이 한 3번은 들었을 때쯤에야.

“이상으로 수감자 규칙에 대한 교육을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영상과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밝은 클래식 음악이 바뀌는 것과 함께 영상이 다음으로 넘어갔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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