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화 속 이야기들은 모두 죽었습니다-13화 (13/62)

〈 13화 〉 첫날 교육

* * *

설명은 대체 언제까지 이어지는 걸까요?

그저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머리 위에 두고 있을 뿐인데, 극심한 복통 때문인지, 아니면 자세가 힘들어서 인지, 온 몸이 후들후들 떨려왔지만, 화면의 한 구석에 비춰 보이는 여자는 저와 똑같은 자세 그대로 처음과 같이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칼같이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다리를 활짝 벌린 채, 손을 머리 위에 둔 채로, 담담히 앞을 바라보며, 가끔 눈을 깜빡이거나, 숨을 내쉴 때 그 풍만한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할 뿐, 아니 사실 잘 보면 한가지 달라진 점이 보이긴 합니다. 활짝 벌려진 다리 사이에서 적나라하게 보이는 그녀의 성기에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끈적한 애액이 엉덩이 골을 타고 바닥에 떨어져 조금씩 조금씩 고이기 시작한 것이 보였습니다.

표정은 놀랍게도 무표정 그 자체인데 말이죠.

정말 다행이도,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지옥 같은 해암 교도소에 대한 설명은 그 뒤로 더 길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기초 교육은 앞으로 일주일간 진행되며, 수감자분은 이 시청각 자료를 통해, 교도소 내에서의 지켜야 할 규칙, 등 수감 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교육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담당 교도관님의 지도에 따라 성실히 교육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면서

잔잔히 흐르던 배경 음악이 한차례 바뀌고, 화면이 잠깐 깜빡이더니, 이번에는 해암 교도소 수감자 규칙이라는 타이틀이 올라왔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교도소 안에서 생활하기 위한 규칙에 대하여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규칙은 왜 지켜야 하는가? 에서부터, 규칙을 어겼을 시엔 어떻게 되는지, 또한 규칙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나치게 경쾌한 아나운서의 안내와 함께 글자들이 쑥쑥 생겼다가 사라지고, 화면이 쓱쓱 바뀌어가는 와중에, 저의 몸은 1초 1초마다 몸의 한계를 갱신하고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느린 것 같은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말이죠.

이마부터 시작해서 등줄기까지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오는 것이 멈추지 않습니다. 그저, 그저, 손을 머리 위에 올리고 무릎을 꿇고 다리를 벌린 채 앉아있을 뿐인데, 가만히 있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웠던 일이었을까요?

엉덩이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이 도무지 진정되지 않습니다. 항문과 요도가 찢어지는 느낌이 지금 실시간으로 느껴졌습니다. 찢어져서 피가 질질 새어나오고 있는 느낌이 말이죠. 하지만 느껴지는 감각에 액체는 단 1mg도 새어나오지 않고 있고, 배는 계속해서 터질 것 같이 아프고 그리고 그리고…

“첫째. 규칙은 왜 지켜야 하는 것일까요? 우선 해암 교도소에 입소하신 수감자 여러분들은 사회의 규칙을 어기고, 심각하고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사회의 배려와, 시민들의 온정으로 해암 교도소 수감자이자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성노예라는 두번째 삶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에 따라 당연하게도 감사함을 느끼며 더 이상 규칙을 어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교화활동이 원활하기 진행되기 위해서 수감 규칙을 준수하고, 담당 교도관의 명령에 절대복종 하며…”

점점 더 몽롱해지는 의식 속 귀에 들어오는 단어는 더 이상 언어가 아닌 소리가 되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기 시작합니다. 드믄드믄 단어가 들려올 뿐.

심각하고 끔찍한 범죄

성노예

감사함

담당 교도관의 명령

절대 복종

귀에 닿을 때 마다 몸이 흠짓흠짓 떨려오는 끔찍한 단어들.

설명은 그 뒤로 계속계속 이어져서

성노예 라느니, 저의 모든 것이 국가의 소유물이라느니, 원활한 통제와 관리 라느니, 통제 불가의 위험성 등등 길고 긴 이야기들을 지나서

“만일 수감자 수칙을 어겼을 시에는, 위반 정도에 따라 반드시 징벌이 가해집니다. 24시간 철저하게 감시되는 해암 교도소 내에서 수칙 위반 사실을 숨기는 것은 불가능 하므로 그 어떠한 사소한 수칙 위반에도 빠짐없이 징벌이 가해진다는 것을 명심해 주세요. 이때 수칙을 모르거나, 잊어버렸다 하더라도, 수칙을 어긴 것은 사실이므로, 그에 따른 징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 또한 명심해 주세요.”

계속해서 들려오는 공포스러운 내용의 설명들.

징벌.

24시간 철저하게 감시...

숨기는 것이 불가능…

위반한다면 반드시 징벌을...

자신에게 좋지 않은 내용들은 어쩜 이렇게 귀에 쏙쏙 들어오는 걸까요?

만약 수칙을 위반했을 경우 징벌을 피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 하다던가, 수칙을 몰라도, 수칙을 위반했을 때는 반드시 징벌을 받는다던가 하는 지나치게도 불합리한 내용들이 머리 속을 지나갔습니다.

이제와서 생각하는 건데 규칙들을 조금만 일찍 알려줬어도 이 지옥 같은 고통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아니 애초에 이런 징벌을 받기 전까진, 정말로 믿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배설을 하는 것조차 허락을 받아야 한다니… 게다가 자신은 싸고 싶어서 싼 것도 아니고 전기충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럼 지금부터 수감자 규칙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해암 교도소 수감자 규칙은 모두 157개의 조항으로 이루어 져 있으며, 수감자들은 모든 규칙을 숙지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말과 함께 화면에 주르륵 나타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글자들.

“우선 규칙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드릴 테니, 수감자 여러분은 큰 소리로 복창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 저는 교도관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

저의 몸은 그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한계가 찾아온 것 이었습니다.

털썩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얼굴에 느껴지는 바닥의 말랑한 감촉. 과도한 근육 사용으로 심하게 경련하는 온 몸. 실시간으로 혀를 깨물고 싶게 만드는 끔찍하디 이루 말 할 수 없는 배설 욕구와, 심장이 두근두근 뛸 때 마다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배가 터질 것 같은 복통, 그리고 저의 작은 구멍에 저런 것들이 들어가나 싶을 정도의 흉악한 크기의 마개에서 느껴지는 구멍이 찢어지고, 골반 뼈가 벌려지는 지옥 같은 고통에, 저의 몸은 한계에 달했습니다.

벌벌 떨리는 손 끝으로, 엉덩이 마개를 빼 보려고 손으로 엉덩이를 만져 보았지만, 잡히는 것은 맨살과는 다른 얇은 고무의 감촉 뿐.

그리고 곧장 뒤따라 온 것은.

몽롱했던 정신을 일깨우는 찌릿찌릿하다 못해, 뜨겁게까지 느껴지는 전기 충격과 교도관님의 엄한 목소리였습니다.

“256번 지금 당장 일어나서 대기 자세 4번을 취하도록 하세요”

더 이상 몸을 움직일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저는 목을 타고 등줄기를 통해 손 끝을 돌아 다시 사지로 퍼져나가는 끔찍한 전기 충격에 벌레처럼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신음할 뿐, 그 이상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끄으으… 으아아아….. 흐아아….”

“256번 지금부터 10초 안에 대기 자세 4번을 취하지 않는다면, 배설 금지 시간을 2배로 늘려버릴 겁니다. 1. 2. 3.”

차라리 저 말을 듣지 못하였다면, 이해하지 못하였다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아프다 못해 머리가 멍 해지는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교도관님의 그 차갑다 못해 서린 목소리가 저의 귀를 스쳐 지나가, 몸이 저절로 흠칫 떨렸습니다.

그 목소리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까지 3초.

1분 1초 견디기도 힘든 이 지옥 같은 고통의 시간이 2배로 늘어난다는 내용.

“4 5 6”

10까지 숫자를 세는 교도관님의 목소리엔 주저함이나 늘어남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0까지 기다려 줄 생각조차 없다는 듯이, 그저 담담히 그리고 빠르게 세어지는 숫자들.

4라는 숫자가 지나갈 때 초인적인 자제심을 발휘해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엉덩이에서 떼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6이라는 숫자에 신음하며 손으로 바닥을 쓸면서 몸을 일으켜 보려고 노력했지만 힘이 부족해서 실패해 버려서,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습니다.

“7 8 9”

7이란 숫자에 간신히 무거운 몸뚱이를 일으켜 세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쓰러져있던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운 탓에 묵직한 아랫배의 고통이 더 해졌지만, 지금은 신경 쓸 때가 아니었습니다.

8이라는 숫자가 귀에 들어왔을 때, 부들거리는 팔을 머리 위로 올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팔에서 금방 힘이 빠져버려 다시 털썩 하고 팔이 내려가 버렸습니다.

9란 숫자가 귀에 닿자, 눈 앞이 깜깜해진 저는 이를 꽉 깨물고 남아있는 모든 힘을 다해 팔을 머리 위에 올리고,

“10”

마지막 숫자에 맞춰서 머리 위에서 손에 꽉지를 끼는 것이 성공 했습니다.

“하아… 흐아아.. 하아.. 하아… 으으으…”

그러는 지금 와중에도 전기 충격은 계속되어서 온 몸이 타는 듯이 지릿거렸지만, 어떻게든 견뎠습니다.

절대… 절대… 이 지옥 같은 시간이 더 이상 1분이라도 더 늘어나는 것 만큼은 막기 위해서.

“자세를 똑바로 하십시오 256번. 제대로 다리를 벌리고, 허리를 펴고, 팔을 똑바로 하고,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세요. 앞에 영상에 바른 자세가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온 몸이 후들거려서 금방이라도 허리에 힘이 풀려 다시 엎어질 것 같은 공포와 씨름하며, 천근처럼 무거운 얼굴을 들어 정면을 바라보고, 벌레처럼 꿈찔꿈찔 움직여 할 수 있는 최대한 다리를 벌렸습니다.

비록 영상에 나오는 여자의 반듯한 자세와는 많이 달랐지만. 이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정말 다행이도.

“좋습니다 256번, 다시 첫번째부터 교육을 진행하도록 하죠. 교도관의 명령없이 자세를 바꾸는 것은 규칙 위반입니다 256번 명심하십시오.”

정말로 힘든데 잘 견디고 있다는 칭찬이나, 더 잘 할 수 있다는 격려 대신에 들려온 냉담한 목소리.

“흐아아악… 끄으으… 네…. 교도관님…”

저는 잔뜩 쉰 목소리로,가쁜 숨을 어깨로 들이마시며,숨소리와섞여 나오는 쇳소리와 함께 대답했고,그제서야 전기충격이 멈추고 다시 영

상이 재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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