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화 속 이야기들은 모두 죽었습니다-4화 (4/62)

〈 4화 〉 첫날 점호

* * *

무언가 불편한 감각에 무심코 눈이 뜨였습니다.

눈 앞은 깜깜한 어둠 그 자체.

또 눈이 가려져 있는 걸까요?

몸을 움직이려 해 보아도 사지가 무언가에 걸려서 덜컥 멈추는 것이. 아무래도 또 묶여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전처럼 무섭지 않은 게, 묶여 있는 부위가 손목이랑 발목 뿐이라서 그 외의 다른 부위들은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에, 손가락 조차 움직일 수 없던 전보다는 그나마 나았습니다. 팔다리가 댕겨지는 거 같아서 꽤 불편하긴 했지만…

꼼지락 꼼지락 답답한 마음에 몸을 움직여 보니, 부드러운 재질의 바닥이 맨살을 타고 느껴졌고, 저는 바닥에 큰 대자로, 사지가 묶여 눕혀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턱이 또 빠질 듯 아린 것이, 재갈도 물려져 있는 모양이고요. 하지만 이번에는 귀는 막혀있지 않았기 때문에 움직일 때 마다 들리는 사부작 사부작 살 스치는 소리가 그나마 조금의 안도감을 저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집에 있을 줄 알았는데...

다 꿈 일거라 바랬는데…

암담한 현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아서…

제가 정신을 잃고 난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요?

마지막 기억은...

몸이 타는 듯한 고통에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기절했던 기억입니다.

차라리 떠올리지 않는 게 좋았었겠네요. 숨을 내쉴 때 마다 갑갑하게 목이 조여오는 느낌이 나는 게, 억지로 채워진 묵직한 목줄의 감각은 결코 익숙해질 것 같지 않습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이 모양이라니... 비참함에 눈가가 뜨거워 졌습니다. 만약 입이 막혀 있지 않았다면, 혀를 씹어서라도 자살을 시도했지 않았을까요?

차오르는 눈물을 꾹꾹 참으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는 왜 묶여있는 걸까요?

제가 묶여있는 이곳은 어디일까요?

팔다리가 팽팽하게 댕겨지는 감각이 매우 불쾌했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난 걸까요?

한참 동안이나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꼬물꼬물 거리다가 이내 지쳐서 몸을 움직이는 것을 관두고 멍하니 어둠을 응시하고 있을 때.

캄캄한 어둠 속, 자신의 소리 밖에 들리지 않던 고요 속에, 갑자기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큰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몸을 흠칫 떨었습니다.

"현재 시각 5시. 수감자 여러분들 모두들 일어날 시간입니다. 수감자 여러분들은 점호를 위해 대기 자세로 담당 교도관이 오는 것을 기다려 주세요.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상황에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클래식 음악과 함께 나오는 상큼한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

그리고 그 안내 방송이 끝나자 마자 들리는

"잘 주무셨나요? 256번? 많이 불편하지 않으셨나요?"

어제... 저에게 끔찍한 짓을 했던...

끝에는 전기 충격으로...

저의 담당 교도관의 목소리였습니다.

"잠은 잘 주무셨나요? 입소 초기에는 이것저것 많이 불편하겠지만,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겁니다."

"...."

입이 꽉 막혀 있어서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것보다 대답하기도 싫었습니다.

정신을 차리자 마자 듣는 것이 이 남자의 목소리라니. 저 목소리를 들으니 어제 정신이 끊어질 때까지 느껴졌던 그 끔찍한 전기 충격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좋아요 이제 결박을 풀어드릴테니 그 위치에 그 자리 그대로 계셔야 합니다. 이해 하셨다면 고개를 두 번 끄덕 이십시오"

끄덕 끄덕

그래도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건 반가운 이야기니까. 순순히 따랐습니다.

사실 반항하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어제의 전기 고문은 너무 아팠으니까…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손발에 채워져 있던 딱딱한 무언가가 풀린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담당 교도관을 명령에 따라, 그 자리, 그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갑자기 어깨가 잡히더니, 상체를 잡아 끌어 올려져서는, 그대로 머리채를 잡혀 바닥에 이마가 맞붙게 엎드려지고, 그 상태로 팔을 등 뒤로 손과 손으로 팔을 붙잡는 자세를 취하게 만들어 졌습니다.

전과 같은 우악스럽고 힘이 잔뜩 들어간 손길이 아닌, 그저 아주 조금 힘을 주어서, 저에게 이런 자세를 취하라고 유도하는 손길. 그리고 그 유도에 순순히 따르는 저.

"자 이제 아이 마스크랑, 재갈도 풀어드릴 테니까 제가 허락할 때까지 움직이시면 안됩니다."

"...."

주섬주섬 얼굴을 더듬는 느낌과 함께, 제일 먼저 입 속을 가득 메꾸고 있던 재갈이 벗겨지고, 그 다음으로 눈 앞의 어둠이 걷혔습니다.

"좋아요 잘 하셨어요 256번. 그럼 아침 점호를 준비하죠. 천천히 일어나세요"

그렇게 손을 뒤로 한 채로 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다리를 세워 일어났습니다. 일어나는 도중에 무릎에 힘이 풀려 살짝 휘청거렸지만 어떻게든 균형을 되찾고, 눈동자를 바쁘게 굴려 주변을 살펴 보았습니다.

어디에서 어디를 보아도 회색 벽으로 막혀있는 공간.

딱 1인용 침대 만한 좁은 넓이.

맨발로 느껴지는 바닥은 조금 말랑한 느낌이었는데, 겉 보기에는 그냥 돌 벽처럼 보이는데, 바닥과 똑같이 생겨서, 저 벽들도 만져보진 않았지만 전부다 말랑말랑 하지 않을까요?

"자 이제 뒤를 바라보세요 256번"

그렇게 담당 교도관의 명령에 따라 천천히 뒤를 돌아보니, 그곳의 벽면은 투명한 막으로 되어있었고, 그 너머에 제 담당 교도관이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여전히 그는 빳빳한 정복 차림.

와이셔츠에, 넥타이에, 마이에, 정장 바지까지.

그에 반해 저는 여전히 알몸.

바깥 공기에 닿는 피부가 부끄러움에 화끈거립니다.

손이 뒤로 가 있는 자세라 아무것도 가리지 못하고 무방비하게…

"자 지금부터 점호를 위한 대기 자세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제가 명령하는 대로 움직이셔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256번?"

"..... 네"

저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뒤늦게 대답했습니다. 그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저에게 전기 충격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을 어제 알았으니, 그가 무엇을 하든, 저는 아무것도 거부할 수가 없다는 것을 어제 정말 온 몸에 새겨지듯이 배웠으니, 그의 앞에서 착한 양처럼 굴어야만 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조금의 반항을 담은 의미에서 들리랑 말랑 하는 아주 조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어쩌면 목소리가 잠겨 나오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 우선은 다리를 어깨 넓이보다 조금 더 벌리고, 손을 머리 뒤로 꽉지를 낀 채 뒷통수에 붙이도록 하십시오"

저는 주섬주섬 그의 명령에 따라 뒤에 있던 양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다리를 벌렸습니다.

"좋아요. 이제 그 상태로 엉덩이를 밑으로 내리세요 스쿼트 자세라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세상에 누가 스쿼트를 알몸으로… 그것도 남이 보는 앞에서… 하지만 또 전기충격을 당하기는 싫으니까 저는 순순히 시키는 대로 그의 명령에 따라 그 상태 그대로 엉덩이를 밑으로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다리를 활짝 벌리세요 256번 성기가 한눈에 잘 보이게끔 벌리는 겁니다."

제 소중한 그곳을 그에게 보이기 싫어서 있는 다리를 오므리고 있는 저에게 구체적으로 성기를 잘 보여라는 설명까지 하면서 그는 끔찍한 자세를 명령했습니다.

정말… 정말로…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을 만큼 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수치심과 비참함에 눈물이 터져서 볼을 타고 주르륵 떨어져 내려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꽉지 낀 손을 머리 뒤에, 다리를 활짝 벌려서 무릎을 굽힌 자세.

온 몸의 구석구석의 부끄러운 부위들이 모두 한눈에 들어오는 평생 취해본 적 없는 엄청나게 수치스러운...

"잘했어요 256번. 점호는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 전에 시행됩니다. 그리고 그 자세는 그 자세는 대기 자세 중 하나입니다. 잘 기억해 두도록 하세요"

"......네....."

그는 제가 그 끔찍한 대기 자세 라는 포즈를 완벽하게 취한 것을 보고는, 주머니 속에 있던 기계를 꺼냈습니다. 바로 어제, 저에게 전기 충격을 줄 때 사용했던 그 휴대폰 같이 생긴 기계… 그것을 보자 마자 무의식적으로 몸이 움찔 하고 떨려 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기계가 보이자 저는 무심코 유지하기 힘든 자세를 빳빳하게 경직시키며, 스멀스멀 할 수 있는 최대한 다리를 활짝 벌려 저의 그곳이 담당 교도관에 더더욱 잘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혹시나 자세가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어제 당했던 전기충격을 또 당할까봐, 전기 충격 한번에 이렇게 벌벌 떠는 자신의 처지에 눈물이 뚝뚝 흘러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손으로 기계를 몇 번 조작할 뿐, 다행이도 전기충격은 없었습니다.

"점호는 모든 수감자들의 점호 준비가 확인되고 나서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256번이 제일 마지막이네요. 지금부터 점호가 시작되니까, 들려오는 안내에 따라 해주시면 됩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마자 투명했던 벽은 순식간에 흐릿한 무언가로 바뀌더니, 이번에는 사방을 갑갑하게 막고 있던 회색 벽들이 모두 지금 저의 모습을 비춰 보여주는 거울 같은 무언가로 변하고

"지금부터 아침 점호를 시작하겠습니다. 수감자 여러분들은 다음의 안내에 맞추어 해암 교도소 수감자 마음가짐을 큰 소리로 복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에 맞춰서 좁은 방 안에 메아리가 칠 것만 같이 큰 소리와 함께, 또박또박한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나. 저는 해암 교도소의 수감자로서 매일매일의 교화 활동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 하나. 저는 해암 교도소의 수감자로서 매일매일의 교화 활동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그 말을 뒤따라 복창했습니다.

하지만 제 앞에 있는 거울 바로 앞에서 들리는

"목소리 더 크게 안 하면 다음에는 징벌 대상이 됩니다. 256번"

담당 교도관의 차가운 목소리에.

"둘. 저는 교도관님들의 명령에 절대복종 하며,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충실한 수감 생활을 보내겠습니다"

"둘. 저는 교도관님들의 명령에 절대복종 하며, 충실한 수감 생활을 보내겠습니다."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 짰습니다.

저의 목소리가 좁은 방 안에 부딪혀서 메아리 치는 것이 들립니다. 것보다 사방이 거울이라, 대체 어디를 바라보아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고개를 푹 숙여 아래를 보아도, 바닥에서도 저의 모습이 비춰 보여서… 저의 소중한 그곳과… 어제 그 커다란 주먹이 쑤셔 넣어졌던 항문이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와서… 애써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난생 처음 보는 수치스러운 포즈를 취한 제가 비춰 보여서…. 눈을 질끔 감았지만.

"256번! 점호 중에는 정면에 비친 자신의 눈을 바라봅니다. 이 또한 지키지 않으면 징벌을 받게 될 겁니다.

억지로 억지로 눈을 떠서 고개를 들었습니다.

"셋. 저는 제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반성하며, 저로 인해 크나큰 고통을 느낀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저의 교화 활동으로 사죄하겠습니다."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뭘 사죄하라는 거야...

하지만 날아올 징벌 이라는 것이 무서워서 저절로 입이 움직였습니다.

"셋. 저는 제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반성하며, 저로 인해 크나큰 고통을 느낀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저의 교화 활동으로 사죄하겠습니다."

"넷. 저는 용서받을 수 없는 끔찍한 범죄를 지었으나, 사회의 온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했다고...

"넷. 저는 용서받을 수 없는 끔찍한 범죄를 지었으나, 사회의 온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다섯. 저의 모든 것은 해암 교도소와,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저를 살려 주신 국가와 사회에 감사함을 느끼며, 해암 교도소의 수감자로서 수감자 규칙을 충실히 지키며, 국가와, 교도관님들의 충실한 성노예가 될 것을 맹세합니다."

뭐...?... 뭐어?.... 서... 성노예?....

"다.. 다섯... 저의 모든 것은 해암 교도소와, 끔찍한 죄를 저질렀음에도 저를 살려주신 국가의 소유물로서, 저는 해암 교도소의 수감자로서 수감 규칙을 충실히 지키며, 국가와, 교도관님들의 충실한... 충실한... 성.. 노예가 될것을... 맹세합니다."

몇번이나 말을 더듬었습니다.

특히 저 성노예 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는 몇 번이나 주저했습니다.

정말로 이게 맞는거야? 하면서…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성노예라니...

그러니까... 그러니까.... 도저히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성노예가 될 것을 맹세합니다.

라는 그 구절만 머리 속에 가득 차서는...

"이것으로 아침 점호는 종료되었습니다. 수감자 여러분들 모두 오늘 하루도 교화 활동에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지나치게 활기찬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

어떻게 저런 단어를 입에 담으면서…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