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5화 〉 @47. 커플 치한 (375/377)

〈 375화 〉 @47. 커플 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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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희의 뒤를 따라 탕안으로 들어온 여자는 키가 꽤 크고 시원시원한 이목구비가 매력적인 여자였다.

무슨 운동이라도 하는지, 군살 하나 없는 몸에 근육이 살짝 잡혀 있어 보기 좋았다.

"먼저 와 계신 분이 있었네. 안녕하세요. 옆에 앉아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승희는 꽤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며 옆에 앉는 키큰 여인에게 자신도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녀가 그다지 무례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행실을 조심할 때라서 더욱 그러했다.

메이저 데뷔가 얼마 남지 않은 시기라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도 상대를 무시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요즘 같은 시기 엄한 소문 하나로 이미지 망치고 뜬소문에 시달릴 필요는 없었다.

"여기 꽤 분위기가 괜찮죠?"

여자는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네. 좋다는 이야기만 들었었는데, 생각보다 운치있고 조용해서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어디서 본 분 같은데?"

그녀가 자신을 알아보는 눈치를 보이자, 승희는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나름의 커리어가 있다고는 하지만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고, 조금 나이가 차서 출연한 것들은 대부분은 조연이라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배역이 전부였고, 그나마 최근 웹드라마 몇 편에서 조연과 그리고 최근 한 편에서 주연을 맡은 것이 내세울만한 경력이다.

"어디 드라마에서 본 거 같은데... 혹시 배우 맞으세요?"

그녀가 빙긋 웃으며 물어왔다.

"네. 그렇기는 한데 아직 이름이 알려질정도는 아니라서..."

조금은 무례할 것도 같은 질문이었지만, 그녀의 부드러운 미소 때문에 승희는 어쩐지 마음이 편해져 대답했다.

"어쩐지 굉장히 미인이시더라구요. 아! 맞다. 생각났다. 당신의 기억속의 그녀였나요? 거기 나오셨던 그 깜찍한 여주인공 맞죠?"

그녀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박수를 치며 승희가 나온 웹드라마를 말하자, 승희는 꽤 반가웠다.

"네. 맞아요.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승희가 웃음을 띄우고 인사를 했다.

"별로 유명한 작품이 아닌데 기억하셨네요."

"드라마는 그냥 평범했었는데, 승희 씨가 하신 역할이 굉장히 눈에 띄었거든요. 꼭 내 여동생처럼 천방지축으로 사고를 치고 다니는 모습 때문에 말이에요."

"하하. 네. 그런 역할 맞았어요."

"근데 배우분은 굉장히 차분하시다. 역시 배우는 다르구나. 난 승희 씨가 실제로도 그렇게 활달하시고 조금 푼수끼 있는 분이 아닌가 생각했었거든요."

자기가 아는 연예인을 만나서인지 그녀는 처음 본 이미지와 달리 꽤나 말이 많았다.

하지만 승희는 그게 딱히 싫지만은 않았다.

어쩐지 앞으로 그녀가 만날 사람들이 대개가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여인 같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오히려 어떤 징조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아무래도 승희의 앞날은 밝을 것 같았다.

여기에 오길 잘한 것 같았다.

"비슷한 면도 있고, 조금 다른 면도 있어요. 사실 저도 실제로 조금 푼수 같은 면도 없지 않고요."

"어머나. 연기만 잘하시는 게 아니라 됨됨이도 되셨네요. 그렇게 겸손하기까지 하시니까 앞으로도 좋은 역할 많이 맡으시고, 꼭 스타가 되실 거예요."

처음 만난 여자가 그렇게 칭찬을 해주고 앞날까지 축복을 해주는데 기분이 나쁠 수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승희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그럼 우리 악수 한 번만 해도 될까요? 사실 나 승희 씨처럼 이름있는 분이랑 이렇게 이야기해보는 거 처음이라서요."

승희도 기분 좋게 여자에게 자신의 손을 내어주었다.

그녀는 승희의 손을 잡고 보드랍게 감싸안았다.

"손도 굉장히 이쁘시네요. 참! 그런데 여기 혼자 오셨어요?"

"아! 네. 오늘은 조금 조용히 쉬고 싶어서요."

"그러셨구나. 그럼 장우석 의원님 만나러 오신 거 아니셨구요?"

그리고 그 낯선 여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을 듣는 순간 승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떻게 그 이름을 아는 거지?

그리고 내가 여기서 그 사람을 만나리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당사자인 두 사람 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 여자는 장 의원이 보낸 사람이거나...

승희는 아주 최악의 상황을 머리에 떠올렸다.

설마 부인에게 들킨 걸까?

그 사람의 부인은 굉장한 부자이다.

그러니까...

잠깐 동안 그녀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떠돌았다.

승희는 당장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의 손이 아직 그 여자에게 잡혀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장 의원님 참 좋으시겠다. 이렇게 아름다운 승희 양이랑 좋은 시간을 보내기로 하셨다면서요?"

그녀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고, 승희는 여전히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발뺌을 하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지만, 정확하게 두 사람의 관계까지 알고 있는 상대에게 그런 말을 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모를만큼 승희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차라리 그녀가 어떤 말을 하는지 기다리기로 했다.

자기에게 이런 말을 꺼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피부가 굉장히 하얗고 부드럽네요. 역시 어린 여자가 좋아. 장 의원님도 그러니까 사랑을 고백하신 거겠죠?"

여자는 계속해서 자신의 손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꿀꺽!

그리고 승희의 머리는 점점 더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장 의원이 자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것은 바로 지난 번의 만남에서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 남자와 자신 둘 뿐이다.

자기가 누구에게도 그걸 말한 적이 없으니까 당연히 그말을 할 사람은 그 남자 뿐이다.

하지만 어째서?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서 더 큰 피해를 입는 사람은 당연히 그 장 의원이다.

그는 아주 가진 게 많았고,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이다.

물론 자신의 커리어 또한 완전히 망가질 것은 틀림없지만, 그래도 어차피 대단한 경력도 아니니까...

"참! 장 의원님 오늘 가족분들과 함께 오시기로 하셨지요?"

꿀꺽!

승희는 너무 당황해서, 그녀가 자신에게 이제 완전히 달라붙어있는 것도, 한 손을 자신에 어깨에 얹고 있는 것도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승희의 온 신경은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들이었다.

"장 의원님과 오늘 여기서 만나자고 한 사람이 승희 양이었다지요?"

그녀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승희를 거겁하게 만들 말만 나오고 있었다.

"장... 의원님께서 보내셨어요?"

그리고 승희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혹시라도 그 사람이 보낸 거라면...

마음이 바뀌어서 그녀와의 밀회를 없던 것으로 하자는 말이라면 차라리 낫다.

어쩌면 걱정이 되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과의 관계가 장 의원의 앞날에 장애물이 될 것 같아 후회를 하는 마음이라면...

승희는 차라리 그쪽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장 의원님이요? 설마요? 지금 장 의원님은 승희 양과 멋진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잔뜩 기대하고 계실 텐데요."

하지만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승희의 기대를 배신했다.

그러면 누구지?

그 여자인가?

겁이 덜컥 났다.

재벌가의 여인은 자신의 남편을 빼앗으려는 요망한 여자를 어떻게 처리하려 할까?

승희의 머릿속에 온갖 안 좋은 생각들이 떠돌았다.

"굉장히 매끈한 피부야."

그녀가 승희의 어깨를 부드럽게 어우만지며 말했다.

"그 사람이 좋아하겠어."

승희는 그녀가 말한 그 사람이라는 말에 다시 깜짝 놀랐다.

장 의원인가? 그러겠지? 그 사람 말고 달리 누가 있겠어?

그런데 어째서?

처음으로 승희는 그 여자의 손길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냥 의미 없이 만지는 것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끈적거렸다.

마치 남자가 여자의 몸을 만질 때처럼...

승희는 그 여자의 손길이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던 수건을 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상대의 의도를 몰랐기에 아직도 저항을 하지 못했다.

"무얼 원하시는 거예요."

승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녀는 이 상황도, 이 여자도 전부 부담스러웠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자리를 뜨고 싶었다.

하지만 물론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아!"

그런데 승희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대신, 그녀는 한 손을 물속으로 넣으며 승희의 허벅지를 만졌다.

"대체?"

왜 그러는 거냐는 질문을 하기도 전에 그녀가 승희의 몸을 끌어당겼다.

승희는 자신을 끌어당기는 여자의 손길이 거의 남자처럼 힘이 세다는 생각을 했다.

대체 무슨 일을 하는 여자인 걸까?

점점 더 안 좋은 생각으로 승희의 머리가 하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지금 뭘 하시는 거예요."

승희는 여자의 품에 안겨 애처롭게 한 마디를 내뱉는 것이 전부였다.

"뭘 하려는 거 같아요?"

그녀는 승희의 몸을 뒤에서 끌어안으며 승희의 귀에 은근하게 속삭였다.

"대체 누가 보낸 분이세요."

승희는 그 여자가 자신과 수수께끼 놀이를 하려는 것처럼 되려 질문을 던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 오빠가요."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아!"

그리고 승희는 그 여자가 한 손을 앞으로 보내 자신의 가슴을 잡아오는 것에 화들짝 놀랐다.

이래서야 무슨 추행이라도 당하는 기분이다.

"뭐하는 거예요?"

"당신을 즐겁게 해주려고요."

여자의 손길이 아주 부드럽게 승희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이런 걸로 기분이. 핫!"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틀림없이 이 낯선 여인에게 협박을 받으며 만져지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그녀는 자신이 흥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자의 손이 가슴을 어루만지는데 어째서 이런 쾌감이 몰려오는 걸까?

"흐읏! 하지 마세요."

승희는 몸부림을 치며 애처롭게 저항해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끌아안고 있는 힘은 승희의 저항하는 힘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고, 승희는 사실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도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의 다른 한 손이 아래에서 들어오며 승희의 허벅지 깊은 곳을 만지기 시작하자, 승희는 그렇지 않아도 짜릿하던 몸이 마구 반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흐읏! 이러면 안 돼요! 아!"

그녀는 자신이 마치 남자에게 당하고 있을 때처럼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안 되지 않아요. 승희 양의 몸도 반기고 있는 모양이네요."

그 여자는 계속해서 승희의 귀에 속삭이고 있었다.

귓가가 간지러웠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의 숨결조차도 승희의 몸을 자극하고 있었다.

"하아... 이거 나쁜 짓이에요. 핫!"

승희가 다시 한 번 몸을 떨었다. 여자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젖꼭지를 살짝 잡았기 때문이다.

"가슴은 큰데 여기는 굉장히 조그마하네. 오빠가 굉장히 좋아하겠어."

그녀가 말하는 오빠가 대체 누구인지 모르겠다.

설마 장 의원을 말하는 걸까?

그렇다면?

승희는 어쩌면 이 여자가 장 의원의 다른 여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설마 진짜 장 의원의 여동생은 아닐테이고...

그런 사람이었던가?

승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장 의원이라면 결코 그런 사람은 아닐거라 생각했다.

정치인 치고는 너무나 깨끗한 눈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모르지.

정치인이란 사람들은 죄다 무슨 꿍꿍이를 숨겨놓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하응!"

하지만 승희의 생각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그녀의 손길이 점점 승희의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마치 사랑하는 남자의 손길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있는 것 같은...

"아!"

승희는 깜짝 놀랐다.

어째서 이런 생각까지 하는 거야?

이런 정체 모를 여자의 손에 느끼는 게 말이나 돼?

더군다나 승희는 지금까지 어떤 남자에게도 자신의 몸을 건드리는 것을 허락한 적이 없었다.

아주 귀한 상품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 귀한 상품을 제값을 치루어줄 사람에게 넘길 아주 중요한...

"그만! 그만해요."

승희는 자꾸만 쾌락에 길들여지려는 자신을 억지로 꾸짖으며 소리쳤다.

"대체 누구세요. 누구신데 이렇게 나쁜 짓을 하시는 거예요?"

승희는 고개를 돌리고 그녀에게 당당하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감히 그 여자와 가까이에서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 그래. 맞다. 내 소개를 안 했네. 실례 했어요. 전 나은이에요."

그녀가 자신을 소개하는 말에는 조금도 진정성이 보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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