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3화 〉@44. 남극의 파라다이스
그리고 윤진도 정미도 그런 그의 모습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윤진의 남편과 부친이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나보다 주인님께 물어야 해요."
정미가 날 바라보며 말했다.
아! 그렇구나. 정미를 다치게 한 것은 내 물건을 망가트리려 한 것이다.
용서를 빌어야 한다면 내게 해야했다.
그리고 그 아이도 그걸 이해했는지 내 앞으로 와서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죄송합니다. 무슨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캐스팅 카드 < 빼앗기는 남자 >의 위력이 아주 충분하게 발휘된 모양이다.
사내는 마치 내 충복이라도 되는 듯 고개를 숙이고 처분을 기다렸다.
어떻게 해야할까?
녀석이 저지른 행위는 나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다.
"좋아. 그렇다면 앞으로 넌 평생 정미 씨의 노예로 살아. 어떤 일이라도 시키는대로 해야해."
그녀석이 한 행동의 대가로 충분한지는 모르겠지만, 정미를 다치게 했으니, 정미의 처분에 맡기는 편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정미는 저 부드러운 얼굴 뒤에 아주 무자비한 본모습이 숨겨져있으니, 결코 평범한 삶을 살게 되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거면 되겠습니까?"
하지만 녀석은 어쩐 일인지, 내 처분을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 그랬지! 정미는 이 녀석과도 잠자리를 같이 했다고 했었지.
"물론 정미 씨를 탐내는 일 따위 꿈도 꾸지 말고."
"당연하죠. 제가 어떻게 감히..."
하지만 녀석의 얼굴에 떠오르고 있던 감정은 틀림없이 희열에 가까운 것이었다.
"주인님의 관대하신 처분에 감사드려요."
정미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녀의 눈빛이 빛나는 것을 보아서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앞으로 시키시는 것은 무엇이든 할게요. 정미... 님..."
녀석은 정미를 어떻게 대해야 될 지 아직 혼돈스러운 모양이다.
"우선은 조용히 살아가면 돼요. 누나에게나 아버지에게나 누가 되지 않도록."
정미가 윤진의 동생에게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제..."
윤진의 동생이 말을 꺼내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는 아직도 윤수를 아들로 생각하고 계셔."
정미는 윤진의 동생에게 잠시 존대말을 하는 것 같더니, 어느사이엔가 편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으면서도 부드러워 마치 그녀 자신의 동생을 나무라고, 설득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네에?"
"뭐어?"
윤진과 그녀의 남동생 모두 깜짝 놀라했다.
"그게 뭔 소리야? 어째서?"
윤진이 불만인 모양이다.
"너희 어머니가 한 짓이 마땅치는 않으시지만... 윤수 잘못은 아니잖아."
정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윤진이 뭔가 다시 반박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정미의 말이 좀 더 빨랐다.
"그래서 윤수 네 앞길을 위해서도 생각은 하고 계셔. 물론 대양 그룹은 누나 거야. 너도 그건 이해하지?"
"그런 거 이제 필요 없어요."
완전히 새사람이 된 윤진의 동생이 힘없이 말했다.
"그리고 내가 저지른 짓이 있는데... 무슨 면목이 있다고..."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다시는 대양 그룹에 미련 같은 거 갖지 말고."
"네."
"하아... 아버지도 참... 왜 그렇게 무뎌지신 거야?"
윤진은 여전히 마땅치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정미의 결정에 반대 의사를 내비치지는 않았다.
"조용히라고 한 거 기억하지?"
정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네..."
"쓸데 없이 밤에 돌아다니며 여자들 건드리지 말고. 우선은 내 할 일만 해. 학생이니까 공부에 열중해야지?"
"여자... 같은 거... 이제는..."
윤진의 동생은 그쪽으로도 부끄러운 것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정미는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그래. 그만하면 됐어. 이제 네 방에 들어가서 쉬도록 해."
"안 돼!"
갑자기 윤진이 끼어들었다.
"나 쟤랑은 같이 못살아. 여긴 네가 있을 데가 아니야."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은 물러서지 않을 기세였다.
"그렇구나. 하기는. 그럼 아까 말한 서초동 오피스. 거기로 가. 앞으로 거기 살면서 학교도 잘 다니고, 사고는 치지 말고. 나중에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부를게."
정미도 윤진의 마음을 헤아려주었다.
"알겠습니다."
윤진의 동생은 선선히 지시를 따랐다.
녀석은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집밖으로 나가버렸다.
"정말로 아버지가 쟤 그냥 두기로 하셨어?"
윤진이 물었다.
"넌 정말로 윤수를 호적에서 파낼 생각이었어?"
"당연하지 않아?"
윤진은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씩씩대며 말했다.
"그러면 아버지의 명예는? 설마 대양 그룹 회장님의 하나뿐인 아들이 사실은 자기 아들이 아니었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셔야 한다고 생각했어?"
"아!"
생각이 짧은 윤진은 그제서야 모든 것을 이해했다.
"하지만... 기분 나쁘잖아... 그냥 두면, 저 녀석이 아빠 회사를 물려받겠다고 덤빌 수도 있다고 생각했단 말이야."
"그건..."
정미가 잠시 말을 머금었다.
"내가 처리할 생각이었어. 절대로 윤진이 너한테 피해가 가게 두지는 않을 거였어."
그녀가 다시 부드러운 눈빛으로 섬뜩한 의사를 내뱉었다.
"물론 주인님께 허락을 받고 나서 말이야."
정미가 다시 날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 그랬구나..."
윤진도 정미의 계획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엄마처럼 말이지?"
그녀는 약간의 원망과 약간의 고마움이 섞인 표정으로 정미에게 물었다.
"꼭... 그런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미는 윤진의 추측을 부인하지 않았다.
"지독한 년. 사람 목숨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냐?"
윤진은 정미를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널 위해서라면 나 못할 일이 없어."
물론 그녀가 윤진을 위해서 그럴 거라 생각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내 소유인 윤진을 위해서 라는 쪽이 훨씬 더 타당할 것이다.
"날 위해서라고? 나도 언젠가 죽일 생각이었잖아?"
정미에 대한 윤진의 적개심은 아마 영원히 그녀의 마음 한쪽에 남아있을 것이다.
"꼭 그랬던 건 아니야. 여러가지 방법 중 하나였던 것 뿐이지."
정미의 얼굴에는 조금의 부끄러움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괴물 같아. 너야말로 진짜 괴물이야."
윤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단한 사람들이네요."
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우리 파벌로 들어와요."
엉뚱하게도 수빈이 그런 제안을 했다.
"파벌이요?"
윤진이 물었다.
"그런게 있어요. 나중에 설명해 줄게요."
수빈은 두 사람이 무척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정미와 윤진을 다룰 수 있는 쪽은 지연보다는 수빈이 더 어울린다.
물론 내가 그녀들이 말하는 파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둘 중 하나라면 수빈 쪽이 낫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그녀들의 파벌 놀이에는 절대 끼어들지 않기로 했으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날 부른 이유가 뭐였지?"
그제서야 난 윤진이 오늘 보자고 했던 이유를 물어보았다.
지금까지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 맞다! 오늘 윤수 쫓아내고요, 앞으로 주인님을 여기 모시려고요."
윤진이 발랄하게 대답했다.
"응? 모셔?"
"여기 사시면 어떨까하고요. 이집 제법 넓어서요. 주인님의 여자들이 잔뜩 살아도 충분할 거 같아서요."
윤진은 너무나 천진난만하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왜?"
"그냥... 제 거는 전부 주인님 거니까... 대양 그룹도 그렇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부터 준비하면 몇 년 안에 대양 그룹 지분을 전부 주인님한테..."
윤진은 자신이 원한 반응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는지 기가 죽어 간신히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대양 그룹이건, 이 집이건 내가 왜? 내가 내 여자의 것을 탐내는 사람으로 보였어?"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죄송해요. 윤진이가 아직 철이 없어서..."
정미가 사과를 하는 모양을 보니, 윤진 혼자 꾸민 생각인 모양이다.
"그래. 뭐. 잘 못 생각할 수도 있지. 하지만 이제부터는 명심해둬.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윤진이 네 몸 뿐이야. 대양 그룹이니 그런 쓸데 없는 생각은 하지도 마."
"네에... 죄송해요."
윤진이 다시 불쌍하게 대답했다.
"저어... 그러면 제 몸이 대양 그룹보다 좋다는 거죠?"
하지만 금세 빙긋 웃으며 물어왔다.
"당연하지. 그런 회사 따위 몇 십 개를 가져와도 너랑은 바꾸지 않을 거니까."
그녀가 뒤틀린 여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굉장한 미인이고, 또 나만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내겐 충분했다.
"윤진이가 주인님을 정말 잘 못 보고 있었어. 주인님은 그렇게 작은 분이 아니셔."
정미가 윤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도 이제 알아. 정말 잘못했어요. 주인님. 그러니까 벌을 받을게요."
윤진이 다시 무언가를 바라는 얼굴이 되어 말했다.
"아니. 오늘은 더이상 벌은 안 줄 거야."
"네에?"
윤진이 서운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리고 정미 씨도 당분간은 윤진이한테 원하는 걸 주지 말아요."
윤진에게 벌을 준다면, 오히려 그녀를 괴롭히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죠."
물론 정미도 그걸 이해하고 있었다.
아마도 윤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름아닌 바로 정미일 것이다.
윤수가 집을 나선 뒤, 우리는 욕실에서 몸을 씻고 함께 그 저택을 나와 야식을 먹으러 갔다.
오크의 몸이었을 때, 치유의 손길을 몇 번이나 사용해, 그녀들의 몸은 아주 건강했지만, 그만큼 에너지 소비가 많았던지 모두들 배가 고팠했었다.
그리고 해장국을 먹으며 난 정미에게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아까 그 모습 말이죠."
정미가 슬쩍 운을 뗐다.
"응?"
"멋있었죠?"
수빈이 입술을 양쪽으로 올리며 정미의 말을 받았다.
설마 두 사람 모두 내가 오크였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걸까?
설정 카드 < 대체기억 > 때문에 괴물 같은 것은 모두 잊었어야 한다.
- AV 메이킹이 종료된 이후 메이킹에 관련된 모든 대상은 메이킹 기간 동안의 불가해한 사건들을 납득할 수 있는 상황으로 대체해 기억하게 됩니다.
"그 모습 굉장했어요. 종종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죽을 것처럼 힘들었지만, 절대 잊지 못할 기억이 되겠어요."
하지만 수빈과 정미는 두 사람 모두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응? 아까 주인님이 화냈을 때 말이야?"
하지만 윤진은 아니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 지난 밤의 사건은 윤수가 칼을 휘둘러서, 정미가 조금 다친 수준이었고, 내가 화를 내며 윤수를 구타했고, 세 여자를 꽤 심하게 다룬 정도였다.
그러니까 윤진에게는 그정도가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고, 정미와 수빈은 내가 괴물의 모습이 되는 것조차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기는...
정미도 결코 평범한 여자는 아니다. 꽤나 비상한 머리를 지니고 있었고, 그녀 자체가 상식을 훌쩍 넘어선 인간이었다.
그녀가 수빈처럼 내가 지닌 비밀에 아주 근접할 수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치 않다.
"주인님!"
수빈이 갑자기 꾀꼬리 같은 소리로 날 불렀다.
"응? 으응..."
그녀가 그렇게 교태어 목소리로 주인님이라고 하니, 달콤한 기분이 들면서도 어쩐지 겁이 났다.
"오늘은 정미 언니랑 윤진 언니랑 함께 블루 라군에 가요."
"흐음..."
그곳은 아주 비밀스러운 장소이기는 하지만, 정미나 윤진의 나에 대한 마음을 생각하면 딱히 밝히지 못할 것도 없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여자들 전부를 데려갈 생각도 하고 있었다.
난 수빈에게 결코 적지 않은 고통을 준 것이 미안했기에, 그녀의 작은 요청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그리고 보라 언니하고 나은 언니도요."
흐음... 그녀가 선택한 여자들의 기준이 뭘까?
대충 감이 잡힐 것도 같다.
정미와 윤진은 내가 나은에게 명령권을 주었다.
물론 나은은 이 두 여자에게서 어떤 경제적인 이득도 얻으려하지 않았지만, 그 지시는 여전히 유효하다.
수빈은 정미와 윤진을 탐내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은이 필요한 것 같았다.
그리고 보라도 수빈이 탐내는 여자였다.
"그렇게 하자."
대충 그녀의 목적을 알아차렸다.
의외인 것은 그녀가 지아를 부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아는 함께 가지 않아도 돼?"
"지아 언니는 요즘 너무 바빠요."
그 이상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여자들 사이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이 속편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