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8화 〉@44. 남극의 파라다이스
윤진의 초대로 그녀의 집에 도착했을 때, 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를 마주해야했다.
정미는 복부를 칼에 찔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있었고, 윤진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 낯선 사내가 마찬가지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이 사태의 원흉이 저 남자라는 것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니.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빨리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정미를 잃을지도 모른다.
난 당장 정미에게 다가섰다.
수빈이 전화를 하려 했지만, 우선 멈추게 했다.
어쩌면 내게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른다.
"주인님... 쿨럭!"
정미가 날 부르려다가 기침을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그때였다.
어딘가로 사라졌던 그 사내가 손에 칼을 쥐고 나왔다.
그 사내의 눈에 가득한 적개심은 날 향한 것인 모양이다.
어째서지?
날 알고 있는 건가?
생각은 길지 않았다.
그자가 칼을 앞으로 향하고 날 향해 달려왔다.
"주인님!"
"아저씨!"
당황한 여자들이 소리질렀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수빈과 윤진이 날 향해 달려들었다.
대체 여자들이 무얼 어쩌겠다고...
어이쿠!
나도 당황했다.
미친 새끼! 칼을 그렇게...
녀석의 움직임이 너무 빨랐던 것인지, 내가 겁에 질려 몸이 굳어버린 것인지, 미쳐 무슨 조처를 하기도 전에 녀석과 내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놈의 움직임이 전부 보인다.
놈이 다가서기까지 난 놈의 행동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고, 녀석의 손에 들링 칼의 궤적까지 예측하고 있었다.
아마도 액티브 카드 < 매의 눈 > 때문이리라.
그리고 내 몸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녀석의 칼을 가볍게 피하고, 내가 휘두른 손바닥이 놈의 따귀를 후려갈겼다.
찰싹!
그랬다.
어째서인지 난 녀석을 제압하는 수단으로 주먹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뺨을 때려버렸다.
그리고 녀석의 몸이 위로 수십 센티미터를 떠올랐다가,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쿵!
"꺄아아!"
달려오다가 멈칫하며 내지르른 윤진의 비명 소리.
"아저씨!"
어느샌가 내 옆으로 달려온 수빈이 내뱉는 안도의 소리.
"주인님..."
정미가 내뱉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바닥에 쓰러진 사내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움찔거리고 있었다.
"뭔가 묶을 게 있을까?"
난 녀석의 손에 들린 그 흉칙한 식칼을 쥐어들고 윤진에게 물었다.
"잠깐만요."
윤진이 어디론가 달려갔고, 수빈이 내 손에서 칼을 받아 들었다.
다시 돌아온 윤진은 박스 테이프를 손에 들고 있었다.
"이 남자는 누구지?"
난 그녀에게 받은 테이프로 녀석의 팔과 다리를 묶으며 윤진에게 물었다.
"동생이요... 동생 윤수에요..."
윤진이 풀이 죽어 이 사태의 원흉을 밝혔다.
"아아..."
난 어쩐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일이 진행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윤진의 맹항한 태도가 이 일의 사단이 되었음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당장 정미를 구해야했다.
난 다시 정미 곁으로 돌아갔고, 그녀가 숨을 헐떡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와주셨네요. 하아..."
몸이 떨리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이래서야 병원으로 옮긴다고 해도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액티브 카드 < 치유 >를 사용하면 저 부상도 치료할 수 있겠지?
하지만 캐스팅된 배우는 AV 메이킹이 끝난 후 모든 상처, 부상, 고통 및 정신적 트라우마로부터 완전히 회복한다는 제한이 있다.
그리고 AV 메이킹이 끝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제길... 이럴 줄 알았다면...
아니 그렇게 의미 없는 가정은 지금 필요 없다.
아!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
< 치유의 손길 >
- 테미르 바스는 자신과 관계를 맺은 상대의 모든 상처, 부상, 고통 및 정신적 트라우마로부터 완전히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시네마 카드 세상 속에서 오크 테미르 바스가 가진 능력은 관계를 하는 동안에도 상대를 치유했었다.
어쩌면...
그것은 시네마 카드 속 세계에서 벌어진 일일 뿐, 현실에서는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생각할 여지가 없다. 뒷 일은 어찌 되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
난 우선 캐스팅 카드로 정미와 윤진, 수빈을 캐스팅했다.
그리고 그 고약한 녀석에게도 < 빼앗기는 남자 >를 사용했다.
어떤 일인지 모르겠지만 녀석을 무력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누이가 다른 남자와 하는 모습을 본다면 뭔가 느끼는 게 있겠지.
그리고...
"테미르 바스..."
코스튬 카드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코드 네임이 필요하다.
그리고 난 그 오크의 이름을 알고 있다.
다음 순간 난 내 몸이 위로 늘어나는 것을 느꼈다.
천장이 낮아지고, 여자들이 조금 줄어들었다.
정확히는 내가 커진 거겠지.
"주인님?"
당황한 목소리는 윤진의 것.
"주인님..."
어딘지 황홀해하는 목소리는 정미의 것.
"역시!"
즐거워하는 사람은 물어볼 것도 없이 수빈이었다.
"으아!"
공포에 질린 것은 그새 정신을 차린 윤진의 동생 한 명 뿐이다.
"걱정하지마. 이제 고통이 없어질거야."
"네. 주인님. 이제 전 주인님의 식사 거리가 되는 건가요?"
정미가 웃으며 엉뚱한 소리를 한다.
"그게 무슨 소리야?"
"주인님은 악마 아니신가요? 그리고 날 먹어치우려고 그렇게 원래의 모습으로 변신하신 거 아니에요?"
"하아..."
진짜. 이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음...
하기는 내 모습이 괴물 같이 보이겠지.
그리고 느닷없이 인간에서 괴물로 변한다면 그걸 치유의 목적으로 보기보다는 잡아먹을 거라 생각하는 쪽이 더 합리적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진 최후내요. 훗!"
정미는 웃고 있었다. 변태 같은 여자...
"쓸데 없는 생각하지말고, 조금만 기운내."
난 정미가 걸치고 있던 옷을 손으로 잡아뜯으며 말했다.
"주인님!"
그리고 윤진이 애달픈 목소리로 날 불렀다.
"정미... 언니 잡아먹으면... 흑!"
그녀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서럽게 날 바라보았다.
아니! 너까지 그러면 안 되지...
그녀도 엉뚱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하지만 난 그녀들의 오해를 풀어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점점 숨이 가빠오는 정미를 빨리 치유해야 했다.
순식간에 정미의 옷이 내 손에 휴지처럼 찢겨나갔다.
"뭐 하는 거야!"
윤진의 동생이 소리쳤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그 사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난 몸에 걸쳐져 있다가 오크로 변신하며 넝마가 되어버린 옷도 털어냈다.
그리고 그 흉칙한 물건을 정미의 그곳에 가져대었다.
"하지마! 이 개새끼야!"
다시 윤진의 남동생이 소리질렀다.
"그 입 닥치지 않으면, 아주 끔찍한 꼴을 보여주마!"
자꾸 그 녀석의 목소리가 거슬려 고개를 돌리고 놈에게 경고를 해주었다.
움찔!
녀석도 날 악마나 뭐 그런 종류로 생각한 모양인지, 몸을 움찔하고 입을 다물었다.
"역시!"
그리고 수빈은 뭔지 모르지만, 내 행동에 감탄하고 있었다.
"흐윽!"
윤진은 뭔지 모르면서 마냥 놀라기만 했다.
"하악!"
정미가 입을 열어 신음을 내뱉었다.
결코 고통 때문에 나온 소리는 아니었다.
증거로 그녀의 아랫도리가 젖어있는 것이 느껴졌다.
지독한 여자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녀는 느끼고 있었다.
"하아... 주인님... 정말로 멋진... 최후예요."
정미는 기뻐했다.
변태 같은 여자.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든다.
난 더이상 망설이지 않고 그녀의 몸안에 내 물건을 찔러넣었다.
"악!"
정미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칼에 찔린 상태에서도 신음 한 번 내뱉지 않던 그녀가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니, 이 오크의 물건은 식칼 보다도 훨씬 대단한 흉기임에 틀림없다.
"학! 끝내주게 좋군요. 죽을 것 같이 아파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정미가 말했다.
"아픈 게 좋아?"
"때로 고통이 날 살아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줘요. 흐읏!"
"조금 아플 거야."
난 정미의 배에 아직도 꽂혀있는 칼을 손에 쥐며 말했다.
오크로 변신한 내 손에 식칼은 겨우 과도 처럼 느껴졌다.
"괜찮아요. 당신이 주는 고통이라면... 흑!"
하지만 내가 그 칼을 빼자, 그녀는 다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치유의 손길!'
그리고 난 제발 이게 먹히기를 바라며, 그녀에게 오크의 기술을 사용했다.
순간 정미의 몸이 환한 빛으로 감싸였다.
"아!"
거의 동시에 세 여인이 탄성을 내뱉었다.
"무슨 일이야?"
그리고 윤진의 동생도 소리를 질렀다.
"어? 주인님..."
정미가 자신의 손으로 방금 찔렸던 곳을 만지며 날 바라보았다.
"어째서?"
그녀의 얼굴은 당혹감으로 가득했다.
정미의 목소리에서는 아까와 같은 떨림은 사라져있었다.
역시 오크의 스킬은 대단해!
"어때? 아픈건?"
"아니... 어째서?"
정미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픔이 사라져서 서운한 모양이지?"
"아뇨... 그건 아니지만..."
"언니!"
윤진이 다가왔다.
"설마 그 상처가 나아버린 거예요?"
수빈이 물었다.
"어? 아마... 그런 거 같은데?"
정미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프지 않아요?"
수빈이 다시 물었다.
"아무렇지도 않아요."
정미가 날 바라보았다.
"어때? 이정도면 주인 할만 하지?"
"언니!"
정미는 여전히 대답을 하지 못했고, 윤진은 정미에게 달려들어 그녀를 감싸안았다.
아무래도 두 사람 화해를 한 모양이다.
자신을 향한 음모를 꾸미고 있던 정미를 용서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진짜 주인님 자격 있어요."
아마도 수빈이 가장 기뻐하는 모양이다.
"완전히 나은 거죠?"
"아마도."
확신은 없지만, 거의 그럴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꼭 삽입을 하고 치유를 해야 하는 건가요?"
"응? 아! 아마도..."
난 다시 자신 없이 대답했다.
시네마 카드의 세계에서 오크가 되었을 때, 난 여자의 몸을 몇 번이나 치유했었다.
그리고 매번 그녀들을 안은 채로 했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렇게 한 것 뿐이다.
최대한 비슷한 상황을 만들고 싶었다.
"아하! 난 또..."
"넌 또 뭐?"
난 수빈이 하다 만 말에 대해 물었다.
"정미 언니한테 마지막 선물을 주려는 건지 알았지 뭐예요."
"응? 마지막 선물?"
"그렇잖아요? 정미 언니가 죽게된다면 마지막 순간에 가장 원하는 것이 그거였을 거니까요."
"맞아."
이제 조금 침착해진 목소리로 정미가 대답했다.
"정말로 죽음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이 사람과 마지막 섹스를 하고 싶은 생각 밖에 없었어."
정미는 팔을 들어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잡아먹힌다고 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지."
그녀의 눈에 가득한 감정은 애정일까? 아니면 그냥 변태적인 육욕일까?
"언니... 흑! 이제 정말로 괜찮은 거지?"
정미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있던 윤진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 걱정 안 해도 돼. 이제."
정미가 한 손으로 윤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 진짜 주인님한테 잡아먹히는 줄 알고... 흐윽!"
윤진이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대체 이 여자들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수빈까지도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면 조금은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무리 봐도 사람 여럿 잡아먹었을 것 같이 생겼어요."
수빈이 내가 분해하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래도 평소 행실이 있잖아?"
정말 억울했다.
"평소 행실이 여자 따먹는 거 밖에 더 있어요?"
"맞아."
윤진이 수빈의 말에 동의했다.
"자꾸 그러면 너부터 잡아먹는다!"
윤진에게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하악!"
그리고 윤진이 몸을 떨며 손을 아래로 내렸다.
"흐윽!"
다른 한 손은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날 새파랗게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 이런...
그녀들은 여전히 설정 카드 < 민감 >의 적용을 받는다.
어떠한 자극도 성적인 것으로 느끼고 만다.
그러니까 윤진이 공포에 젖으면, 그것 마저 쾌감으로 느끼는 것이다.
"흐윽! 그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하앙! 주인님!"
윤진이 내게 달려들며 마구 키스를 퍼부었다.
"진짜 굉장하다니까..."
수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