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47화 〉@44. 남극의 파라다이스 (347/377)



〈 347화 〉@44. 남극의 파라다이스

"윤수 씨도 있는 걸 몰랐네. 오늘은 왠일로 집에 들어왔어요?"
부친의 비서인 하 과장은 오늘도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물어왔다.

"아. 오늘은... 조금..."
윤수는 당황했다. 그녀에게까지 방금 전에 자신이 들은 그 끔찍한 비사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에게는.



"방금 이야기 했어. 내가."

"응? 무슨 이야기?"


"쟤가 우리 아빠 자식 아닌 거 말야."
그리고 윤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윤수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그걸 또 그녀한테는 왜 말하는 건데?



물론 윤수도 하 과장이 아버지의 심복인만큼 그 사실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거 아버지가 우선 두라고 말씀하셨었잖아?"
그때 하 과장이 또 놀라운 소리를 했다.



"알고 있었어요?"
윤수가 하 과장에게 물었다.


"아! 그렇게 되었네요."
 과장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지. 정미 언니가 직접 검사소에 맡긴 거니까."
그리고 윤진은 더욱 신이 나서 말했다.

"뭐라고요?"
순간 윤수는 세상이 무너지는  같은 느낌이 되었다.


왜?
하필 저 여자가?
무슨 이유로?
날?

속이 울렁거렸다.



"정미 언니가 네 머리카락하고 아버지 머리카락하고 가지고 유전자 검사소에 가져다 주었어. 응? 그러고 보니 네 머리카락은 어떻게 얻은 거래?"


그리고 윤진은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차렸다.



"누나..."
그리고 윤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정미를 바라보았다.


"왜... 그랬어요?"


"미안해요.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하 과장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하! 그랬었구나! 언니! 쟤랑도 잤지? 맞지? 쟤랑 자다가, 쟤 머리카락 뽑아서 가져간 거구나?"
윤진은 신이 난 모양이다.




"누나..."
그리고 윤수의  죽어가는 눈빛이 윤진의 추측에 확받을 해주었다.

"미안... 정말로..."
정미는 무척이나 난처한 표정이었다.


"미안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으면서. 풉!"
윤진이 비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윤수는 이날 처음으로 윤진의 말을 경청했다.

그에게는 지금 자신이 부친의 자식이 아니라는 사실보다, 정미의 그런 행동이 더욱 믿을 수 없었다.


"그래. 처음부터."
윤진은 자신의 말을 아주 또박또박 내뱉었다.


"너도 알지? 정미 언니, 아빠 정부인거?"


윤수는 자신의 누이가 아주 지독한 여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당사자가 듣고 있는데...

어쩐지 그 자신의 얼굴이 화끈거린다.

"어머? 몰랐어? 너 진짜 눈치 없다."


"미친년..."
윤수는 지금 이 상황이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못써요. 누나한테..."
정미가  마디 했다.


"뭐 어때요. 원래 저런 자식인데. 누구 씨인지도 모를 새끼가."
윤진은 다시 한 번 동생을 비웃었다?



"뭐야! 이 썅!"
윤수는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윤수 씨. 미안해요."
정미가 화나 나서 손찌검이라도 할 요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윤수의 앞을 막아섰다.


"윤진아. 그만해. 조금 있으면 주인님 오실텐데. 왜 자꾸 일을 만드는 거야?"
그리고 정미가 윤진에게도 한 마디 했다.

'주인님?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윤수는 당황했다.


설마 아버지를 그렇게 부르는 거야?


순간 윤수는 치밀어오르는 욕지기를 참을  없었다.



정미는 그에게 첫사랑이었다.

아직 소년이었던 윤수는 아버지의 비서로 집에 드나들기 시작한  아름다운 여인에게 반해버렸다.

하지만 모친은 그녀를 아마에게나 다리를 벌리는 여자라고 경멸했었고, 그녀에게 수모를 주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아마도 윤수가 모친에게 진심으로 반항한 일이 있다면 오직 하나, 정미를 사랑한 일일 터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소년이 하 과장이라는 묘한 매력을 지닌 여자에게 빠진 것은 그녀가 부친의 여자이기 때문도 할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윤수도 그 사실을 눈치챘다.

그가 사랑한 여자는 부친의 정부였다.

그리고 아마도 난폭하기 이를데없는 부친에게 억지로 삶을 담보잡혀 있는 것이리라.


부친의 여자.
엄마가 미워하는 여자.
자신에게 한없이 부드럽게 대해주는 그 여인을, 윤수는 세상의 희생양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여자는 그 나쁜 남자를 주인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다시  번 윤수는 이제는 자신의 부친이 아닌 그 남자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증오를 느꼈다.



"하아... 그래. 알았어. 언니. 그건 그렇고. 너 윤수. 이제 이 집에서 나가. 서초동 오피스 알지? 앞으로 거기서 살아. 거긴 원래 엄마 이름으로 되어있는 곳이니까, 네 앞으로 돌려놨어."
윤수의 상념을 깨는 윤진의 말 한마디.

"야! 너 내   들려? 아직도 언니한테 빠져있는 거야? 정신  차려. 정미 언니가 전부 꾸민 거야. 바보 새끼."
윤진이 비웃는다.



"뭐라고?"
누이가 모친을 욕할 때보다도 오히려 더 화가 났다.

"너 따위가 뭔데 정미 씨를 욕하는데?"


  전에 가졌던 그녀와의 첫 섹스는 너무나 굉장했다.


조금 이쁘장한 애송이 같은 계집애 몇십 명과도 바꿀  없는 기억이다.


그날 정미는 윤수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였었다.

그러니까 아마도 그녀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져갔다면, 전부 부친의 사주일 것이다.


사악한 인간.



"어휴! 그렇게  떨어져서 어쩌려고? 전부  언니가 꾸민 거라니까? 아빠를 꼬시고, 승준 씨랑도 붙어먹고, 그리고 보니까 너랑도 했네. 아주 대단한 여자야.  집안 남자들은 전부 품에 넣었어. 큭!"
누이의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승준이라면 얼마전에 누나와 결혼한 사람... 그러니까 매형이다.

 남자랑 잤다고?

말도 안 되지...


그런데 왜 정미 씨는  마디도 반박을 하지 않는 거야?

윤수는 멍하니 하 과장을 바라보았다.

"미안..."
그녀는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애매한 표정으로 사과를 했다.


그리고 윤수는 윤진의 말이 전부 진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미... 누나?"
윤수에게  과장은 윤진보다 훨씬  누이 같은 여자였다.

"이제 좀 알겠어? 이 여자 우리 집안을 전부 집어 삼키려고 했던 거라고?"
윤진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있는 정미의 얼굴에서 그는 전부 사실임을 알아차렸다.




"널 아빠의 후계자에서 떨어트리고, 나도 뭔가 사고로 처리하고, 그러고 나면 전부 누구 손에 들어가겠니? 대양 그룹이 말이야?"
이어지는 윤진의 비아냥거림...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정미의 표정...

윤수는 세상이 무너지는  같은 기분을 느낀다.


아니야. 이건...

하룻밤 사이에 너무나 많은 일이 벌어졌다.


큭!
머리가 멍하다.

"병신아. 이제 나가. 주인님 오실  됐다고."

"으아!"
다시 한 번 들려온 그 주인님이라는 단어에 윤수는 이성을 잃었다.

어째서 누나가 자신의 부친을 주인님이라 부르고 있는지 의문을 가질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 그 남자,  여자들이라는 생각 뿐이었다.


윤수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모든 것들을 두 손으로 전부 휩쓸어버렸다.


그리고 그걸로도 모자라 부엌으로 들어가 손에 집히는대로 마구 내던지다가, 무언가를 손에 쥐고 다시 응접실로 나왔다.

"뭐하는 거야?"
윤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순간 윤수는 기분이 좋아졌다.


저 계집애의 얼굴이 공포에 질리는 것이 너무 기뻤다.

생각해보니 자신만 나락으로 떨어지기 아쉬웠다.


"어디 한 번 계속 그 주둥이를 나불거려봐. 응?"
윤수는 손에 쥔 식칼을 들고 누이에게 다가섰다.


윤진이 겁에 질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마. 윤수야."
정미가 말리며 두 사람에게 다가서는 것을 그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흥분에 빠진 그는 개의치 않았다.


"윤수야!"
정미가 잰 걸음으로 달려온다.

윤수는 자신이 그녀를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나가 무어라했건,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다.

그러니까...
차라리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자.

"씨발!"
윤수는 발작적으로 누이에게 달려들며 칼을 찔렀다.

이러면 돼. 나도 저 싸가지 없는 누이도 사라지면...

마지막 순간 윤수는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푹!
손 끝에 느껴지는 그 섬찟한 느낌에 윤수는 깜짝 놀랐다.



"윤수야..."
그리고 정미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자신의 앞에서.




"정미... 누나... 어째서?"
윤수는 자신의 칼에 찔린 여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안 돼. 윤진이는 주인님의 소유야. 네가 윤진이를 다치게하면 주인님이 화를 내셔..."

"으아아!"
윤수는 손에 쥔 칼을 놓고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언니!"
윤진이 깜짝 놀라며 다가온다.

"안 돼..."
윤수는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이해할 수 없다.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된 거지?




딩동!
그때였다. 다시 벨이 울린 것은...


윤진이 급하게 인터폰을 향해 갔다.

윤수는 비틀거리며 바닥에 주저앉는 하 과장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놀라움도 없다.


그저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뿐이다.

"주인님!"
누나가 누군가를 부르는 것이 들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엔 자신이 생각했던 부친이 아니라 덩치가 큰 사내가 서있었다.

그리고 사내의 뒤에는 보기 드문 미인이 서있는 것도 얼핏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일이지?"
남자는 침착하게 묻고 있었다.


"저 새끼가! 저 새끼가 찔렀어요! 주인님!"
윤진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주인님?
대체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소리에 윤수는 그 남자를 다시 바라본다.

아주 차가운 인상의 사내였다.


평범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언젠가 회사에서 함 이사가 화를 내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주인님. 오셨군요."
배에 칼이 찔려서도  낯선 남자에게 인사를 하고 있던 하 과장을 보는 순간 윤서는 또 다시 이성을 잃었다.

너였구나!
네가 모든 원흉이었던 거로구나!

아버지가 아니었다.

모든 일의 원흉은 저놈이었다.

그러니까 누이도 정미도 뒤에서 조정한 사람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생긴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무언가 흉계를 잔뜩 꾸미고 있을 것만 같은 얼굴이다.


어쩌면...


 어줍지도 않은 서류조차 가짜일지도 모른다.

아니. 틀림없이 가짜일 거야.


그러니까 저 빌어먹을 녀석이 착하디 착한 정미 누나를 속이고, 멍청하기 짝이 없는 누나를 속였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 이 집안을 통째로 손에 넣은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든 것을 알아차리기에 충분한 증거들이 넘쳐났다.


누이와 정미 씨가 저 놈을 주인님이라 부른 것, 그리고 저 냉막한 얼굴.


그거면 충분했다.



"대체  이렇게  거지?"
남자가 정미에게 다가가는 사이 윤수는 다시 부엌으로 후다닥 달려들어갔다.

"저 새끼가 그랬어요. 흑! 저 빌어먹을 자식이  찌르려고 했는데, 언니가 막다가... 흐엉!"
윤진은 주인님이 드디어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정미가 자신 대신 칼에 찔린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울음을 터트렸다.




"그럴 때가 아니에요. 당장 병원에 보내야해요."
수빈이 좀 더 침착했다.

"아니. 잠깐만 있어봐."

"왜요?"
수빈은 급하게 전화기를 들다가 바로 멈추었다.

무언가 방법이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해요. 주인님. 흑!"
윤진은 어쩔줄 모르고 발을 동동 굴렀다.


"주인님... 죄송해요.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정미가 힘없이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윤진이보다는 내가 이렇게 되는 편이 나아요."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정말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하하... 이렇게   알았어요. 언제고...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아요. 당신처럼 멋진 사람을 만났으니까... 쿨럭!"
내장이 상한 것이 틀림없다.


"말은 그만해."


"아뇨. 괜찮아요. 이미 늦은 거 같아요. 쿨럭! 나... 추워요.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는 당신 품에 안겨서 죽을  있겠네요."
정미는 두 팔을 벌렸다.

"기왕이면 당신과 지독한 섹스를 하다가 죽었으면 좋겠지만... 쿨럭! 그러기엔... 너무 지저분해..."

부엌에서 나온 윤진은 정미가 애처로운 눈으로 남자를 향해 팔을 벌리는 모습을 발견했다.

씨발! 저런 꼴이 되어서도...

다시 분노가 솟구쳐올라왔다.



"죽어!"
윤수는 그 무시무시한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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