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8화 〉@43. 나쁜 남자를 사랑하는 소녀들
욕탕에서 옷을 입고, 그녀는 잠시 정원을 산책하다 객실로 돌아갔다.
"어디 갔었어?"
남편은 잠들지 않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뜻 서린은 혹시라 남편이 방금 전 일을 눈치채지 않았는지 두려워졌다.
아까 행위의 도중에서와는 달리, 지금의 그녀는 남편이 자신의 부도덕한 행위를 알아차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잠이 안 와서 잠깐 산책 좀 했어요. 왜 안 잤어요?"
"자다가 깼어. 당신이 보이지 않아서 찾으러 다녔거든."
다행히 남편의 얼굴에서는 그런 눈치는 보이지 않았다.
"근데 웃기는 게 뭔지 알아?"
"뭐가요?"
"당신을 찾으러 온천에 갔는데, 세상에 어떤 상식도 없는 사람들이 거기서 그짓을 하고 있더라니까."
"세상에? 진짜?"
서린은 남편의 얼굴에서 그가 자신이라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남편이 그 이야기를 꺼내자 왠지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어쩜 그렇게... 짐승도 아니고... 그런 공개된 곳에서..."
그녀는 마음놓고 자신을 욕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아! 그냥 온천이 아니고, 온천 뒤쪽 숲에서 그랬어. 누가 보는 건 싫었나 보지."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요?"
"시끄러웠거든. 여자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거기 폭포 때문에 조금 시끄럽잖아? 근데도 저쪽까지 들릴 정도였다니까."
"진짜 몰상식한 사람들이네."
가슴이 찌릿해왔다.
죄책감과 함께 쾌감이 몰려오고 있었다.
조금 전 자신이 쾌락에 허우적거리고 있던 순간에 남편이 바로 옆에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자, 서린은 다시 아래에서 기이한 열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대단하더라. 어떻게 그렇게 저질스러운 말을 쓰는 건지..."
"아!"
다시 한 번 아찔할 정도의 쾌락이 밀려든다.
서린은 아직도 몸안에 남아있던 그 남자의 정액이 출렁이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물론 말도 안 되지만, 그녀의 기분만은 그랬다.
"좋았나보죠."
"그런가보지. 그래도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남편은 아까 들었던 그 신음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서린은 남편의 아랫도리가 부풀어오른 것을 알아차렸다.
맙소사!
남편은 부인이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며 내뱉는 소리에 흥분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서린은 혹시라도 남편이 방으로 돌아와 혼자서 즐기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흐윽!
미칠 것 같았다.
너무 짜릿해서 죽을 것 같았다.
"근데 부부같더라. 여자가 계속 남편을 부르더라고."
아아!
불렀어요! 내가 당신을 그렇게 애타게 불렀어요!
서린은 당장이라도 고백하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였다.
"세상에 별 사람들이 다 있다니까."
"진짜... 사람들이..."
"여하튼 들어왔으니 됐어. 자자. 우리."
남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럴까요?"
남편은 문득 아내가 계속해서 자신에게 존대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무슨 일이야?
"혹시 아직도 마음이 상한 거야?"
"아뇨. 내가 왜 마음이 상해요."
아내가 그윽하게 웃었다.
남편은 오늘따라 아내가 굉장히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어딘지 요염한 기운이 눈가에 떠돌고 있었다.
"이쁘네..."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뭐가 이쁜데요? 내가 당신한테 존대말을 해서?"
"아니... 뭐. 그런 것도 없지는 않은데..."
"당신이 거리감 느껴진다고 존대말 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아무래도 불편하니까."
"그래도 이러니까 좋지요?"
아내는 아주 그윽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응? 아...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네."
"알았어요. 그럼 가끔은 이렇게 할게요."
서린은 이런 사소한 것으로도 기뻐해주는 남편에게 이루 말하기 어려울만큼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죄책감은 커졌다.
남편이 아내에게 다가와 살며시 포옹을 했을 때에도, 그녀는 그 죄책감 때문에 부드럽게 안겼다.
하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간신히 입술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서린은 머리가 어질거렸다.
"아아..."
"왜 그래? 여보?"
"조금 지쳤나봐요. 쉬고 싶어요."
"그래? 빨리 눕자."
남편은 서린이 잠이 들 때까지 걱정스럽게 그녀 곁을 지키며 돌봐주었다.
서린은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인간인지를 자책하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 지독한 쾌락의 경험 따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오직 남편만을 사랑했던 자신으로...
.....
서린이 객실로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난 정원을 통해 본관으로 이동했다.
아직 오늘의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 얼굴 모르는 소녀의 방에 숨어드는 것은 그것으로 세 번째였다.
그리고 그녀는 날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어요?"
방문을 닫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조금은 흥분한 듯한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꽤나 차분한 목소리여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레이나도 미나미도, 에리카도 아니다.
내가 아는 어느 누구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네. 오늘은 조금 늦으셨네요."
서운한 걸까?
아니면 반가운 걸까?
어느쪽인지는 모르지만 감정이 실려있었다.
난 당연한 듯 그녀가 누워있는 옆으로 가서 가운을 벗고, 그녀의 옆에 누웠다.
지난번과는 달리 오늘은 조금은 다정하게 시작을 해도 괘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몸을 안기 위해 팔을 뻗었는데, 옷이 느껴지지 않는다.
알몸이었다.
"더... 더워서요."
여자도 내가 자신이 알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실을 느꼈는지 변명을 해왔다.
"기다리는 동안 혼자서 즐겼던 건가?"
"... 네... 참을 수가 없어서..."
그녀가 내 몸을 안아왔다.
"당신이 올 거라 생각하니까... 몸이 뜨거워지고... 아래에서 간질거리고..."
여전히 깜깜한 어둠 속이었지만, 난 그녀가 떨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느낄 수 있었다.
그 이름 모를 소녀가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난 그녀를 향해 팔을 뻗었고, 그녀가 먼저 머리를 내게로 기대왔다.
우리는 키스를 나누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몸을 겹쳤다.
이날의 섹스도 무척이나 즐거웠다.
아니. 다른 어떤 여자와의 섹스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쾌락을 내게 주었다.
남자가 느끼는 쾌락은 단순히 성기에서 비롯되는 육체의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자위를 하는 것이나 여자를 안는 것이나 얻어지는 쾌감의 정도는 동등할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매번 다른 정도의 쾌감을 얻는다.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쾌감의 크기는 천차만별이다.
아름다운 여자일수록, 혹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상대일수록 쾌감의 정도가 높아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또한 같은 상대라고 해도, 어떤 상황인지에 따라 쾌감이 달리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쾌감의 질은 육체보다는 오히려 정신적인 부분에 더 커다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이 여자를 만나러 오기 전, 서린이라는 여자와의 관계도 무척 즐거웠다.
그건 그녀가 제법 이쁜 여자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녀에게 사랑하는 남편이 있다는 사실이 날 더욱 즐겁게 했고, 또 그녀가 나와의 관계를 맺으면서 커다란 죄책감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 또한 날 즐겁게 했다.
그런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내게 커다란 쾌감을 선사했다.
하지만 지금 이 여자는 순수하게 육체적인 쾌감만으로 날 아주 지독하게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몸 안에 넣고 있는 동안 아래에서 밀려오는 그 짜릿한 감각에 난 몇 번이고 이성을 잃을 뻔 했다.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혹은 얼마나 어린지도 모르면서 그런 쾌감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내가 느끼고 있는 쾌감에 그 육체가 주는 영향이 아주 지대하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여자의 몸은 아주 유니크했다.
이 여자가 어떤 여자이건 상관없이 손에 넣을 이유는 아주 충분했다.
이날 밤 난 두 번 그녀를 안았다.
그녀도 나처럼 관계를 즐겼고, 우리는 몇 번이고 입을 맞추며 서로에 대한 호감을 표시했다.
두 번째의 섹스가 끝나고, 그녀는 한참을 헐떡였다.
굉장히 힘이 든 모양이다.
어쩐지 몸이 약한 편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난 한 두 번은 더할 생각이었지만, 조금 미안해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그녀와 즐길 시간이 오늘뿐인 것은 아니다.
난 다시 그녀를 품에 안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저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응?"
"내일..."
"내일?"
그러고보니 우리가 몸을 섞은 것도 벌써 3일 째인데, 아직 통성명은 커녕 얼굴도 모르고 있다.
이젠 슬슬 서로에 대해 알아갈 때도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니에요."
그녀가 쑥스러운지 말을 하다 말았다.
난 그녀가 하려던 말이 궁금했지만, 그녀의 말처럼 내일 함께 하며 알아보기로 했다.
"그럼 내일..."
내일 다시 보자 말하려하는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조금만..."
어쩐지 무척이나 애처롭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응?"
"조금만 더 안아주고 가시면 안 되요?"
아쉬움이 잔뜩 남아있는 목소리였다.
난 그대로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았다.
여자는 마음이 놓인듯 내 팔을 배고 조용히 누워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여자는 새근새근 거리며 잠이 들어버렸다.
어쩐지 그녀가 귀엽게 생각되었고, 난 그녀의 뺨에 입술을 맞추고, 조심스럽게 방을 빠져나왔다.
내가 다시 방으로 돌아갈 때까지도 지아는 깨어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마도 술을 제법 마셨기 때문인 탓이리라.
난 그녀를 품에 안고 잠을 청했다.
왠지 이렇게 밤마다 그녀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나러 다니고 있으니, 정말 불륜이라도 저지르는 기분이었고, 어쩐지 아까의 서린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될 거 같았다.
다음날 아침 식사 시간에는 어떤 일인지 레이나가 보이지 않았다.
지난번의 미나미처럼 피로한가 싶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아가 미나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미나미 양은 오늘 얼굴이 어두워요. 무슨 일 있어요?"
"아!"
미나미가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그녀가 바로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아직 미숙해서 감정을 그대로 보여드렸습니다."
"그게 뭐가 이상한가요? 사람이라면 감정이 드러나는 게 정상이죠."
"그래도 사적인 문제를 일하는 자리까지 가져오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사이는 아니잖아요."
지아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답을 한 사람은 요리장 카렌이었다.
그녀는 미나미를 친 딸이나 다름없이 아끼고 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정말로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지아가 다시 물었다.
"네. 사실은 아침에 카나메... 친구가 일본으로 돌아가서요."
"카나메? 이쁜 이름이네요. 굉장히 친한 사이였나보군요."
"고노에 카나메라고 저희랑 친하게 지내는 아이가 있어요."
친구의 이름을 내뱉고 다시 조금 어두워진 미나미를 대신해서 에리카가 대답했다.
"이번에 한국에 놀러왔는데, 휴가가 끝나서 오늘 아침 비행기로 돌아갔거든요."
"어머나! 그럼 배웅이라도 갔다오지 않고?"
"괜찮아요. 어머님께서 레이나와 함께 가셨어요. 그리고 미나미하고 카나메하고 너무 사이가 좋아 공항까지 갔으면 틀림없이 둘 다 울었을 거예요."
레이나가 웃으며 말했다.
"그랬구나."
지아는 계속해서 미나미가 안쓰러운지 조금이나마 그녀를 위로해주려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지아는 상대의 감정을 굉장히 빠르게 캐치하는 편이다.
지아가 아니었다면, 난 미나미가 우울한 상태라는 것을 눈치채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지아가 오늘은 옷을 벗지도 않고 바로 책상에 앉았다.
"오늘 밤까지 끝낼 일이 남아서 지금은 벗을 수 없어. 나 벗고 있으면, 오빠가 또 흥분할 거고. 그러면 나도 참을 수 없게 된다고."
"굳이 벗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일 해."
"흐응... 진짜 그래도 괜찮아?"
지아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리 집중하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계속 구경하고 있지 말고 나가. 나 이제 일해야 해. 오빠가 보고 있으면 일 못하잖아. 자꾸 근질거린단 말야."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산책이라도 해. 아! 맞다. 레이나 양은 공항에 나갔다고 했지? 아쉽겠다. 오늘은 레이나 양이랑 산책을 즐길 수 없어서."
지아는 왠지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