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3화 〉@40. 예지의 탐욕 : 만나서 5초 만에 삽입
물론 귀여운 소년이기는 했지만, 딱 그정도 뿐이다.
예지가 자신의 약혼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은 애정과는 꽤 차이가 있었다.
대신 다산 그룹의 후계자에 대한 예지의 욕망은 아마도 은채의 충심이나 혜진의 애정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과연 자신은 그런 욕망으로 그 남자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혜진은 그런 의미에서 예지의 앞날을 가늠할 수 있는 샘플이었다.
그러니까 두 사람에게 주기로 한 선물은 결코 과하지 않았다.
그걸 얻기 위해 작은 아버지에게 아양을 떨어야 했었지만, 그정도로 두 사람에게 보답을 할 수 있다면, 조금도 아쉽지 않다.
그 주 주말 세 남녀는 함께 남쪽으로 날아갔다.
혜진은 남자에게 이번엔 아마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남자는 혹시나 하는 기대와 자신이 제대로 행동을 해서, 연인에게 고통을 안겨주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이 오고가고 있었다.
.....
"어때요? 혜진이 이쁘죠?"
예지가 입을 열었다.
"무척 아름다운 여자로군요."
난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내가 취하기에 충분히 이쁜 여자라는 대답이다.
"마음에 들어요?"
"물론이죠."
"저 여자랑 하고 싶지 않아요?"
예지는 자신의 속셈을 감추고, 내게 의향을 물어왔다.
"뭐. 이쁜 여자와 하는 거라면 언제나 즐거운 일이죠. 하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과 휴가를 온 거라서 말이죠."
"그런거 치고는 여자들이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사흘 동안 함께 있었더니, 이제 시끌벅적하게 놀고 싶다고 부르더군요."
"그랬나요? 제가 잘못 생각한 거 같네요."
예지가 조금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마 잘 못 생각한 건 아닐 거예요."
"역시..."
"그래서 원하는 게 뭐죠?"
"혜진이. 내가 보는 앞에서 그 아이랑 해줘요."
"흐음... 그걸 원한다면 남자 친구는 왜 함께 데려온 거죠?"
"남자도 그걸 봤으면 해요."
"아항!"
예지의 욕망은 점점 더 상승하고 있었다.
자극적인 것으로, 더욱 자극적인 것으로.
"두 사람이 동의한 거겠죠?"
"물론이죠."
예지가 살짝 멈칫하고 대답했다.
흐응?
무언가를 꾸미는 듯한 표정인데?
"아마도요."
예지가 덧붙였다.
그러니까 뭔지 모르겠지만, 정확하게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여자쪽이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을 남자가 지켜보는 것에 동의를 했다는 말이죠?"
난 조금 정색을 하며 다시 물었다.
"정확하게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어요. 대신 내가 시키는 것은 무엇이라도 따른다고 약속을 받았어요."
구리다. 이 여자... 너무 제멋대로잖아?
두 사람의 일생을 결정지을 사건에 대해 설명도 해주지 않고, 그렇게 두리뭉실한 약속 따위로 얼버무려?
끝내준다!
역시 이런 일에는 무언가 놀라운 장면이 필요하지.
난 예지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골치 아픈 일이 생기는 건 싫은데요?"
"골치 아픈 일 생기지 않을 거예요. 그건 내가 확실하게 약속할게요."
"예지 씨의 약속은 믿지요. 하지만 질투에 눈이 먼 남자의 마음은 믿을 수가 없어서요."
그건 확실하게 해야했다.
괜히 뒤통수가 불편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걱정 안 해도 되요. 두 사람한테는 아주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기로 약속해놓았어요."
"흐음... 알겠어요. 그런데 내가 예지 씨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할 이유가 뭔가요?"
공짜로 이 여자의 욕망을 만족시켜줄 필요는 없다.
"물론 여기 호텔은 아주 잘 썼습니다만. 그거로는 모자라는데요."
"원하는 걸 말해봐요."
"예지 씨가 제시하세요."
"음... 그러면 나한테 한 가지 호의를 주는 거라고 생각해주시면 안 될까요? 솔직히 당신한텐 어떤 대가를 주어야 할 지 모르겠군요."
"예지 씨의 호의라면 아주 좋지요. 하지만 난 그보다 좀 더 물질적인 게 좋은데요."
"알았어요. 얼마면 돼죠?"
"아니. 그런 거 말고요. 예를 들어 예지 씨의 하루 이용권이라든지 말이에요."
"아!"
예지가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녀의 손이 아래로 내려가다가 흠칫 멈춘다.
"진짜 못된 사람이네요."
예지가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요.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순결은 지켜야지요. 그러니까 순결은 지켜드릴게요. 지난번처럼 말이지요."
"하아..."
예지가 나지막하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녀도 나도 알고 있었다.
정말로 그걸 원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정말이죠? 절대로 그건...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하는 거예요?"
그녀의 눈이 떨리고 있었다.
난 당장이라도 그녀를 덮치고 싶은 욕망을 떨쳐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했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이런 장난 같은 대화따위 던져버리고, 그저 그녀에게 한 발자국 다가서기만 하면 끝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더욱 커다란 즐거움을 위해서는 참아야했다.
내게도 그녀에게도 이 유희를 지속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쾌락을 얻을 수 있는 길이었다.
"솔직히 말해 자신은 없어요. 안 되겠다. 그건 없던 걸로 해요. 그냥 예지 씨의 호의로 만족하죠."
한 발자국 물러섰다.
이른바 전략적인 후퇴이다.
"하아..."
이번에는 아쉬움의 한숨이다.
"고마워요. 그럼 이번엔 내가 신세를 졌어요."
그녀는 하나도 고맙지 않은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내 생각에는요..."
하지만 혜진과 그녀의 남자 친구의 처우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예지의 눈은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좋아요. 예지 씨가 원하는대로 하죠. 참. 한 가지. 관객이 좀 더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관객이라고요?"
예지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행사는 보는 눈이 적을수록 좋다.
"예. 마침 내 여자친구도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거 같아서요."
"아! 그 귀여운 아가씨? 어떤 자극이요."
예지는 내가 누구를 여자친구라고 하는지 알고 있었다.
사실 이 호텔 모든 직원이 그녀의 눈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겠지.
"딱 예지 씨가 원하는 종류의 자극인 모양이에요. 내가 누군가의 삶을 망가트리는 모습이 보고싶다고 하네요."
"아항! 그랬군요. 어쩐지 조금 친하고 싶은 사람이네요. 그럼 여자친구를 부르면 되겠군요."
"그리고 한 명 더 있어요. 내 오랜 친구이죠. 아마 예지 씨도 그녀가 마음에 들 거예요."
"당신은 정말로 이상한 남자로군요. 어떻게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하나 같이 독특한 거죠?"
"그러게요."
예지와의 모의가 끝났다.
"그럼 이따 점심 시간이 끝나고 오도록 하죠."
"그래요. 이따 뵈요."
예지의 방을 나와 해변으로 가서 일행과 합류했다.
여자들은 나 없이도 잘들 놀고 있었다.
"오빠 없으니까 벌써 열 번도 넘게 헌팅 당했어요. 히히히."
지연이 신이 나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누굴 만나고 온 거예요? 바람 폈어요?"
지연은 기대감에 차서 물어왔다.
"아직은... 음..."
대답하기 애매했다.
예지와 섹스를 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오늘 일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으니...
역시 바람을 피우고 온 것은 아니다.
"조금 있다가 보여줄게."
"진짜요? 대체 무얼 하려는 걸까?"
"아마 네가 좋아할만한 일일거야."
"흐응? 신나라!"
여자들과 함께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은지와 송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예지의 방으로 갔다.
"한빈 씨는 3층 스파에 가셔서 잠깐 시간 좀 보내다가 오세요."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예지는 남자를 내려보냈다.
"얼마나 있다고 오면 될까요?"
"거기로 연락할게요. 끝나고 올라오시면 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남자는 또 다시 기대에 빠졌다.
자신을 내려보내고 여자들끼리 무얼 하려는 걸까?
혹시?
그의 눈앞에 아주 멋진 광경이 펼쳐졌다.
혜진이 완강하게 세 사람의 섹스를 거절해서, 우선 둘이서 가볍게 즐겨보려는 건 아닐까?
그리고 자신이 들어갔을 때, 두 여자가 알몸으로 자신을 반긴다면...
그렇다면...
뭐. 못 이기는 척 해야지.
"흐흐흐!"
남자는 므흣한 상상으로 벌써 아랫도리가 불끈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남자 친구가 방을 나서고, 둘만 남게되자, 혜진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설마 이 애가?
나한테도 관심이 있는 걸까?
예지는 종잡을 수 없는 아이였다.
그녀가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지는 도저히 예측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여자끼리의 관계에 대해 그녀가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고 이어지는 셋의 섹스...
혜진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만약 그런 거라면...
사실 내키지는 않는다.
대체 여자끼리 벗고 무얼 하겠다는 말인가.
정말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서울로 올라가고 싶은 생각 뿐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남자 친구의 미래를 위해서도, 자신의 앞날을 위해서도 감수해야 하는 관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럴려고 소속사를 옮기고 그런 고생을 했던 걸까?
어쩐지 서글퍼진다.
물론 그 징그러운 남자에게 몸을 주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리고 대가 또한 비교할 수도 없고.
그러니까...
"우리 씻자. 이제."
그리고 예지가 혜진의 손을 잡고 욕실로 들어갔을 때, 그녀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깨끗이 씻어. 훗!"
예지는 웃으면서 발가벗은 혜진의 몸을 바라보았다.
"으응..."
진짜로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거야?
응? 그런데 갑자기 엉덩이는 왜 그렇게 깨끗하게 씻는 거야?
혜진은 예지의 행동이 무척 의아스러웠다.
어째서 그런 식으로 거길 씻는데?
"응? 머해. 너도 씻어. 이리와봐. 뒤로 돌아서고."
예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혜진을 불러 엉덩이에 호스를 넣었다.
"뭐? 뭐하는 거야?"
설마? 그런 것까지 하려는 거야?
얘가 대체 얼마나 변태인 거야?
혜진은 너무 놀라서 어쩔줄 몰라한다.
"오늘 시키는대로 하기로 했지. 약속 지키는 거야. 너 알지. 나 약속 안 지키는 사람 얼마나 싫어하는지."
은근한 협박에 혜진은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그. 그래... 약속. 응. 지켜. 내가 왜 안 지키겠어."
설마 이런식으로...
앞이 깜깜했다.
하지만 예지의 기세에 눌려버린 혜진은 그저 묵묵히 예지에게 몸을 내주고 있을 뿐이었다.
"음... 이제 나갈까? 아니다. 너 여기서 10분 정도만 있다가 나와."
샤워를 하던 예지가 시계를 보고 먼저 나가버렸다.
망연자실한 혜진은 욕실 한가운데 서서 멍하니 시계만 보고 있었다.
1201호 앞에서 벨을 누르자, 가운을 걸친 예지가 직접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우르르 방으로 들어가 예지와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지연이에요."
낯가림이 없고, 친화력이 좋은 지연이 넙죽 인사를 했다.
"어서오세요. 예지에요."
"반가워요. 은희라고 해요. 여기 영웅이랑은 친구 사이죠."
두 여자에 비해 연륜이 있는 편인 은희는 예지의 인상을 살펴보다가 가장 나중에 인사를 했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해요."
"천만에요. 초대해주셔서 저희가 감사하죠."
두 여자는 서로를 살피고 있었다.
"언니 엄청 이쁘다. 언니라고 해도 되죠? 오빠가 나보다 한 살 많다고 했거든요."
지연은 여전히 거리낌이 없이 친하게 다가섰다.
"그렇게 해요. 사실 한 살 차이면 그냥 친구로 지내도 상관없는데."
"진짜? 예지... 아니다. 그러면 수빈 언니랑 위계 질서가 흔들려서 안 되겠다. 그냥 언니라고 할게요."
"그래요. 그렇게 해요. 이리로 들어오세요."
예지는 우리들을 가장 큰 침실로 안내했다.
"여기들 앉으세요. 이정도가 딱 적당한 것 같더라고요."
예지는 세심하게 관객들이 앉을 의자들을 배치해놓았다.
각 의자의 옆에는 작은 테이블이 하나씩 놓여있고, 테이블 위에는 가벼운 간식거리까지 놓여있었다.
"이제 오늘의 주역이 나올 때가 다 되었네요. 우리 이야기는 나중에 나누도록 하고, 우선 즐기죠?"
예지가 욕망으로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요. 우리. 히히."
지연도 비슷한 눈을 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구경을 시켜준다는 거야?"
은희에게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약간의 놀라움을 선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은희가 내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지연처럼 즐거워할 수도 있고, 반대로 역겨워하거나 날 경멸할 수도 있다.
일종의 도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