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6화 〉@39. 해변의 여인들 (296/377)



〈 296화 〉@39. 해변의 여인들



"아니. 난 정말로 너랑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고 싶어."

"진짜요? 흐흐흐. 알았어요. 그럼 더는 안 할게요."
지연은 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도 좋아하고 있었다.

어쩐지 그녀의 애정이 조금은 안타까워 조마조마할 때도 있지만, 난 그녀가 보내는 어떤 종류의 사랑도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말을 깬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런데 오늘도 해변에서 놀까? 아니면 다른 데도 가보고 싶어?"


"바닷가요. 바다가 제일 좋아요."

"그러자. 이거 마시고 나가자."


그렇게 잡담을 하고 있는데, 지연이 갑자기 전화기를 확인해보고는 쿡쿡거리고 웃었다.

"무슨 일 있어?"


"아뇨. 오빠!  뽀뽀해줘요."
지연이가 자기 뺨을 내게 돌리며 말했다.


"응? 갑자기 왜?"


"여튼 하라면 해요. 남자가 말이 많아!"
지연이 한 번 떼를 쓰기 시작하면 나로서는 절대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난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춰주었다.

왠지 이런 개방적인 장소에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려왔다.


하지만 지연은 마냥 좋아 싱글거리며, 전화기를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적었다.



"뭔데?"

"아까 그 언니가요. 혹시 아저씨가 나 협박하는 거면 몰래 말하라고 메시지 보내왔어요. 쿡!"

음...
어째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걸까?

나도 몰래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는 전화기를 보며 지연이처럼 큭큭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래서 뭐라고 답장을 보낸 거야?"

"반대라고 했어요. 내가 협박하고 다닌다구요. 아! 또 왔다. 저 언니가 그러는데, 오빠 얼굴이 빨게지는 거 보니까  말이 맞는 거 같데요."

"그랬구나... 둘이 잘 맞는 거 같네."
처음  여자에게 그런식의 놀림을 당하니 조금 억울했다.

하지만 미인이니 용서해주기로 했다.

"그죠? 저 언니랑 놀면 재미있을 거 같아요. 은희 언니도 좋아하겠다."


"은희는 왜?"


"언니가 그랬어요. 객관적으로 봐서 우리쪽이 미모가 딸린다구요. 저쪽에는 수빈 언니하고 지아 언니가 있잖아요. 그니까 우리도 거기에 딸리지 않는 멤버를 보강해야 된다 그랬어요."

아무래도 은희가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대체 그 파벌 놀이는 언제까지 하려 그러는 거지?

하지만 딴에 진지하게 즐기고 있는 것 같으니 내가 끼어들 수도 없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같이 다니는 동안 사람들이 아저씨 많이 바라보더라."
지연은 무척이나 신이 난 모양이다.


그건 나도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은 지연의 가슴을 가장 처음 보고, 얼굴을 보고 놀라다가, 옆에 서있는  보고 질려버리고는 했다.

"아저씨는 얼굴 좀 펴고 다녀야해요. 맨날 그렇게 무표정하게 다니니까 더 무섭게 보인다구요."


"이렇게?"
난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았다.

"아니다. 그게  무섭다.  협박하는 거 같잖아. 관둬요."
지연이 고개를 흔들었다.

"음..."
 또 풀이 죽고 말았다.

나도 솔직히  알고 있다. 지연이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와 내가 함께 있으면, 정말 저 여자가 말한 것처럼 협박이라고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우웅! 그렇게 풀죽지 말아요. 이리와요. 내가 이뻐해줄게요."

지연은 내게 앞으로 숙이라고 하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렇게 착한 남자... 아니다. 생각해보니까 착하지는 않지. 난봉꾼."

아무래도  지연에게 늘 조련당하는 기분이다.


지연이 헌팅한  여자는 때때로 우리를 바라보며 그곳에 잠시 앉아있다가,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는 잠시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해변으로 와서 그날 하루도 무척 즐겁게 보냈다.



지연은 더이상 헌팅 같은 것은 하지 않았고, 내 팔을  잡고 다니며 휴가를 즐겼다.

물론 여전히 그녀는 탈의장을 드나들며 이쁜 여자가 있으면 기록을 남기는 버릇은 버리지 못했다.

"기대하고 있으라고요. 휴가가 끝나면 아주 좋은 추억거리를 보내드릴게요."

"그니까 난 그런  원한 적 없다고."


"오빠가 원해서 하면 그건 선물이라고  수 없죠.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선물이죠."
역시 지연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해가 떠 있을 때면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고, 식사 시간이 되면 택시를 타고, 기사들이 추천해주는 맛집을 돌아다녔다.

저녁이 되면 풍경이 좋은 카페를 찾아 시간을 보내고, 호텔로 돌아와 서로의 육체를 탐했다.



"이러고 있으니까 꼭 신혼 여행 온 거 같아요."
아침이면 침대에 엎드려 발을 까딱거리며 행복한 얼굴로 쫑알거리는 지연에게 난 무엇이라도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그래. 그럼 방학 때마다 이렇게 여행을 하도록 하자."


"진짜요? 다음엔 그럼 아저씨가 말했던  남쪽 섬에 가봐요."

지연은 벌써 다음 여행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있었다.




금요일도 낮에는 해변에서 시간을 보냈고, 해가질 무렵에는 아쿠아리움에서 물고기를 구경하고, 밤이 되어 카페에서 야경을 구경하다가 호텔로 돌아갔다.

"오빠 잠깐만 있어요. 나 살 게 있으니까."
지연이 호텔 앞에서  남겨두고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때까지 잠시 호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여자가 달려오더니 확 안겼다.

깜짝 놀라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내려보니 그녀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얼굴을 보여준다.

수빈이었다.

여기서 그녀를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반가운 마음에 그녀를 안고 입을 맞추었다.

수빈은 그 어느때보다 열정적으로 내게 키스를 해왔다.


한참 동안 키스를 나누다가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우리가 여기 있는  알았어? 혹시 지연이가 연락했어?"
그녀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아뇨. 그냥 여기 있을 거 같았어요."


"그냥?"
난 수빈에게 어느 도시로  것인지조차 말하지 않았었다.

"음... 설명하기가 쉽지는 않네요. 어제밤에 침대에 누워있는데 당신이 막 보고싶은거예요. 너무 보고싶어서 눈물이  만큼이요."


수빈의 얼굴을 내려보니 지금도 어쩐지 눈가가 촉촉했다.


"그런데 당신이 이번 휴가는 지연이랑 보낼 거라고 했으니까 전화를 해서 물어볼 수도 없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어디쯤 가면 당신을 볼 수 있을지 느낌이 오는 거예요."


흐응?

"그래서 바로 차를 몰고 무작정 출발했어요.
느낌이 가르키는 방향을 따라 운전을 했죠. 그러다보니 이 호텔에 도착하더라구요."

와우!
솔직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작은 나라라고 해도, 대충 감으로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을 만큼 작은 크기는 아니다.

막말로 동네에서 한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는 않을 텐데...

이정도면 그냥 감이라기보다는 거의 초능력에 가까운  아닐까?




"잘 왔어. 지연이도 좋아할 거야."
여기 와서도 계속 엉뚱한 짓만 생각하고 있는 지연이다.


차라리 수빈과 함께라면 그녀의 장난기를 모금 누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안 돼요. 딴 사람이라면 몰라도 난  되요."
수빈의 얼굴은 아주 진지했다.

"지연의 휴가를 망치고 싶지 않아요."
어쩌면 그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연과 수빈은 나름 경쟁 관계인 모양이다.



"그럼 여기 올라가 있을래?"
 우리가 묵는 방의 카드키를 그녀에게 주고 방의 번호를 알려주었다.

"방이 세  있으니까, 안 쓰는 방이 있어. 거기 숨어있을래?"
어쩐지 지연이를 속이는 것 같아, 조금은 양심의 가책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스릴이 있기도 했다.

 희안한 일이다.

"알았어요."

수빈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연이 아이스바를 입에 물고 나타났다.

"갑자기 이게 먹고 싶어서요. 오빠도 하나 먹어요."
그녀는 자기가 빨아먹던 아이스바를 내 입에 쑤셔넣고,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바를 까서 먹기 시작했다.


"맛있죠?"
지연이 뻔뻔스럽게 물었다.


"응."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녀처럼 아름다운 소녀가 먹던 거라면 얼마든지 먹을  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들어왔다.


먼저 들어왔을 수빈은 어디에 숨어있는 건지 보이지 않는다.


워낙 넓은 룸이라 숨을 곳은 충분히 많아, 지연에게 들킬 염려는 하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나서 지연이 야수처럼 달려들었다.


우리는 방에서, 테라스에서, 거실에서 돌아다니며 섹스를 즐겼다.

그래도 하루 종일 움직인 뒤라 그러는지, 그렇게 오래 하지 않았는데 지연이 지치기 시작했다.


"이제 내일 해요. 나 졸려."
난 지연을 품에 안고 그녀가 잠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

어디선가 수빈이 숨어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찔하다.

이렇게 지연을 속이고 수빈과 밀회를 한다 생각하니 죄책감이 장난 아니다.

심지어 지연이 수빈을 나의 여자로 인정하고 있는 데도 그러한데, 정말로 자신의 연인을 속이는 경우라면, 죄책감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어려울 정도이다.


물론 죄책감은 스릴을 동반하고, 스릴은 쾌감을 불러온다.


그러니까 정말로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갖는 쾌감 또한 굉장할 것 같았다.



품에 안겨 쌔근쌔근 잠이 든 지연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다가,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방을 나서면서도, 혹시나 그녀가 깨지 않을지 조마조마하며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닫았다.


수빈을 찾기 위해 방마다 전부 찾아보았다.


하지만 아무곳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그새 돌아가버린 걸까?


아니면 아까 내가 무슨 착각이라도 한 걸까?

조금은 실망해서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보았다.

- 어디?

회신 메시지가 바로 왔다.

- 문 앞에 있어요. 열어주세요.


아무래도 지연에게 들키는 것이 걱정되어 밖에서 기다렸던 모양이다.


문을 열자 그녀가 반짝이는 눈으로 날 바라보다가, 내게 안겨왔다.

난 수빈을 안고 지연이 잠든 방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방으로 갔다.

그녀의 옷을 벗기는 동안 수빈은 조금 쑥스러워하고 있었다.


"긴장했어?"

"지연이한테 괜히 몹쓸 짓을 하는 기분이라서요."
수빈이 어색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사실은 나도 그래."

"그죠. 쿡!"
수빈이 조용히 웃어버렸다.


"이상하죠. 바로 며칠전에 셋이 같이 그렇게 뒹굴어놓고서."

"역시 속이는 건  게 못 돼."

"맞아요. 그래도 왠지 스릴이 있어서 좋다. 우리 가끔 이렇게 즐겨요."
수빈의 눈이 초롱 초롱 빛이 났다.

이 아이도 비도덕적인 섹스의 기쁨을 발견한 모양이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그녀의 옷을 전부 벗기고, 난 한동안 그녀의 나신을 감상했다.

"진짜... 부끄럽잖아요. 그렇게 보고 있으니까."

"역시 벗겨놓으니 제일 이쁘다."

"그래도 지연이만은 못하죠?"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
난 그녀의 가슴을 입에 물고 정신없이 빨았다.

수빈이 나즈막한 소리로 신음을 내뱉었다.


혹시라도 지연에게 들킬까봐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모습이 더욱 마음에 들어, 흥분이 점점 커져갔다.



"학! 학! 그만... 이제 빨리 넣어줘요."
수빈의 눈은 어느덧 정욕으로 물들어있었다.

사실은 나도 참을 수 없어 마구 달려들었다.

섹스를 하는 내내, 수빈은 손으로 입을 꾹 막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그녀의 그런 모습은 점점 더 나를 자극했고,  그녀가 비명을 터트리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물론 나도 지연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금기가 있을 때면, 그걸 깨고 말고 싶은 욕망 또한 강해지기 마련이다.


다행히도 수빈은 끝끝내 신음소리가 커지는 것을 막아낼 수 있었다.



"엄청 좋았어요. 장난 아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불륜에 빠지는 모양이죠?"


"그렇지?"
내가 이런 행위를 한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다른 여자에게 이런 것을 강요한 것은 꽤 된다.

어쩐지 내가 그녀들을 단순히 타락시킨 것이 아니라, 그녀들에게 굉장한 쾌락을 선사해왔다는 뻔뻔스러운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이제 가볼게요."
수빈이 옷을 입으며 말했다.

"왜? 자고 가도 되는데."


"이걸로 충분해요. 그리고 더는 망치고 싶지 않고요."
수빈은 쿨했다.


"이 시간에 올라갈 수 있겠어?"

"그럼요. 걱정  해도 돼요. 나오지 마요."

수빈은 내게 입을 맞추고 다시 조용히 방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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