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1화 〉@38. 마녀의 귀환 (291/377)



〈 291화 〉@38. 마녀의 귀환

주은과 함께 몸을 씻고 먼저 욕실을 나왔다.


난 의자에 앉아 다른  사람을 기다렸고, 주은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 발을 핥았다.


어쩐지 내가 그녀를 내기의 대상으로 내건 이후 주은의 행동이  더 사근스럽다.

주은은 마치 노예라도 된듯 날 위로 올려보며 생긋 웃고 있었다.

어쩐지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가 점점 더 마음에 들어, 흡족한 기분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예지와 은채가 수건으로 몸을 두르고 나왔다.


"당신 말이 맞아요.  게임은 틀림없이 내가 졌어요. 은채는 당신 거예요."
다시 의자에 앉은 예지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은채를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예지는 자신의 옆에 묵묵히 서있는 은채를 살짝 바라보고 말했다.

욕실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은채도 아까보다는 훨씬 더 침착해보였다.


"그렇다면 다음 게임을 기대해보죠."

"언제 또 시간이 나죠?  이번 주에  번  보고 싶은데요."
예지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주는 힘들 거 같군요. 모래 오후부터 여름 휴가를 떠날 생각이라."

"음... 그렇다면 어쩔  없군요. 휴가가 끝나고 보도록 하죠. 그런데 거기 주은 씨도 함께 가나요? 그리고... 은채도 함께 할 건가요?"

"아뇨. 이번 휴가는 애인이랑 갈 생각이라서요."


"응? 애인이 또 따로 있어요?"
예지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물론이죠. 그동안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한 것 같아서, 이번엔 둘이 오붓하게 보낼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휴가 재미있게 보내세요. 참! 실례가 되지 않으면 어디로 가시는지 물어봐도 돼요?"


"바다가 보고 싶다고 해서 남쪽으로 가려고요."

"응? 설마 아직 장소도  정하고, 호텔 예약도 안  놓은 건가요? 이제와서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그러려나? 뭐 어떻게든 되겠죠."

"나 참. 웃기는 남자야."

"그럼 은채는 일어나지. 이제 작별의 시간이다."


은채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지 미적거리며 일어나 옷을 걸쳤다.


예지는 은채를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젤 앞에 가서 앉았다.


딱히 그림을 그리려는 목적이라기보다, 작별 인사를 하기 싫은 모양이다.



"그럼 휴가 다녀와서 보도록 하죠. 멋진 그림 완성하길 바랄게요."

"쉽게 완성하기 어려울 거 같네요. 당신이 계속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예지의 아틀리에를 빠져나와 주차장에 내려가 차에 올랐다.

주은은 은채를 뒷자석에 앉히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런데 은채 씨는 앞으로 어쩔 생각이에요?"
차를 출발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은이 물어왔다.


"음... 생각해본 적 없는데?"
그랬다. 난 그저 예지에게서 그녀를 빼앗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지, 은채의 앞날 따위 고려해보지 못했다.

어쩐다...



"그럼 나 주세요."
주은이 깜찍한 요구를 해왔다.


"달라고? 흐음..."
그거 나쁘지 않다.


은채에게 새로운 주인이 생긴다면, 나보다는 여자가 나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주은은 여주인으로서의 소질이 농후하다.

이미 난 그녀에게  팀장의 소유권을 주었다.
주은은 자신이 남자 친구와 헤어지게  아픔의 원인을 왠지  팀장에게 돌렸는지, 꽤나 능숙하게  팀장을 굴렸다.


어쩐지 주은이라면 은채도 잘 다룰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는 동안 룸미러로 뒷좌석을 살펴보니 은채가 불편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로 내가 자신을 저 낯선 여자에게 준다고 할까 두려운 모양이다.



"예지 씨하고 떨어진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리운 모양이네? 예지 씨와는 단순한 친구가 아닌가보네요?"
주은이 고개를 돌리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들한테 설명하고 싶지 않아요."
은채는 분노를 참고 있는지 입술을 떨며 말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 아니었어요? 적어도 은채 씨는 그랬던  같은데."


"그런 불순한 관계 아니에요."
은채는 딱 잘라 말했다.


"그럼 어떤 관계일까나? 궁금해 죽겠어."
주은은 다시 흥이 났다. 은채와 예지 사이의 그 농밀한 관계를 알아내고 싶어 죽겠는 모양이다.,


"그렇게하지. 은채는 이제 주은의 소유야."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그말을 듣던 은채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녀는 정말 물건처럼 이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돌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저항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한다.

설정 카드 < 게임의 규칙 >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의 정신이 완벽하게 예지에게 속박된 때문일까?




"진짜요? 감사합니다! 역시 멋진 남자야. 흐흐흐."
주은이 신이 났다.

"저기 오빠. 혹시 뭐 하고 싶은 거 있어요? 말만해요. 어차피 오빠가 말하는 거라면  하겠지만... 앞으로는 아주 성심성의껏 할게요."
진짜로 기쁜지 아양까지 떨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은채는 점점  질려가는 표정이 되었다.



"예지가..."
그리고 참지 못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되찾아 갈 거예요."
은채는 마치 주인에게 팔려버린 강아지 같았다.


여전히 주인이 자신을 되찾을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못했다.




"아마 그러려고 하겠지. 하지만 예지 씨가 무슨 수를 써도 날 이길 수 없을 거야."


"예지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사람이에요."

"그런가? 하지만 난 조금도 겁이  나는데?"


"예지는 지금까지 자기가 원한 걸 손에 넣지 못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하지만 절대 이 남자는 못 이겨. 은채 씨도 알잖아?"
주은이 거들었다.

그리고 은채는 조금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당신들은 예지를 몰라요."

"만약 예지 씨가 은채를 되찾기 위해 계속 나와 대결을 이어간다면, 꽤 많은 것을 잃게 될 거야."


"대체 무슨 속셈인거죠?"
은채는 우리가 대단한 음모라도 꾸미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난 예지 씨가 무척 마음에 들었거든. 그래서 예지 씨도 손에 넣을 생각이야."
그녀에게 솔직하게 내 목적을 말해주었다.

"은채는 그걸 위한 수단이고."
내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예지는 결혼할 남자가 있어요."


"그러니까 더 탐이 나지."

"진짜 질이  좋은 사람이네요."
은채는 날 경멸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보다 그런 생각 해봤어? 내가 예지 씨를 손에 넣으면, 그녀를 누구에게 넘길지?"


"뭐라고요?"
은채는 자신을 주은에게 넘긴다고 할 때보다 훨씬 더 경악하고 있었다.

"어머나! 그러네!"
주은이 다시 신이 났다.

"예지가 내 손에 들어오면, 은채에게 넘기지. 어때?"

"뭐라고요?"
은채가 깜짝 놀란다.

"흐응?"
주은은 생각에 빠졌다.


"네가 하고싶은 대로 해도 돼. 그녀를 풀어주던, 아니면 네가 원하는 대로 다루던."

"아!"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은채의 얼굴이 붉어졌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주은의 집에 도착했다.




"그럼 둘이 잘 해봐."
주은에게 은채를 넘기고 돌아나왔다.

그녀는 또 무슨 흉계를 꾸미는지, 은채의 손을 잡고 신이나서 돌아갔다.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예지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왔다.

혹시 벌써 다음 내기를 생각해 낸 것인가 했는데, 전혀 엉뚱한 내용의 메시지였다.



- 남해 해수욕장 근처에 계열사 호텔에 방을 준비해 놓으라고 말해놨어요.
휴가를 가려는데 아직 호텔 예약도 안 했다고 했었죠?
내일 밤부터 원하는 날까지 편히 사용하도록 해요.
애인이랑 좋은 시간을 보낸다면서 그렇게 준비성이 없으면 어떻게 해요?




음.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호의인가?
아니면 다음번 은채를 놓고 벌일 내기에 대한 포석일까?

여하튼 성의를 보여주니 감사하다고는 해야겠지.

난 그녀에게 짧게 고맙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이러면 계획이 조금 바뀌는데...

원래는 지연이와 남극의 섬에서 유유자적한 휴가를 보내려 했었다.

하지만 기껏 호텔을 마련해주었는데 무시하기는 그렇고.


지연에게 의사를 물어야겠다.



.....

예지와 유희를 즐긴 다음날은 수빈을 만났다.

지연과 휴가를 가기로 했으니, 하루 정도는 수빈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데이트 장소는 이번에도 수영장이었다.


아무래도 여름에는 이만한 곳이 없는 듯 하다.


수영장에 도착하자마자, 수빈은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알몸의 수빈이 기분 좋게 수영을 하는 동안, 난 그녀가 벗어놓은 옷을 들고 탈의실로 가서 적당한 곳에 놓고 옷을 벗으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은 그동안 받은 코스튬 카드 하나를 사용해볼 생각이다.


그렇게 자주 나오는 편은 아니니, 기왕이면 수빈에게 써보고 싶었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코스튬 카드는 < 마녀 >와 < 젖소 >  장.


그중에서 어느쪽이 좋을지 한참을 고민해보았다.

귀엽고 아름다운 수빈이 마녀 복장을 하는 것도  어울릴 것 같고, 또 가슴이 큰 다고는 하기 힘든 수빈이 젖소 코스프레를 하면 혹시 가슴이 커진 수빈과 섹스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긴다.


어느쪽이 나을까?

한참 동안이나 고민하다 결정을 내렸다.

물론 가슴이 커다란 수빈도 매력있겠지만,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것은 가슴의 크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그녀에게 젖소 코스프레를 시킨다면, 어쩐지 그녀의 가슴에 만족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결정이 끝나고 난 바로 코스튬 카드 < 마녀 >를 찢었다.

아주 길다란 종이 박스 하나가 내 앞에 나타났다.

상자를 열자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상자의 길이만한 빗자루 하나.


빗자루를 꺼내자 검은색 옷 한 벌과 모자 하나가 들어있다.


상자 안의 물건은 그게 전부였지만 한편으로는 그걸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금세 납득했다.

그 빗자루와 옷, 그리고 모자를 들고 탈의실을 나가자, 수빈이 물속에서 올라왔다.

"그게 뭐예요?"
수빈이 궁금해한다.

"마녀의 복장. 한  입어볼래?"

"이런 거 좋아해요?"
수빈이 웃으며 물었다.


"응."

"하필이면 마녀에요?"

"너하고 잘 어울릴  같아서."

"그럴려나?"
딱히 거부감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위에 그냥 입어요? 속옷 없이? 역시 엉큼한 남자라니까."

그건 내 취향이라기보다 코스튬 카드 < 마녀 >의 설명을 충실히 따르는 것 뿐이다.

코스튬 카드 < 마녀 >
- 어딘지 으스스한 마녀입니다.
- 다양한 원소를 부리고, 수많은 잊혀진 기술을 사용할 줄 압니다.
- 마녀는 속옷을 입지 않습니다.

조금 억울했지만, 설명할 길이 없으니, 그냥 넘기자.




"흐음... 대체 이건 무슨 원단으로 만들어진 거죠? 굉장히 가벼운데..."
수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옷을 입었다.

마녀 코스튬은 딱 옷이  벌뿐이라, 그냥 위에서 걸치는 것으로 준비가 끝나버렸다.

수빈은 다시 모자를 머리에 쓰고, 빗자루를 손에 들었다.

"아니지. 마녀에게 빗자루는 탈 것이었지?"
수빈이 빗자루를 다리 사이에 끼며 말했다.

"아저씨! 이거 봐요! 이렇게 하는 거 맞죠?"
수빈이 깔깔거리며 치맛단을 들고 자신의 갈라진 틈에 빗자루를 딱 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럴려고 속옷 없이 입으라고 한 거죠?"

이거 괜히 엉큼한 속셈을 보여준 꼴이 되어 민망한데?

하지만 그녀의 귀여운 음부에 마녀의 빗자루가 끼워진 모습이 무척이나 음란하면서도 귀여워 무척 마음이 흡족하다.




"참. 이름이 필요한데 어떤게 좋을까?"
그녀에게 캐스팅 카드를 사용하고 물어보았다.


코스튬 카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코드 네임이 필요하다.

지난번 지연이 고양이 소녀가 되었을 때에는 엘레오놀이라는 이름을, 보라가 잠입 수사관이 되었을 때에는 니키타 로마노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마녀가  수빈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고민해보았는데, 생각해보니 이런건 똑똑한 수빈이 직접 짓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수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에게는 단순한 장난으로 생각될 터인데에도 이렇게 진지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다시 마음이 푸근해진다.

"키르케요."
수빈이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키르케?"
어디서 한 번 정도 들어본듯한 이름이다.

"최초의 마녀이자, 마법의 신이었던 여자의 이름이에요."


"아하!"
역시 똑똑하니까 아는 것도 많구나.

"그래. 이제  코드 네임은 키르케로 하자."

그리고 다음 순간이다.

수빈의 몸이 환한 빛으로 휩싸였다.


지난번 지연이 이렇게 되었을 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아주 깜짝 놀랐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