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화 〉@35. 라인업 - 당신이 거느린 여자가 얼마나 많은 거예요?
"그럴리 있어? 지아가 그 아이들보다 못한 점을 하나도 찾을 수 없는데?"
"수빈이는 나보다 이쁘고, 지연이는 이쁘고 나보다 가슴이 훨씬 크잖아? 그리고 둘 다 나보다 훨씬 더 어리고."
지아와 나 사이의 관계는 다른 여자들의 관계와는 조금 달랐다.
우리가 공유했던 시간과 추억 때문에라도 육체적인 쾌감보다 감정적인 교류의 의미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 까닭에 그녀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난 지아의 두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지아가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막았다.
"아직 내 말 다 끝나지 않았어."
그녀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 우리가 사랑하다가 헤어진 뒤로, 내가 자기 생각할 때마다 제일 좋았던 게 뭔지 알아?"
물론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우리 사랑하는 동안 둘 다 서로에게 최선을 다한 거였어."
지아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날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렇게 할 거야.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되든. 난 당신한테 최선을 다할거야."
한편으로 그녀는 그 누구보다 우리의 관계가 언제까지고 지속될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미 우리는 한 번의 이별을 겪었다.
한 번 있었던 일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아는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날 선택했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그녀의 다짐을 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지아의 손이 내 아래로 내려왔다.
대화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는 서로의 육체로 사랑을 확인할 차례였다.
"그런데 나만 빼고 다들 그렇게 자기 사진을 찍어서 보내나봐."
육체의 대화가 끝나고, 지아가 다시 난감한 주제를 꺼냈다.
"다들 그러는 거 아냐. 그 셋만 그래. 제일 변태들이야."
"응? 다들 그러는 건 아니다... 셋만... 제일?"
지아가 날 빤히 바라본다.
이런 트랩 카드를 밟은 모양이다.
"대체 얼마나 많으면 셋만이라고 할 정도야?"
지아의 눈에 어린 저 감정은 설마 경멸?
"후회돼? 나 같은 사람을 선택해서?"
여기서는 어떤 변명을 해보아도 구차하고 추잡해질 것 같다.
차라리 당당하게 나가도록 하자.
"아니. 조금도 후회 안 해."
지아가 웃으며 말했다.
"여자들한테 좀 망나니 같고, 심하게 말하면 쓰레기 같지만, 다시 내게 선택의 기회를 준다해도 오빠를 선택할 거야."
좋은 말이지?
"억울하지 않아? 지아처럼 아름답고 똑똑한 여자라면 훨씬 더 괜찮은 남자를 선택할 수 있는데."
"있잖아 여자들은 평범한거나 못난 남자의 하나뿐인 여자가 되는 것보다 대단한 남자의 여러 여자중 하나가 되는 쪽을 선택하기 마련이야. 만일 그게 아니라고 부정하는 여자가 있다면 아주 괜찮은 남자와 만난 것이거나, 아니면 정말로 대단한 남자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때문이야."
"내가 그렇게 대단할 게 뭐가 있어?"
물론 섹스에서의 쾌락을 말하는 거라면 인정할 수 있겠지만, 지아의 말에는 어쩐지 그 이상의 의미가 들어있는 듯 했다.
"오빠 대단한 남자 맞아. 키도 굉장히 크고 꼬추도 크고. 풉!"
지아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웃어버린다.
"그리고 돈도 많고. 음. 자기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거 정말이야? 그런거 치고는 너무 돈을 부담없이 쓰는 거 같아. 타고 다니는 차 10억원도 넘는다며? 역시 뭔가 비밀이 있는 거 같아."
돈으로 말하자면, 지아가 결혼하기로 했던 그 남자에게 비할바가 아니다.
나야 조금 돈이 있는 정도이지만, 그 남자는 방송국을 소유한 집안의 장남이다.
"그리고 여자를 훌리는 능력도 그렇고. 만약에 오빠가 마음만 먹으면 진짜 굉장한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아."
음... 생각해보니 그럴 것도 같다.
"그런데 참 궁금한 게 있어. 왜 아직도 그 회사에 다니고 있는 거야? 혹시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어? 아니야. 여자 때문이라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꼬실거고. 오빠 하는 걸 보면 그렇게 야망이 없는 거 같아. 있잖아. 능력은 이만큼 큰데, 그냥 귀찮아서 조용히 사는 사람. 그런 느낌이야."
"야망? 그런 걸 뭐하러? 난 지금이 딱 좋아. 쓸데 없는 욕심부리다가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어."
"거봐. 귀찮은 거지? 뭐든지 할 수 있으면서. 좀 이상한 생각인데, 당신이 마음먹으면 세상이 뒤집어 질 수도 있을 거 같아."
"그런거 이제 됐어. 그정도면 충분해."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하고 보니 뭔가 이상하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됐다고? 꼭 무슨 일을 해본 사람처럼 말하네?"
"아니. 그러니까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한다는 말이야."
나도 내가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무언가 엄청난 일을 저지를 생각은 하기도 싫다.
꼭 진력이 난 것처럼 말이다.
"진짜. 뭔가 숨기는 게 많아. 내가 알던 그 영웅 오빠랑 같은 사람인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지아는 더 파고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은희 언니랑, 지연이랑 수빈이가 제일 변태란 말이지?"
다시 더 중요한 문제를 논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 변태들이라니까."
나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흐음... 그럼 나도 한 번 찍어볼까? 그런 사진?"
지아가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제발... 넌 그런 거 하지마. 나한테 지아는 지금이 가장 완벽해. 그런 변태들 하는 짓을 따라해서 자신을 망치지 마."
섬찟한 생각이 들어 허겁지겁 그녀를 설득했다.
변태는 그녀들로 충분하다.
내 아름다운 여자는 정말로 이대로 충분하다.
"진짜... 필요없어? 그런 거?"
지아가 웃으며 물어온다.
"응!"
난 열심히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내 진심을 전하기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알았어. 그럼 고민해볼게."
아니. 고민 하지 말라고...
하지만 지아가 다시 내 위로 올라오며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사람이 간신히 만든 시간을 쓸데없는 논쟁으로 낭비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왠지 불안한 마음은 어째서일까?
다음날은 수빈과 만나 전날의 일을 물어보았다.
"그래서 두 사람을 더 만나보니 어땠어?"
수빈을 지아에게 소개시켜 준 것은 지아의 요청 때문이기도 했지만, 수빈이 내 여자들에 대해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멋진 여자분들이었어요. 두 사람 모두 당신이 빠질만큼 멋졌어요. 그리고 아저씨랑 많은 시간을 공유했었다는 장점도 있구요. 아마도 그 시간 동안에 아저씨한테 지금의 능력이 없었던 것 같구요."
역시 똑똑한 아이는 금세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이 대단한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은 것 같아요. 지아 언니랑 헤어지고 난 뒤의 일이니까 길어야 2년 정도이겠네요. "
"그렇구나."
그녀가 많은 것을 알아낼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물론 당신이 전부터 그런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지아 언니와 은희 언니에게는 사용하지 않았다는 가정도 가능하지만..."
수빈은 잠시 날 바라본다.
"절대 그런 힘을 사용하는 것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수빈은 진실을 말하는 것에 왠지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래. 나도 알아. 내가 그런 사람인 거. 그러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음. 그래서 말인데 다른 여자들과도 만나보고 싶어요."
수빈이 눈을 반짝이며 요구해왔다.
"전부?"
"너무 많아서 어려워요? 그럼 가능한 사람들 만이라도요."
"그럼 한 번 시간을 조절해보자. 방학이 끝나기 전에 하는 게 낫겠지?"
"네. 빨아줄까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낸 수빈은 만족한 표정으로 다시 물어왔다.
역시 여자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스스로의 욕망을 채울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영민씨 내일부터 휴가지?"
점심을 먹고 팀 사람들이 휴계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마지막 휴식을 즐기다가 휴가 이야기가 나왔다.
새로운 프로젝트 때문에 일이 잔뜩 쌓여, 같은 팀에서 두 명이 빠지는 것은 어려웠기에 한 명씩 돌아가며 휴가를 갖기로 했다.
"그래도 영민씨하고 도연이는 같이 줘야 하는데..."
나은이 안타깝다는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속셈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죠. 뭐."
도연의 남자 친구는 솔직하게 아쉬움을 표시했다.
휴가라도 같이 갔으면, 요즘 따라 많이 서운해보이는 도연을 즐겁게 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괜찮아요. 오빠 고향에 다녀온지 오래됐는데 이번에 다녀오면 좋죠. 나도 며칠 편하게 쉬기로 하고요."
도연도 아쉬움을 금치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억지로 이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연기는 날마다 늘어나는 것 같았다.
"기왕이면 전부 같이 받았으면 좋았을 걸..."
"우리 다 함께 바캉스 같으면 좋았을텐데..."
사실은 도연이 가장 아쉬워하고 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나와 나은, 그리고 도연 자신이 남자 친구와 함께 바닷가에 가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이번에 온천이라도 다녀와서 다행이다."
"그러게."
도연은 그 3일 동안의 일을 떠올리며 기쁜듯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데 진짜 휴가 동안 뭐하지?"
여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쉬는 것은 좋은데, 막상 할 일들이 없는 모양이다.
"집에서 쉬어야지 뭐. 같이 놀라갈 사람도 없고."
그녀들에게 가장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회사에 출근하게 되니 휴가라고 딱히 흥도 나지 않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내가 작은 선물을 마련해야 할 거 같았다.
"그럼 휴가 동안 마사지나 받아. 이번에 온천에서 괜찮았지?"
"엄청 좋았어요. 아직도 피부가 뽀송뽀송하다니까요."
도연이 대뜸 자기 팔을 다른 여자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런 마사지 굉장히 비싸지 않아?"
돈에 민감한 주은이 바로 반응했다.
"보통 10만 원은 넘지 않아? 한 시간에?"
"그럴걸? 근데 그때 온천에서 받은 마사지는 진짜 고급인 거 같았어."
여자들은 돈 생각을 하고 머리를 도리도리 저었다.
내게서 이런 저런 명목으로 적지않은 용돈들을 받았지만, 그녀들은 천성적으로 서민들이었다.
한 시간에 십만 원짜리 서비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을 여자는 한 사람도 없다.
"신경쓰지 말고 가서 받아. 내가 아는 사람이 하는 곳인데 돈은 안 받을 거니까. 이번에 온천에서 받은 마사지. 거기가 원래 하는 곳이야."
"네에? 물어보니까 논현동에 있는 굉장히 고급 스파라던데요? 클럽 회원만 받을 수 있다던데..."
도연은 그날 자신을 마사지해주었던 여자에게 이런저런 것을 물어본 모양이다.
"여하튼 신경 안 써도 돼. 그냥 가서 내 이름 말하면 하루 종일 이런 저런 마사지 받을 수 있으니까. 휴가 내내 받으면 너무 지겨울까? "
"아뇨!"
여자들이 동시에 외쳤다.
"그런걸 매일 받는다고요? 진짜 좋은데? 완전 힐링이잖아?"
"그지. 와. 럭셔리 휴가네."
반응들이 좋다. 꽤 적절한 선물이 된 듯하다.
물론 비용은 지불할 생각이다. 한 사람당 몇 백만 원 정도 들겠지.
하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다.
그녀들이 내게 제공하는 쾌락은 차치하고라도, 그녀들 덕분에 벌어들이는 수익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냥 소속사 여배우들을 대접해준다 치도록 하자.
생각해보면 이 여자들 각각에 대해 마사지 물 한편 씩 찍을 때도 되었고 말이다.
그날 저녁 스파 클럽에서 수빈과 다시 만났다.
그녀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쪽은 정미 씨. 대양 그룹 회장 비서를 하고 있어. 그리고 이쪽은 윤진. 대양 그룹 계열사에서 근무하고 있고, 회장의 따님이지."
"안녕하세요. 수빈입니다."
내 소개를 듣고 나서 수빈은 두 여자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저. 이 여자 누구에요?"
윤진이 조금 불편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내 애인."
난 수빈을 그렇게 소개했고, 윤진은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나은씨가 애인 아니었어요?"
"나은이는 회사 동료. 애인은 이쪽이야."
"으음..."
"이쪽 윤진은 아주 성격이 고약한 여자야. 학교 다닐 때에는 꽤나 말썽을 피운 모양이야.
윤진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학생도 있다니까.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이지.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을 괴롭혔을 거야.
인생을 망친 사람도 있을 거고.
그녀는 지금까지 부친의 권력을 믿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살아왔어. 물론 자신의 행동을 뉘우친 적은 한 번도 없고."
윤진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들을 조금도 가감없이 밝히는 동안, 그녀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