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4화 〉@35. 라인업 - 당신이 거느린 여자가 얼마나 많은 거예요?
"몰랐어요. 하지만 말하는 것만 봐도 알겠다."
그녀의 눈동자는 무척 진실되어보였다.
"혹시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어요?"
"음... 여기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는 거. 그리고 굉장히 위대한 사람이라는 거요. 그 정도가 전부예요."
"위대하다고요? 어째서?"
설마 여자들을 따먹고 다닌다고 그러는 건 아닐테고.
"영웅이니까 위대한 사람이잖아요."
소녀는 말 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알고 있던 거라고는 내 이름 뿐이라는 것 같았다.
"영웅이 내 이름은 맞지만... 혹시 내 성이 뭔지도 알아요?"
"알아요. 안씨... 음... 그러면 안영웅? 영웅이 아니에요? 풉!"
참 잘 웃는 아가씨다.
"그러니까 하나도 위대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레이나씨가 잘못알고 있었네요."
"흐응? 그래도 엄마 말씀으로는 굉장히 위대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흐응? 여관 주인과는 대화를 나눠볼 필요가 있겠다.
스파 클럽의 사장인 안나처럼 그녀 또한 뭔가 미스테리한 부분이 있다.
아마도 두 여자 모두 내게 AV 마스터의 힘을 준 어떤 존재와 관련이 있겠지. 물론 두 사람이 그걸 자각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내가 지닌 힘의 비밀과 연관이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이 귀여운 여자도 스파 클럽의 아라나 미나처럼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들어주는 걸까?
살짝 시도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소녀가 너무 순수해보여 조금은 거리껴진다.
"근데 오늘은 돌아가시겠네요."
단발 머리 소녀가 조금 아쉽다는 투로 말했다.
"그래야죠."
"또 오실거죠?"
뭔가 기대감에 찬 눈빛이다.
"아무래도 자주 오게 될 것 같은데요."
"정말요?"
기뻐하는 표정을 보니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성격인 모양이다.
"그럼요. 여기 레이나씨를 보기 위해서라도 자주 와야겠는데?"
"진짜! 바람둥이 맞잖아요! 이쁜 애인도 있으면서."
꾸짖는 표정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그윽한 어떤 감정이 담긴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애인이 있어도 미인을 보면 가슴이 설래는데 어쩌지?"
"나쁜 사람이네. 쿡!"
"나쁜 사람 싫어요?"
"네. 나쁜 남자 싫어요."
하지만 그녀는 내게서 눈을 돌리지 않고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도 영웅님이 오시면 기쁠 거 같아요."
"자꾸 영웅님 그러니까 좀 이상한데."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안영웅님? 킥!"
그토록 이쁜 소녀의 웃음 소리를 듣고 있는 것 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해진다.
"음. 그냥 아저씨 정도면 어떨까?"
사실은 오빠 정도가 더 좋겠지만, 염치가 있지...
"음... 그것도 괜찮은데... 그렇게 부르면 엄마한테 혼날 거 같은데요?"
"내가 괜찮으면 된 거죠."
"알았어요. 그럼 아저씨도 나한테 자꾸 존대말 하지 말아요."
"그래. 그럼 우리 앞으로는 좀 더 편하게 대하는 거야."
"네. 그러면 다음에 오시면 내가 아주 소중한 걸 드릴게요."
"소중한 거? 뭐?"
"그걸 알려드리지 않아야 궁금해서 빨리 오실 거 아니에요? 그럼 또 봐요. 아저씨."
레이나는 내게 꾸벅 인사를 하고 달려가버렸다.
흐음... 정말로 근 시일에 다시 와야겠는걸?
온천 여행의 마지막 날은 그렇게 귀엽고 산뜻한 소녀와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기분 좋게 시작되었다.
모두들 피곤했던지 사람들은 거의 점심 시간이 다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여유있게 점심 식사를 하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가 온천을 나섰다.
"어제는 취하지 말라고 했었지? 여기까지 와서 술만 마시고 이게 뭐야? 오빠랑 안 가!"
도연은 마지막 순간에 어깃장을 놓고 남자 친구 대신 우리 차에 올라탔다.
"너무 그렇게 구박하지마. 그래도 너한테 영민씨처럼 잘 하는 사람이 어디있어?"
나은이 부드럽게 타일렀다.
하지만 앞을 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그려져있었다.
"그럼 난 도연이 데려주고 들어갈게."
난 나은을 먼저 집에 데려주었고, 도연을 데려준다는 핑계를 대었다.
"조심해서 가요. 도연이 너도 괜히 오빠 괴롭히지 말고."
"내가 앤가? 괴롭히기는."
도연은 여전히 뾰루퉁한 표정이었지만, 조수석에 옮겨 타자마자 벌써 내 아랫도리를 더듬고 있었다.
우리는 가까운 모텔로 가서 한 번 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빠 어디야? 아깐 내가 좀 심했던 거 같아."
도연은 내 물건을 자신의 몸안에 넣고 남자 친구와 전화를 했다.
"거기까지 가서 오빠가 나랑은 제대로 놀지도 못하니까 그랬잖아. 뭐야. 결국 한 번도 못하고. 나 집에와서 오빠 생각하며 자위하는 중이야. 하악!"
도연의 욕망은 멈추지 않았다.
"흐응... 오빠가 나빠. 맨날 그렇게 착한 척만 하느라... 학! 나 다른 남자랑 할거야. 흐윽!"
우리가 섹스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쉬지 않고 남자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함께 했던 여인들은 모두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낸 듯 했다.
물론 그 와중에 희생자도 나왔지만, 나야 상관없는 일일 뿐이다.
"스튜디오에는 왜?"
정 팀장에게 이끌려 지하 스튜디오로 내려가는 반 팀장은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러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자기도 알아두어야 할 게 있어."
"나도? 그게 무슨 말이야?"
"가보면 알아."
정 팀장은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진짜 무슨 일이람..."
투덜거리며 스튜디오로 들어가는 순간 반 팀장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스튜디오 안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도 잘 알고 있는 여자들이다.
바로 함께 온천에서 민망한 장면들을 연출했던 나은과 회사에서 제일 이쁘다고 알려진 주은이다.
그런데 어째서 두 여자는 알몸인 거야?
그것도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마치 누군가에게 벌을 받기라도 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반 팀장이 깜짝 놀라한다.
"옷부터 벗어."
정 팀장이 스스로의 옷을 벗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응? 아니. 옷은 왜 벗냐고?"
"그러니까 자기가 알아둬야 할 게 있어. 이제 자기도 우리처럼 그 남자의 소유가 되었으니까 말이지."
말하는 사이 정 팀장은 벌써 알몸이 되어있었다.
반 팀장도 정 팀장과 함께 알몸으로 별의 별 짓을 다 해보기는 했지만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남자? 소유?"
"응. 소유. 혹시라도 자기가 생각을 잘 못 할까봐 말해주는 거야. 사귀는 거 아니고, 서로 즐기는 거 아니고, 소유. 자기도 이제 영웅씨의 소유가 된 거라고."
정 팀장은 소유라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하며 나은의 옆에 꿇어 앉았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반 팀장님도 영웅씨랑 섹스 했죠?"
주은이 끼어들었다.
"응?"
그리고 그 순간 반 팀장은 비로소 여기 모여있는 여자들이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그. 그러면... 전부?"
"여기 있는 사람이 전부는 아니지만, 여하튼 우리 모두 그 남자한테 코가 꽤여 있는 것은 맞아요."
주은이 싱글거리며 말했다.
"더 있어?"
반 팀장은 갑자기 정신이 멍해졌다.
"그런데 소유라니? 그리고 왜 벌거벗고 이러고 있는 거야?"
"반 팀장님도 알 거예요. 이제 그 남자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응? 어? 아!"
아주 짧은 시간 사이에 그녀는 많은 것을 이해했다.
맞다. 그 엄청났던 쾌락. 그리고 그 남자에 대한 애틋한 마음...
하지만 이건 아니다.
아무리 그게 좋아도 이렇게 노예처럼...
"무슨 성 노예야? 자기들 미쳤어?"
"미쳤죠. 어떻게 안 미쳐요? 성 노예면 뭐 어때요? 자기 좋으면 그만이지."
나은이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여자... 그런데 여자 친구 아니었어?
하지만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주르륵 앉아있는 세 여자의 표정을 보면, 모두 같은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혜씨... 언제부터야?"
그녀는 그날의 일이 정 팀장에게도 처음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조금 됐어."
정 팀장이 담담하게 사실을 밝혔다.
반 팀장은 어딘지 모를 배신감을 느꼈다.
"그럼 우리 그날 있었던 일들은..."
"자기랑 나랑 한 거는 영웅씨가 시킨 거고. 남자들이 그런 짓을 한 건 자기들이 무덤을 판 거지."
"뭐야! 그게..."
반 팀장은 머리가 어질어질한 것을 느꼈다.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에요. 반 팀장님. 어떻게 할 거예요? 우리랑 함께에요? 아니면 나가서 모든 걸 잊어버릴 거예요?"
주은이 물었다.
"나... 난..."
반 팀장은 세상이 자신을 배신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게 무슨 짓이지?
다들 미쳤어?
어떻게...
아무리 그게 좋아도...
소유니. 성 노예니 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반 팀장의 몸은 그런 이성을 배반하고 있었다.
그날의 일들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 그녀는 아랫도리가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맙소사...
그리고 반 팀장은 벌거벗은 여자들의 심정을 이해하고야 말았다.
그랬구나...
다들 나름 저항해보았겠지...
하지만 다들 알고 있던 거야...
벗어날 수 없어.
아니. 벗어나고 싶지 않아.
남편도 아이도 버릴만큼 좋았어.
끔찍하게 좋았어.
모든 것을 버린 이제와서 그걸 부정하면 무슨 소용이람?
반 팀장은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그래. 무슨 상관이람.
성노예건 소유물이건...
주은의 메시지를 받고 지하 스튜디오로 내려간 나는 꽤 놀라버렸다.
문을 열자 네 개의 벌거벗은 궁둥이가 나를 맞이한다.
셋은 바로 알 수 있다.
주은, 나은, 그리고 정 팀장.
나머지 하나는? 도연이 아니라면 반 팀장이겠지.
물론 도연에게 진실을 알려 우리의 도락을 방해하지 않을 테니 남은 사람은 반 팀장 뿐이다.
그건 그렇고 멋진 광경이다.
문 반대 방향으로 엎드려 상체를 내리고, 엉덩이를 들어올린 네 명의 나체의 여인들은 하나 같이 그곳을 적신 채였다.
이러고 내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흥분해 있었던 모양이다.
누가 생각해냈는지 모르지만 상을 줘야겠다.
난 네 개의 엉덩이 중 어떤 것을 먼저 시식할지 고민해보았다.
우리는 테이블을 마주하고 조금 어색하게 둘러앉아 있었다.
내 오른쪽으로 두 여자, 그리고 왼쪽으로 두 여자가 단정하게 앉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서로를 탐색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내가 먼저 말문을 열어야 할 것 같았다.
"이쪽은 지아. 방송국 프로듀서야."
난 조금 어색하게 지아를 소개했다.
오늘의 자리를 만들게 한 사람이니 그녀를 가장 먼저 소개해야 했다.
"반가워요. 지아에요. 오늘 두 분을 보고 싶다고 한 게 저예요."
지아는 조금도 불편하지 않은지 여유있게 인사를 했다.
"오빠랑은 언제부터 알던 사이에요?"
지아가 방송국 프로듀서라는 것 따위 전혀 중요하지 않은지, 지연은 지아와 나의 관계에 훨씬 더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음. 한 4년? 그정도 된 거 같아. 한때 서로 사랑하던 사이였지. 음... 내 생각이 맞다면."
지아가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맞아. 서로 사랑하는 사이."
지아는 과거형으로 말했지만, 난 굳이 그걸 과거로 한정하지 않았다.
적어도 지아가 날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고, 나도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그럼 첫사랑? 아냐... 그러기에는 아저씨 나이가 맞지 않아. 음... 여하튼 둘이 사귀던 사이라는 거죠? 지금처럼 막 이여자 저여자 건드리고 다니는 게 아니고?"
지연은 이번엔 날 바라보며 물었다.
딱히 분노나 질투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소년 만화의 탐정 캐릭터거 추리에 열중하고 있을 때의 표정이 떠오른다.
나와 지아 사이의 모든 관계를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맞아요. 둘이 사귀는 동안 영웅이 정말로 착실한 남자였지."
이번엔 은희가 끼어들었다.
그녀의 입가에 슬며시 그려진 미소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감정이 너무나도 역력했다.
그리고 난 그녀와 반대로 점점 이 자리가 부담이 되고 있었다.
왜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게 된 걸까?
지아가 소개시켜 달라고 할 때 좀 더 고민해 볼 것을...
"이쪽은 은희. 우린 오랜 친구 사이야."
이번엔 지아에게 오늘의 회합을 듣고 기어이 참여한 은희를 소개시켜주었다.
"반가워요. 난 여기 영웅이랑 10년 정도 알고 지낸 친구에요."
그녀는 지연과 수빈의 관심사가 오직 나와의 관계에 있음을 알아차렸다.
"흐음..."
지연은 심각한 눈으로 은희를 바라본다.
"10년도 넘었으면 첫사랑?"
지연이 다시 날 바라보며 물었다.
"음... 오래전부터 내가 좋아했던 것은 맞는데... 첫사랑인지는..."
"그럼 첫 사랑은 따로 있는 걸로."
지연이 가볍게 결론을 내렸고, 수빈이 동의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