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화 〉@34. 온천 이야기. 불순, 비도덕한 욕망이 휘몰아치던 밤에
남자는 뒤로 물러서는 아내의 다리를 붙잡을 기운도 없던 모양이다.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뿐이다.
"이건 아니야. 여기서 우리가 끝날 수는 없어."
반 팀장의 남편은 스스로의 변호를 포기하고 부들거리며 안간힘을 다해 아내에게 대들어보았다.
"아냐. 끝났어요. 이미. 만약에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차라리 날 때려요. 그냥 맞아줄게요. 그걸로도 화가 풀리지 않으면 날 죽여도 좋아.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그런 거 아냐. 절대로. 내가 어떻게 당신한테..."
남자는 반 팀장의 과격한 말에 가까스로 내었던 기운을 잃어버렸다.
"당신도 가서 옷 입어요. 지금은 서로 대화를 나눌 상태가 아니잖아요. 지혜씨 말대로 좋은 곳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당신 아직 건강하잖아."
반 팀장은 가운 사이로 불룩 튀어나온 남편의 아래를 응시하고 있었다.
정신적 충격은 컸어도, 욕망은 진실했던 모양이다.
우리가 난잡한 행위를 즐기는 내내 남자들의 그곳은 발기되어 있었다.
숫컷이란...
어쩔 수 없다. 어떤 이성도 본능을 이기지는 못한다.
반 팀장도 뒤로 물러섰다.
정 팀장이 벽에 붙은 인터폰을 눌렀다.
"네. 필요하신 게 있으신가요?"
인터폰에서는 바로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서울까지 가는 차편 좀 마련해주세요. 술을 마셔서 운전은 못 할 거 같아 그래요. 차는 한 대면 돼요."
"알겠습니다. 10분 뒤에 주차장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잠시 허망하게 앉아있던 남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정말로 끝이 났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아내를 바라보고 축 늘어져 방을 나섰다.
반 팀장과 정 팀장은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
물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나왔다.
그녀들은 방을 나가 남편들이 옷을 차려입고 나오는 것을 보고 이별을 고했다.
"당분간은 서로 떨어져있어요. 그리고 조금 안정이 되면 그때 서로 정리하도록 하죠. 당분간 은혜는 당신이 돌봐줘요. 미안해요. 여보."
반 팀장이 남편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며 딸의 이름을 거론했다.
"여보. 미안해요. 너무 힘들어하지 마. 이건... 가서 둘이 술이라도 한 잔 해. 오늘은 집에 가지 말고 신나게 놀고."
정 팀장은 자신의 카드를 남편에게 주었다.
남편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걸 받았다.
"유미는 내일 데리러 가고. 우리도 당분간 얼굴을 보지 않는 게 낫겠어요."
두 여자는 남자들이 힘없이 걸어 여관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흐윽!"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자 반 팀장은 그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허엉...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정 팀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반 팀장을 내려보았다.
반 팀장과 달리 그녀는 오래전부터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흐윽! 이게 대체... 허엉... 여보..."
반 팀장은 달랐다. 그녀는 나에 대한 호감과 남편에 대한 의리 사이에 고민하고 있었고 오늘 벌어진 일은 그야말로 사고였다.
그녀의 남편에 대한 애정은 자신의 목숨보다 남편의 목숨을 더 위할 정도로 진실했었다.
"잘 했어. 그렇게 매정하게 나가야 서로 정을 끊을 수 있지."
정 팀장은 반 팀장의 마음을 헤아렸다.
"흐어엉... 지혜씨... 나..."
반 팀장이 정 팀장에게 메달려 마구 흐느껴울었다.
"하아... 역시 불륜의 결말은 너무 찜찜해..."
나은도 조금은 편치 못한 모양이다.
"다들 나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즐거워한다면 뭐든지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잖아?"
하지만 그녀가 내린 결론은 너무 상식에 동떨어져 있었다.
"난 오빠를 정말 사랑해요. 그러니까 오빠가 즐거워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어요"
나은은 내 품에 안겨 뺨에 입을 맞춰왔다.
"그리고 오빠가 진짜 나쁜 남자라서 너무 다행이야."
내 귀에 그렇게 속삭이며 나은은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나쁜 남자의 의미가 예사롭지 않았다.
꼭 쓰레기의 순화된 표현 정도라 느껴지는 것은 아마 내 자격지심 때문이겠지?
"나도 네가 변태라 마음에 들어."
그리고 나은도 쓰레기라는 점에 있어서는 나에 못지 않다.
제법 잘 맞는 커플이다.
반 팀장은 한바탕 울고 나서 간신히 기력을 차렸다.
"영웅씨한텐 너무 미안해요. 이런 꼴 보여주면 안 되는데..."
"미안하기는요. 난 아주 즐거웠는데요."
반 팀장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해버렸다.
"들어가요. 우리. 가서 좀 쉬도록 하죠. 아니다. 차라리 온천에 갈까요? 어차피 내일이면 끝인데, 아깝잖아요?"
나은이 발랄하게 말했다.
"그럴까? 서희씨?"
정 팀장이 반 팀장을 구슬렀다.
"그래요. 정말 뜨거운 물에 몸이라도 담그고 싶어..."
"아! 진짜! 시끄러워! 꼴도 보기 싫다구!"
그때 도연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고개를 돌려보니 도연이 씩씩거리며 걸어오고 있었고, 그녀의 남자 친구가 쩔쩔매며 따라오고 있었다.
"왜? 무슨 일 있어?"
나은이 도연을 맞이하며 물었다.
"이씨! 쟤가 마사지 받으면서 발기해가지고! 진짜! 쪽팔려 죽겠어. 아가씨도 아니고 아줌마가 마사지 해주는데 거기가 서 있으면 진짜 내가 무슨 꼴이야!"
"풉!"
나은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정 팀장과 반 팀장은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기 위해 얼굴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
"마사지 받으면 그럴 수도 있어. 꼭 상대가 좋아서 그러는 건 아냐."
오직 남자인 나만이 그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도연의 남자 친구는 내게 고맙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변명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었다.
"아니긴 뭐가 아녜요. 마사지 받으면서도 막 이상한 소리나 질러대고."
도연은 쉽게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난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지만, 스파 클럽의 그 베테랑의 실력이 대단하다고 했었지?
마사지 받다가 신음이 튀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특히나 그렇게 잘 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남자 친구가 발기한 거야, 지금까지 도연이 그 남자와의 잠자리는 거부하면서 전화 따위로 괴롭히기만 했으니, 아마 지금쯤은 성욕이 끓어 넘칠 지경일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사타구니 마사지라도 한다면 발기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생리 현상이야. 네가 조금 이해를 해 줘야해."
난 도연을 타일러보았다.
"시끄러워욧! 그래놓고 어떻게 나한테 사랑한다 소리를 하냐구!"
도연은 잔뜩 열이 받아있었고, 남자 친구는 제대로 변명도 못한 모양이다.
"근데 아저씨들은요?"
"응? 아. 일이 있어서 먼저들 돌아가셨어."
부인들을 대신해 나은이 적당히 둘러대었다.
"그래요? 그럼 오빠도 가. 꼴보기 싫으니까 가버려."
도연은 뭔가 잘 됐다는 표정으로 남자 친구를 몰아붙였다.
"화 풀어. 여기까지 왔는데. 내일이면 돌아가는데, 마지막까지 즐겁게 보내자."
"하아... 진짜. 오빠만 아니었으면... 여기 초대해준 영웅 오빠 얼굴 봐서 그만한다. 담 부턴 진짜 조심해!"
도연도 정말 그를 보낼 생각은 아니었다.
그녀가 추구하는 쾌락을 위해서는 그 사내가 필요했다.
"잘 됐다. 너도 가자. 온천에 가서 몸 좀 담그로 오자."
나은이 웃으며 말했다.
"온천? 음. 아니. 나 지금 몸에 테라피 오일 발랐어. 안 들어가는 게 나을 거 같아. 다녀와 난 좀 쉬고 있을게."
"그럼 영민씨는 어쩔래요?"
"같다와. 나 혼자 쉬고 있을게. 근데 오늘은 너무 마시지는 마."
도연이 금세 화가 풀린듯 부드럽게 말했다.
"응. 그럴게."
도연의 남자 친구는 살았다는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도연은 내게 눈짓으로 그 남자에게 술을 먹이라 말하고 있었다.
다시 모두 함께 온천에 들어갔다.
이번엔 수영복을 입는 대신 다들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들어갔다.
수영복이 훨씬 더 야하다는 핑계였지만, 여자들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근데 영민씨 성격이 너무 좋다. 그런게 다 받아주고."
"그러게. 되게 마음이 넓어.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
정 팀장과 반 팀장은 연신 영민을 칭찬했다.
"아니에요. 도연이가 더 착해요. 가끔 장난으로 그러는 거예요."
속없는 영민은 여자 친구를 변호하기 바빴다.
하지만 난 도연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무척이나 이 남자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하 감옥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날, 그녀는 자신을 대신해서 남자 친구를 부르라는 요구를 거절했다.
차라리 자신이 고통받는 것을 택할 정도로 도연은 이 사내에게 진심으로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 이 남자도 그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이의 진심은 전해지기 마련이다.
"도연이가 말만 저러지 영민씨한테 잘 할 땐, 또 굉장히 잘 해요."
나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도연을 변호하고 있을 때,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아마도 죄책감인 모양이다.
나은은 자신의 요청으로 내가 도연을 취했다 생각하고 있었다.
"도연이 좋은 사람이에요. 정말로."
그 남자는 자신의 여인을 변호하느라 정신이 없어, 막상 도연의 술을 조심하라던 경고마저 잊고 있었다.
"벌써 취했네... 술이 많이 약한 모양이구나."
반 팀장도 정 팀장도 사케 한 병으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에 취해버린 그 남자의 모습에 꽤나 놀라버렸다.
"죄송합니다. 전 먼저..."
남자는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나 객실로 돌아가려다가 기운이 빠져, 온천 옆의 선 베드에 잠시 몸을 뉘었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럼 이제 다시 즐겨요. 우리."
방해자가 쓰러지자 가장 즐거워하는 사람은 나은이었다.
"뭐하세요들. 빨리 오라구요!"
물론 그 즐기는 주체는 자신이 아니라 나머지 셋이었다.
정 팀장이 쭈삣거리는 반 팀장을 끌고 내게 다가오는 동안 나은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리고 두 여자는 아까 다 채우지 못했던 욕망을 아주 실컷 채울 수 있었다.
"들어갑시다. 이제. 밖에서 자면 안 되죠."
"아? 예에..."
남자는 억지로 술기운을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객실로 향했다.
객실로 들어와 지금까지의 자극으로 한껏 달아오른 나은과 섹스를 했다.
얼마나 신이 나있던 것인지 그녀는 캐스팅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캐스팅되었을 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쾌락을 즐겼다.
"이제 가봐요. 도연이 기다리고 있겠다."
나은은 이제 다음 쾌락을 준비한다.
이 여자의 육욕도 한계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일어나 방을 나서려는데, 방문이 열리고 도연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아직 안 잤어?"
"잠이 안 와서요. 언니는 자요?"
"응. 막 잠들었어."
"그럼 오빠랑 놀아야겠다."
도연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달려들었다.
난 다시 도연의 욕망도 채워주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내게 안겨 잠이 들었다.
양쪽에 나은과 도연을 안고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동이 터오르는 새벽이다.
두 사람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일어나 방을 나섰다.
동틀 무렵의 정원을 산책하는 것은 꽤나 즐거웠다.
한동안 조용히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탁탁탁 짧고 가벼운 발걸음은 누군지 몸이 작은 사람이 달리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잠시 멈춰서서 기다리자, 저쪽에서 한 사람이 달려온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발랄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여자는 여관 주인의 두 딸 중 한 사람이다.
단발 머리에 목소리가 귀여웠던 소녀.
아직 근무 시간은 아니라 그런지 기모노 차림이 아닌 반바지와 셔츠 차림이다.
"벌써 일어났어요?"
"예. 원래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라서요. 아침이면 가볍게 달리기를 하는 것도 습관이고요."
"좋은 습관이네요. 참! 이름이 어떻게 되요?"
"레이나에요."
한국 사람치고는 특이한 이름이다.
귀화를 했다면서 이름은 원래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모양이다.
"이쁜 이름이네요."
"한글 이름으로 지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쓰던 이름이 익숙해서요."
"그럼 성은요?"
"일본에서는 미나모토씨를 썼어요. 그걸 한국말로 하니까 원씨가 되더라고요."
"그럼 전에는 미나모토 레이나, 지금은 원레이나? 기억하기 좋네요."
"그럼 꼭 기억해주세요."
단발 머리 소녀가 기쁜 듯 웃으며 말했다.
"이런 미인의 이름을 어떻게 잊겠어요?"
"진짜 바람둥이 같아. 큭!"
그녀의 웃음은 너무나 풋풋했다.
날로 씹어먹어도 하나도 비리지 않을 것 같았다.
"응? 내가 바람둥이라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문득 이곳 여자들이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