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화 〉@34. 온천 이야기. 불순, 비도덕한 욕망이 휘몰아치던 밤에
건물과 건물 사이는 다시 아기자기한 정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산책을 즐기기에도, 나무 사이에 숨어 이런저런 짓을 하기에도 괜찮아보였다.
"진짜 일본 료칸처럼 만들었다."
"그러게. 한국에서 이렇게 영업을 하는 곳도 있구나."
여자들은 벌써 흥분해서 각자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정원을 가로지르는 길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여자들이 그렇게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한참만에 건물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마도 메인 로비 쯤으로 사용되는 건물 앞에는 기모노를 입은 여자와 아마도 요리사의 복장이라 생각되는 흰색 옷을 입은 여자가 꽂꽂하게 서서 기다리다가 우리가 도착하자 허리를 깊게 숙이며 인사를 했다.
요리사 차림의 여인은 대략 이십 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고, 기모노를 입은 여인은 많아야 스물 정도. 지연과 비슷한 또래로 보인다.
"어서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영웅님."
두 사람 중 훨씬 어려보이는 기모노 차림의 여인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네 명의 남자 중에 바로 날 알아보았다.
"와아. 진짜 본격적이네. 일본 분위기 제대로 살렸다."
우리 일행중 가장 나이가 많은 반 팀장의 남편이 큰 소리로 감탄을 표시했다.
"그런데 한국 사람 맞아요?"
그리고 바로 기모노를 입은 여인에게 물었다.
"예. 얼마전에 귀화 절차가 전부 끝나 정식으로 한국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인은 기분 좋은 미소로 대답했다.
"그래요? 그럼 원래는 일본 사람?"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100% 한국인입니다."
"한국말 진짜 잘 한다. 한국 사람 해도 되는 거 맞네요."
부창부수랄까? 반 팀장도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다.
"이쪽 분도 그래요? 혹시?"
이번엔 요리사에게 물었다.
"맞스무... 맞스... 맞습니다. 이젠 한국인임... 입니다."
요리사쪽은 조금 서툴렀지만, 그래도 한국말로 소통하는데에 조금도 어려움이 없어보인다.
"대단하네. 이정도면 인정!"
반 팀장 부부 덕분에 여관을 들어서기 전에도 또 한 동안 시간이 지나고 말았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여관으로 들어선 일행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기모노를 입은 여자 셋이 마룻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다리다가 우리를 향해 절을 했기 때문이다.
일본 드라마 혹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장면을 이렇게 직접 목격하자 나도 살짝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건 좀 너무 본격적인데?
아주 고풍스러운 일본의 전통 여관을 찾아온 기분이었다.
"여관 조화(調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세 여자 중 가장 연륜이 있어보이는 여자가 상체를 들고 인사를 했다.
대략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아주 고혹적인 여성이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에 주연으로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만큼 매력적인 미인이다.
"환영합니다."
그녀의 양옆에 앉은 두 여자들이 발랄한 목소리로 합창하듯 인사를 한다.
둘 다 많으면 이십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밖에서 보았던 기모노를 입은 여자와 비슷한 또래.
이렇게 숙박 시설의 직원으로는 너무 어려지 않을까 싶었지만...
두 여자는 미인이라기보다는 귀여운 스타일이다.
그러고 보면 한 명은 일본 여자 특유의 덧니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혹시 세 분 모두 귀화했어요?"
반 팀장의 남편이 대뜸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저희 모두 귀화한 한국인입니다."
아마도 여관 주인 정도로 생각되는 그 고혹적인 여자가 대답했다.
"그러면 여기 일하는 사람들이 전부 일본에서 귀화한 거네요. 참 대단하다."
"그런데 아가씨는 몇 살이에요? 이런 일 하기는 너무 어리지 않아요? 고등학교나 다닐 나이 같은데?"
반 팀장이 두 여자 중에서도 더 어려보이는 여자에게 물었다.
"저희 모두 성인이에요. 그리고 대학교 대신 가업을 잇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녀가 똑 부러지는 말투로 대답했다.
"가업? 하지만 여기는 한국인데?"
"저희 집안은 원래 에치고에서 료칸... 아니 여관을 운영해 왔습니다. 하지만 저희 아이들이 한국을 너무 좋아해서, 아예 전부 한국으로 오기로 결정했지요."
여관 주인이 다시 말했다.
"아이들이라면..."
반 팀장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예. 제 여식들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관 주인이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세상에... 도대체 나이가 어떻게 되요?"
"여보! 예의가 없어. 진짜..."
반 팀장이 남편에게 핀잔을 주었고, 남편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턱을 긁었다.
"괜찮습니다. 전 올해 서른 둘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제가 나은 것은 아니지만 틀림없이 제 딸들이랍니다."
그제서야 당황하던 사람들이 모두 아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친딸은 아니고, 입양을 했거니 생각한 것이다.
"참. 너무 오래 시간을 끌었네요. 우선 방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여자 주인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두 딸들이 뒤를 따랐다.
"방을 네 개 준비했습니다. 이쪽은 반서희 고객님 내외분이..."
여관 주인이 직접 우리들을 인도해서 각각의 방을 알려주었다.
다섯 개의 객실이 한 건물에 모여 있었고, 그중 가장 바깥 방에는 반 팀장 부부가, 다음은 정 팀장 부부, 그리고 나와 나은의 방, 마지막이 도연 커플의 방이다.
물론 전부 내가 지시한 대로였다.
"방이 멋지내요."
나은은 우리가 배정 받은 방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침대는 없고, 다다미가 깔린 전통적인 일본식 방이다.
이 방 뿐 아니라 여관 전체가 일본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난 어째서 이런 장소가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온천물은 성인물에서도 제법 인기있는 장르였고, 그런 영상을 연출하기 위한 일종의 세트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옷부터 갈아입고 나가자고."
여관 주인이 옷을 갈아입고 로비로 모이면 온천으로 안내해준다 했었다.
한 여름에 온천이라니 그렇지 않아도 더운 날씨에 고역이겠다 생각을 하며 방안에 비치된 온천 전용의 가운을 입고 방을 나섰다.
로비에는 벌써 세 커플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다들 얼굴이 밝다.
한 여름의 온천이라지만, 여행을 온 것 만으로 신이 나는 모양이다.
그것도 너무나 이국적이고 고급스러운 장소라 마음이 들뜬 것이 보인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
이번엔 여관 주인 대신 두 딸이 우리를 안내했다.
나무 바닥으로 된 복도를 지나 한동안 걸어가자 저 멀리서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남성분들은 이쪽으로, 그리고 여성분들은 이리로 들어가시면 되요. 샤워를 하시고 들어가신 곳 반대 방향에 야외 온천이 있습니다."
목욕탕처럼 남탕 여탕으로 나뉜 입구에서 모든 커플들이 갈라졌다.
"응? 일본식이라 혼탕인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보네."
이번에도 반 팀장의 남편이었다.
"진짜! 무슨 생각을 한 거예요? 누구 벗은 걸 보고 싶어서 그래요?"
반 팀장이 다시 핀잔을 했다.
"아. 당신도 그랬잖아. 남녀 혼탕일 줄 모른다고. 혼탕이라도 뭐 다들 수건으로 가리고 있으면 되지."
이번엔 남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진짜. 그만해요. 창피하게."
반 팀장은 정말로 얼굴이 빨개졌다.
그런데 왜 날 슬쩍 훔쳐보는 걸까?
"야. 시원하네."
남탕에 들어와서도 반 팀장의 남편은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일행 중에 가장 나이가 많다보니 어째서인지 분위기를 주도해야 한다는 책임감이라도 느끼는 모양이다.
"그러네요. 냉방을 아주 잔뜩 틀어놨어요. 그런데 손님이 우리 뿐이면 이거 시설비며 관리비 만으로도 남는 게 없겠어요."
정 팀장의 남편은 와이프에 비해 연하여서 나와 거의 비슷한 또래였다.
"그죠? 근데 요모조모 보통 신경써서 만든 곳이 아니야. 여기 돈주고 오면 무지 비싸겠다. 영웅씨 여기 얼마라고 합니까?"
"뭐. 100만 원은 넘어야 한다더군요."
"히야... 그러면 네 커플에 이틀이면 800만 원이네. 어후... 이거 해외 여행보다 비싸잖아?"
"평생 이런 곳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영웅씨 덕분에 호사합니다."
조용한 것 같다가도, 칭찬이나 감사 표시할 때면 절대 빠지지 않는 도연의 남자 친구였다.
"그러게. 내 언제 술이라도 한 번 사지요."
"그러면 저도 좋지요."
우리는 그렇게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이쪽인가 봐요."
"그러네. 가봅시다."
남자들도 제법 신이 난 모양이다.
모두들 벌거벗은 채로 수건을 허리에 둘러 그곳만 살짝 가리고 욕실을 벗어나 밖으로 나갔다.
"우와! 죽인다."
"멋지네."
양외 온천이라서 더우면 어떻게하나 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온천의 바로 옆에는 계곡을 따라 흐르던 물이 폭포처럼 떨어지며 물안개를 만들고 있었는데, 물이 보통 시원한 것이 아니라 살짝 냉기까지 느껴졌다.
벌거벗고 거기 서있으면 한여름이라도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만큼 서늘했다.
"좋네. 이거."
반 팀장의 남편이 바로 떨어지고 있는 물줄기 안으로 들어가 폭포 샤워를 한다.
"그러네요. 아주 시원합니다."
정 팀장의 남편도 폭포 아래로 들어갔다.
도연의 남자 친구도 참을 수 없던지 따라 갔고, 나도 그 시원한 물을 맞아보았다.
5,6m 위에서 떨어지는 차가운 물줄기는 누구에게도 참기 어려운 유혹에 빠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 있지는 못했다.
잠깐 동안 물을 맞고 있는 것 만으로도 뼈까지 냉기가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계곡물줄기라고 하지만 너무 차가운 거 아니야?
꼭 얼음물을 위에서 쏟아붔는 것 같았다.
"워. 춥다. 빨리 물속에 들어가야겠네."
남자들은 겨우 1분을 버티지 못하고 폭포를 떠나 온천으로 들어가버렸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난 그렇게까지 춥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시원했다. 좀 더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잠깐 동안 물줄기를 맞다가 나도 온천으로 들어갔다.
서로 그다지 친하지는 않은 남자들은 조금씩 거리를 두고 앉아 온천을 즐겼다.
"와! 근데 영웅씨 진짜 대단하네. 어떻게 그렇게 커요?"
갑자기 반 팀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게. 한국 사람 맞아요? 무슨... 코끼리 한 마리 달린줄 알았네."
정 팀장도 한 마디 했다.
나이는 나와 비슷한데 결혼 생활이 몇 년이나 되다보니 조금은 아저씨 다운 구석이 있다.
"진짜 대단하십니다. 아니. 인품만 좋은 게 아니라, 남자로서도 훌륭하신 분이었네요."
도연의 남자 친구도 끼어들었다.
아니. 꼭 그런 것까지 칭찬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할 필요는 없잖아?
"하하... 뭐."
내가 따먹은 여자들의 남자들이 날 칭찬하고 있었다.
아무리 뻔뻔스러운 나라도 이건 좀 쑥스럽고, 미안하다.
"무슨 흑인 보는 줄 알았네."
"흑인도 저정도는 아닐 거예요."
"여자들이 어지간히 좋아하겠다."
"그럼요. 영웅씨 회사에서 인기가 꽤 많아요."
아니. 그만들 하라고요.
점점 더 미안해지게시리...
물론 나쁜 마음을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막상 내게 자신의 소중한 것을 빼앗긴 남자들이 그렇게 속도 없이...
아마 태어나서 가장 민망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야. 좋다. 어쩜 이렇게 잘 꾸며 놨어?"
그때 저쪽에서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여탕이 바로 옆인가 보네?"
"목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바로 붙어있나 봐요."
"꺄악!"
그리고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 날카로운 소리의 주인공은 도연이었다.
"엄마야!"
이번엔 정 팀장이다.
"여보!"
반 팀장은 반사적으로 남편을 불렀다.
"아니. 거기서 왜 나와요?"
반 팀장의 남편이 저쪽에 나타난 네 여인을 보고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 순간 그 남자의 얼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응큼했다.
"엄마야! 진짜... 왜 남자 여자가 같이 있는 건데!"
도연은 아직도 주저앉아 울먹이고 있었다.
내게 하는 짓을 보면 세상에 부끄러울 것 없어보이던 여자였지만, 다른 남자들과 함께 하는 온천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괜찮아. 수건 두르면 되잖아."
여자들 중에는 나은이 가장 대범했다.
그녀는 잠깐 패닉에 빠진 도연을 추스리기 바빴다.
"그지만... 벌써 다들 봤단 말야..."
도연이 울먹이며 말했다.
수건으로 가슴과 아래를 가린 사람은 나은 한 사람 뿐이었고, 나머지 여자들은 여탕이라 방심하고 수건을 그냥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남편들은 전부 횡재했다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