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9화 〉@32. 남자에 면역이 없는 여대생은 나쁜 남자에게 빠지고 말았다. (239/377)



〈 239화 〉@32. 남자에 면역이 없는 여대생은 나쁜 남자에게 빠지고 말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보기에 그런 것이고, 취향에 따라 충분히 나뉠 수준이다.



같은 미인이라고 하지만 수빈과는 조금 궤를 달리한다.

뭐랄까 꽤 청초한 미인이다.

그녀는 무척이나 가냘픈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마른 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얼굴에서도 어딘지 연약하면서도 보호해주고픈 감정을 들게 하는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수빈이 전형적으로 한 여름의 장미처럼 압도적으로 화려한 미모를 지닌 미인이라고 한다면, 이 여자는 그보다는 눈 속에 딱 한 송이만 피어있는 수선화 같았다.

언제 떨어져도 이상할 것 없는,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보호해주고 싶은 감정이 솟구치게 한다.



"나한테 줄 게 있다고요?"

"네. 어제 들어왔는데, 선생님 생각 나서  온 게 있어서요."
그녀는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은희에게 주었다.


팔찌였다.

귀금속이 들어있는 그런 고급스러운 팔찌는 아니고, 형형색색의 끈에 섬세한 조각이 새겨진 돌이 여러개 꿰여있는 에스닉한 팔찌였다.

비싼 물건 같지는 않았지만, 꽤 화려했고, 어쩐지 은희에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아마 진심으로 상대를 생각하고 골라왔다는 느낌이 드는 팔찌였다.

아마도 은희와는 꽤 친한 모양이다.


"세상에. 이쁘기도 해라. 근데 오랜만에 다녀왔는데,  생각해줄 여유까지 있었어요? 진짜 고마워. 웅! 이뻐라."
은희는 그녀가 꺼내준 팔찌를 손에 차고, 그녀를 안고 토닥토닥해주었다.


은희도 그녀를 무척 이뻐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유진은 조금 부끄러워하는 표정으로 은희에게 안겨 있었다.


"그럼 저 가볼게요."
용건은 그것뿐이었던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지말고 조금만 있다 가요. 그렇게 가버리면 너무 서운하잖아. 음. 딱  잔만 마시고 가. 저기 건너편에 앉은 남자 좀 위험한 사람이니까 너무 오래 앉아있으면 안 되고."


"네? 아. 예..."
은희의 말에 살짝 놀라는 그녀는 웃고 있는 은희의 얼굴에 농담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살짝 웃음며 대답했다.


"잠깐만. 여기 잔 주세요."
은희가 잔과 술을  시켰다.

여자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그 여자 꽤나 내 취향이다.

어쩐지 놓치기 아쉽다.

하지만 은희의 태도를 보니, 오늘  자리에서 보내고 나면 아마도 다시는 그녀를 만나게 해줄 것 같지 않았다.

음. 안 되겠다.

난 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려 카드를 찢었다.


이번에는 그동안 아끼던 캐스팅 카드 < 수동적인 주인공 >이다.


어쩐지 평범한 방법으로는 그녀를 손에 넣기 쉬울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왠지 가냘프고, 자신 없어보이는 그녀가 내게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보인다면, 은희가 의심할 거 같았다.


겨우  장 뿐인 < 수동적인 주인공 > 이지만, 이 여자에게는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그만큼  취향이었다.




"어땠어요? 재미있었어?"
은희가 그녀에게 물었다.


"예. 오랜만에 가는 거라..."
그녀는 무척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나와 눈을 잘 마주치지 않으려는 모습은 내가 무섭다거나 해서라기보다, 은희의 말처럼 남자에 면역이 없기 때문이 맞는 듯 하다.


한동안 은희는 유진의 여행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듣고만 있어도 유진에 대한 몇 가지 정도를 얻을 수 있었다.

그녀가 이번에 가족과 함께 유럽 여행을 다녀왔고, 그녀에게 오빠와 부모님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유진은 지금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3학년인 모양이다.


그리고 어쩐지 유진은 자신의 오빠를 조금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그녀들이 대화를 하는 동안 유진은 때때로 내게 눈길을 주었다.

조금전과 달리 두려움이 담긴 눈길은 아닌 것을 보면 캐스팅 카드 때문이다.


"우리 유진씨 엄청 이쁘지?"
은희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내게 미안한지 한 마디 했다.



"응. 내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 제일 미인이신 거 같아."

"그지? 음... 아냐. 너 하지마. 유진씨  남자 신경쓰지마. 알았지?"
은희는 여전히 나에 대해 경각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네? 네에..."
유진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 친구가 나쁜 인간은 아닌데. 또 좋은 남자는 아니거든. 여자가 쟤랑 얽혀서 좋을 거 하나도 없어."

그런데 얘가 왜 이러는 거지? 내가 무슨 여자 잡아먹는...


아니다. 은희가 정상이다.

그녀는 늘 눈치가 빠르다.

"하긴 유진씨는 걱정 없다. 워낙 남자에 관심없으니까. 지금까지 남자 친구는  번도 사겨본 적 없잖아."

"네..."
유진이 아주 작게 대답했다.

그런데 어쩐지 지금까지와 달리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있었다.

다시 은희와 유진은 그녀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은희는 정말로 나와 유진이 친해지는 것이 마땅치 않은 모양이다.


굳이 은희의 기분을 건들고 싶지는 않아, 난 조용히 그녀들의 대화를 들으며 홀로 잔을 비웠다.

"근데 뭐 하시는 분이세요?"
하지만 은희의 의도와 상관없이 유진이 나에 대해 은희에게 물어보았다.


"응? 평범하게 회사 다니고... 음. 맞다! 사진 잘 찍어. 우리 원장님들 사진 봤지? 그 이쁘게 나온 최근 것들. 저 친구가 찍어준 거야."

"아아..."
유진이 처음으로 밝은 표정을 지으며 감탄을 했다.
하지만 그 밝은 표정은 금세 씻은  사라져버렸다.

< 수동적 주인공 >으로 캐스팅 상태여서일까?

난 그녀가 때때로 날 바라보는 눈길에서 무언가를 느꼈지만, 그녀는 좀처럼 그 긴장한 표정을 풀지 못했다.




"혹시 너 유진이한테 궁금한 거 있어?"
얼굴이 빨개진 은희가 물었다.
계속 나만 빼놓고 둘이서 대화를 하고 있으니, 미안한 모양이다.


"유진이한테는 말 걸지 말고 나한테 해. 내가 대답해줄게. 음... 기분이 좋은데? 네 말대로 술기운도 잘 돌고, 기분도  올라간다. 히히..."
그리고 은희는 벌써 취기가 잔뜩 올라 있었다.

그때부터인가 그녀는 횡설수설한다.

"미안. 내가 오늘 기분이 좋아서. 제일 좋아하는 친구거든."
유진에게 사과를 하고.


"너 진짜 우리 유진이는 찝쩍대면 안 돼. 흐응... 진짜 취한다. 어쩌지? 이러면 안 되는데..."
내게는 경고를 한다.


"흐응... 영웅아. 나 취한 거 같아.니가 책임져."
그리고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어떻게 해!"
유진은 깜짝 놀라 어쩔줄 몰라한다.

"괜찮아요. 집에 데려다 놓으면 되니까. 술에 취한 거야 푹 자고 나면 그만이지."

"그렇기는 한데."
너무 착한 여자 같다.


"근데 술은 별로 안 좋아하는 모양이에요?"


"그게 아니라... 사실은 남자 앞에서 제가 조금..."
유진이 자신 앞에 놓인 술잔을 들고 쭈뼛거렸다.

"그러면 억지로 안 마셔도 돼요."

"아뇨. 괜찮아요. 오빠... 저기... 오빠... 오빠라고 해도 되요?"


"그럼. 나야 좋지."
부담 없이 말을 놓았다.

"네에..."
그녀는 내가 편하게 말을 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오빠는 왠지 다른 사람이랑 틀려서..."
유진은 눈에 띄게 내게 호감을 드러냈다.


물론 오늘 처음 본 그녀가 내게 그럴 이유는 오직 하나 뿐이다.

캐스팅 카드 < 수동적 주인공 > 때문이다.
- 캐스팅된 배우는 AV 마스터에게 호감을 지니고, 관계를 맺고싶어합니다.
- 소극적 성격이기 때문에 먼저 다가서지는 못하지만, AV 마스터가 손을 내밀면 언제라도 관계에 응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이게 있으면 여자를 손에 넣기 위해 힘든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저 술 못 먹지 않아요."
유진이 또 수줍게 웃으며 술잔을 비웠다.

"근데 오빠... 은희 언니랑 사귀시는  아니죠?"
그녀가 조금 머뭇거리며 물었다.

"응. 은희 남자 친구 있는 거 알지?"


"네."
그녀의 얼굴에 다행이라는 표정이 깃들었다.


너무 귀여웠다.

몇 장 되지 않는 < 수동적 주인공 >을 사용한 보람이 있다.


우리는 은희가 깨어있을 때와는 달리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셨다.


"남자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혹시 그런 성향인 걸까?
 상관은 없지만, 알아둘 필요는 있지.


"안 좋아하는 게 아니라... 조금 무서워서... 여자 학교만 다녀서... 지금도 여대에 다니고..."
확실히 기가 약한 편인 모양이다.

"저도 노력은  봤는데...  안 되고..."
딱히 여자를 좋아하는 그런 성향은 아닌 모양이다.



"오빠는 굉장히 좋은 사람 같아요."
유진이 또 그 수줍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아냐. 나 좋은 사람 절대 아냐. 은희 말이 맞아."

"아닌데... 좋은 사람 맞는데..."
그건 이따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그런데 이제 일어날까?"


"지금요?"
유진이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우선 은희 집에 데려 놓아야지."

"아! 맞다... 오빠.  은희 언니네  가본  있어요."
쓰러진 은희가 걱정되어서라기 보다, 헤어지는 것이 싫은 모양이다.

"잘됐네. 그런 안내 좀 부탁할게."
난 은희를 업고 유진의 뒤를 따라갔다.

물론 나도 그녀의 집을 모르지는 않지만, 지금은 유진과 함께  집에  핑계가 필요했다.

은희가 살고 있는 집은 그녀의 학원에서 걸어서 겨우 10분 거리에 있었다.



"무겁지 않으세요?"
중간중간 유진이 뒤를 돌아보고 걱정스래 물어왔다.

"남는게 힘뿐이라."
체력은 정말 남아돈다. 근력도 좋아진  같다.


"그리고 이녀석 정말 가벼워서 부담도 안 되고."

"힘이 세구나. 남자는..."

은희가 사는 빌라에 도착해서, 그녀의 엄지 손가락으로 도어락을 열었다.


은희의 몸을 침대 위에 올려 놓았더니, 유진이 수고했다며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뚜껑을  내게 건네주었다.


"몇 번 와봐서 좀 알아요."
유진 말로는 꽤 친한 사이라고 했다.


원래는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을 통해 은희의 학원에 다니게 되었는데, 제법 마음이 잘 맞았던 모양이다.


"가끔 언니들하고 여기 모여서 파티 같이 즐겼어요."
유진은 학원 강사들 전부와 친분이 있는 모양이다.


은희의 집에 들어온 뒤로 유진은 마음이 풀렸는지, 재잘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아마 나에 대한 거부감이 완전히 사라진 모양이다.

"원래는 그렇게 밝은 성격이었구나?"

"네? 아... 남자가 앞에 있으면 좀... 그지만 친구들이랑 있으면 안 그래요."
하지만 여전히 작은 목소리는 어쩌질 못한다.

"이렇게 다른 남자랑 편하게 이야기 한 거, 우리 오빠 말고는 처음이에요."

"다행이네. 계속 그랬으면 언제까지고 남자 친구는  사겼을 거 아냐?"

"아니. 남자 친구는 딱히... 아니. 오빠가 싫다는 건 아니고... 아니! 그게 아니고... 히잉..."
유진은 허둥대며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고 혼란에 빠져버렸다.


"그럼 나한테는 관심이 있다는 거고?"

"아! 아니. 없는  아니고... 어떻게 해..."
남자에게 면역이 하나도 없다는 그녀가 그렇게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너무 귀여워 어쩔줄 모르겠다.


"이리로 와볼래?"
혼란에 빠진 유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네에..."
그녀는 내 손을 잡지는 못하고 다가와서 내 옆에 앉았다.


"아까 은희가 했던  기억나?"


"무슨 말이요?"

"위험한 남자니까 가까이 하지 말라고 경고 했잖아."

"그건 농담이고..."


"아니. 진짠데?"
난 그녀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렇게 보고 있으니까...  무서워요."
유진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정말로 나쁜 사람이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도망가도 괜찮아."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에 살며시 얹었다.


"하지만..."
유진의 눈이 떨리고 있었다.

"지금 도망가지 않으면, 유진이한테 아주 나쁜 짓을 할 건데. 괜찮아?"


"무... 무슨 나쁜짓이요?"


 유진의 머리를 잡은 채 내게로 끌어당겼다.


유진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이  입술에 닿았고, 유진은 눈을 감았다.


내 혀가 유진의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내게 도망가려하지 않았다.


첫 키스는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달콤했다.



"저...저기..."
서로의 얼굴이 떨어지고, 유진은 여전히 떨고 있었다.


"나... 이런 거..."
어쩐지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싫어?"


그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게 아니고... 오늘 처음 만나고..."


"키스 처음이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것도 처음이겠네?"
난 고개를 내려 그녀의 몸을 바라보았다.

"네에..."
유진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도망 안 갈 거지?"

"네..."
유진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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