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화 〉@31. 7개의 미션. - 서울 시내에 출몰하는 G컵 변태
지정된 장소에 도착한 이슬은 초조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며, 자신을 불러낸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그곳엔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걸까?
"어? 이슬씨. 여기서 만나기로 한 모양이네요?"
그때 다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남자였다.
설마 이사람?
"중요한 약속인 거 같으니 방해 안 할게요. 그럼 내일 봐요."
하지만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스쳐지나갔다.
이슬의 눈은 그 남자의 뒷모습을 쫓았다.
그리고 저기 지하철 역 앞에서 어떤 여자가 그를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꽤 미인이었다.
나이는 그 남자 또래. 키도 늘씬하고 몸매도 좋다.
애인인가?
흠. 확실히 좋은 남자는 아니야.
이슬은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남자에 대한 것들을 머리에 떠올렸다.
두 남녀는 사이좋게 택시를 잡고 올라탔다.
아무래도 그 남자는 아닌 모양이다.
그럼 도대체 누구인 거야?
택시가 출발하고, 이슬은 다시 자신이 당면한 위기에 눈을 돌렸다.
띠링~
초조하게 주위를 돌아보고 있는데,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람이 들려왔다.
이슬은 스마트폰을 켜고 방금 온 메일을 확인해본다.
발신인 BlackMailList
첫 번째 미션 클리어.
★을 획득했습니다.
7개의 ★을 모두 획득하실 때까지 힘을 내 보세요.
두 번째 미션
바로 앞의 자전거를 빌려타고 지정한 장소에 5시 55분까지 도착할 것.
목적지를 확인하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뭘 하자는 거지?"
이슬은 불쾌한 얼굴로 메일 하단의 링크를 눌렀다.
그러자 포탈 사이트의 지도 페이지가 뜬다.
지도 위에는 지금 있는 장소에서 목적지까지의 경로가 표시되어있다.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이슬이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녀는 지금 협박 받고 있었다.
이슬은 다시 한 시간 전 쯤 받은 첫 번째 메일을 띄웠다.
발신인 BlackMailList
깜짝 놀랄만한 것들을 준비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셨으면 좋겠네요.
메일의 내용은 별 게 없었다.
하지만 첨부된 사진들을 보는 순간 이슬은 가슴이 터져나가는 줄 알았다.
처음 몇 장의 사진은 그녀가 권 이사와 함께 모텔을 드나드는 사진들.
그리고 다음 몇 장은 자동차에서 키스를 하고 있는 장면들.
하지만 정작 놀랄 것은 그 다음 사진이었다.
이슬의 통장 거래 내역이 찍혀있는 사진들.
'어떤 놈이야? 미쳤어?'
이슬은 당장이라도 욕설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뭐야? 이걸 왜? 아니. 어떻게 남의 통장을... 아니. 왜 이걸 내게 보낸 거야?'
추측은 어렵지 않았다.
당장 보내는 사람 이름에 협박이라 쓰여있지 않은가?
이슬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좆됐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그랬다.
권 이사의 부인이 이 사진을 보면 어떻게 나올까.
회사 사람들이 권 이사와 자신의 관계를 알아차리면 어떻게 될까.
하는 문제들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였다.
그녀의 통장 거래내역에는 그녀가 결코 밝힐 수 없는 기록들이 적혀있었다.
협박이다...
어떻게 하지?
그런데 왜 정작 협박의 내용은 없을까?
근 한 시간 동안 그녀는 전전긍긍했다.
틀림없이 다시 연락을 해 오겠지.
어쩌지?
다시 연락이 와서 무얼 요구할까?
그리고 다시 두 번째 메일이 온 것은 지금부터 10분 전 쯤의 일이다.
발신인 BlackMailList
지정한 미션을 완료하세요.
미션을 하나 완료할 때마다 ★을 획득합니다.
모두 7개의 ★을 획득하면 거액의 상금과 함께 당신에 대한 모든 정보를 삭제하겠습니다.
만일 미션 수행을 거절하거나 실패한다면, 본 정보는 관련된 모든 주변 인물에게 발송될 것입니다.
첫 번째 미션 지정된 장소로 5시 24분까지 도착할 것.
그게 바로 지금부터 대략 10분 쯤 전에 받은 두 번째 메일이다.
이슬은 정신없이 회사를 나서 지정된 장소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그녀에게 거부권 따위는 없었다.
권 이사와 모텔을 드나드는 사진이야 그렇다쳐도, 자신의 통장 거래 내역은 곤란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푼돈 때문에 전과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세 번째 메일에서는 다시 다른 장소로 이동하라고 한다.
뭘 하자는 거지?
이 빌어먹을 자식은 날 가지고 놀려는 건가?
그랬다.
가지고 놀려는 것이다.
그것도 그녀가 저항할 수 없는 약점을 잡고서.
"씨발..."
이슬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녀는 황급하게 자전거를 빌렸다.
남은 시간 30분.
거리는 대략 6km정도라고 나온다.
지도상으로는 자전거로 20분 거리라고 하지만, 과연 충분할지는 모르겠다.
"개새끼. 잡히기만 해봐라."
물론 그 협박범을 바로 눈 앞에 마주한다고 해도 그녀로서 어찌할 도리는 없지만, 그 정체 모를 상대에 대한 분노가 터져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슬은 자전거에 올라탔다.
하필이면 오늘 이렇게 짧은 치마를 입고 온 것이 후회가 된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어쩐지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걸 신경쓸 여력은 없다.
정말로 약속 시간 내로 도착하지 않는다면, 그 자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다.
이슬은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7월도 다 지나가고 있는 한여름이었다.
오후 늦은 시간이지만 아직 해는 떠 있었고, 자전거를 타기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 땀이 나기 시작했다.
"씨발..."
이슬은 당장이라도 자전거를 던져버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슬은 몸이 땀으로 젖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개새끼. 잡히기만 해봐라."
누구인지 모를 상대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그녀는 페달을 밟는다.
그나마 빠르게 달리고 있으면, 스쳐가는 바람에 조금은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벌써부터 다리가 아파온다.
이 한 여름에 자전거라니...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지?
진이슬은 생각했다.
자신의 삶이 어디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걸까?
아마도 권 이사가 새로 영입되어 회사에 들어오면서부터일 것이다.
처음엔 그런 남자인지 몰랐다.
무척이나 젠틀한 사람이었다.
중년의 남자치고는 꼰대 기질도 없었다.
고, 한참 직위가 낮고 스무 살도 더 어린 자신에게 회사 사정을 물어볼 때에도
팀에서의 평가도 좋았다.
믿을만한 상사라는 평이 많았다.
나이가 조금만 젊었어도 반했을 거라는 농담을 하는 여직원도 있었다.
이슬도 그런 여자중의 하나였다.
물론 그렇게 나이 차이가 나는 남자를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때로 그 남자가 자신의 가슴을 슬쩍 슬쩍 쳐다보는 것은 알고 있었다.
딱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뭇 남자들이 그녀의 가슴에 눈길을 주는 것에 익숙했으니까.
그리고 사건이 일어났다.
권 이사가 부임하고 첫 번째 회식 자리에서였다.
그날따라 이슬은 평소보다 많이 마셨다.
어쩐지 권 이사가 술자리의 분위기를 그렇게 유도했던 것도 같다.
대부분 그렇게 취했고, 이슬은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이슬은 권 이사가 자신의 몸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알아차리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틀림없이 권 이사가 정신을 잃은 자신을 겁탈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반항을 할 수는 없었다.
두려웠다.
생각보다 많은 여자들이 이런 상황에서 용기를 내지 못한다.
반항은 커녕 그저 그 끔찍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게 전부였다.
아침이 되면 경찰서로 가서 고소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침이 되어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권 이사는 자신이 그를 유혹하는 몸짓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슬은 술에 취했을 때, 자신이 어떻게 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주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사건이 해결 될 때까지 그녀의 삶은 멈춰버리겠지.
만일 승리한다고 해도 그녀의 삶이 지금보다 나아지지는 못할 것이다.
이슬은 경찰서로 가는 것을 포기했다.
권 이사는 처음부터 일이 그리 될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음날 저녁 그녀를 다시 불렀고, 두 사람은 다시 잠자리를 함께 했다.
그렇게 이슬은 나이 많은 남자의 정부가 되어버렸다.
딱히 나쁘지만은 않았다.
회사에서 두 사람 사이를 밝힐 수야 없었지만, 권 이사는 티나지 않게 이슬을 편애했다.
회사 생활이 편해졌다.
때로 권 이사는 작은 선물을 주고는 했다.
다음달부터 그녀의 실질적인 급여가 훌쩍 뛰어올랐다.
상여금도 눈에 띄게 차이가 났다.
자금을 담당하는 사람이 바로 권 이사였고, 직원들의 급여를 정산하는 사람이 이슬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범한 중소 기업의 평직원인 이슬에게는 충분히 고마워할만한 배려였다.
물론 그녀도 권 이사가 회사 자금에 조금 손을 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때마다 이슬도 약간의 이익을 얻었다.
상부상조.
그리고 이슬은 권 이사가 자신을 그렇게 한 것이 어쩌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을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아마도 거의 그러할 것이다.
물론 이슬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있었다.
굉장한 미인은 아니지만,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는 누구라도 탐을 낼만한 것이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이슬도 지금의 관계에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어차피 남자가 다 그렇다 생각했다.
몇 번은 남자에게 데어본 경험이 있던 그녀였다.
딱히 결혼에 대한 욕구도 크지 않았다.
권 이사는 생각했던 것처럼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사귀기에 나쁜 남자도 아니었다.
적어도 줄 건 주고, 받을 것은 받아가는 사람이다.
돈 계산이 빠른 이슬로서는 그 남자처럼 깨끗한 쪽이 좋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조금 거슬리는 사람이 생겼다.
같은 회사의 정 팀장이다.
이슬과 함께 회사에서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세 여자 중 한 사람.
이슬은 권 이사가 그 여자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권 이사가 자신의 가슴에 꽤나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둘이 잠자리를 할 때면, 대부분 그 가슴에 탐닉해 있었다.
권 이사가 정 팀장에게 눈을 돌린다는 것을 확신한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이슬은 이제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비록 그 남자와 결혼할 생각은 없지만, 그가 필요했다.
그 남자가 지닌 권력이 아니라, 그 능글맞은 남자가 이슬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째서 그랬는지는 이슬도 모른다.
소위 말하는 몸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남자 꽤나 매력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 권 이사에게 다른 여자가 생기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저질렀다.
같은 회사 주은이라는 여직원에게 정 팀장의 사무실에서 야한 소리를 들었다는 소리를 듣고부터였다.
그녀는 정 팀장의 약점을 잡아낼 생각을 했다.
응? 혹시 그때문인가?
어쩐지 그녀가 의심스럽다.
아니.
아까 그 남자.
혹시 그 남자가 아닐까?
이제는 같은 팀에서 일하게 된 그 사람이 제일 의심스럽다.
하필이면 내가 회사를 나올 때에도 마주쳤다.
만약 그 남자라면?
이슬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갔다.
반드시.
이 수모에 대해서는 꼭 갚아주겠어.
하지만 이슬은 여전히 확신할 수 없었다.
그 남자가 범인일 가능성보다 아닐 가능성이 훨씬 커보였다.
그 남자는 아까 굉장히 이쁜 여자와 즐겁게 웃으며 어디론가 갔다.
아무래도 이런 짓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시간을 확인하니 지정한 시간보다 몇 분 정도 빨리 도착했다.
이슬은 주위를 살펴본다.
그 남자가 근처에 있는 걸까?
그런데 그 자리에서 나보다 빨리 여기 도착할 수 있는 걸까?
차를 타고 왔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그런데 어디있는 거야?
그때 다시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왔다.
이슬은 입술을 깨물고 스마트폰을 켜고 메일을 확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