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화 〉@30. 지연이의 선물 - 여대생 전라 풀파티
여대생들은 각자 수영장 주위를 돌아다니며 벗어던졌던 수영복을 찾았고, 이날 하루 놀며 어지럽힌 자취를 정리했다.
굳이 깨끗하게 치울 것 까지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들은 모든 흔적을 지우고 싶기라도 한 건지, 퓌페 테이블의 남은 음식들을 제외하고는 처음 수영장에 들어왔을 때처럼 깨끗하고 가지런히 만들고 나서야 정리를 멈추었다.
"와. 재미있었다."
"그래. 또 이런데 언제 와보나."
여자들은 다시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조금전 사태를 거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영장을 정리한 여자들은 하나둘씩 샤워실로 들어갔다.
이제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끝나고 있었다.
섹스가 끝나고, 샤워를 하고 온 수빈은 내 팔을 베고 누워있다가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오늘 하루 많이 움직였고, 섹스도 많이 했다.
캐스팅을 하지 않은 그녀에게 액티브 카드 < 회복 >을 사용할 수 없으니, 피로를 풀어줄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기프트 카드로 받은 < 회복약 >이 있으니 그걸로 피로를 풀어줄 수 있지만, 수빈에게 그런 걸 쓰면 또 빌미를 줄 뿐이다.
그리고 난 그렇게 잠이 들어있는 수빈을 바라보는 것이 즐겁다.
쌔근쌔근 숨을 내뱉으며 잠이 든 그녀는 더없이 귀엽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상대가 있다는 것은 늘 기쁜 일이다.
수빈이 잠든 모습을 지켜보면서, 난 지연의 친구들에게 개런티를 어떻게 지급해야할지 고민해보았다.
물론 그녀들을 하나 하나 만나 천만 원 씩 건내줄 수는 없으니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무기명 지급을 선택하자, 보유하고 있는 수익에서 돈이 빠져나갔다.
과연 어떻게 그녀들에게 개런티를 줄 지 알 수 없지만, 이젠 내 손을 떠났다.
"아아...잘 놀았다."
"오늘 재미있었어. 지연아 고마워."
"맞아. 네 덕분에 엄청 신나게 놀았어."
"수영장에 왔는데 자꾸 찝쩍거리는 남자가 없으니 엄청 마음 편하다."
"그지. 우리 오빠도 여자끼리만 수영장 간다니까 막 불편해하다가, 우리만 들어가는 곳이라니까 마음을 놓더라."
"사진 잘 찍었지?"
"응. 그게 있어야 믿어주겠지."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면서 여자들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기념사진을 서로에게 보여주었다.
물론 벌거벗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
"빨리 가자. 배고파."
"그래. 저쪽에 있더라고."
여자들은 발걸음 가볍게 피자집으로 걸어갔다.
"어? 웬 가방?"
그리고 그녀들은 길 한복판에 놓인 가방 하나를 발견했다.
"열어봐."
"그냥 두고 가자."
"경찰서로 갈까?"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누군가가 가방을 열었다.
"엄마야!"
하나 같이 놀라는 여자들.
가방 안에는 오만 원 권 지폐가 가득 들어있었다.
"어떻게 해?"
"겨, 경찰서."
"119!"
가방 안에 들어있는 액수가 너무나 커서, 아무도 그걸 갖자고 하지는 못했다.
"무슨 119야. 그냥 경찰서로 가."
"다들 조용히. 우리 아무렇지도 않게 천천히 걸어가는 거야. 알았지?"
"응. 그냥 조용히 걸어가. 웃어. 자연스럽게 웃으라고."
다행히 파출소는 걸어서 겨우 몇 분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동안 여대생들은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버렸다.
"경찰 아저씨!"
파출소에 들어가서야 그녀들은 간신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돈을 잃어버린 사람이 나타나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액수가 크니까 금세 나타날 겁니다. 보통 사례금을 10%정도 주니까 적어도 3,000만 원을 사례금으로 받게 될 겁니다. 그냥 넘어간다면 청구하면 되고요."
친절한 경찰이 가방안의 돈을 꼼꼼하게 세어서 접수증을 발급해주었다.
"만약 6개월이 지나도 찾으러 오는 사람이 없으면, 세금을 제외하고 2억 얼마 정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경찰은 그녀들이 신고한 가방이 어떻게 처리될 지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에이. 누가 그런 큰 돈을 안 찾아가요?"
"하긴 그러네요. 하하."
아무도 그 돈이 경찰서에 보관되다가 6달 뒤에 20명의 여대생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진짜 별 일 다있다."
"근데 정말로 사례금을 주는 걸까?"
"10%면 우리 각자 150만 원은 받는 거네?"
"진짜?"
"사례금 못 받는 경우도 많데."
"그러면 어쩔 수 없고."
다시 피자집으로 향하면서 그녀들은 방금 벌어진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중 누구도 수영장에서의 망측한 사건을 거론하지 않았다.
[지연이]
- 아저씨 선물.
지연에게 메시지가 온 것은 그녀가 집에 들어가고도 한참 뒤의 일이다.
- 무슨 선물?
[지연이]
- 엉큼한 아저씨가 좋아할만한 거예요. ㅋㅋㅋ
- 용량이 너무 커서 메일로 일부만 보냈어요.
- 나머지는 만나면 줄게요.
- 이거 보면서 나쁜 생각 많이 해요.
그녀에게서 온 선물은 동영상 파일이었다.
여대생들이 수영장에서 벌거벗고 뛰노는 영상이 30분가량 찍혀있었다.
그러고보니 지연이 계속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것이 머리에 떠올랐다.
선글라스를 쓰지 않을 때면 주위가 잘 보이는 장소에 놓아두기도 했었다.
- 이게 왜 선물이야?
[지연이]
- 안 좋아요? 그럼?
그녀의 질문에 무어라 대답해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솔직히 고맙기는 하다.
세상 어떤 여자가 자신의 친구들의 벗은 몸을 몰래 찍어와 남자 친구에게 선물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걸 좋다고 하면 내 꼴이 뭐가 되는가?
[지연이]
- 맘에 안들면 나머지는 안 줄거예요.
- 아냐. 좋아. 고마워.
지연의 성의를 거절할 수야 없어서 난 항복하고 말았다.
[지연이]
- 그럴줄 알았음. ㅋㅋㅋ
- 엉큼한 아저씨가 싫다고 하면 말이 안 되지.
- 그건 그냥 예고편임. 진짜는 다음 시간에 ㅎㅎㅎ
아무래도 그냥 벗은 영상뿐이 아니라 그녀들이 벌인 짓을 전부 내게 넘길 모양이다.
나야 고맙기는 하지만, 자신이 친구들에게 한 말은 어쩌고?
이녀석 남자 앞에서는 친구고 뭐고 없는 거야?
그래서 기뻤다.
[지연이]
- 원래는 옷갈아 입을 때만 찍으려고 했는데요.
- 애들이 신이 나서 막 벗어버리더라구요.
- 그래서 열심히 찍었죠.
지연은 칭찬을 바라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 아이한테 도대체 난 어떤 인간으로 찍힌 걸까?
뭐. 제대로 보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녀 나름대로 치열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려하고 있다.
비록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해도, 날 기쁘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모양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도 조금씩 변태스러운 행위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지도 모른다.
지연은 그리고 한참 동안 메시지로 이런저런 일들을 보고했다.
[지연이]
- 웃기지 않아요? 누가 그렇게 큰 돈을 버리고 가요? 길 한복판에요?
- 애들이 전부 아저씨한테 고맙다고 했어요.
- 나도 고마워요.
- 친구들이 즐거워서 나도 즐거웠어요.
지연과의 메시지를 끝내고, 다시 영상을 틀어보았다.
아까 < 모니터 >로 훔쳐보았을 때 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건 언제라도 다시 볼 수 있으니 나쁘지 않다.
"지연이가 보내준 거예요?"
갑자기 수빈의 목소리가 들려와 화들짝 놀랐다.
"깬거니?"
"지연이도 어지간히 변태네."
"하하..."
"흐음... 그래도 똑똑한데? 이런 짓을 하고?"
수빈은 어쩐지 지연에게 경쟁심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랬단 말이지..."
그녀의 목소리에 무언가 결의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넌 이런 짓 하지마. 잘못하면 아주 골치아파지니까."
지연에게는 결코 들키지 않을 안경이 있지만, 수빈은 그렇지 않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걱정하지 말아요."
하지만 수빈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조금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월요일 권 이사가 말했던 새 프로젝트 팀이 출범했다.
새 팀이라고는 하지만 정 팀장이 같이 팀장을 맡고 있기에, 원래의 사무실을 함께 쓰기로 했다.
프랜차이즈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팀을 완전히 분할하기로 했다.
"나도 그 팀에 가고 싶은데..."
아침 나절 휴계실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며 문희가 아쉬움을 표했다.
"문희씨까지 빠지면 곤란하니 어쩔 수 없지. 나도 문희씨랑 같이 일하는 게 좋은데 말이지."
"뭐. 그래도 프랜차이즈 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우리쪽에 팀원이 보충되면 옮긴다 했으니까 기다려요."
잘 몰랐는데, 새로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진 직원들이 꽤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은 출범 단계이니, 먼저 신청한 나은과 도연, 그리고 도연의 남자 친구까지가 프로젝트 팀에 합류하기로 결정났다.
처음부터 권 이사가 나와 정 팀장에게 팀의 결성에 대한 전권을 주었고, 정 팀장이야 내 말을 따르니 사실상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회조차 없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완전히 내 사심이 들어간 팀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나은이나 도연의 남자 친구나 각 팀에서 중추가 될만큼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니, 꼭 내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인사라고만 볼 수는 없다.
"같이 잘 해봐요. 영민씨."
"이렇게 다시 함께 일을 하게 됐네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일이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계획대로 풀리면 사세가 두 배는 커질 수도 있겠더라구요."
도연의 협박에 가까운 조르기를 이기지 못하고 프로젝트 팀에 합류한 영민이지만, 그래도 나름 비전은 지니고 있었다.
성실한 남자 답게, 주말 동안 벌써 나름 이런저런 준비까지 해온 것을 보니, 어디에 가져다 놓아도 성공할 사내구나 싶었다.
그리고 도연은 뭐가 그리 좋은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팀 결성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날 오후 새로운 인사가 팀에 합류했다.
"원래 경리팀에 있었는데, 앞으로 프랜차이즈 팀에서 함께 일하게 됐으니 그리 알고들 있어요."
정 팀장이 자신과 비슷한 글래머 한 사람과 함께 들어와 소개를 한다.
"안녕하세요. 진이슬이에요."
바로 권 이사의 여자인 그 이슬이었다.
왜 저 여자가 여기 온걸까? 하는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뻔하지. 권 이사 자기 사람을 박아놓으려는 것이다.
정 팀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신생 프로젝트 팀의 자금 관리는 전부 이슬을 통해 이뤄질 것 같다.
뭐. 상관은 없다.
어차피 언제고 한 번은 그녀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볼 생각이었으니.
"오빠. 이슬씨 보고 딴 생각 했죠?"
휴계식에서 나은이 슬쩍 날 떠본다.
"내가? 왜?"
내가 그렇게 쉽게 읽히는 남자였던가?
솔찍히 조금 뜨끔했다.
"뻔하죠. 눈이 이슬씨 가슴에만 가 있던데. 뭐."
"눈에 띄니까. 남자라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냐?"
"같은 남자라도 영민씨는 눈길 한 번 안 주던데요?"
"그런 성인 같은 사람하고 비교하면 안 되지."
"진짜 그 사람 어떨 때 보면 남자가 맞는지 궁금하기는 해요."
"남자야 맞지. 심지가 굳어서 그런 것 뿐이지."
"하긴. 어떤 의미에서 대단한 사람이니까."
나은은 날 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날은 새 팀의 얼개를 정하는 것 만으로 부산했다.
거의 종일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어떻게 일을 진행할 것인지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후 늦게가 되어서야 다들 각자의 자리로 가서, 자신의 업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즈음 새로 만든 메일로 이슬에게 메일을 하나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슬의 얼굴이 헬쑥하게 바뀌었다.
당황한 그녀가 주변을 돌아본다.
물론 그 메일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감도 잡기 어려우니,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초조하게 시계만 바라보던 이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보다 조금 빠르게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섰다.
회사 밖으로 나와 걸어가고 있는데, 내 뒤에서 이슬이 빠른 걸음으로 날 지나쳐 앞서가기 시작했다.
"이슬씨?"
난 조금 놀란 것처럼 그녀를 불렀다.
"아!"
이슬이 고개를 돌려보고 날 알아차렸다.
"영웅씨."
"어디 가세요?"
"아. 잠깐 만날 사람이 있어서. 지하철 역 쪽으로..."
이슬의 얼굴엔 여전히 불편한 표정이 그득했다.
"그래요? 나도 그쪽으로 가는 중인데. 같이 갈까요?"
"예? 예에..."
조급한 심사를 지우지 못하고, 이슬은 나와 함께 발을 맞춰 걸어가기 시작했다.
"혹시..."
그녀가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말문을 띄웠다.
"예?"
난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아.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조금 급해서 그러는데 먼저 좀 가볼게요."
"아. 그랬구나. 미안해요. 그럼 먼저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