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3화 〉@29. 비밀을 지닌 여자는 그만큼 매력적이다. (223/377)



〈 223화 〉@29. 비밀을 지닌 여자는 그만큼 매력적이다.



"아냐.  돈 써. 시계도 내가 샀고..."
주은에게  두 개의 시계 중에 금으로 된 시계는 너무 부담스러워 차고 다닐 수 없고, 스틸로 된 것은 늘 차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을 해보니 수빈의 말이 맞다.

돈이 그렇게 있어도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에 소비를 해 본 일은 없었다.


전부 여자들 개런티로 쓰거나, 탐정을 고용하는 데  것이 고작이다.


"괜찮아요. 아저씨가 어떤 사람이든 전혀 상관 없으니까."
수빈은 너무 어른스럽게 날 다독거려주었다.


"꼭 돈을 쓸 줄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진짜. 스폰서는 아닌데..."
하지만 딱히 아니라고  수도 없다.

 휘황찬란한 장소를 내가 마음껏 사용할  있는 것은 누군가의 호의에 의한 것이 맞다.


"뭔지 모르지만 엄청난 비밀이 있는 거겠죠?"
수빈은 아주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궁금해?"


"당연하죠."


"그러면 한 번 직접 알아내봐."
그 영리한 수빈도 절대 알아내지 못할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어디 한 번 내가 지닌 힘의 비밀을 알아내보렴.


"알았어요. 그럼."
하지만 수빈은 어쩐지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불현듯 이 아이가 정말로 내가 가진 비밀을 밝혀내는 것은 아닌가 덜컥 겁이 난다.

아니...

생각해보니 상관 없다.


그녀가 내 비밀을 알아낸다고해서 그걸 누구에게 말할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내가 지닌 힘의 근원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근데 계속 이러고만 있어요?"


수빈에게는 내게서 1미터 접근 금지 명령을 내려놓았다.

지금 그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 물건에서 단  번도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수영장에 들어와 벌써 두 시간 동안 우리는 아직 서로의 몸에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수빈은 아까부터 발정이 나서 아랫도리가 잔뜩 젖어있었다.


도저히 참지 못하게 되면 그녀는 손을 내려 자신의 음부를 어루만지며, 내게 욕정을 풀어달라 요구해왔지만, 난 아직 이 장난을 그만둘  없었다.

난 그녀가 자신의 영리함을 내보이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보다 이 아름다운 여자가 욕정이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볼 때가 가장 즐겁다.

어쩐지 수빈에게 스폰서를 받는 취급을 받아 조금은 찜찜했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육체를 마음껏 희롱하고 나니 그런 오해 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날 저녁 윤진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부친이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뒤로 신혼 여행도 미루고, 거의 병원에 붙어있다시피한 그녀에게서 연락이 와 조금 놀랐다.

겨우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몸이 달아오른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았는데, 웬걸. 그녀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있었다.



"저. 엄마가 오늘 오후에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솔직하게 말해 조금 놀랐다.

"안 됐네. 지금 괜찮아?"


"예. 괜찮아요. 아뇨.  괜찮아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머리속이 터질 거 같아요. 하필..."

하필 결혼식날 부친이 쓰러지고, 며칠 지나지 않아 모친까지 그렇게 되었으니 혼란스럽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어디. 병원이야?"

"예. 그냥... 알려드려야   같아서요."
윤진의 목소리가 너무 처연했다.


그날 오후 병원에 가서 그녀를 만나 나름 위로해주었다.


"후우..."
윤진은 병원 밖 흡연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주인님이 와 주시니 마음이 조금 나아졌어요."


"밖에서까지 그렇게 부를 필요는 없어."
윤진이 내게 그런 부끄러운 호칭을 쓰는 이유는 나은의 강요에 의해서였다.


"아뇨. 제가 좋아서 그래요."
윤진이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주인님... 왠지 어감이 좋잖아요?"
그녀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녀에게 그 단어와 내게서 받는 쾌감과 연결이 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러고 보면 그녀가 나와 관계를 맺으며 큰 쾌감을 느낀 것은 대개가 적지 않은 고통을 수반할 때였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


"억지로 괜찮은 척 안 해도 돼."

"아뇨. 정말 괜찮아요. 사실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엄만... 윤수만 아꼈어요. 나 아주 어렸을 때부터. 꼭 날 어디서 데려온 아이처럼..."
서운한 게 많았던지, 윤진이 눈물을 떨궜다.

그녀가 흘리는 눈물이 모친에 대한 서운함인지, 그래도 안타깝다 생각해서인지는 구별하기 어려웠다.

윤진은 그렇게 한동안 내 어깨를 빌어 머리를 기대고, 담배를  대나 피우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금세 괜찮아질 거예요. 나한텐 주인님이 있잖아요."
확실히 그녀는 내가  뒤로 몰라보게 좋아졌다.

"그래. 여하튼 너무 힘들면 연락해."


"알았어요. 그럼 들어가볼게요."



윤진의 모친의 사고로 윤진과 정미를 만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도 만날 여자는 잔뜩 있었고, 나름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 주에는 거의 매일 지연과 수빈을 번갈아 만났다.

두 아이 모두 방학이라  더 신경을 써주고 싶었다.


매번 그렇게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렇게 늘 다니다보니, 그리 크게 부담스러워하지는 않는 듯 했다.




그렇게 조금은 한가한 시간을 보내다가 탐정 사무소에서 새로 의뢰한 일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받았다.

이번엔 해외의 조사까지 포함된 일이었는데, 그다지 시간을 끌지 않아 의외라 생각했다.




이번에 의뢰한 것은 대개 하 과장에 대한 것들이었다.

액티브 카드 <모니터 >로 지켜본 그녀의 행위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꽤나 달랐기에, 그녀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정미 31세
가족관계. 없음.
학력사항...


그리고 그녀가 이모부라 부른 남자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함 윤규 57세.
서울 시내 폭력 조직 출신.


엘리베이터에서 하 과장이 했던 말은 사실인 모양이다.


꽤나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결코 가까이해서는 안 될 종류의 사람이 맞았다.



보고서를 읽고 나니, 모니터로 보았던 정미의 비밀들의 얼개가 대충 보였다.


남은 것은 그녀에게 직접 확인해볼 생각이다.


 과장에게 전화를 해서 논현동의 한울 빌딩으로 불렀다.



"오늘은 왠일로 저만 부르신 거예요?"
한울 빌딩 로비에 도착하니 이미 그녀가 도착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왜? 혼자 부르니까 서운한가?"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며 대답했다.

"서운하긴요. 좋아서 그렇죠. 저도 여잔데."
정미는 특유의 남자를 유혹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여자 절대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여자이다.


윤진과 함께 있을 때와, 나은과 윤진과 함께 있을 때, 그리고 나와 단 둘이 있을 때의 모습이 전부 다르다.


만일 그녀와 잘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그  가지 모습이 전부 다른 사람이라 생각될 정도이다.


"그런데 어딜 가는 건가요?"


"요즘 정미씨 무척 바쁘고 힘들었던  같아서, 오늘은 함께 휴식이나 취할까하고."


"정말요?  또 무슨 무서운 걸 시키시려는 줄 알았지 뭐예요."


"무서운 거? 그런게 뭐가 있을까?"

"그야 모르지요. 워낙에 종잡을  없는 분이시니까."
그녀는 또  사람을 홀리는 웃음을 지었다.


"정미씨 굉장히 위험한 사람이야."

"어머나? 제가요? 왜요?"

"가슴이 두근거리게 만드는 눈을 가지고 있네"
눈가에 그려진 오묘한 분위기는 남자를 홀리는 종류의 것이다.


평범한 여자였다면, 결코 회장이 마음을 주지 않았겠지.

윤진의 새신랑도 그녀에게 빠져있었던 것은 그 눈 때문이 아닐까?

"진짜요?"
그녀도 자신의 장점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여자는 꼭 필요할 때에 그걸 사용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확실히  주변 어느 여자와도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뭐라고 할까?


요물?


아마도 여자들이 무척이나 싫어할 타입일 것이다.




팅!
엘리베이터가 멈춰섰다.



"여긴?"
우리가 도착한 곳이 스파 클럽이라는 것을 알게 된 정미가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휴식을 위한 곳이 맞나보네요."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무서운 걸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군."

"농담이었어요. 호호."
그녀는 여전히 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멋진 곳이네요. 나도 이쪽으로 옮길까?"
안내를 받아 욕실에 들어와 시내의 전경을 바라보며 스파에 앉은 정미가 감탄하며 말했다.

"지금 다니는 곳은 어떤 곳인데?"

"헤링턴 호텔 스파요. 아무래도 회사에서 멀지 않아 이동하기 편하거든요."
지난번 정 회장과 만났던 장소였던 바로 그 호텔이다.

내 짐작처럼 그곳을  사람의 밀회 장소로 이용했던 모양이다.


"1328호는 정 회장이 쓰는 곳인가? 아니면 정미씨의 방인건가?"


"아!"
내 말에 처음에는 아주 살짝 놀라는  같았다.

"진짜 방심할  없는 분이시네요. 회장님이 사용하시던 곳이에요. 전 그냥 가끔 들렀고요."
정미는 조금도 불쾌한 내색 없이 자신의 치부를 밝혔다.


"그런데 어디까지 알고 계신 거예요? 나에 대해서? 사실 굉장히 궁금했어요. 그냥 나은씨와 윤진이 관계 때문 만은 아닌 거죠?"
그녀는 내게 어떤 꿍꿍이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한다.


"아니. 그건 사실이야. 나은이 윤진에 대해 말하기 전에는 그 아이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으니까. 그리고 정미씨는 그날 처음 본 거고."



"그렇군요."
정미는 내 말에 그다지 의심을 표하지 않았다.

물론 그녀가 진심인지는 나로서는 전혀 알 도리가 없다.



"그럼 그날 이후로 알아보신 건가요?"

"굳이 알아보았다기보다는 알게  거지."

"아하."
역시 그녀의 얼굴에서는 어떤 진실도 읽어낼 수 없다.


"그래서 무얼 알고 계신 거예요?"
하지만 그녀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바로 자신에게 비밀이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 있다는 경훈이라는 남자에 대한 진실이라거나, 정미씨가 윤진의 남자 친구와 몰래 만나는 사이였다는 거?"
내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정미는 딱히 그 미소를 풀지 않았다.


"진짜로 다 알고 계셨구나. 앞으로는 뭐든 감출 생각을 말아야 겠네요."


"아니면  이사가 정미씨 이모부였다든지 말이야."


하지만 이어지는 내 말에 정미의 얼굴은 차츰 굳어갔다.


"속일 생각은 없었어요."
한참만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속인 적 없지. 내가 물어본 적도 없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었을 테니까."



"맞아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속인 게 되었나요?"
 짧은 시간 사이 정미는 원래의 평온한 표정을 되찾았다.

"근데... 다른  몰라도  이사와는... 그걸 어떻게?"

"정미씨한테 비밀이 많듯이, 나도 이런저런 비밀이 있다고 해두지."


"알았어요."

"그런데 이번 윤진 모친의 사고는 역시 함 이사의 짓인 모양이지?"


"어? 아! 음... 예. 그래요. 회장님이... 아니 내가 시킨 게 맞아요."
정미의 표정 변화가 무척이나 드라마틱했다.

완전히 허를 찔렸다는 표정이다가, 금세 항복하겠다는 얼굴이 되었다.

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미도 말 없이 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나에 대해서 알고 싶으신 거죠?"
한참만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말해준다면."


"내가 전부 말하고 나면...  아주..."
그녀는 자신의 비밀이 더 있다고 말하려는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까발려지는 것에 두려움을 가진  같았다.


"난 아직 정미에 대해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않았어. 그러니까 내가 무얼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너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지는 않을 거야."

"하기는. 그렇죠. 그런데 조금 두렵네요."



문득 그녀가 손을 내밀어  손을 잡아 끌고 갔다.


내 손이 닿은 곳은 바로 그녀의 은밀한 곳이었다.



"흡!"
갑자기 정미가 몸을 떤다.


특이한 여자였다.

이런 상황에서 성적 자극을 느끼는 걸까?

더군다나 지금은 그녀에게 캐스팅 카드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녀의 행동은 전부 그녀의 의지라는 의미이다.

"흐읍..."
단지 내 손을 그곳에 가져대고 있을 뿐인데, 정미는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느끼는 쾌감의 근원은 내 손일까?
아니면 자신의 모든 비밀이 까발려졌다는 사실 때문일까?

"하아... 하아..."
정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고 자신의 목으로 가져갔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 느껴졌다.


 정미의 새하얀 목을 잡은 채 약간의 힘을 가해본다.

조금은 거북했지만, 참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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