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29. 비밀을 지닌 여자는 그만큼 매력적이다.
"그러면 그쪽 팀장한테 허락을 맡아봐."
"그럴게요. 흑! 큰일이다! 벌써 막 흥분되서... 학!"
나은은 나와 도연과 한 팀이 되어 오피스 불륜을 저지르고, 그걸 훔쳐보는 생각에 빠져버린 모양이다.
"그럼 재미있게 보내."
난 전화를 끊는 척 하며 머리 맡에 엎어놓았다.
이제 도연과 즐기는 동안 나은도 나름의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나도 할 거예요."
전화를 끊는 모습을 본 도연이 성급하게 자원했다.
"그런데 괜찮아? 나랑 늘 함께 있으면, 영민씨가 눈치채지 않을까?"
"그 사람... 둔해요. 엄청."
도연이 웃었다.
"아마 바로 자기 뒤에서 오빠랑 키스하고 있어도 절대 모를 걸요?"
도연은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을 보고 있으니, 벌써 그런 짓이 하고 싶어 죽겠는 모양이다.
"참. 말이 나온 김에 말인데. 그 사람... 같이 팀에 들어가도 되요? 지금 유미 팀이잖아요. "
도연은 브레이크가 망가진 폭주 기관차 같았다.
이제 심지어 자신의 남자 친구도 같은 팀에 들어가면 어떨까 물었다.
"그렇게 하고 싶어?"
도연은 잠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비도덕적인지 스스로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네..."
풀이 죽은 모습으로 대답하는 도연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나쁜지 알아요. 하지만..."
"하지만?"
"참을 수 없어요."
도연은 자신의 욕망에 무척 충실한 여자였다.
"그럼 그렇게 하든지. 그런데 그쪽 팀에서 영민씨가 꽤 일을 잘해서 보내줄지 모르겠다."
나야 아무 상관없다.
"나중에 잘못되면... 그냥 전부 내가 떠맡을게요."
도연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나쁜 년이죠. 뭐."
"맞아. 도연이 나쁜 여자."
"그렇게 웃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된 거 오빠 탓도 있어요."
도연도 눈치가 없지는 않다.
자신의 변화와 나 사이에 아무 관련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 더 이상할 것이다.
"사람의 감정을 그렇게 갖고 놀면 재미있어요? 진짜 내가 왜 오빠 같은 남자한테 빠져가지고..."
물론 그녀가 생각하는 것은 그저 내가 자신을 가지고 이리저리 뒤흔든다 생각하는 정도이다.
혹시라도 내게 어떤 이상한 능력이 있다 생각하지는 못하는 듯 싶었다.
"이제 내 차례에요."
도연이 침대에 누으며 말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난 도연의 몸에 삽입을 하고 그녀가 전화를 거는 동안 잠시 기다려주었다.
"나야. 응. 뭐해?"
도연은 벌써 느끼기 시작했다.
"학! 그래. 오늘도다. 흐윽! 나 딴 남자랑 떡치고 있다. 하앙! 오빠 것보다 두 배는 큰 자지가 내 안으로 들어왔어. 하악!"
도연의 변태성은 점점 더 업그레이드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이 모습을 언제쯤 눈치채게 될까?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되면 대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무척이나 궁금하다.
"사랑해 오빠. 학!"
도연이 날 바라보며 외쳤다.
그 남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쩐지 궁금한 게 많았지만, 난 그에게는 굳이 캐스팅 카드 < 빼앗기는 남자 >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카드가 아까워서가 아니다.
그럴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관대한 남자는 카드가 없어도 충분히 자신의 여자를 빼앗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다.
그런 남자에게 캐스팅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음날 점심 시간 나은과 도연이 신이 나서 새 프로젝트 팀에 합류할 수 있게되었다고 알려왔다.
"팀장님이 허락해주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었데요. 한 명 차출해서 새 팀으로 보내라고. 그래서 누굴 보낼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자원을 해주니 일이 쉬워졌다고 하네요."
나은 보다 도연이 더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혹시 필요 없으니까 옳다구나 하고 보내버리는 거 아냐?"
주은이 짓궂게 말했다.
"몰라요. 알 게 뭐람. 흥!"
도연이 살짝 삐질거렸지만, 주은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도연이 쉽게 삐지고, 쉽게 풀어지는 성격임을 알고 있기에, 틈만 나면 그렇게 놀리는 모양이다.
"영민씨는 어떻게 한데?"
나은이 물었다.
아마 도연과는 미리 얘기가 된 모양이다.
"말해본다고 했어."
"근데 유미 팀에서 영민씨를 보내줄까 모르겠다."
"그래도 자기가 하겠다고 하면 말릴 수 있겠어?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인데?"
도연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마음이 떠나서 그런 게 아니라, 네가 졸라서 그런 거잖아."
"그게 그거지. 나랑 같이 일하는 게 나쁠 게 뭐가 있어?"
"그래. 영민씨한테도 잘 된 일이지뭐. 어쨌던 잘 되면 좋겠다."
나은은 어딘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도연이 자신을 속이과 나와 관계를 맺는 것만큼이나, 영민을 속이는 행위 또한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은과 도연을 보고 있으면 둘 중 누가 더 변태스러운지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두 사람 다 신 프로젝트 팀에 합류하기로 한 거야? 좋겠다."
"주은씨도 넘어오지 그래요?"
"하아... 나도 물어봤죠. 근데 웹 디자이너는 필요 없데요. 굳이 필요한 작업이 있으면 웹 팀에 넘기면 된다나."
주은이 서운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가 새 팀에 오고 싶어하는 이유야 물론 나 때문이다.
나도 주은과 한 팀이 되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도연 못지 않은 미녀이다.
함께 일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재미있는 일들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필요 없는 것은 필요 없는 것이다.
"이참에 업무를 바꿔버릴까?"
주은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연이]
- 주인님! 선물
언제나처럼 지연에게서 메시지가 와 확인하던 나는 황급하게 화면을 가리고, 주변에 누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문자와 함께 그녀가 보내온 적나라한 사진 때문이다.
다행히 주변엔 내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다.
난 슬그머니 사무실을 나가 휴계실로 가 가장 구석에 앉아 그녀가 보내준 사진을 다시 확인해본다.
때때로 지연이 야한 사진을 보내 날 당황시키는 일은 있었지만, 이날 보낸 사진은 도를 넘었다.
어디에선가 그녀가 계단에 앉아 입고 있는 치마를 들추고 속을 보이며 찍은 사진이다.
장소는 아마도 그녀가 다니는 학교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문제는 치마속에 팬티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의 해맑은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있다는 사실이다.
어쩐지 스마트폰에 이런 사진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법에 접촉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더군다나 지연은 사실 나이보다 조금 어려보이는 얼굴이다.
그녀의 그 무시무시한 가슴이 아니라면 아마 두어 살은 더 어리다 생각할 것이다.
[지연이]
- 주인님! 맘에 들어요?
이거... 진짜로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큰일이었겠구나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다시 메시지가 왔다.
- 주인님이라고 하지 않기로 했잖아.
적어도 메시지나, 주변에 사람이 있을 때는 그런 장난을 치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통제 불능이다.
[지연이]
- 주인님! 화났어요? 그럼 선물 또.
다시 사진이 날아온다.
이번엔 같은 장소에서 셔츠를 위로 들고 가슴을 보여준다.
- 어디야? 학교? 방학인데 학교에서 뭐해?
[지연이]
- 공부요. 나 공부 열심히 한다구요. 노는 애 아니에요.
- 그러니까 착하다고 말해줘요.
- 그래. 많이 착해. 이뻐.
[지연이]
- 사진 보고 꼴렸어요? 꼴리면 알죠?
그녀의 속셈이 너무나 빤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유혹이라니 나쁘지 않다.
- 그러면 이따가 내가 데리러 갈까?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니 기특한 생각에 그러할 마음이었다.
[지연이]
- 시간 아까워요. 내가 갈게요.
- 그럼 수영장에서 보기로 할까?
지연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수영장이었다.
날은 이제 무더위로 넘어가고 있었으니, 데이트 장소로 그곳만 한 곳도 없다.
언제나 그렇듯 아주 특별한 일이 없다면, 다른 약속을 취소하고라도 지연과의 만남은 거절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 좀 무서워요."
단둘이 호적하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영을 즐기는 것은 반겼지만, 테이블 가득 차려진 음식들을 볼 때면 지연은 꽤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낭비가 너무 심해요. 둘 뿐인데. 저 정도면 우리 과 애들 전부 먹을 수 있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여기는 그게 무조건 딸려오니까."
"하아... 진짜 아깝다. 그런데 여기 이렇게 둘이 노는 거 너무 비싸지 않아요? 나 이런데 꼭 올 필요 없어요."
"신경쓰지마. 전에도 말했지? 나랑 있을 때는 그런 거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이 순간을 즐기는 걸로."
"알았어요."
지연과 수영장을 온 것도 꽤 여러번인데, 그녀는 여전히 비용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아마도 그리 넉넉한 집안에서 자라나지 않아 낭비에 더욱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나라도 내 돈이 나간다면 이곳을 이용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내게 이 이상한 힘을 준 자의 배려이니 굳이 내가 아낄 이유는 없다.
그날도 한참을 지연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지연이 갑자기 스마트폰을 내게로 향해 사진을 찍었다.
"뭐해?"
"아저씨 꼬추."
지연은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내 사진을 찍었다.
"그건 왜?"
"아저씨 없을 때 이거 보면서 혼자 즐기게요."
"그런거 보통 남자가 하는 짓 아니야?"
"알게 뭐람."
지연은 꿋꿋하게 자기 하고 싶은 짓을 하고야 말았다.
지연과 수영장을 다녀간 다음날은 수빈과 함께 다시 수영장을 찾았다.
더운 여름날 두 사람이 즐기기에 이곳 처럼 완벽한 장소도 없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여기 너무 사치스러워요."
수빈도 두 사람을 위해 차려진 것이라기에는 너무 많은 음식을 보고 한마디 했다.
지연과 달리 꽤나 상류층의 삶을 살아온 그녀도 그렇게 생각할 정도면 사치스러운 것이 맞는 모양이다.
"아빠가 보셨으면 화냈을 거예요."
수빈은 자신의 부친을 꽤 존경하는 모양이다.
그녀의 부친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정치인치고는 꽤나 평이 좋은 사람이었다.
보통 그런 경우 뒤에서 호박씨를 까는 경우가 많던데, 자기 딸에게까지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의 평은 몰라도, 수빈의 판단이 그리 틀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엄마가 보셨다면 아주 마음에 들어하셨겠네요."
"어머니는 사치스러운 걸 좋아하시는 모양이구나."
"예. 어려서부터 그렇게 자라셨으니까요. 지금도 가끔은 그 문제로 아빠랑 부딪치고는 하거든요."
아무래도 정치인이라면 다른 사람의 눈에 신경을 써야 하겠지.
"엄마가 보면 이런 거 만들어서 친구들이랑 놀겠다고, 당장 일을 벌일걸요."
하하... 도대체 어떤 집안이길래?
"어머니께서도 뭔가 하시니?"
"아뇨. 그냥 놀아요. 사람들을 만나고, 여행을 다니시고, 여튼 노는게 직업이에요. 그래도 외할아버지가 물려주실게 충분하니 별 생각이 없는 거죠?"
"엄마랑은 별로 안 친해?"
"친해요.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그냥 좀 철이 없는 것 뿐이죠. 어쩔 수 없어요. 어려서부터 그렇게 자라신 분이니까."
수빈에게 그녀의 모친은 어쩐지 철없는 언니 정도의 존재인 모양이다.
"나도 이런 사치스러운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수빈도 이곳을 드나드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하긴 그녀의 평소 옷차림이나, 행실은 그런 대단한 집안의 딸이라 생각하기 어려웠다.
"내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신경쓰지 마."
"흐음... 그럼 누군가 스폰서 같은 사람이 있는 거예요?"
"풉!"
수빈의 말에 난 마시던 음료를 뱉으며 놀라고 말았다.
"스폰서라니... 넌 날 어떤 사람으로 알고 있는 거야?"
"그냥 평범한 회사에서 일반 직원으로 일하고 있잖아요. 여기 하루 이용료가 아마 서너달 월급 정도는 될 텐데요. 근데 너무 편하게 있는 걸 보면, 정말 눈꼽만큼도 신경을 쓰지 않으시네요. 그렇다면 정말로 다른 누군가에게서 이 장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호의를 받고 있다고 봐야지요."
"그... 그건..."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아저씨는 돈을 쓰는 방법을 잘 모르는 거 같아요. 돈을 쓰는 것도 사실 써 본 사람이 쓸 줄 알거든요.
그런 면에서 아저씨는 지금까지 돈을 막 써본 사람은 아니에요.
평소에 하고 다니는 걸 보면 알아요. 옷이라든지, 먹는 거라든지. 자동차도 아마 10년도 넘은 것 같고. 그런 사람이 이런 장소를 빌렸다면 그렇게 편하게 있지는 못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