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화 〉@29. 비밀을 지닌 여자는 그만큼 매력적이다.
"지난번에 권 이사가 보자고 했다는 말 했었지? 오늘 권 이사가 한 번 보았으면 하던데. 괜찮아?"
월요일 회사에 출근하니 정 팀장이 조금 불편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물론이죠. 상사가 부르는데, 거절하는 게 말이 되나요."
그렇지 않아도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한 것이 많았다.
정 팀장과 함께 상층의 임원실로 가서 권 이사를 만났다.
"어서오게. 그렇지 않아도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요즘 내가 워낙 바빠서 말이지."
권 이사의 첫 인상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중년의 사내 치고는 꽤 잘 생긴 남자였고, 열정으로 가득한 눈을 지니고 있었다.
"요즘에 내가 정 팀장과 함께 추진하는 일이 있어서, 정신없이 바쁘거든. 자네도 알지? 로드샵 프랜차이즈."
권 이사는 회사에서 신규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로드샵 성공을 위해 일주일 내내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며, 자신의 인맥을 과시했다.
"이번 사업이 성공하면. 아니.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을거야. 기존의 온라인 사업과 시너지가 굉장히 클 게 틀림없으니까 말이지. 사람들도 관심이 커. 우리 회사가 온라인 쪽에서는 제법 인지도가 높지 않은가?"
무어라고 할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호탕하고 자신감 넘쳤고 언변이 뛰어났다.
그가 말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꽤나 잘 알고 있는 나로서도, 아주 대단한 신규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일을 아주 긴장감 있게 설명한다.
아마도 그의 프리젠테이션을 듣고 나면, 꽤 많은 사람들이 넘어가지 않을까 싶었다.
큰 회사에서 오랜 시간을 일했다고 하더니, 능력은 있는 모양이다.
문제는 내가 이 남자를 믿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앞으로 정 팀장과 함께 자네도 이 프로젝트에 힘을 실어주었으면 하네."
그 남자는 내 개인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정 팀장이 자네가 팀에서 가장 유능하다고 말하더군."
얼마전까지는 정 팀장에게 날 압박해서 쫓아내라 종용했었고, 내가 코인으로 꽤 수익을 올렸다는 소문이 회사에 돌고부터 내게 관심을 보여온 주제에, 그저 일에 관련된 것들만을 이야기 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굉장히 엉큼한 사내이다.
마음 속에 흉측한 구렁이가 몇 마리나 숨겨져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자네 지금 업무 중에 사진찍는 것도 있다면서?"
"예. 가끔 회사 SNS에 올릴 사진 정도 찍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우리 사원들 사진도 찍어주고 있다고 했었지?"
흠. 회사 직원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까지도 전부 취득하고 있었던 걸까?
자금을 담당하는 사람 치고는 꽤나...
하긴. 단순히 자금 담당이라 보기는 어렵지.
신규 프로젝트에 그렇게 관여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지.
"나도 자네가 찍은 사진을 봤는데 말이지. 무척 마음에 들더군."
"감사합니다."
"사실 임원진이 전부 봤어. 그 거 말이야. 자네 모델이 되었던 사원들 SNS에 구독자가 늘어났다면서? 그래서 모두들 그것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지. 어떤가? 회사 SNS에 그런 사진들을 계속 추가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나쁘지 않다.
우리 회사에는 제법 미모가 괜찮은 여자들이 적지 않게 있었고, 그녀들 중 상당수는 SNS를 하고 있다.
그녀들의 SNS와 회사 SNS를 연결해서 회사 SNS의 팔로워를 늘려가는 것이 절대로 나쁠 것은 없다.
물론 내 일이 너무 늘어나는 것은 문제가 되겠지.
"그래서 말인데. 내가 생각을 해보니까 자네 업무 부담이 너무 클 거 같더군. 어떤가 이참에 새롭게 팀을 하나 꾸려보는 건 말일세."
"어떤 팀 말씀이신지요?"
"주 업무는 물론 프랜차이즈 사업이 되겠지. 그리고 SNS 관리도 물론이고. 두 업무가 서로 꽤 시너지가 있지 않겠나?"
결국 목적은 그런 종류인 모양이다.
사입과 OEM 업무에서 나를 빼고 자신이 원하는 자를 집어넣으려는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새로 만들어지는 팀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권 이사의 의도야 빤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걸 반대할 생각은 없다.
새로운 프랜차이즈 사업 업무라면 외부에서의 일이 늘어날 것이고, 그러면 시간을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정 팀장의 비호 아래 원한다면 얼마든지 시간을 내기야 하지만, 다른 팀원들의 눈치도 있으니, 마음대로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위주가 된다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딱히 프랜차이즈 사업의 미래가 밝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업성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 일에 적극적인 권 이사가 다른 꿍꿍이가 있으니 회사의 장래를 보았을 때, 오히려 위험 요소가 크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러니 차라리 그 일에 깊숙히 관여하는 편이 일의 흐름에서 뒤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권 이사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이유이기도 했다.
"새로운 팀도 정 팀장이 담당하게 될 거야. 하지만 그래서는 정 팀장의 업무가 너무 과도하니, 자네가 주축이 되어주었으면 하네. 그리고 프랜차이즈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자내가 팀을 맡아주면 좋겠네."
권 이사의 제안은 무척이나 파격적이었다.
말하자면 내게 팀장 명칭을 유보한 팀장의 자리를 내어준다는 것인데...
흠. 이 자가 원하는 게 과연 내 능력일까?
이 남자가 얼마나 흑심이 많은지는 익히 알고 있다.
멀끔하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속은 흉악하다.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돈을 빼먹을 궁리를 하고, 정 팀장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정 팀장의 탐스러운 몸매에 이끌려 그녀의 몸을 은연중에 요구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경리팀의 이슬이 나와 정 팀장의 뒤를 쫓은 이유가 자신의 의지였을까?
아니면 이 권 이사의 지시였을까?
둘 다 가능성이 있다.
내가 보았던 사진에서 이슬은 권 이사에게 애정이 듬뿍 담긴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결코 상사에게 억지로 끌려 몸을 빼앗긴 여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이슬이 자신의 상사에게 연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도 권 이사가 정 팀장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녀가 권 이사와 함께 할 때 가슴이 부각되는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은 그녀가 권 이사의 취향을 잘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자신보다 멋진 가슴을 지닌 정 팀장에게 경쟁심을 지니고, 권 이사의 마음을 알고 있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더군다나 지난번 주은을 통해 정 팀장이 누군가와 사무실에서 섹스를 한 사실도 알게 되었으니, 정 팀장의 불륜 증거를 찾아내어 협박을 하거나, 적어도 권 이사의 눈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권 이사가 시켰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권 이사는 정 팀장을 원하고 있다.
그러니 정 팀장의 비밀을 캐고, 그녀의 약점을 잡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은 권 이사일 것이다.
탐정 사무소 말로는 나와 정 팀장의 뒤를 그렇게 미행하게 만들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을 것이라 했다.
적어도 수백만 원.
일개 경리팀 직원의 월급으로 그런 짓을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권 이사가 더 의심스럽다.
여하튼 좀 더 알아보도록 하자.
"새로운 팀의 구성에 대해서는 정 팀장과 의견을 나눠보게. 정 팀장에게는 자네의 의견을 최대한 받아들이라 말해놓았네."
권 이사는 대화 내내 한 번도, 나와 정 팀장의 관계, 그리고 내가 코인으로 돈을 번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의 업무 문제만을 거론했을 뿐이다.
"그리고 팀이 꾸려지면 언제 한 번 시간을 내서 한 잔 하세나."
"알겠습니다."
권 이사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면, 꽤 믿음직하고 능력있는 상사라 생각하며, 따랐을 것이다.
사람에게 신뢰를 줄 줄 알고, 사람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경리팀 이슬이 나이가 스무 살은 많은 그 남자에게 애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참. 그리고 박 부장이 말이지 우리 딸애가 마음에 든다고 한 번 캐주얼 모델로 써보고 싶다고 하더군."
다 끝난 줄 알았는데, 권 이사가 한 가지 더 이야기 할 것이 있단다.
"예. 그러시군요."
지난번 문희에게 들은 적 있다.
그러고 보면 문희는 이 회사의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이번주에 회사에 방문할 거야. 시간 있으면 한 번 만나보게. 그 애도 자네가 찍은 사진 보고 관심이 있다더군."
권 이사는 딸 바보였던가?
딸 이야기를 하면서 입이 잔뜩 찢어져있는 모습을 보면 조금전까지의 진지함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날 오후 퇴근하고 도연에게 납치되다시피 끌려서 모텔로 갔다.
도연은 내 옷을 허겁지겁 벗겨 침대에 눕히고는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었다.
"저기 오빠. 언니랑 통화 안 해?"
"지금?"
난 그녀가 어떤 이유에서 나은과 전화를 하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욕구가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와 섹스를 하면서 자신의 남자 친구와 통화를 하거나, 혹은 내가 내 여자에게 통화를 하는 것이 도연에게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쾌감을 주는 모양이다.
물론 나로서는 그녀의 그 변태적인 욕망이 결코 싫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도연의 흥분한 눈길을 받으며, 난 나은에게 전화를 했다.
"그래서 오늘도 도연이랑 있어요?"
나은과 통화를 하는 동안 도연은 내게서 신음을 이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내 아래에 엎드려 앉아 열심히 손과 입을 놀리며, 내가 쾌락에 젖어드는 표정을 보일 때마다 즐거워한다.
"혹시 도연이가 원한 건가요?"
나은도 도연의 변태적인 성향을 꿰뚫고 있었다.
"응."
"걔도 참 대단하다. 하아..."
"지금 뭐하고 있어?"
"오빠한테 전화 올 거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은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재미있는 모양이네?"
그러고 보면 나은과 도연 두 사람은 궁합이 잘 맞는다.
도연은 나은의 남자를 빼앗고 기뻐하고, 나은은 도연이 그러는 것을 보고 흥분한다.
"나 지금 벌거벗고 있어요. 오빠랑 도연이가 하는 모습 생각하니까 참을 수 없어. 학!"
나은이 자신의 상태를 설명했다.
"막 손가락 안에 넣었어. 학! 도연이 지금 오빠 그거 안에 넣었어?"
"아니. 아직."
"아..."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
"흑! 큰일이야. 오빠. 나 벌써 올려고 그래."
"굉장하네."
나은의 변태성에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어쩐지 나와 하고 있을 때보다도 훨씬 빠르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심지어 오늘은 도연에게도 나은에게도 캐스팅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그녀들이 느끼는 기쁨은 내가 지닌 설정 때문이 아니라, 그녀들 본연의 것이다.
"훗!"
나은도 내 대답이 의미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웃어버렸다.
"나 진짜 변태같죠?"
"창피해?"
"네. 그런데 오빠가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흐윽!"
그녀는 내가 자신을 변태라 생각하는 것에서 더욱 큰 쾌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그러니까 나 진짜 어쩔 수 없는 년인가 봐. 하악!"
"참. 아까 권 이사를 만났는데."
"권 이사요? 무슨 일인데요? 하아..."
나은은 여전히 자신의 몸을 어루만지고 있는 모양이다.
"회사에서 요즘 새로 시작하는 사업 있잖아."
"아! 프랜차이즈 말이죠? 흐윽!"
"어. 그거 때문에 새로 팀이 만들어지려는 모양인가봐."
"근데 오빠는 왜요? 아아..."
그리고 도연도 내가 하는 말에 관심이 있는지 고개를 들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 팀을 꾸릴 사람을 모아보라고 하던데. 혹시 관심있어?"
"어? 오빠가 그 팀 맡아요?"
"팀장은 정 팀장이 하지만 나도 조금 역할이 있을 거 같아."
"그럼 나도 해요. 학! 그럼 우리 맨날 같은 사무실에서... 흐윽! 도연이... 도연이도요."
나은은 도연과의 이런 변태적인 관계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내 아래에서 날 바라보던 도연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이번 팀에 들어올 두 사람은 벌써 결정된 모양이다.
명분은 충분했다. 나은은 속옷과 수영복 사이트인 달콤한 비키니 팀 소속이고, 도연은 캐주얼 의류 사이트인 인투유 팀 소속이다.
새로운 프랜차이즈는 오피스 웨어는 물론이고 캐주얼 의류와 속옷까지 함께 가져갈 예정이니, 그쪽 사람들이 적어도 한 사람씩은 필요했다.